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백파] ☆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 (62)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 [낙동강 종주] * 경상남도 구간 (낙동강 수계) ④ 몰운대→ 낙동강하구둑
2020년 11월 11일 (월요일) [백파 출행]▶ 독보(獨步)
* [오늘의 여정] ▶ 몰운대 해변산책길(독바위)→ 몰운대유원지(옛 몰운도)→ 다대포 해변공원→ 고우니습지공원→ 강변의 보도→ 홍리1교→ (장림일반산업단지)→ 고니나루쉼터→ 장림포구(굴다리 안)→ 을숙도대교→ (신평일반산업단지)→ 괴정천 하구→ 노을마루쉼터→ 낙동강하구둑→ 을숙도문화회관 서양미술사전― (카니발 합류)→ 내호냉면(부산시 남구 우암동 골목시장)→ 부산진역(KTX)→ 상경
몰운대→ 낙동강하구둑
낙동강 대장정의 마무리 (1)
2020년 11월 11일 아침, 부산 다대포(多大浦)에서 아침을 맞았다. 어제는 양산(물금)을 출발하여, 부산의 구포(북구)와 사상구의 물길을 따라 30km를 걸어서, 오후 5시 30분 낙동강 1300리 종착지(바이크로드 기준)로 예정한 부산 사하구 낙동강하구둑에 도착하여 동지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낙동강의 끝은 하구둑이 아니다. 낙동강(洛東江)과 남해(南海)가 실제로 만나는 곳은 여기 몰운대(沒雲臺) 앞 바다이다. 그래서 오늘 하구둑—몰운대 간의 구간(7.6km)을 걸어야 한다. 이 마지막 구간을 걸어야 명실공히 낙동강 종주가 완료되는 것이다. 강의 흐름에 따른다면, 어제의 도착지인 하구둑에서 몰운대까지 걸어 내려와야 하지만, 오늘 아침 바닷가 다대포에서 아침을 맞았으니, 번거로움을 피하여 몰운대를 기점으로 하여 하구둑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오늘 다대포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걸어서 가는 사이, 이상배 대장과 대원들은 기원섭의 카니발을 이용하여 을숙도의 철새도래지를 포함한 낙동강 하구의 명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고 하구둑에서 모두가 다시 만나 낙동강 종주의 대장정을 완전하게 마무리하기로 했다. — 그래서 오늘의 나의 일정은 다대포에서 시작한다.
다대포(多大浦) — 부산시 사하구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乙淑島)와 감천동 항구 사이에 위치한 다대포(多大浦)는 몰운대, 화손대, 다대포해수욕장, 낙동강 하구로 구분할 수 있다. 몰운대(沒雲臺)는 저 영도의 태종대(太宗臺), 동백섬의 해운대(海雲臺)와 더불어 부산의 3대(臺)로 알려진 명소이다. 해송(海松)을 비롯한 각 종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몰운대는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다대포(多大浦)는 낙동강하구 최남단에 있는 다대반도(몰운대)와 두송반도에 둘러싸여 있으며, 5개의 작은 소만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 도심에서 17㎞ 떨어진 포구이다.
다대포(多大浦)는 일찍부터 왜구(倭寇)의 침입이 잦았으며, 따라서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였다. 조선 세종 때는 이곳에 ‘수군만호영’을 설치, 수군 123인과 병선 9척을 배치하였고, 성종 때는 높이 4m, 둘레 560m의 ‘다대포진’을 축성한 바 있다. 임진왜란 때 정운(鄭運) 장군이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고, 다대포첨사였던 윤흥신(尹興信)-윤흥제(尹興悌) 형제가 전사한, 유서 깊은 곳이다.
다대포 주변에는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낙조분수·을숙도생태공원·낙동강하구에코센터 등 주요 명소가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국방상의 요지여서 윤공단(尹公壇)·다대포 첨사청(객사), 정공운순의비(鄭公運殉義碑) 등 선인들의 무공을 알려주는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1960년대 말까지 부산 도심에서 떨어져 돌아앉은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목재(성창기업) 및 조선업(한진중공업·대선조선)이 유치되면서 어촌에서 공업지역으로 변모하였고, 택지개발로 해안을 따라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다대포해수욕장과 연계된 수변의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낙동강변 신평동 56호 광장∼다대포해수욕장간의 전체 4.1㎞의 군사용 철책이 철거되었다. 부산시는 강변대로 일부구간의 도로를 확장하고 도로와 하구 사이 제방을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자전거도로·산책로·휴식공간으로 조성해 놓았다. 2017년부터 부산지하철 1호선이 ‘다대포해수욕장’까지 들어와 있다.
‘다대포해수욕장역(몰운대역)’ —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시·종점
부산 다대포(多大浦)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시발·종점역으로 부산의 도심으로 직접 연결이 된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은 1985년 7월 19일에 처음 범어사역(금정구 청룡동)~범내골역(부산진구 범천동) 구간이 개통된 이래. 몇 단계의 노선 연장을 하여 2017년 4월 20일에 현재의 부산 사하구 다대동의 ‘다대포해수욕장역(몰운대)’과 부산 금정구의 노포역을 잇는 노선으로 완결되었다. 총 거리는 40.4km로 부산의 도심을 남북(南北)으로, 동서(東西)로 관통한다. ‘다대포해수욕장역’을 출발역으로 하여, 노선의 주요 역은 당리역(사하구청)-자갈치역-남포역-부산역(경부선)-서면역(2호선 환승)-부전역(동해선)-시청역-연산역(3호선 환승)-교대역(동해선)-동래역(4호선 환승)-부산대역-범어사역 등 40개 역이 있다.
