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엄마-
영주는 충격에 휩싸여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아들을 낳았다고 알고 있
었는데 그것 마저 거짓이었다니… 영주와 지금 지훈의 아버지인 태정은 젊은 시절 열렬히
도 사랑을 했었다. 기울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영주를 처음엔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태정네
사업이 어려워져 재벌 가 며느리를 드릴 생각을 한 부모님은 결국 두 사람을 갈라 놓으셨
다. 시간이 지나 영주가 아이를 가졌고 이미 만삭이라는 소식을 들은 태정 모(母)는 영주가
아이를 낳는 날 사람을 사, 영주가 아이를 낳자 마자 영주를 마취 시켜 아이를 빼돌렸던 것
이다. 열흘 밤, 낮을 울며 매달려 알아낸 거라곤 아들이었다는 말뿐이었다. 영주는 그때 돌
아섰다. 딸도 아닌,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을 낳았는데도 버렸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학
교에서 보내주는 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그렇게 독하게 음악 공부를 해 음대 최고인 줄리어
드에 입학했다. 2년 후, 태정 모(母)는 갑작스레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고, 태정은 영주를 찾
아 결혼했다. 태정과 결혼한 영주는 아이를 잊을 수 없어 찾기 시작했지만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 아이가… 여자 아이였다니… 영주는 허무했다. 여자 아
이였으니 버렸구나… 영주는 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여자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때 그 아기는 한달 정도 뒤에 보육원으로 보내졌어요."
"그게 어디죠?"
여자는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쪽지 한 장을 꺼내 영주에게 내밀었다. 낡고 낡은 쪽지 였다.
그 쪽지에는 보육원 주소가 적혀 있었다. 영주는 낮익은 주소에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에 오른 영주는 기사에게 쪽지를 건 내 주고는 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예요. 지금 보육원으로 가는 길 이예요."
"찾았군."
"그거 알아요? 그때 그 아이가 여자아이 였다는 거."
"무슨 소리야?"
"그 분이 사내아이를 버리실 분이 아니죠. 핏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던 분인데… 생각이
짧았어. 집에 들어가 얘기해요."
영주는 차오르는 감정에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렀
다. 한 줄기의 눈물은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 차가 멈추자 그제 서야
눈물을 닦아 냈다. 그리곤 익숙한 풍경에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맞아?"
"네…."
영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차가 멈춰선 곳은 영주가 내 후원해 오던 '희망
보육원' 이었던 것이다. 영주는 무거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보육원에 들어섰다. 아이들
과 함께 놀고있던 원장은 영주의 등장에 놀라 달려왔다.
"오셨어요."
"네…. 잠깐 안으로 들어가시죠."
원장은 영주가 무슨 말을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원장실로 들어
와 차를 한잔 타 내왔다. 영주는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잡았다가 차가운 물 한잔만 달라했
고, 원장은 찻잔 옆에 물 잔을 갖다주었다.
"우리 시연이가 무슨 잘 못이라도…"
"아니요. 오늘은 다른 일로 왔습니다."
"네? 무슨…"
"제가 아이 한 명을 찾고있는 건아시죠?"
"네. 처음 이곳을 오셨을 때 말씀 하셨죠. 남자아이를 찾는다고…"
"남자아이말고 여자아이를 찾습니다. 79년도에 들어왔던 아이요."
"79년도면…"
원장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파일을 찾기 시작했다.
"시연이가 79년 생이었지…79년도에 들어온 아이는 시연이 뿐인데요."
"뭐라구요?"
"그때 들어온 아이는 시연이 밖에 없어요. 어느 시설에서 보내져 왔죠."
영주는 그대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한참 후 영주가 눈을 떴을 때는 방안이었다. 구석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영주는 이불을 덮은 채 누워있었다. 영주는 다급히 일어나 원장실로 갔다.
"깨셨어요?"
"아니라고 해줘요. 아니라고!! 그 아이가 아니라고 말 해줘요!!"
"……"
"내가 그 애한테 어떻게 했는데… 제발…흑…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원장은 목놓아 우는 영주를 달래주었다. 영주는 이제껏 시연에게 했던 일을 떠올리고 괴로
워 했다.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조금 진정이 된 영주는 원장에게 시연에 대해 듣고 싶다
했다. 원장은 말하기를 주저하다 영주의 간절한 눈빛에 입을 열었다.
