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모 심는 날
이은봉
처서를 지낸 늦여름 햇살, 아스라이 졸고 있다
오래지 않아 해동갑이 온다
마음 급하다 어서 빨리 부채밭으로 가자
달리는 베라크루즈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친다
전평리 종묘장 아직 문 열려 있다
배추 모 한 판 120포기
현금 만원을 주고 산다
지난주에 거름을 주고 갈아엎은
세 평 남짓 부채밭 새뽀얀 흙 속살,
아직은 좀 더 갈고 다듬어야 한다
흙 속살 살찌우기 위해 붕사부터 뿌려야 한다
어린 배추 모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부채밭
여기저기 물부터 흠뻑 준다
서둘러라 해 지고 있다 자칫하면
오늘도 머리에 헤드랜턴을 써야 한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더듬대다가는
해 지기 전 배추 모 다 심기 어렵겠다
성큼성큼 땅거미가 내리는데
헤드랜턴을 켜 밭두둑 비취 가며 배추 모 심는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옛 어른들의 말씀 자꾸 생각난다
배추 모가 보드라운 흙 만나는 데도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밤이 깊어가는 데 이게 무슨 지랄이냐고
동네 사람들 비웃어도 하는 수 없다
지금이 바로 그때, 무엇이든 다 때를 맞춰야 한다.
―《시에티카》 2021년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