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생활
동아대학교 졸업 후 1995년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여 데뷔하였다. 패스를 중시하였던 니폼니시 감독의 축구 스타일인 니포 축구의 핵심 미드필더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0년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로 옮겨 2001년 일왕배 준우승에 공헌하였지만, 2001년 시즌 결과 팀은 최하위로 밀려 J리그 디비전 2로 강등되었다. 하지만 감독과 구단 측에서 잔류 요청을 하였고, 결국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J리그 디비전 2 준우승과 J리그 디비전 1 승격에 공헌하지만,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3년 K리그의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1] 그 해 성남의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04년 전북 현대 모터스로 트레이드되어,[2] 2005년 팀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9월 25일 FC 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9번째로 20-20 클럽에 가입하였다. 2005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전북 현대 모터스와 협상이 결렬되었고, 2006년 1월 19일 당시 J리그 디비전 2의 사간 도스로 이적하였다.[3] 2008년 잇따른 부상으로 인해 재계약이 불발된 뒤 은퇴하였다.[4]
국가 대표 생활
19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1998년 12월 4일 베트남과의 1998년 아시안 게임에서 첫 A매치 득점을 올렸다.
2002년 FIFA 월드컵 직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감각적인 패스를 선보이며 1골 1어시스트로 대활약하여 월드컵 본선에서의 활약도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본선 경기가 모두 체력전 양상으로 이어지자 거스 히딩크 감독은 패싱 능력에 중점을 둔 윤정환을 기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실시한 체력테스트는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 생활
2008년 은퇴 후, 코치로 사간 도스에 남게 되었고, 2009년 1군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사간 도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부임 첫 해 팀을 J리그 디비전 2 2위로 이끌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J리그 디비전 1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2014년 8월 8일 사간 도스의 감독에서 사임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지능적인 플레이로 동료 공격수에게 날카롭게 찔러주는 창조적인 패스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적은 움직임과 타 선수에 비해 부족한 체력이 비판받은 적이 있다. 좋은 패스 능력과 넓은 시야로 대한민국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외
- 1997년 4월 26일 부천 SK 소속 시절, 부천 홈 개막전 당시 울산과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후반 29분경 부상을 당해 부천이 공을 빼 준 후 윤정환이 울산 골키퍼 김병지에게 패스를 한다는 것을 그만 골로 연결되었다. 이에 윤정환은 김병지와 울산 선수들과 코치진들에게 사과를 하였고, 부천은 울산에게 일부러 골을 내주자고 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 한 용병들은 계속 수비를 하다가 이해하고 난 후에 울산에게 일부러 동점골을 내주고 끝내기도 했다.
- 2008년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진행하는‘2008 K리그 신인선수 교육’에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5]
경력
선수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지도자 경력
수상
개인
클럽
국가 대표팀
첫댓글 윤활유감독님~
제리 윤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