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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멀찌감치서부터 화색이 만면한 채 달려왔던 노동자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어 덥석 잡았던 건, 내곁에 계시던 전교조 선생님의 손이었다. "검은 손이 세상을 만드는 손이란다." 가르치셨을 선생님.
제자가 거기서 일하는 줄 모른 채 지나가시던 선생님의 손을 굳이 잡아 자기가 일하는 지하 곳곳을 안내해 드리던 백화점 보일러실의 노동자, "일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란다." 고 가르치셨을 선생님.
버스터미널에서만난 제자가 함께 있던 일행에게 우리 선생님이라고, 힘들지만 자랑스럽게 소개를 하던 장애아이,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란다." 그 아이와 울고 웃으며 가르치셨을 선생님. 아빠가 해고당한 아이에게 자기 돈으로 우유급식을 해 주시던 선생님.
열다섯 살 아이들이 남의 나라 병사들의 장갑차에 짓뭉개졌을 때, 그 때 어느 노조의 깃발도 없을 때, 전교조의 깃발은 있었다. 두꺼비 몇마리 지키겠다고 밤마다 모이던 원흥이 방중에도 그 깃발은 있었다. 천성산 도룡농의 비명을 지율스님과 함께 들었던 것도 전교조 선생님들이었고, 스님을 위해, 스러져 가는 천성산을 위해 촛불 밝히며 울었던 것도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다.
교원평가제로도 성과금으로도 전교조를 굴복시킬 순 없을 거라는 전교조를 향한 내 믿음의 근거는 이외에도 장황하다.
다만, 학교 내 비정규직, 나아가 보육교사나 학습지 교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만큼 따사로웠으면 하는게 바람이다. 육아 휴직 중이던 선생님의 자리에서 아이들 곁에 머물렀던 기간제 선생님이 그 자리를 떠날 때 어떤 마음일까 헤아리는 일, 급식소에서 온종일 물에 질척거리며 무거운 자루를 옮기고 불가마에서 찜질하는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점심에 아이들이 숭고함을 갖게 하는 일, 핏발 선 눈으로 아침에 학교를 나서는 경비 아저씨들의 외롭고 긴장되던 밤을 아이들이 기억하게 하는 일, 보조라는 이름에서부터 굴종이 전제된, 그러나 그들도 간절히 지니고 싶을 자긍심과 자랑을 나누는 일.
부디 그들 개인을 보지 말기를 바란다. 그릇된 선생 하나의 잘못으로 조직전체를 매도하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치를 떨어 왔던가. 그들과 혼연히 하나가 될 수 있을 때라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걸 나눌 수 있을 때 진정한 연대는 가능하고 그래서 연대는 용기이다. 밥을 벌지 않고 빌어먹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상처받지는 말일이다. 그러나 인사도 못한 채 아이들 곁을 떠나야 하는 기간제 선생님의 소리 없는 눈물에서 상처받아야 한다. 변절을 합리화하기 위한 참새보다 얇은 혓바닥에 노하기보다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거나 겨우 미칠 급식노동자들의 형편에 분노할 일이다. 전교조엔 그 화룡정점의 과제가 남아 있다.
김진숙-소금꽃나무 중에서
첫댓글 급식소에서 온종일 물에 질척거리며 무거운 자루를 옮기고 불가마에서 찜질하는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점심에 아이들이 숭고함을 갖게 하는 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거나 겨우 미칠 급식노동자들의 형편에 분노할 일이다.
내 걸 나눌 수 있을 때 진정한 연대는 가능하다. 연대는 용기다. 전교조가 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꼭 마음에 새길 말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