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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슈퍼 내 강화 댁
“삼흥리이싯꺄? 난 강서중학교 나왔시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래 전에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슈퍼가 생겼고 그 슈퍼 여주인이 강화 댁이라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무심히 전해 들었다.
내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얼른 냉동되어 있는 매장에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 건네면서 말했다.
“반갑시다. 여기서 고향 오빠를 만나게 되서......”
사실 난 그녀를 그날 처음 보았고 그렇다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냥 강화 댁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강서중학교를 나왔고 처녀 시절 인근 동네 총각들의 연모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도 그날 처음 그녀가 말해서 알았다.
그래도 나를 오빠라고 애교스럽게 불러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십년하고도 수년이나 연배인 나를 눈치 빠르게 고향 아저씨라고 호칭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귀엽던지......
우리 집 사람과는 벌써 잘 알고 지내던 터였다.
단지 내 사람들 누구와도 잘 통하는 붙임성이 좋은 우리 집 사람이 물건 값이 싸고 인상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 슈퍼 여주인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집 사람은 그녀를 상냥한 강화 댁이라고 불렀다.
그랬다. 그녀는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우리 집 사람 이상으로 붙임성이 좋았다.
그런대로 장사도 잘 되는지 손님맞이로 항상 분주했지만 만날 때마다 웃음 띤 밝은 얼굴이었다.
얼핏 보면 내가 좋아하는 탤런트 한지혜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처녀시절 연서(戀書)가 날아 올 만큼 얼굴 짱으로서 인근 동네 인기 짱이었다는 그녀의 말은 빈말이 아닌 듯 했다.
아니 지금도 어지간한 남자들이 모두 좋아할 것 같은 밝은 미소에다 마음마저 따듯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다.
노는 것이 좋아 부모님이 진학하라고 하셨는데 여고 진학을 안 했단다.
그러다가 외지 남자 만나 이곳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빠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부럽고 좋아요” 하면서 이번에는 비락 식혜를 가져다 또 먹으라고 주었다.
처음 보는 그녀 보고 공부 많이 했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젊은 시절 고시낙방해서 실연(失戀)했다고도 ......
정부중앙청사로 출근을 한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덕정산 도깨비가 불을 놓고 다니던 촌 동네 출신치고는 제법 출세했다는 말도 한적 없는데......
이 모두가 내가 탈영하지 말라고 논산훈련소 입대하던 그날부터 팔순이 넘은 지금도 계속되는 어머니의 새벽기도 덕분이라는 말도 한적 없는데......
나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있었다.
입이 빨라 시어머니로부터 한때는 ‘종개비 새끼’라고 불리 운 바 있는 우리 집 사람이 별 이야기를 다 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강화 댁네 슈퍼를 가급적 가지 않았다.
아침저녁 출 퇴근 길에도 되도록 눈에 안 띠도록 돌아 다녔다.
왜냐하면 손님맞이로 바쁜 강화 댁이 신경을 써서 바나나 우유를 공짜로 주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고향 오빠라고 무엇 하나 도와 준 것이 없는데 또 도와 줄 것도 없는데 매번 공짜 우유를 받아먹는 게 너무나 미안해서다.
얼마 전에 인근에 대형마트가 생겼다.
그 마트로 인해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우리 집 사람이 좋아했다.
대형마트로 인해 인근 소매상들이 울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강화 댁네 슈퍼가 주인이 바뀐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어디로 갔나?
우리 집 사람보고 물어도 그 사람도 모른단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른다.
그저 오빠네 누이네 했으니 이름을 서로 부를 일이 없었다.
이사 가기 전에 고향 오빠를 찾았을 터이지만 그것도 모르는 나는 공짜 우유 받아먹는 것이 미안해 애써 피해 다녔으니 얼마나 야속하게 생각 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명함이라도 한 장 주는 것인데......
그 가늘고 여린 손이라도 꼬옥 한번 잡아 주는 것인데......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 한다는 것이 그것도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공짜로 바나나 우유만 받아 처 잡숫고......
어제도 오늘도 촛불시위가 계속 된단다.
경제가 빨리 안정되고 경기가 살아나서 어디 가서든 누이 네 장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그 고운 누이 얼굴에 삶의 그늘이 지지 말아야 하는데...... //끝//
첫댓글 읽다가 가슴이 찡합니다,,고운 강화댁은 어디로 ??