몰운대(沒雲臺)
— ‘낙동정맥’과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곳 —
내가 일찍이 몰운대(沒雲臺)를 주목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몰운대가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 바다와 한 몸이 되는 곳이요, 또 하나는 몰운대가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남해(南海)를 만나 그 맥(脈)을 다하는 곳이다. 한반도의 남단, ‘물의 기운’과 ‘땅의 정기’가 만나 남해의 바다로 나아가는 승지(勝地)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설악산—태백산—속리산—덕유산을 경유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 총 길이는 1,400km에 이른다. 강이나 하천 등 물줄기에 의해 한 번도 잘리지 않는 우리나라 지형의 골격을 이루는 중추적 산줄기이다.
낙동정맥(洛東正脈)은 저 백두대간 태백의 구봉산에서 분기하여 동해안을 따라 줄기차게 남하(南下)하다가, 울주의 가지산과 양산의 천성산을 지나오면서 영남알프스로 장관을 이루고, 부산의 주산인 금정산에서부터 부산의 한 복판을 지나와 여기 몰운대에 이르는 산맥이다. 낙동정맥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영동)과 낙동강 유역의 내륙(영서)를 나누는 분수령 산맥이다. 길이는 370km에 이른다. 낙동정맥의 서쪽은 밀양강, 양산천 등 낙동계 수계(水系)이고, 낙동정맥의 동쪽은 포항의 형산강, 울산의 태화강, 부산의 수영강 등이 발원하여 바다로 이어진다.
낙동정맥의 부산 구간은 ‘지경고개’에서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로 총 길이는 43.4km이다. 양산의 천성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양산시 동면과 부산시 동래구 노포동의 경계인 ‘지경고개’에서부터 시작하여 계명봉(600m)—금정산(800.8m)—산성고개—백양산(641m)—계금고개—엄광산(505m)—구덕산(545m)—대티고개—감천고개—장림고개—봉화산(156.4m)—아미산을 경유하여 몰운대에 이른다. 부산광역시를 동서로 나누는 산줄기이다.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한 몰운대는 부산 금정산 줄기의 끝자락이 대한해협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섬이었다. 다대포 첨사영의 객사 건물(시 기념물 제3호)이 이곳에 옮겨져 있다.
몰운대(沒雲臺) 이야기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섬이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고 했다. 몰운대는 원래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었다. 낙동강의 흙과 모래가 퇴적되면서 다대포와 이어진 육계도(陸繫島, 육지와 이어진 섬)이다. 몰운대는 학(鶴)이 날아가는 형상이다. 몰운대는 ‘곰솔’이 울창한 송림이다.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숲으로 고루 퍼진다. 바다에도 그 빛이 물결에 반사되어 출렁거리고, 파도소리와 함께 갈매기 소리도 실려 온다. 아득한 대한해협, 먼 바다를 바라보면 시간을 망각한다.
몰운대(沒雲臺)의 남쪽 끝은 파도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해식동(海蝕洞)’이 발달되어 있고, 배후인 육지 쪽에는 수려한 모래 해안인 ‘다대포해수욕장’이 있다. 몰운대의 빼어난 자연경관은 다대팔경 중 제1경인 몰운관해(沒雲觀海)로 몰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한다. 또 하나의 승경은 화손낙조(花孫落照)로 몰운대 동쪽 끝자락 화손대(花孫臺)에 깔려드는 저녁노을의 장관이다. 이곳 은 군사 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7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었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너머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몰운대에서 “내 목소리부터 낮춰야 새들의 노래도, 벌레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야만 풀들의 웃음과 울음도 들리고, 세상이 진실로 풍요로워진다.”고 쓰기도 했다. 해조음마저 아득한 곰솔밭에 서면 태초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자연의 숨결과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이곳 남해 바다와 연해 있는 다대포는 요즘 ‘남파랑길’. 제4구간이다. 남파랑길은 ‘남쪽(南)’과 ‘쪽빛(藍)’, ‘함께(랑)’란 뜻을 결합한 합성어다. ‘함께 걷는 쪽빛의 남해안 길’로 읽으면 될 듯하다. 물결(浪)을 더해도 될 듯하다. 여기 4구간은 남파랑길이란 이름에 아주 걸맞았다. 몰운대와 다대포가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일출과 일몰의 풍경이 장관이다. 동해안, 서해안과 구별되는 남해안의 특징이다.
오늘의 출행, 다대포
2021년 11월 11일 수요일 오전 9시, 다대포 숙소(ONE Hotel)에서 아침을 맞았다. 로비에서 만난 대원들의 모습은 밝고 건강했다. 하얀 구렛나루가 눈부시게 빛나는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 언제나 정이 많고 듬직한 풍모의 기원섭 대원, 연분홍 참꽃을 좋아하고, 늘 산뜻한 마음을 지닌 이진애 대원,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벗들과 한마음이 되는 김옥련 대원이다. 오늘 낙동강 1300리를 대장정의 마지막 날을 함께 할 벗들이다. 저 강원도 태백(太白)의 출정식에 이어, 이제 부산 낙동강하구둑의 그 마침표를 함께 찍는 것이다. 낙동강의 긴 물길만큼 우리들의 마음 또한 깊고 유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 밖을 나오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열려있었다. 반도의 끝, 부산 다대포 앞바다! 아침 햇살을 받은 바다의 물결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침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결이 싱그럽다. 이렇게 밝고 청명한 날,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벗들과 함께 하는 여정,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다.