"시연이는 4살 때 한번 입양되었다 파양 당했어요…"
영주는 원장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입양을 하는 집이었어요. 너무나 자상하고 따뜻해 보이는 부부였는
데… 남자가 술만 먹으면 폭력을 썼던 모양이에요… 늘 맞기만 하던 시연인 그래도 부모가
생겼다는 생각에 모든 걸 참았었죠. 하지만… 그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고 바로 버려졌어
요… 시연이에게 그 2년간의 시간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죠. 시연인… 어려서부터 단
한번도 울지 않던 녀석이예요. 아기 때도 칭얼거리거나 보채는 적이 없었죠. 아마 그래서 그
집에선 더 맞았던 모양이에요. 아이 답지 않게 울지도 않는다고…"
영주는 원장의 말을 듣고 무너지는 가슴으로 차에 올랐다. 자꾸만 원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
아 지워지지가 않았다.
["시연인…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울지도 않죠. 혼자 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편의점으로 갑시다."
"네?"
"그 아이가 일하는 편의점 말 이예요!"
"네! 알겠습니다"
영주는 시연에게 가는 내내 떨리는 손을 어쩌지 못했다. 처음 시연을 보육원에서 봤을 때가
생각났다. 반듯해 보이는 모습이 예뻐 보였는데… 지훈이 선택한 아이가 그 아이란 사실에
그 예뻤던 모습은 잊고 '고아'라는 타이틀에만 집중했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그런 타이틀을 안겨준게 자신이라니… 하늘이 무너져도 이보다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
음 인사 온 아이를 불러놓고 다른 여자를 불러 아프게 하고, 그 아이를 맡아준 보육원의 후
원을 끊어 살집을 없애고,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던 꿈을 짓밟았다. 영주는
자신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편의점 앞에 도착한 영
주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 한 채 일하는 시연을 지켜봤다. 그런 모진 일을 겪고도 웃고있는
시연을 보고 가슴이 미어져 눈물만 흘렸다. 창을 통해 시연을 보던 영주는 창에 손을 대고
시연을 더듬어 본다.
***
지훈은 몇 일째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연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오
랜만에 은하네로 시연을 보러 가는 지훈은 매번 빈손으로 갔던게 죄송한 마음에 근처 편의
점으로 들어갔다. 음료수 박스를 하나 고른 지훈은 계산을 하는 도중 편의점 안쪽에서 나오
는시연을 보고 놀랐다.
"어?"
"누나, 놀이터 또 언제 가요? 누나 말 들으니까 놀이터 쏠쏠할거 같아."
"어? 나중에…"
"시연씨 여기서 뭐해요?"
"네? 저…"
"같이 알바 하는 누나예요. 누나 애인? 이야… 멋있다."
"알바?"
"하하… 야, 나 먼저 간다. 지훈씨 가요."
억지로 지훈을 끌고 나온 시연은 무슨 알바 냐는 질문에 대충 은하 아버지께 빌린 대출금이
걱정 되서 방학동안 저녁에 잠깐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연은 지훈을 보조자 석에 태우고
자신이 운전자 쪽으로 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어디가요?"
"지훈씨 집이요."
"응? 나 은하씨 아버님 드리려고 음료수도 샀는데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지훈씨 너무 피곤해 보여.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지훈은 어색하게 웃는 시연의 볼에 입맞추었다.
"우린 아직도 '자기'란 말이 입에 안 붙었네."
금방 집 앞에 도착하자 아쉬운 지훈은 차에서 내려 시연을 꼭 안아주었다.
"어? 피아노 소리다."
"피아노 좋아해요?"
"아니요. 저 피아노 소리만 들으면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요. 그런데… 이상하네…"
"뭐가요?"
"지훈씨 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싫지 않아요. 왠지… 익숙해요…."
"최고를 아는 모양이네."
"네?"
"저희 어머니 최고의 피아니스트거든요. TV에서 못 봤어요?"