삼흥리 양도면에 있는 곳 맞나요? 저희 아버님 고향이 삼흥리랍니다. 건평에서 사셨고요 강화댁이 외지에서 고향 오빠를 만나 한 동안이나 즐거웠을 것 같았는데 일부러 피하셨다니 너무 했습니다. 아무튼 강화댁의 행복을 빕니다.
강화댁들이 원래 거친척 하여도 속 정은 깊지요..타지에서 고향사람 만나면 다 내 형제같고 부모같고..하나라도 챙겨주고 싶고..그 마음이 어디 강화댁들 뿐이겠습니까~~~강화인들 원래 끈근하고 정 많고 의리있고..그래서 고향 사람이 좋은거지요..그~~~죠?
우리 동네에도 강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산에 자주 갑니다. 물로 저도 십년 정도 연배이시죠. 같은 아파트에 살고요. 무척 저를 챙겨주십니다. 이것이 고향의 맛이죠.
글쎄 어데로 떠났을까요... 하지만 븥임성 있게,억척스레 잘 살고 있을겁니다....
잘 봤습니다. 경제가 살아나야 될 터이고, 인연의 소중함도 생각하게 되는 좋은글...감사해요. ^^
아름다운마음 아름다운강화인~자꾸 가슴 찡해옵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980세대인데- 송해댁도, 선원댁,하점댁도...우리 성당엔 저를 포함하여 6명이 계시는데- 만날때마다 피붙이같은 깊은 정을 느낀답니다. 글의 소재가 모든이를 마음을 사로잡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내듯 내용이 살아있어 신선하고 표현력과 상상력이 뛰어나시네요. 마치- 신춘문예작가 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그 길로 나서보시죠??
어디에 가시든 잘살고 계실것입니다
긴머리여인님, 강가네집님, 고은이님, 여행자님, 홍길동님, 기러기님, cjc440620님, 강화도령 철종임금님, 한마음님 여러 분 모두 감사합니다. 관심을 보여 주셔서, 특히 강화도령님 과찬의 말씀이신 줄 알면서도 고맙고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했지요. 저는 돌고래가 아니라서 춤은 못춥니다. 강가네 집님 부친 고향이 삼흥리시라고요. 전설의 고향 양도면 삼흥리 맞습니다. 맞고 말고요. 긴머리 여인님 소녀같은 맑은 마음을 가진 분인 것 같네요. 탈 서울하시고 강화로 오신다고요. 잘 생각하셨네요.. 저도 훗날 삼흥리 고향집에 내려와 흙냄세 맡으며 살 생각입니다. 혼자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집 사람은 도깨비 나오는 동네에
우리집 사람은 도깨비 나오는 동네서는 무서워 못 산다고 하네요. 그 많았던 도깨비들도 이젠 환한 전기불이 무서워 사라진지 오래인데...... 고운 강화 누이는 어디서든 사랑받고 잘 살고 있을 거에요. 다만 사람이 억척스럽지 못하고 마음이 너무 곱고 여린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그 남편되는 사람도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양순한 사람이라서 더욱 ...... 고향님들 모두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
덕바위님 글 내용이 정감있어 자주 읽고 있고요...그래서 그런지 댓글 쓰신분의 좋은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인연이라면 또 만겠지요,,, 글솜씨가 좋네요^^ 시골냄새가 풀신나구여,,ㅎㅎ
잉어를 안먹는 분들이 많이 사시는 삼흥리출신이시군여~ㅎㅎ 대형화에 밀려 터전을 옮긴 강화댁 어데서라도 잘 자리를 잡앗음 하네여!! 맘이 짠한글이 었습니다...
덕바위님 정감이 늘씬 풍기는 글 늘 감사합니다. 다양한 세상 모습들이지만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여러 느낌이 있을진데 포근하게 열린마음이 아니면 세상의 따스한 모습 조차 차갑게 느껴지는 각박한 현실에 님의 넓은 마음은 세상을 밝게 만드는 한 축인듯 싶어 제게도 행복이군요. 감사해요.
초전도님, 이짱님, 양순이님, 아찌리님 등 여러 고향 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고향의 인정이 느껴지는 정겨운 댓글 고맙시다. 특히 아찌리님 너무 띄워 주셔서 부끄럽시다. 오늘 하루도 웃음으로 시작하시고 좋으 날 되시겨......안녕
모든 분들이 강화 ..아니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음마음 속에 자리 하고 있음을 " 글 " 과 댓글에서도 느껴 집니다. 마음에 글 보고 갑니다.
산과 바다님 감사합니다. 들려 주셨군요. 이 저녁도 여러 고향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