오전 9시 30분, 숙소 가까이에 있는 이름난 식당 ‘24시간 동명국밥집’에서 따뜻한 아침식사를 했다. 남도의 국밥은 내력이 있다. 특히 부둣가에서 국밥은 예로부터 바다에 들고 나는 어부들의 속을 넉넉하게 채워주는 식단이었다. 무엇보다 부산의 국밥은 6·25전쟁 때,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에게는 눈물겨운 국물이었다. 국밥 한 그릇, 문득 어려운 시절, 그 절절했던 상황이 그려진다. 국밥은 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 좋은 시절, 오늘 아침에 마주한 국밥 한 그릇이 더없이 고맙고 정겨웠다.
다대포해변공원
식사 후, 다대포해변공원으로 나아갔다. 다대포해변공원은 옛날의 육지와 몰운대가 이어진 공간에 조성한 공원으로, 동쪽은 바닷가 횟집거리이고 서쪽은 다대포해수욕장이다. 해변공원 바로 앞에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몰운대역)이 있다. 그리고 해수욕장과 지하철 역 사이에 있는 공원의 광장에는 ‘꿈의 낙조분수대’도 있고, 어젯밤에 보았던 유리로 된 백조의 조형상이 있다. 지하철 역 앞의 다목적광장 등이 있으며 샛강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산책길(해솔길),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따라 곰솔밭이 있다. 소나무 숲 솔에는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산책길과 군데군데 벤치도 있다.
역사적인 기념사진
― 낙동강 1300리 물길 종주를 축하합니다! ―
해수욕장 가장자리의 테크 마루에서 간단한 의식(儀式)을 했다. 필자의 ‘낙동강 1300리 대장정’을 기념하는 인증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이상배 대장이 준비해온 현수막을 ‘깜짝’ 펼쳤다. 현수막에는 ‘너덜샘에서 하구둑까지 / 낙동강 1300리 물길 종주를 축하합니다 / 2020.11.11. 사단법인 양산등산문화센터’ —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은 사단법인 양산등산문화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뿌듯함이 온몸에 전율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해 준 벗들, 때로는 같이 걷기도 하고 먼 여정에서 카니발과 미니벨로를 준비하여 강바람을 가르며 함께 동행해준 이상배 대장과 기원섭을 비롯한 아름다운 대원들!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여기는 몰운대—다대포해수욕장의 바닷가, 눈부신 햇살이 내리는 가을이다. 장대한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바다에 몸을 풀고 저 먼 길을 흘러온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에서, 낙동강 종주를 기념하는 역사적인 기념을 한 것이다. 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이상배 대장은 2007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하여, 히말라야 초오유(8,201m), 가셔브롬2봉(8,035m), 로체(8,516m) 등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등정하였으며 세계 5대륙 최고봉을 등정한 전문산악인이다. 특히 이상배 대장은 양산(梁山)에, 훌륭한 산악인을 육성하고, 지역 산악문화발전에 기여하며, 건전한 여행문화를 고취하기 위해 ‘사단법인 영남등산문화센타’를 창설하여, 매년 ‘양산스포츠클라이밍 암벽등반’, ‘등산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수차례 히말라야 트레킹 전문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상배 대장은 청소년힐링캠프인 '노란 손수건'을 운영하면서 산(山)을 통한 청소년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낙동강 종주도 청소년 교육 프르그램 개발의 일환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것이다.
몰운대 절벽의 바닷가를 거닐다
다대포해변공원의 해솔길, 샛강(해수천)이 흘러드는 해안선을 따라 몰운대 절벽 길로 나아갔다. 바닷가 절벽에는 나무테크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송림(松林) 병풍처럼 두른 다대포해수욕장의 긴 모래밭이 훤하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다대포 아파트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테크 길 아래에는, 지금은 썰물 때인지 모래사장이 넓게 드러나 있다. 다대포해수욕장은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유역이다. 낙동강에 실려온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모래사장이다.
이제 몰운대 북쪽의 절벽에 설치한 테크 산책길, 길목의 좌우에 아직도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는 활엽수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맑은 기운을 풍긴다. 그래도 간간이 누런 가을 색을 띠기 시작하는 나무들 또한 그윽한 운치가 있다. 절벽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된 큰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따라 돌아 나오는 테크 길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직선(直線)으로 난 산책길을 걸으며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 큰 바다가 되는 풍경을 조망한다. 저만큼 낙동강하구둑을 지나온 물길이 은연 중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소리 없이 일렁이고 있다.
낙동강, 드디어 바다가 되다
장장 1300리를 흘러온 ‘낙동강(洛東江)’이 여기 남해에 이르러 비로소 바다가 되었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온 강물이 당도한 것은 결국 이 ‘바다’였다. 저 강원도 태백의 작은 ‘너덜샘’에서 발원한 황지천이 낙동강의 본류가 되어 수많은 지천을 품고 하나가 되었듯이, 세상의 모든 강(江)을 포용하는 바다는 ‘하나’의 바다다. 아! 그리하여 망망대해(茫茫大海) — 이제 세상의 모든 물이 하나가 된 바다는 드디어 저 ‘하늘[宇宙]’과 맞닿아 있다.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는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물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태양]이 작용하여 변화무쌍한 변용을 거듭한다. 물의 정령(精靈)이 하늘의 대기가 되어 순환하니 그것이 바로 천기(天氣)가 아닌가. 그 천기가 운행하면서 온 지구를 살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을 살린다. 그래서 대지와 바다를 품고 있는 '하늘'은 우주적 생명의 표상이다. … 강원도 오지의 작은 샘에서 솟아나온 물 한 방울이 바로 우주적 생명이 되는 것이다!
