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이라도 사랑해서 하는 일과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그 일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에서만이 아니라 그 결과도 분명 다릅니다. 사랑해서는 하는 일은 그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쁘게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얻어 기쁨을 간직하게 됩니다. 반면에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그 일로 인해 힘겨움과 어려움을 겪게 되면 절망과 원망 속에 포기하거나 겨우겨우 행하고 맙니다. 그러면 의미나 가치는 고사하고 몸과 마음만 지칠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한 사랑을 먼저 간직해야 합니다. 설사 마음 내키지 않고 의무감으로 하는 일일지라도 거기서 사랑스러움을 찾아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지켜야할 계명과 법이 많습니다. 그러한 계명과 법들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우리 삶의 패턴과 생활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계명과 법을 지킬 때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그분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삶의 증거가 됩니다.
아침저녁 기도, 삼종 기도, 묵주기도, 성체조배, 단식과 자선, 사랑과 자비의 실천, 성체와 고해성사는 의무가 아닌 하느님과 함께 사는 우리들의 일상(日常)입니다. 그런 일상에서 우리 자신은 사랑하는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정체성과 현존의식을 갖게 되고, 그런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우리에게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자신에게만 유익이 되려는 목적에서, 그리고 의무감으로 신앙의 규범들을 따르려고 할 때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지키고 견디어내고 참아야 하는 힘겨운 고행일 뿐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우리 자신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신에게는 의미와 가치도 없이 힘겨운 의무감으로 끝날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 어떤 생생한 증거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요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여받은 일들을 잠시 앞에 두고서 하느님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과 교회를 통해서 주신 하느님의 진심을 헤아려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이신 분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명하셨을 때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묵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 오늘 나에게 부여된 모든 일들 속에서 사랑을 찾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그 일들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아, 주님께 충실한 자들아, 주님을 사랑하여라.(시편 31,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