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t Temple at Haw Kham (Royal Palace) complex.
루앙쁘라방의 왕궁박물관 호오캄은 로컬 역사를 잘 설명해 두었기 때문에 루앙쁘라방의 여행출발지로 아주 좋은 곳이다. 왕궁은 원래 1904년 시사왕웡(Sisavang Vong) 왕과 그의 가족들의 주거지로 메콩 강변에 건설되었다.
The 53 places to go in 2008_ ③ Laos_루앙쁘라방 Luang Prabang
_travel┃지구촌이야기|라오스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_ 올해에 가면 좋은 세계 53개 여행지중에서 1위로 선정된 나라입니다. 상세한 배낭여행 정보를 정리해봅니다.
justinKIM
루앙쁘라방 Luang Prabang
루앙쁘라방 주변은 메콩 강과 그 지류인 남칸(Nam Khan), 남오우(Nam Ou), 남서앙(Nam Seuang, Nam Xeuang) 등을 따라 상류 하곡에 세워졌던 초기 타이-라오 머앙들이 있었던 곳이다. 최초의 라오족 왕국인 란상(Lan Xang) 1353년 크메르의 지원을 받은 화응움(Fa Ngum)에 의해 세워졌다. 란상은 1545년 포티사랏(Phothisarat) 왕이 비엔티안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란상의 수도였다.란상 시대 이후에도 루앙쁘라방은 군주제에서 힘의 기반이 되었던 곳이다. 1694년 술리야웡사(Suliya Vongsa) 왕 이후에 란상이 무너졌을 때, 술리야의 손자 중 한 명이 루앙쁘라방에 독립왕국을 세워 비엔티안과 참빠삭에 있는 왕국과 경쟁을 하였다.
그 이후에 루앙쁘라방은 힘이 약화되어 시암이나 베트남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되었고, 마침내 20세기 초 라오스가 프랑스의 보호하에 들어가면서 루앙쁘라방도 프랑스의 세력하에 놓이게 되었다.프랑스는 라오스에게 루앙쁘라방의 군주제를 유지하도록 허락했다. 하지만 1975년 베트남의 후원을 받은 빠텟라오가 정권을 잡으면서 군주제는 완전히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오늘날 루앙쁘라방은 인구 16,000의 조용한 도시로, 역사적인 사원들이 곳곳에 있으며, 오래된 프랑스 맨션들이 아름다운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왕궁 박물관 Haw Kham
호오캄은 로컬 역사를 잘 설명해 두었기 때문에 루앙쁘라방의 여행출발지로 아주 좋은 곳이다. 왕궁은 원래 1904년 시사왕웡(Sisavang Vong) 왕과 그의 가족들의 주거지로 메콩 강변에 건설되었다. 1959년 왕이 죽자 그의 아들 사왕왓따나(Savang Vattana)가 왕관을 물려 받았다. 하지만 1975년 혁명 이후 곧 그와 그의 가족은 북부 라오스로 유배되었고(그 후에 전해진 소식은 없다) 왕궁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큰 입구홀에 인디아,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불상들 뿐만 아니라 왕가의 다양한 종교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전시물 중 하나는 루앙쁘라방 스타일의 입불상으로 대리석으로 조각되었으며, 심사숙고하고 있는 보살의 형상을 하고 있다.왕궁의 오른쪽 전면에 있는 방은 밖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파방(Pha Bang)을 비롯하여, 박물관에서 가장 귀중한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83 cm 높이의 금으로 만든 입불상인 파방은 전체 무게가 54 kg 또는 43 kg로 전해진다.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믿는 사람 마음이다.