몰운대 ‘독바위’에서
테크 산책길의 끝에, 섬 같은 암봉이 하나 있다. 지도에 점 하나로 표시된 곳 이름도 없는 작은 바위봉이다. 각진 바위에 소나무 한 그루 하늘로 가지를 뻗어 서 있고 그 허리에는 작은 나무와 잡초들이 둘러쳐져 있다. 문득 ‘몰운대 독바위’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참으로 운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지금은 섬이 아니다. 아래에는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너른 테크길을 조성하여 바위와 연결하고, 바위의 허리에 낙동강과 바다 그리고 다대포해수욕장의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바다가 밀물 때면 발밑까지 바닷물이 출렁거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 해질녘이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몰운대 바다의 낙조(落照)가 장관일 것이다. 독바위에는 암반에 뿌리 내린 소나무가 몇 그루 자생하고 있었다. 차가운 해풍, 비바람을 맞으며 끈질기게 뿌리 내린 고고한 생명들이다.
몰운대 해안선을 돌아가는 풍경이 아득하다. 고개를 돌리면 다대포해수욕장의 모래사장과 송림(松林) 그리고 그 뒤에 즐비한 하얀 아파트가 눈부시다. 테크 산책길은 거기까지였다. 몰운대 해안의 테크 길은 독바위까지였다. 독바위로 이어지는 테크 길한 복판에서 이 대장이 다시 ‘낙동강 ~ ’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이 명실공히 대장정의 마무리가 되는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낙동강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원들의 얼굴에 내리는 밝은 햇살이 곱다. 바다의 먼 수평선 위로 김해 땅에 솟은 산들이 아련한 실루엣으로 솟아있다.
절벽의 테크 길을 따라 독바위까지 산책을 마치고 공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테크 길에서 내려와 물 빠진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촉촉한 모래의 감촉이 부드럽다. 공원의 샛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길이 모래 위에 비단폭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몰운대유원지 — 옛 몰운도(沒雲島)
‘몰운대유원지’ 입구에 이르렀다. ‘몰운대유원지’는 옛날 육지와 이어지기 전의 섬이었던 몰운도(沒雲島)를 말한다. 몰운대유원지로 올라가는 초입에 어제 밤에 본 ‘沒雲臺 / 몰운대’ 비가 서 있다. 비(碑) 앞에서 이 대장이, 다시 ‘낙동강 ~’ 현수막을 펼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옛날 몰운도 산은 유원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 올라가면 유원지 중앙에는 헬기착륙장(중앙광장)이 있고 그 주변에 이춘원의 ‘몰운대시비(沒雲臺詩碑)’와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가 있다. 일찍이 동래부사(東萊府使) 이춘원(李春元, 1571~1634)은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시(詩)로 읊었다.
浩蕩風濤千萬里 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는 천리요 만리
白雲天半沒孤臺 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 부상효일차륜적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駕鶴來 상견선인가학래 언제나 학(鶴)을 타고 신선이 내려온다.
이 시는『동래부지(東萊府誌)』 「제영잡저(題詠雜著)」(1740)에 전하는데, 몰운대유원지에 시비(詩碑)로도 서 있다. 이춘원은 1613년(광해 5)과 1617년(광해 9) 두 차례에 걸쳐 인목대비 폐비 등에 반대하다가 좌승지와 충청도관찰사에서 파직된 인물이다.
조선통신사 중봉(重峰) 조엄(趙儼)은 「해사일기(海摣日記)」(1763)에서 해운대와 몰운대를 비교한 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부터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다대포객사를 지나 서남쪽 바닷가에 절경인 ‘몰운대(沒雲臺)’가 있는데 그 길목에 ‘정공운순의비(鄭公運殉義碑)’가 있다. 그리고 동남쪽 바닷가에 ‘화손대(花孫臺)’가 있고, 정남의 절벽 위에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展望臺)가 있다. 맑은 날이면 이 전망대에서 대마도까지 보인다. 전망대 아래 바닷가에는 자갈마당과 모래마당이 있다.
몰운대 ‘정공운순의비(鄭公運殉義碑)’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 때는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선봉장이었던 녹도만호 정운(鄭運, 1543년(중종 38)~1592년(선조25)) 장군이 이 앞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殉國)하였다. 그는 처음 이곳의 지명이 ‘沒雲臺’(몰운대)라는 말을 듣고 ‘운(雲)’자와 자기 이름의 ‘운(運)’자가 같은 음이라는 점에서, “내가 이 대(臺)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면서 불퇴전(不退轉)의 자세로 전투에 임했다고 전한다.
정운(鄭運)은 1570년(선조 3) 28세로 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봉사, 금갑도수군권관(金甲島水軍權管), 거산찰방(居山察訪)을 거쳐 웅천현감 등을 지냈으나 성격이 강직하고 정의감이 강하여 윗사람의 미움을 받아 몇 해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거제 앞바다에서 원균을 도와 옥포(玉浦)에서 왜선 30척을 격파하고, 노량진에서 적선 13척을 불살라 공을 세웠다. 당포(唐浦)·한산도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마침내 정운은 1592년 9월 1일 조선 수군이 부산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둘 때 맨 앞에 서서 분전하던 중 적탄에 순절했다. 이날 부산포전투는 적선 400여 척 중 100여 척을 격파하고, 수를 셀 수 없는 적군들을 깊은 바닷물 속에 가라앉힌 대첩이었다. 아군 피해는 녹도만호 정운과 병사 5명의 전사, 그리고 26명의 부상이 전부였다. 하지만 정운의 전사는 「선조실록」에 기록된 바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도 정운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나라가 오른팔을 잃었도다(國家失右臂矣)!” 하고 탄식했다. ☞ [조선왕조실록, 선조 30년, 1597년 1월 23일. 2009년 2월 14일]
안방준은 「부산기사(釜山記事)」에서 '국가를 다시 찾게 된 것은 호남을 잘 보전했기 때문이고(國家之恢復由於湖南之保全), 호남을 잘 보전한 것은 이순신의 수전에서 힙입은 것이며(湖南之保全由於舜臣之水戰), 이(李) 공의 수전은 모두가 녹도만호 정운의 용력에서 말미암은 것이다(舜臣之水戰皆出於鹿島萬戶鄭運首事嘗試之力也)."라고 썼다. 「국조인물고」에 수록되어 있는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문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도 활약했던 안방준은 정운의 '유사(遺事)'에 그렇게 썼다.
