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믿음
성경 말씀: 창세기 15:1-11; 갈라디아서 2:11-21
요약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함께로 믿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함께가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펼쳐집니다. 그것은 믿음의 삶, 곧 언약의 삶으로 전개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믿는 이의 분별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믿는 이의 종교성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즉 개인의 마음의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는 주제로 로마서를 시작합니다. 이 주제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킴에 의한 의로움의 주장에 대비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이 의롭고 하는 이들에 반하여,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의롭다고 확언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십자가에 처형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확언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는 주제는 율법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행위입니다. 개인은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만큼 의롭습니다. 반대로 그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 됩니다. 의로움과 죄 됨은 율법으로 대치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에 의한 행위의 의 대신 믿음의 의를 도입합니다.
행위에 의한 의는 개인적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개인의 의를 세웁니다. 이 점만 고려되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겼음으로 죄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죄 됨은 주어진 율법에 대한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율법으로는 의로운 이들과 죄인들은 나눠집니다.
바울은 율법에 의한 개인의 의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죄가 율법보다 하나님으로 말해지면, 하나님 함께로부터 떠남입니다. 반대로 의는 하나님과 함께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이들은 의롭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는 이들은 죄 됩니다.
바울은 주어진 문자적 율법에 의한 의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 함께로 의를 말합니다. 따라서 그는 시각을 율법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으로 바꿉니다. 언약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들은 의롭지만, 언약으로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이들은 죄 됩니다. 바울은 율법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론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고 바울은 믿음으로 의를 아브라함의 경우로 제시합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여기서 아브라함이 주님을 믿음은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의 이루어짐의 소망으로 사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은 의롭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옛 언약의 삶은 그로 시작합니다. 옛 언약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의롭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부각합니다.
믿음은 언약의 삶의 기반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은 언약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개시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삶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우선 믿어져야 합니다.
율법은 문자로 표현됨으로, 그 적용은 판단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수반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이들은 그 이루어짐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약속으로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에 의해 해져야 할 것이 없습니다.
언약의 믿음
하나님은 그분 백성과 함께하시려고 그분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그분 약속을 믿는 이들은 그분 백성이 됩니다. 믿음은 언약의 백성 됨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는 믿음은 개인이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마음은 개인에게 갇힙니다. 따라서 개인들에 의해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으로, 그들은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함께하지 못합니다. 종교적 믿음이 그렇습니다. 마음으로 믿음은 고립된 개인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으로 믿으면, 그는 언약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종교적으로 몰입되게 됩니다. 언약의 믿음은 함께의 믿음입니다. 함께의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믿음입니다. 개인들을 세우는 믿음이 아닌 언약의 삶을 믿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비추어,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는 믿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언약에 근거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제기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새 언약의 내용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그분 사역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함께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알립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살도록 그분 제자들을 부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름은 그들이 예수님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언약의 설정에서 온전히 다루어집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직접 믿는다고 주장하면, 그는 자신의 마음 성향으로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혹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뜻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질 때, 예수님은 언약의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언약의 내용으로 언약의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언약의 백성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언약의 기반을 떠나 말해지면, 그 내용은 분명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종교적 창시자로 믿는 개인의 확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반 종교인들의 그들 종교 창시자에 대한 신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의해 깨닫게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종교적 믿음에서 벗어난 언약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함께하는 언약의 삶을 삽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수련된 개인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훌륭한 개인들은 종교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훌륭한 개인들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나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에게 고백으로 부여됩니다. 마음의 성향에 의해 부여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로 고백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됩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엔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내용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내용은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언약의 믿음은 영적입니다. 아브라함에서 보이는 옛 언약의 믿음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그의 후손의 번성과 그들이 살 땅입니다. 따라서 그의 믿음은 조건적인 것을 향합니다. 조건적 믿음으로 삶은 조건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영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말해집니다. 세상의 조건적 내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영적으로 인도됩니다. 하나님의 함께로 인도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이는 예수님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예수님으로 말함은 영적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내용으로 말해집니다.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말함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을 말하는 기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이 말해진 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믿음은 말해져야 합니다. 즉 말해지는 예수님은 언약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서사는 영성으로 전개하는 믿음의 서사입니다.
예수님은 언약적으로 더불어 영적으로 말해집니다. 즉 예수님의 이야기는 언약 영성을 보입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읽는데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사실성이 아닌 언약의 영성으로 읽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야기는 종교적 내용으로 읽어집니다.
복음서에 접해지는 예수님은 믿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된 기자에 의해 서사됩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인도된 믿음의 내용으로 서사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전기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즉 복음서로 말해지는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이 아닌 믿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영성으로 말해집니다. 따라서 믿음의 예수님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사실인가 아닌가의 질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즉 복음서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사실성을 보이지 않고 영성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영성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성으로 믿음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종교성으로 믿음은 개인의 마음에 머뭅니다. 그러나 영성으로 믿음은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세상의 사실로 말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아버지로부터 오신 아버지의 독생자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자취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로 예수님을 말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예수님이 아닌 아버지의 예수님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저희 삶이 세상의 앎으로 매진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