"피아노 치는 모습만 봐도 채널을 돌려서…"
시연은 지훈과 한참을 이야기하며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시연을 보내고 들어온 지훈은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어머니를 보고 그냥 올라가려다 발길
을 멈췄다.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어머니 모습에 그냥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
이다.
"어머니…"
영주는 지훈의 목소리에 연주를 멈췄다. 그리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지훈을 돌아 봤다.
"지훈아… 안된다… 절대 시연인 안돼… 흑…"
지훈은 눈물로 범벅이 되 안된다 말하는 어머니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토록 싫어하시리
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멍하니 어머니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데 지희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정말 너무해! 너무 무섭다구!!"
"지희야, 어머니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오빠는 화나지도 않아? 난 엄마가 나 버리고 피아노를 택했어도 엄마가 자랑스러웠어. 자
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그럴 것까지 없었잖아. 우리 선생님
할 줄 아는 거라곤 아이들 가르치는게 전부인 사람이야!"
"무슨…소리야?"
"오빠 아직도 몰랐어? 엄마가 선생님을 학교에서 몰아 내버린 거."
지훈은 충격에 어머니를 돌아봤다. 영주는 말없이 얼굴을 감싸쥐고 울고 있었다. 지훈은 그
런 영주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정말 그러셨어요? 정말… 그 사람한테 그러셨어요?!"
"지훈아… 흑…"
"말씀해 보세요!! 진짜 그러셨어요?!!"
"흐윽…흑… 지훈아… 아가…"
지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영주는 그런 지훈을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다. 지희는 울고있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지훈은 달리고 달려 은하네 도착했다.
"이시연!!!"
"아이구! 귀청 떨어지겠네. 무슨 일이야?"
"이시연!! 나와!! 이시연∼!!!"
은하 아버지는 눈물이 범벅된 채 시연을 부르는 지훈을 보고 알겠다는 듯이 가게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시연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가게로 내려왔다. 그리고, 울고있는 지훈을 보고 가슴이 아파
인상을 썼다. 지훈은 시연이 나오자 다리를 끌며 시연에게 다가오다 털썩 무릎을 꿇는다. 고
개를 숙인 채 우는 지훈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진다.
"지…지훈씨…."
"미안해… 정말…흐윽… 미안해… 내가 잘 못했어… 내가…흑…"
시연은 우는 지훈을 안아주었다. 지훈은 시연을 안고 오열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그렇게
목놓아 울어 버렸다.
"내가 미안해요… 말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미안해 할 줄 알았으면 말 하는건데…"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서로를 안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
시연은 심난한 마음으로 편의점을 지키고 있었다. 낮부터 저녁까지 하는 편의점 일은 따분
하고 재미없었다. 시연은 물건을 모두 끄집어내고 다시 정리할 요량으로 장갑을 끼고, 진열
대로 가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건을 꺼낸 자리를 걸레로 닦던 시연은 손님이 오는
소리에 인사를 하며 일어섰다. 시연은 들어온 사람이 지훈의 어머니인걸 알고는 들고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다가가 섰다.
"안녕하셨어요…."
"일은… 힘들지 않아요?"
시연은 부드러운 지훈 어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훈의 어머니는 눈물까지 그렁그
렁해 시연을 보고 있었다.
"시간 되면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
"죄송합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1시간 뒤에나 와서요…."
"그럼 요 앞 커피숍에서 기다릴게요."
시연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 나가는 지훈 어머니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1시간이 이렇게 길고도 짧은 줄 태어나 처음 알았다. 알바를 기다리는 내내 속이 타, 입술
이 바짝 마르고 말았다. 알바가 오자마자 잠시 나갔다 온다 하고 뛰어나간 시연은 커피숍에
앉아있는 지훈 어머니를 보고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내뱉었다.
시연이 커피숍에 들어서자 영주는 울컥 눈물이 나올 뻔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시연
을 맞이한 영주는 시연이 음료를 시키고 물을 한번에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다. 자신
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쓰렸다.
"부탁이 있어요…"
시연은 지훈의 어머니가 부탁이 있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헤어져 달라
는 말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훈의 어머니 입에선 뜻밖에 말이 나왔다.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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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소설01
[중편]
해프닝(happening) -40.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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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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