또한 같은 방에 부처가 새겨진 거대한 상아, 루앙쁘라방 스타일의 입불상, 몇 개의 크메르산 좌불상, 현지 사원에서 떼온 우수한 라오스 프리즈(소벽), 3개의 새오마이칸(saew m뎘 kh뇆; 여왕이 수놓은 실크스크린으로 종교적 이미지가 담겨있다) 등도 전시되어 있다. 전대 왕의 리셉션룸에는 역대 라오스 왕들의 흉상들과 두 개의 커다란 라마야나(Ramayana) 병풍이 있다. 벽에 있는 벽화는 1930년 프랑스 화가 Alix de Fautereau가 그린 것으로 라오스의 전통 생활들이 그려져 있다. 방의 한쪽편에 있는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하루 중 시간에 따라 각 벽면의 그림이 나타내는 중요도가 달라진다. 왕관 수여식을 한 방과 왕실 가족들이 거주한 지역 등도 흥미롭다. 왕궁 박물관은 월~금 8:30~10:30 사이에 문을 열며, 입장을 위해서는 호텔이나 여행사로부터 받은 ‘초대장’ 바이사너(ba? san쌷)를 제시해야 한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는 이 간단한 종이를 투숙객들에게 보통 무료로 주며, 몇몇 곳에서는 1000 kip을 받는다. 그리고 투어그룹이 구경하는 늦은 아침에 맞춰서 박물관에 가야한다. 관리인이 여행자가 묵고있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을 적도록하며, 입장료로 1000 kip을 받는다. 여행사에서는 초대장을 3000 kip에 발급한다.
왓시엥통 Wat Xieng Thong
메콩 강과 칸 강에 의해 형성된 반도의 북쪽 끝 부근에 루앙쁘라방의 가장 장엄한 절인 왓시엥통(황금도시 사원)이 있다. 셋타티랏 왕에 의해 1560년 만들어진 것으로 1975년까지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왕궁처럼 왓시엥통도 메콩 강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법당은 지붕이 땅까지 길게 이어지는 고전적인 루앙쁘라방 사원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북부 태국에서도 몇 군데 이 양식이 나타난다). 그리고 법당 뒷벽에는 붉은색 바탕 위에 인상적인 ‘삶의 나무’가 모자익으로 그려져 있다. 법당 내부의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기둥들은 dhammachakkas가 그려진 천정을 지탱하고 있다.사원의 동문 근처에 왕실 장례법당이 있다. 법당 외부의 금박패널에는 Ramayana에서 나온 에로틱한 소재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왓시엥통의 입장료는 250 kip이다.
왓위순알랏 Wat Wisunalat
왓위소운(Wat Vixoun)으로도 알려진 이 절은 타운 중심부의 동쪽에 있으며, 151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루앙쁘라방에서 현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896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2년 후에 지금의 법당을 다시 지었다. 원래 법당은 나무로 지어진 것이었지만, 복원은 벽돌과 치장벽토로 이루어졌다. 건축자는 욋가지 나무로 인해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도록 법당에 난간 창문을 만들었다(욋가지 나무는 옛 남부 인도와 크메르에서 고안된 것으로 라오스 건축에서는 드문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테라스를 완전히 덮으면서 길게 경사지게 내려온 앞 처마이다.천장이 높은 법당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비를 부르는 불상(Calling for Rain Buddhas)과 15~16세기 루앙쁘라방 시마(sima; 서품석)가 수집되어 있다. 법당의 전면에는 탓파툼(That Pathum; 연꽃무늬 불탑)이 있는데 151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반구상의 형태 때문에 탓막모(That Mak Mo) 또는 수박 불탑으로 부르고 있다.
푸시 Phu Si
푸시의 산사면에 지어진 절들은 다소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지만,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이전에 다른 절들이 있었던 자리 위에 지은 것처럼 보인다. 특징적인 절은 하나도 없지만,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타운의 모습이 장관이다.언덕 아래쪽에 왓빠아후악(Wat Paa Huak)과 왓파풋타바앗(Wat Pha Phutthabaat)이 있다. 경사면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려면 왓빠후악의 북문에서 500 kip의 입장료를 내어야 한다. 정상에 있는 탓촘시(That Chomsi)는 4월 중순에 열리는 라오스 신년행진의 출발점이다. 이 절 뒤편에 있는 작은 동굴 사당은 왓탐푸시(Wat Tham Phu Si) 또는 왓탐모타야람(Wat Thammothayaram)으로 불린다. 정상 근처에 오래된 러시아제 대공포가 하나 있는데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다.