여기 몰운대에는 녹도만호 정운 장군을 기리는 추모비 ‘충신정공운순의비(忠臣鄭公運殉義碑)’가 있다. 그 후 세월이 한참 흐른 1798년(정조22), 다대포첨사로 부임한 정운의 8대손 정혁(鄭爀)이 몰운대에 공을 추모하는 높이 172㎝, 넓이 69㎝, 두께 22㎝ 규모의 순의비(殉義碑)를 세웠다.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썼다. 비각은 1974년에 부산시에서 비각을 지었고, 1972년 6월 26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하였다.
몰운대의 아름다운 풍경과 감회를 노래한 시인 강위석(姜偉錫)이 시 「몰운대(沒雲臺)」가 있다.
낙동강 기수역(汽水域)
오래된 달빛 같은 섬 몰운대가 누누천년
구름을 밀치고 다대포로 이마를 붙였다.
쓰르갯바람이 밀어올린 기암괴석
하늘 나그네가 남긴 시간의 뼈다
소금기 푸른 벼랑 해송 숲으로
해조음 학같이 내려앉는다
일곱무날 때도 산란하는 저녁노을에
명상에 든 다대포객사 기둥들도 볼이 붉다
무명이불 같은 수평선 한 자락
젖은 파도소리 푸른 몰운대
날마다 방시레한다
몰운대의 풍경을 사실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시인 강위석(姜偉錫, 1937.9.20∼ ) 경남 마산 출생으로 마산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수학과 졸업했다. 1971년 하버드대학교 케네디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에 「식후(食後)」(1960),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1960), 「편지 2편」(1961)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한국은행 조사역,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문화일보 논설고문, 중앙일보 정보미디어위원회 신매체창간준비위원장 등 사회적으로는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윤공단(尹公壇) — 다대동 윤공단로
윤공단(尹公壇)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尹興信)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관·민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제단(祭壇)이다. 여기 몰운대유원지와는 떨어져 있지만 정운 장군의 충절과 관련하여 임진왜란 초기에 다대진을 방어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윤흥신, 윤흥제 형제분의 충절을 기려 이 자리에 소개를 한다.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그 날 바로 동래읍성과 다대진성을 공격했다. 다대진성의 윤흥신(尹興信)은 이 날 성을 지켰으나 다음날인 15일에는 항전 끝에 전사했으며, 많은 희생을 내고 성은 함락되었다. 윤흥신(尹興信)은 동생 윤흥제(尹興悌)와 군·관·민과 함께 다대포 객관(현재의 부산시 유아교육진흥원 자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다대진첨사 윤흥신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그의 사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1761년(영조 37년) 경상감사 조엄(趙嚴)이 윤흥신의 사적을 기록한 문헌을 입수하고 송상현(宋象賢) 공과 정발(鄭撥) 공의 사당에 윤흥신 공이 빠져 있음을 안타까이 여겨 조정에 포상을 청함으로써 그의 사적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윤공단이 건립되었다. 1765년(영조 41년) 당시 다대첨사 이해문이 제단을 쌓고, 음력 4월 14일을 제사일로 정하여 제사를 지냈다. 오늘날에도 동민이 중심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윤공단의 3기의 비석 중 중앙에 있는 비석은 앞면에 ‘첨사 윤공흥신순절비(僉使尹公興信殉節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한자 12행으로 된 전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석의 양쪽에는 ‘의사윤흥제비(義士尹興悌碑)’와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자그마하게 세워져 있다.
원래 이 제단은 윤흥신(尹興信)이 순절한 곳인 다대포 첨사영의 성내(城內)였던 지금의 부산시 유아교육진흥원 자리에 있던 것을 1970년 12월 5일 현재의 자리인 다대동 1234번지로 옮겼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윤공단은 가깝게는 바로 앞에 다대포성과 다대포 객사가 있던 부산시 유아교육진흥원 건물, 멀리는 다대포항과 몰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다대포해변공원 해수천길
그리고 공원의 주차장에 돌아와, 오늘 우리들의 일정을 정리했다. 나는 당초의 예정대로 여기 다대포에서 낙동강하구둑까지 두 발로 걸어서 가기로 하고, 기원섭의 카니발에는 대원들이 동승하여 을숙도 철새도래지나 삼락생태공원을 탐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낙동강 하구둑 입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오전 11시 11분, 다대포해변공원에서 오늘의 트레킹에 돌입했다. 홀로 가는 길이다. 공원은 다대포해수욕장과 다대로(多大路) 큰 길 사이에 조성되어 있다. 공원의 한 가운데 샛강인 ‘해수천’이 있고 그 해수천 양안에 ‘해솔길’이 나 있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좌측의 언덕은 잔디광장 위에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있다. 해수천 우측은 방사림(防沙林)이 조성되어 있으며 해수욕장의 샤워장이 있다. 그리고 도로 쪽에 꿈의 ‘낙조분수장’이 있다. 이곳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는 바닥의 원형 지름이 60m이고 둘레가 180m인데 분수의 최대분사 높이는 55m로 세계 최대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최고수준의 바닥음악분수로서 밤이면 화려한 분수공연이 매일 펼쳐진다고 한다. 해수천 길을 따라 공원을 지나왔다. 잔디광장에 ‘다정큼나무’라는 팻말이 붙은 나무군락이 눈길을 끌었다. 높이가 2m정도 되는 나무는 잎이 동백처럼 두텁고 윤기가 났다. 아주 조밀하게 심어져 있어 방사림으로 적합한 수종인 것 같았다.
