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조지아 국경을 통과, 보안검색을 거친후, 아르메니아출입국관리소에서 도착비자를 받고
국경근처 유적을 찾아간다
⋇알라베르디 지역
●하그파트 수도원;
10세기에 지어진 하그파트(Haghpat) 수도원(970년 착공, 991년 완공)은 아르메니아 중세의 대표적인 교회건축물로서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그 가치가 높다.
점심먹고 방문한 사나힌(Sanahin)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풍스럽고 소박한 외모에 엄숙한 분위기를 야기하는 교회내부의 모습입니다.
아르메니아는 교회는 대체로 2개의 예배공간이 있다,
밖에 있는 공간은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과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는 장소이고 안에는 세례를 받은 사람과 성직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초기 기독교 양식이라 성화도 없었으며, 작년만 해도 정면에 있는 하나의 창문이 있어 그 곳으로 빛이 들어 와 미사공간을 밝히었다고 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은 빛이라는 의미 때문이라고 하며 그래서 매우 성스러웠다고 한다.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특이한 돌 십자가는 카트치카(Khatchkars) 또는 카츠카로
불리고, 붉은 장미색의 응회암으로 이런 모양의 돌 십자가는 앞으로 많이 볼 수 있다.
이 돌 십자가 아래의 둥근 부분은 지구를 의미하고 위는 하늘을 뜻하며,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은 십자가위의 예수님이고, 그 양쪽에는 마리아와 요셉이라고 한다.
더 아래와 양옆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돌 맨 위(상단) 부분이 앞으로 굽어 있는 것은 하늘에서 항상 너희를 굽어보고 있으니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다음 조심스럽게 들어간 곳은 항아리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이곳은 아르메니아의 중요한 서적이 있던 도서관이라 했는데 비상시는 항아리에 책을 넣어 숨겼다고 한다.
항아리는 적들을 속이기 위한 술이나 곡식을 넣어 두었던 곳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책은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이기에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위에 도서관 위는 흙으로 덮어 놓았음을 건물 뒤로 가서 보았다.
십자가가 없는 돔아래의 홀에서는 미사를 보지 않는 곳이고 학교나 식당들의 건물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보다도 10여년이나 빠른 301년에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국교로 삼은 나라가 아르메니아라고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는 아르메니아 사도 정교회(Apostle Orthodox Church)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두 사람인 바돌로메와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했다고 알려졌기때문입니다.
●사나힌수도원
사나힌 수도원 역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입니다.
사나힌(Sanahin)은 아르메니아 어로 "더 오래된"이라는 뜻이랍니다. 맞은 편에 있는 하그파트 수도원보다 오래 된 것이라는 의미랍니다.
하그파트 수도원은 970년에 착공되었고 사나힌은 966년에 착공하였으니 10년 먼저 지은 것이라 합니다.
두 수도원은 모두 아르메니아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바그라투니 왕조의 아쇼트(Ashot) 3세 왕 때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되고 세월의 흐름에 침식되기도 하였지만 현재까지도 중세시대의 건축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물들입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그 안에 교회뿐 아니라 도서관, 학교같은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작지만 강의실도 있읍니다. 학생들이 걸터앉아서 강의를 듣던 장소라고 합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10세기에 건립된 이후 13세기 몽골의 침입을 받기 전까지 여러 왕과 왕비들이 추가로 지어
문틀 모양도 다양합니다
항아리를 묻고 네모판 뚜껑을 덮은 방이 보여 하그파트의 항아리방과 비교가 됩니다.
● 미코얀동산과 미그기
미코얀(Mikoyan)은 아르메니아가 배출한 유명한 형제의 이름입니다.
그 중의 형인 아나스타스 미코얀(Anastas Mikoyan)은 소련공산당의 간부로 소련의 최고회의 의장의 지위까지 올랐던 사람이고
∎동생인 아르템 미코얀(Artem Mikoyan)은 유명한 항공기설계자로 소련공군의 주력기인 미그(MIG)비행기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들 형제가 태어난 마을이 바로 사나힌 수도원이 있는 사나힌 마을이죠.
●세반호수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내륙국가인 아르메니아에서는 세반 호수를 바다라고 부른답니다.
세반호수는 아르메니아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호수로서 아르메니아는 물론 코커서스 전체에서도 가장 큰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해발 1,900m,높이에 위치하여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호수라고 합니다.
전체 호수면적은 약 4,300㎢로 서울특별시의 7배에 해당하는 넓은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스탈린때문에 홍역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스탈린 시절 소련정부는 세반호수 밑에 대형배수관을 묻어 호수의 물을 다른 연방국가로 빼돌려 수력발전과 관개용으로 쓰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호수의 수위를 45m정도 낮추고 물이 줄어 생기는 땅에는 호도나무를 심어 줄어드는 물고기 어획을 대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39에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세계제2차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949에 완공되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의 결과로 세반호수의 수위는 매년 1m씩 낮아져서 당초의 높이1,916m보다 19m나 낮아졌습니다.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자 이전에 섬이었던 곳이 육지와 연결된 반도가 되는가 하면 민물고기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가지 환경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스탈린 프로젝트를 모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스탈린이 1953년에 사망하자 1956년에 세반 호수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 위원회에서 검토한 결과 스탈린이 추진하던 계획을 당장 중단하고 세반호수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계획을 시행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이미 완공되어 발전을 시작한 수력발전소는 화력발전소로 대체하였고 다른 강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도수로 공사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서 드디어 2012년 3월 아르메니아 정부는 세반 호의 수위가 1,900m를 넘어섰다고 발표했습니다.
● 반크교회
세반 반크 수도원은 아쇼트 1세 왕 시절인 974년에 공주인 매리암이 전쟁에 나간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이 수도원은 아르메니아가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방어와 저항의 근거지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1375년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나 페르시아가 처들어 왔을때에도 그랬고 오토만제국이 침략해 왔을 때도 그랬답니다
원래는 3개의 수도원을 지었는데 하나는 폐허가 되었고 이 두 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 수도원은 공산당치하에서 많이 훼손되어서 1956년부터 2년에 걸쳐 복원과 보수공사가 시행되었으나 기본적인 건축개요는 10세기의 건축물의 것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벽에 12사도의 그림이 있습니다. 특이하지만 아르메니아 교회를 사도교회라고 하니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도 아르메니아 교회에 특별한 카치카 십자가가 교회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맨위의 하느님 나라 ,가운데의 예수님, 그리고 맨 아래에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은 같은데 그림내용이 이제까지 본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헤어스타일이 장발몽골족같은 것은 시대를 반영한 게 분명합니다.
●유람선
배위에서 세반반크 수도원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세반반크 수도원이 있는 언덕 아래에 있는 멋진 건물은 아르메니아 대통령의 별장이라고 합니다.
내가 묶었던 호텔---경기가 나빠 방이 많이 비어 있었다
(원래 성수기인 8월엔 방구하기가 어렵다는 데..........)
첫댓글 감상 잘 했습니다.
아르메니아ㅡ 베다님 덕분에 자세하게 공부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