기타 절들
Phousy Hotel과 우체국 가까이에 있는 왓마이 수완나푸마함 Wat Mai Suwannaphumaham;
새로운 절)은 1796년에 세워진 것으로 한 때 상카랏(Sangkharat; Lao Sangha의 종정)의 거주지였던 곳이다. 전면에 있는 베란다에는 화려한 장식의 기둥들과 문에 있는 호화스런운 금부조 패널이 있어 상당히 멋있다. 부조에는 라마야나 이야기와 현지 마을의 일상사 뿐만 아니라 부처의 두 번째 탄생에 관한 베산따라(Vessantara; Pha Wet) 전설에 관해 자세하게 새겨 놓았다. 보통 때는 루앙쁘라방의 국립박물관에 안치해 두는 파방(Pha Bang)을 아노스 신년축하 기간 중에는 이곳으로 옮겨온다.루앙쁘라방에서 메콩 강을 건너 몇 군데 절들이 있지만, 주변의 농촌 경관을 제외하면 절 자체는 그렇게 특별하지가 않다. 왓탐시엥맨(Wat Tham Xieng Maen)은 왓시엥통에서 바로 강을 건너자마자 있는 석회 동굴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절에서 불타거나 혹은 파괴된 불상들을 이곳에 모아 두었다. 왓탐 근처에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동굴들이 많으므로 손전등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아주 세련되게 복원된 왓롱쿤(Wat Long Khun)은 왓탐에서 동쪽으로 꽤 떨어져 있다. 멋있는 주랑 현관은 1937년에 꾸며진 것이며, 절의 오래된 부분들은 18세기부터 있어온 것들이다. 루앙쁘라방 왕의 대관식이 임박했을 때, 왕위 계승자는 왕관을 받기 전 3일 동안 관습법에 따라 왓롱쿤에 묵었다. 루앙쁘라방의 북쪽 부두에서 왕3000 kp에 왓롱쿤까지 보트를 전세낼 수 있다. 아니면 드물게 다니는 1인당 100 kip하는 페리를 기다릴 수도 있다. 앞에 소개한 두 절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 왓촘펫(Wat Chom Phet)이 있으며, 거기서 아무런 방해물 없이 강을 바라볼 수 있다.타운에서 남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최근에 세워진 산띠체디(Santi Jedi; 평화의 탑)가 있다. 커다란 노란색의 불탑 내부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꼭대기 근처에 난간이 있어 주변 평야지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내벽에는 불교도의 몸가짐과 도덕적인 훈계가 그려져 있다. 타운에 있는 탓루앙 시장 뒤에는 현대식 베트남-라오스 절인 왓파바앗따이(Wat Pha BaatTai)가 있다.
시장
루앙쁘라방의 중앙시장은 딸라앗달라(Talaat Dala)로 Thanons Kitsalat와 Latsavong의 교차로에 자리잡고 있다. 비엔티안의 시장에 비교해서 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물, 주방용품, 식품, 의류, 수공예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중앙 농산물 시장인 딸라앗사오는 메콩 강과 왓파바앗의 근처인 Thanons Phothisalat과 Phu Wao의 교차로에 있다. 또한 중요한 농산물 시장인 위엥마이 시장(Talaat Vieng Mai)이 Thanon Photisan의 북동쪽 끝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항아리 평야 Plain of Jars
폰사완(Phonsavan)의 몇 킬로미터 남쪽에는 원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항아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복이 완만한 벌판이 있다. 항아리들의 보통 무게는 600 kg에서 1톤 정도이며, 가장 큰 것은 무려 6톤이나 된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제조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돌항아리의 기능에 대해서는 육류 저장, 포도주 발효, 쌀 저장 등 다양한 이론(하지만 결정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직까지 없다)이 제기되었었다. 많은 작은 항아리들은 수집가들이 가져갔지만 들에는 아직 몇 백개의 항아리가 남아있다. 통하이힌(Thong Hai Hin)으로 알려진 곳 이외에 두 곳에 더 항아리가 널려있는 곳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이드를 주선받아 찾아가 볼 수 있다.