사하구 ‘고우니 생태길’
공원이 끝나는 곳에서, 습지가 이어진다. 도로(道路)의 바이크로드로 나갈 수 있으나, 습지로 이어지는 ‘사하구 고우니 생태길’로 접어들었다. 습지의 생태 탐방로를 택한 것은 큰길의 자동차 소음을 피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연의 생태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광활한 습지에 갈대와 억새 그리고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자라는 곳이다. 습지의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나무테크 탐방로를 만들어 쾌적하게 산책을 할 수가 있다. 오늘 여기 생태습지는 ‘물억새의 가을’이다. 드넓은 강안의 습지에는 온통 물억새로 가득했다. 가을이 깊은 강변, 여름의 그 성성한 생기는 사라지고 이제는 바삭하게 말라가는 물억새들이 갈색의 몸을 비비면서 한낮의 햇살을 받고 있었다. 강바람에 실려 간 세월이었다.
그런데 마침 테크 탐방로 가는 곳마다 이곳 향토시인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새부산시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야외 시화전이다. 그중 오늘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제목의 시가 있다. 현영수의 「물억새 가을」이다. 뽀얀 시폭(詩幅)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그 언젠가 추억이 꽃진 자리 / 첫가을 양강의 길 위에 사철이 녹음이듯 / 물억새들의 풍경으로 오는 몸짓을 보며 // 여린 햇살 한 줄기 / 꿈길에 어리우듯 / 촌각의 시각 / 그 강변에 어울리듯 / 무지개 한 쌍 신기루로 가고 // 하늘이 시샘이듯 / 다만 저문 황혼 길을 홀로 걸어가는 / 내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 이승의 나이를 샘해 보며 / 가슴앓이로 오는 날
늦가을 억새는 ‘그 언젠가의 추억이 꽃진 자리’이다. 시인도 아마 나처럼 나이가 지긋한 분이 아닌가 싶다. ‘무지개 한 쌍 신기루로 가’버린 젊은 날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나이가 드는 것을 ‘하늘의 시샘이듯’ 안타깝고, ‘다만 저문 황혼 길을 홀로 걸어가는 / 내가 문득 나를 돌아보’는 길목이다. 시인은 남은 ‘이승의 나이’를 가늠해 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그것이 물억새가 건네는 만추의 서정(抒情)이다.
나무테크 탐방로가 물억새 군락지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직선으로 이어지고 또 군락지의 한 가운데는 높다란 전망대와 쉼터 그리고 벤치까지 조성해 놓았다. 가을의 서정(抒情)을 느끼며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지금을 백주의 한낮이지만 낙동강 하루의 억새밭에 내려앉는 저녁노을은 환상적이다. 긴 탐방로가 끝나는 도로변의 공원에 ‘노을정’이 있다. 거기 그 아름다운 저녁놀을 그리는 시가 나그네의 마음속에 풍경화를 그린다.
강변의 다대로(多大路)
오전 11시 44분, 큰 길에 올라섰다. 낙동강 강안을 따라 나 있는 사하구 다대로이다. 다대로는 여기 다대포에서 낙동강하구둑이 있는 하단2동까지 왕복 6차로의 강안 도로이다. 다대로의 강변 쪽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와 왕복의 바이크로드가 아주 산뜻하게 정비되어 있다. 날씨는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화사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이제 다대로의 보도를 따라 하구둑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약 5분 정도 지나오니 도로 건너 차도가 갈라지고 오른쪽 산록의 절개지에 산으로 올라가는 두 곳의 나무테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도로표지판에 ‘아미산 전망대’, ‘응봉봉수대’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아미산 전망대
해발 163m의 아미산은 부산광역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아미산이라는 이름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으나,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의 ‘아미(蛾眉)’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미산에는 낙동강 하구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전시관이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하구의 삼각주와 하단, 강 건너 강서구 명지동, 부산신항, 가덕도의 산봉들, 그리고 김해의 산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섬들의 풍경, 그리고 낙동강 하구의 낙조(落照)의 장관을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
강원도 태백에서 1300리를 쉼없이 흘러온 낙동강이 드디어 바다와 만나는 곳, 그 긴 물길을 지나오며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장대한 물길이 품어온 토사가 바다와 만나면서 모래섬[등]이 되고 땅이 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곳 — 부산 낙동강 하구. 김해 삼각주는 김해공항을 만들고, 더 내려와 바다와 만나기 전 을숙도 섬을 만들더니, 바다에 들어서면서 그냥 갈 수가 없어, 다대포 앞바다에 마지막 모래톱을 만든다. 그 모래톱이 만든 섬들이 도요등, 백합등, 맹금머리등, 대마등, 장자도, 신자도, 진우도이다. 그 중에서 진우도는 육지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섬으로 지금도 주변의 모래톱이 쌓여가며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최전선 — 낙동강 하구(河口)는 강과 바다가 만나 만들어진 곳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총 525.15㎞를 흘러온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만들어진 것이 낙동강 삼각주다. 이곳엔 낙동강이 실어온 토사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 퍼지기도 하지만 바다의 힘에 부딪혀 퇴적되기도 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 힘겨루기를 하는 최전선이 낙동강 하구인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사주와 사구 같은 퇴적 지형이다. 인간의 눈에는 금방 드러나지 않지만 낙동강 하구의 지형은 조금 과장해서 자고 나면 바뀔 만큼 변화가 심한 곳이다. 실제 낙동강 하구 모래섬의 지형은 해마다 눈에 띄게 변화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지형 변화가 가장 심한 곳으로 불린다.
