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상 시대, 불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선명상’은 초기불교 수행
조사선 선문답, 간화선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전
현대화, 간소화된 프로그램
결국 원천인 선불교 가르침
불교 수행법으로 회귀한다
명상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도 늘어나면서 실제로 명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불교계는 이런 명상 열풍이 필연적으로 마음공부 원류인 불교 수행법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은 제10교구본사 은해사 템플스테이에서 참선 명상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늘 위축되어 있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나를 살피며 다그쳤던 나, 그런 나에게 미안했다. 8일간 수행하는 동안 내 몸에 감사했고, 앞으로도 귀하게 대하고 잘 데리고 살다가 자연으로, 우주로 돌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동안 많은 잡념으로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했지만, 이제는 한순간 한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웃음소리도 예쁘게 내려 애쓰고 눈길 닿는 데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살피게 된다. 세상으로 돌아간 뒤 어찌 될지 두렵지만, 그때마다 법문을 떠올리며 ‘나’를 살아보아야겠다. 이 송장 끌고 다니는 이것은 무엇이냐?” (참사람의 향기 참가자 소감 중에서)
과학기술가 대니엘 골먼과 신경과학자 리처드 데이비드슨이 함께 쓴 저서 <명상하는 뇌>에서는 최근의 명상 동향을 다섯 가지 수준으로 구분한다. 요컨대 고대부터 이어져 온 선(禪)은 우리 존재의 심오한 변성을 향한 마음을 깊이 탐구하는데 있었다면, 최근에는 현대인들이 겪는 모든 형태의 불안에 대한 치료제로 이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1수준은 순수한 형태의 참선 수행법으로 예를 들면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숭산스님, 아잔차 스님 등의 수행법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요소가 서구사회로 유입되면서 출가자나 수행자와 같은 삶의 방식이 일부 제거되고, 서구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바꿨다. 아시아의 전통 수행 정신은 그대로 계승하되 문화적 차이로 발생한 오해 혹은 방해될 만한 요소를 뺀 형태의 수행을 제2수준이라 한다. 제3수준은 동일한 명상 수련법들을 영적인 맥락을 제거한 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존 카밧진이 창시한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완화 프로그램’ MBSR은 현재 수천 곳에 달하는 병원과 치료 센터와 다양한 시설에서 활용되고 있다. 초월명상인 TM은 고전적인 만트라 수련자들이 초월명상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 현대인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제4수준으로는 훨씬 폭넓게 접근 가능한 형태들이 해당된다. 종교적 색채가 거의 희석돼 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유행하는 기업 명상 교육이나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명상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5수준은 아직은 미완이지만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로 혁신과 변형을 이끌게 될 것이고, 완성될 경우 광범위하게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법정스님은 “선(禪)은 순수한 집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實相)을 자각(自覺)하는 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길이다. 이러한 선이야말로 일찍이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특색이 아닐 수 없다”며 <선가귀감>을 번역하면서 선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불교에서 선정은 불교 전반에 걸친 기본적인 요소이고 이 선정을 통해 지혜가 열린다고 보았다.
<아함경>의 ‘우빠리장자경’에는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행복, 영원한 행복의 방법을 부처님께 듣고서 우빠리장자는 선정을 통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에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다. 티가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겼으며,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으며, 법을 체득했으며, 법을 간파했고, 무외를 얻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게 됐다.
<육조단경>에서는 본래심이 청정도량이고 본래심이 극락정토라고 했다. 이 본래심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이 근원이며, 고정된 틀이 없이 생생하게 지금 여기에 살아서 행복한 마음을 본체로 하고, 나에 머무름 없어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마음을 뿌리로 삼는다.
선명상은 초기불교 수행의 방법인 37조도품, 유식의 전식득지(轉識得智), <화엄경>의 수행체계인 52위, 조사선의 선문답, 간화선 화두 방법으로 2600여 년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발전됐다. 두루 알다시피 한국은 간화선 전통이 가장 살아있는 곳이다. 모든 선명상의 깊은 뿌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이후 AI시대가 가속화되고 명상의 과학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때 제1수준에 머물러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천천히 심호흡을 해보세요.” “저는 호흡 세션이 정말 맘에 들었는데요. 다양한 호흡 세션이 구비돼 있어 놀랐어요.” 아이폰 어플 ‘Calm’. 글로벌 기업 애플이 만든 이 명상 관련 어플의 인기가 뜨겁다. Calm에는 명상에 관심 있는 현대인들에게 최적화한 세션들이 가득하다. 예컨대, 호흡법의 경우 ‘집중’, ‘에너지 공급’, ‘이완하기’ 등의 다양한 세션들이 갖춰져 있다. 현대인들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호흡을 선택해서 활용하면 된다. 명상을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이들에게 아이폰 어플 Calm은 더없이 유용한 수단이다. 실제 이 어플을 사용한 이들은 “깊은 호흡은 어떤 운동보다도 더 심신에 좋았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굳어져 있던 어깨가 풀리고 깊은 내면을 탐구할 때 좋은 호흡세션이다.” 등의 반응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외국에서 불교를 기반으로 한 마음챙김 명상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더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특히 20~30세대에서 건강관리를 넘어 스트레스, 내면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자기관리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인들의 건강이 정신, 마음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젊은 층에서 명상열풍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명상 관련 앱이나 유튜브 채널 등의 증가추세가 폭발적이다. 스티브 잡스, 유발 하라리,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명상을 즐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명상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자료도 늘어나면서 실제로 명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불교계는 이런 명상 열풍이 필연적으로 마음공부의 원류인 불교 수행법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유행하는 명상 프로그램들이 공통적으로 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명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현대화되고 간소화된 프로그램들은 결국 그것들의 원천인 불교 수행법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현대인들은 깨달음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 마음이 편안하면 좋다고 한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무심, 진공의 마음에서 나온 선불교의 가르침과 불교수행법에 수렴될 수밖에 없다.
최근 3년 동안의 유행성 감염질환인 코로나는 인류의 생활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감염병의 유행은 필연적으로 큰 변화를 불러왔다. 1347년에서 1351년 사이 창궐한 페스트는 약 3년 동안 200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신과 교회에 의지하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는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화부흥기로 이어지게 됐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급하게 AI시대를 불러오는 중이다. 이런 인류사적 변화의 흐름에 불교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제 인류 최고의 지성 시대로 비약하는 토대를 수천 년의 마음 수행의 보고인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 스님들의 현통(玄通)한 말씀에서 찾을 수 있도록 원력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
( 금강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
첫댓글 선명상 시대
불교의 준비부분을 명쾌히 드러내어 주신 금강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