호찌민 루트 Ho Chi Minh Trail
악명 높았던 호찌민 루트(Ho Chi Minh Trail; 실질적으로는 오솔길과 자갈길의 복합적인 연계망)가 사반나켓의 바로 동쪽에서 시작하여 라오스-베트남 국경과 평행하게 이어지고 있다.비록 대부분이 1963~74년 사이 인도차이나 전쟁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원래는 베트민(Viet Minh)이 50년대 프랑스에게 대항할 때 남부로 침입하는 루트로 사용했던 것이다. 1966~71년 사이 60만명 이상의 베트콩이 100톤 이상의 식량과 50만톤 이상의 트럭, 탱크, 대포, 무기 등을 이 루트를 통해 운반했다. 항상 25,000명의 베트콩들이 루트를 경비했고, 벌집처럼 복잡한 루트의 지하에는 막사, 연료창고, 자동차 정비소, 대공 포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호찌민 루트에 가장 가까운 타운은 세뽄(주민 5000명)이며, 9번 국도를 따라 사반나켓의 약 170 km 동쪽에 있다. 세뽄은 전쟁 중에 폐허가 되었으며, 현재는 판자촌 타운이 형성되어 동부 라오스에 대한 장기간 폭격의 증거로 남아있다. 세뽄에서 호찌민 루트까지는 15~20 km를 더 가야한다.루트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도 많은 부서진 탱크와 전쟁 잔해물들을 볼 수 있다. 지표면에 많은 잔해물들이 있지만, 지하에 더 많은 것들이 남겨져 있다. 큰 길에서 꽤 걸어들어가지 않을 작정이라면(미확인 폭발물들이 있으므로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 좋다), 세뽄 밖으로 나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볼라웬 고원 Bolaven Plateau
참빠삭 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비옥한 볼라웬 고원(간혹 Bolovens라고 표기하기도 하며, 라오스에서는 Phu Phieng Bolaven으로 알려져 있다)은 20세기초 프랑스가 커피, 고무, 바나나의 재식농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집약적인 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오늘날 라오스는 이 지역에서 커피콩 재배를 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커피가격의 하락으로 생산량도 많지않고 소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이외에 과일, 생강(cardamom), 등나무 등을 재배하고 있다. 고원은 알락, 라벤, 타오이, 수아이, 까뚜 등 몇몇 몽-크메르 부족의 생활터전이다. 알락(Alak)과 까뚜(Katu) 족은 원형으로 늘어선 야자수 오두막을 지어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해마다 열리는 물소 제사(대개 3월 보름)로 잘 알려져 있다. 희생되는 물소의 수는(보통 1~4마리) 재력과 지난해 농사의 추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행사 기간 중에 마을의 남자들은 집들 중앙에 형성된 마당에서 목각 가면을 쓰고 창을 든 채 물소 주변을 돌면서 춤을 춘다.
축제 및 행사
라오스 불력의 기원(BE)은 638 BC이다(태국에서는 543 BC). 고로 라오스 달력에서 638년을 빼면 서기 연도가 나온다(즉 1990 AD는 라오스 불력으로 2628 BE이다).라오스의 대부분의 축제는 농업 절기나 불교 기념일과 매우 관계가 깊다. 라오스어로 축제를 뜻하는 말은 분(bun; 또는 boun)이다.
·분방화이 Bun Bang Fai; 로켓 축제
5월─불교가 도래하기 전에 열리던 기우제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라오스와 북동부 태국에서 비사카뿌차(Visakha Puja)와 함께 열린다. 라오스에서 가장 활기있는 축제인데, 음악과 춤(특히 불경스러운 모오람 공연)을 곁들인 행진과 술을 마시는 잔치가 벌어지며, 하늘에 대나무 로켓을 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탓루앙That Luang; 축제(보름)
11월─비엔티안에 있는 파탓루앙(Pha That Luang)에서 열린다. 축제의 첫날 아침에 수 많은 스님들이 구호품과 연꽃 봉헌을 받기 위해 모인다. 화려한 행진이 파탓루앙과 왓시무앙(Wat Si Muang)에서 벌어진다. 불꽃놀이, 음악 등이 어우러진 축제가 일주일 동안 계속되며, 탓루앙 주변을 촛불을 들고 도는 위엔티엔(wien thien)으로 대미를 장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