낙동강 하구 사주(沙洲)의 모습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아미산 전망대이다. 아미산 전망대 입구에 서면 건물 왼쪽으로 멀리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들이 눈에 띈다. 1층의 테크 전망대에서 볼 수도 있지만 2층에 가면 망원경으로 더 상세하게 모래섬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굳이 망원경으로 보지 않더라도 남동쪽 끄트머리에 강의 흐름에 대해 가로로 길게 누운 모래섬인 도요등을 볼 수 있다. 도요등 남단을 잘 보면 북쪽과 달리 밀려온 파도가 찰랑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낙동강을 흘러온 강물과 앞바다의 연안류가 서로 부딪치는 생생한 현장이다.
진흙이나 모래 등 낙동강이 실어나르는 물질은 연간 1000만t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여름철의 장마에 집중돼 삼각주의 변화도 이때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이때 입자가 작은 가벼운 퇴적물질은 멀리 대한해협까지 흘러가고, 모래 등 무게가 있는 퇴적물이 사주 지역에 쌓인다. 낙동강이 침식하여 운반되어 온 토사가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해안에 도달하면 해류(海流)나 조석(潮汐), 파랑(波浪) 등 바닷물의 작용을 받아 해안선에 평행한 모래섬을 발달시킨다.
모래섬은 삼각주 내부의 섬처럼 육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최근에 형성되어 그 출현 순서를 알 수 있는데, 1904년 지형도에는 신호도, 진우도, 대마등, 을숙도가 등재되어 있으며, 1916년 지형도에는 장자도[장자등, 옥림등]가 처음 출현한다. 1955년 지형도에는 백합등이 나타나고, 1975년 지형도에서는 새등을 처음 확인할 수 있다. 1981년 지형도에는 나무싯등, 1983년 지형도에는 홍티등[무지개등], 1986년 지형도에는 도요등[철새등], 1989년 지형도에는 맹금머리등[맹그머리등, 맨끝머리등]의 생성이 나타난다. 현재도 모래섬은 낙동강 하구에서 남해를 향하여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다.
진우도 남쪽, 새등 남쪽 그리고 도요등 남쪽에서 새로운 등[새부리등]이 성장하고 있고, 또 다대포 해수욕장 앞쪽 몰운도 서쪽 해안에도 새로운 등[몰운대등]이 2010년부터 대기 중에 노출되었고 2012년 현재 해수면상에 출현하였다. 특히 낙동강 하구둑이 준공된 이후 연안 사주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어선이 다니는 통로까지 매립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대포와 가덕도 사이의 바다에 토사를 퇴적하여 머지않아 육지로 성장시킬 것이다. 낙동강 하구에 발달한 모든 연안 사주는 주민이 없는 무인도이며 문화재 또는 환경 보존 지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국제신문] 부산 지질기행 (5) 낙동강 하구-강과 바다의 조화
고(故) 오건환(부산대 지리교육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빙하기가 한창이던 1만 8000년 전까지는 낙동강이 대마도 근처까지 흘러 바다에 합류했다. 지금보다 해수면이 100m 정도 낮았기 때문으로 지금의 낙동강 하구 일대는 당시엔 내륙분지였다. 약 1만 년 전 빙하가 물러나면서 해수면이 40m 정도 상승해 낙동강 하구는 한반도 쪽으로 후퇴했다. 이어 4000년 전쯤에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수면이 상승했는데 이때의 낙동강 하구는 양산천이 합류하는 물금 부근이었다.
현재와 같은 해안선이 윤곽을 잡기 시작한 것은 1700년 전부터다. 이때까지는 지속해서 해수면이 상승했지만 이후 낙동강 하구 지반이 융기하며 바다가 물러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물금 부근에 토사가 퇴적하면서 삼각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해수면이 안정되면서 낙동강 하구에 활발한 퇴적작용이 일어났다. 크고 작은 모래톱인 사주가 발달하면서 합쳐져 하나의 섬을 이뤄 낙동강 삼각주의 기본적인 모양을 갖췄다. 현재 강서구 대저동 일대가 바로 그곳으로 이때가 대략 1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낙동강 삼각주가 탄생한 것은 가야 왕국이 융성하던 시기로 이후 삼각주 일대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했다. 이 일대에서 패총과 같은 선사 시대 유적으로 볼 때 적어도 4000년 전부터 인간의 생활 터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에도 낙동강 하구는 훌륭한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문화재보호구역인 낙동강 하구는 철새의 이동 경로에 있어 번식지이자 월동지, 중간기착지로 활용된다. 또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먹이가 풍부하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은 자연환경보전지역, 문화재지정구역, 습지보호지역 등으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다. 부산대 김진섭(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국가지질공원의 평가에는 생태문화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특히 낙동강 하구는 관련 전문가들이 생태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곳이다"고 말했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낙동강 하구 모래섬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을숙도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는 을숙도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구의 생물상, 특히 철새와 이들의 서식환경에 관해 잘 알 수 있다. 또 을숙도 남단의 퇴적 지형도 살펴볼 수 있다. ☜ 이상 「국제신문」2013.11.01. (30면)
강변의 날렵한 전망대 쉼터
오전 11시 50분, 다대로 도로와 바이크로드 그리고 보도가 나란히 이어지다가 커다란 야외 텐트가 시설된 곳에 이르렀다. 시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커다란 차양(遮陽) 텐트와 함께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강변의 전망대도 있다. 사실 이곳은 낙동강이 아니라 이미 남해에 속하는 곳이다. 전망대에 나가 낙동강 하구의 바다를 바라본다. 너른 수면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잔물결을 만나 수많은 수정의 파편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낙동강 하구와 맞물리는 바다, 저 건너편은 부산신항이 있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영역이다. 그 아래쪽으로 보이는 산너울은 가덕도의 연태봉(459m), 응봉산(313m)의 산줄기일 것이다.
사하구 강안의 보도
도로의 강변쉼터에서 보도(步道)는 바이크로드와는 별도로 강변으로 내려와 이어진다. 연안에 축대를 쌓아 그 중간에 보도를 조성한 것이다. 이제 왼쪽은 낙동강 하구의 바다이고 오른쪽은 도로의 축대이다. 찻길보다 낮아서 자동차의 왕래나 소음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 비교적 한적한 느낌이 드는 강변 길이다. 이 강안은 정비사업을 통해 직선의 축대를 쌓아 건설한 것이므로 강안의 보도는 아득하게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강을 거슬러 낙동강하구둑이 있는 북쪽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연안의 물길을 따라 혼자서 걷는 시간, 등으로 햇살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길이다. 인간의 문명이 물길을 위협하듯 바다까지 들어와 축대를 쌓고 길을 내었다.
을숙도를 지나가는 두 개의 교량
12시 04분, 아무 것도 없는 시멘트 보도를 걷는 중에 이정표 하나 서 있다. ‘다대포 2.1km / 을숙도대교 2.7km’ — 을숙도는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 속해 있는 낙동강 하구의 기다란 삼각주(섬)이다. 을숙도에는 동쪽의 사하구와 연결되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을숙도의 남쪽, 사하구 신평동에서 을숙도를 경유하여 강서구 명지동으로 넘어가는 ‘을숙도대교’가 있고 또 하나는 ‘낙동강하구둑’ 상판교를 말한다. 낙동강하구둑은 사하구 하단2동에서 ‘하구둑’ 상판에 교량를 시설하여 을숙도를 경유하여 강서구 녹산동을 이어진다. ‘낙동강하구둑-을숙도’을 지나는 이 도로는 2번국도이다.
문득 검푸른 바다 위에 낚싯배인 듯한 배 한 척이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는 시원한 풍경이다. 바람을 가르고 바다를 가르고 바다의 정적을 가르는 속도감이 너무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내가 걷는 바닷가 보도는 인정사정없는 직선의 콘크리트 보도이다.
고니나루 쉼터
12시 20분, ‘고니나루 쉼터’에 도착했다. 다대포해수욕장에서 3.3km 올라온 지점, 을숙도대교까지는 1.5km를 앞두고 있다. 이 공원은 이곳 강변대로 옆에 조성한 테크 전망대로, 강, 바다, 철새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 생태문화공간이다. 특히 겨울철 철새들의 탐조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고니나루 공원은 보도(步道)에서 강안으로 약 40m 정도 내다가 축대를 쌓아서 조성하였다. 장방형의 너른 공간을 조성하고 강안의 가장자리에는 안전한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무대처럼 계단식 전망대도 만들고 벤치도 구비해 놓았다. 그리고 그 광장 한가운데 테크마루 위에 한 쌍의 고니가 마주보고 있는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그 주위를 빙 두른 석축 위에 좌석을 만들어 놓았다. “큰 고니의 사랑을 아시나요?” 제하의 해설이 그럴듯하다. “겨울철 낙동강하구에 찾아오는 큰 고니, 한 쌍의 암수가 서로 마주보며 다정히 사랑을 나누는 그 모습이 ‘하트’를 그리고 있다. 고니는 이렇게 한 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하며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무리지어 산다.” — 동물이 속성이지만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시 길 위에 섰다. 다시 아득하게 직선(直線)의 주로가 기다리고 있다. 보도는 다시 강안의 축대 길에서 올라와 바이크로드와 나란히 간다. 바이크로드와 보도 사이에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고 보도의 강안에는 튼튼한 가드레일 설치되어 있었다. 검푸른 강심에 모터보트 한 척이 질주하고 있다. 강 건너 저편에 아득하게 강서구 아파트들이 보이고 가덕도 산봉들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장림포구
12시 36분, 장림포구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는 사하구 장림동이다. 길가에 이정표가 있다. ‘다대포해수욕장 4.2km, 낙동강하구둑 3.3km’. 이곳 삼거리는 부산 사하구의 갈맷길이 이어지는 길목이다.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아미산에 올라 이곳 장림동으로 내려오는 지점인데 ‘갈맷길’은 여기서부터 계속해서 낙동강 제방 길을 따라 사상구까지 이어진다. 다대로 큰길 건너편은 장림동, 다대포에서 이곳까지 부산시 사하구 장림일반산업단지이다. 장림포구 다리를 건넜다. 보도에서 강안으로 내려와 장림교 굴다리를 지나 들어가 보았다. 각종 고기잡이배와 낚싯배가 정박해 있는 장림포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장림포구 안쪽에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장림역이 있다. 부산시 중구의 부산진역—남포역을 지나온 부산 지하철 1호선은 2번 국도를 따라서 서구의 동대신역—서대신역을 경유하여 사하구 괴정동의 대티역—사하역을 지나 낙동강하구둑 앞 하단역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신평역—장림역—낫개역—다대포항역을 지나 종점인 다대포해수욕장역으로 이어진다. 대티역—괴정역에서 종점까지는 사하구 영역이다.
을숙도대교
장림포구 안쪽에서 다시 굴다리를 되돌아 나와 보도 위로 올라섰다. 저만큼 ‘을숙도대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도로에는 을숙도대교에서 다대포 방향으로 내려오는 램프가 있다. 이제 길은 을숙도대교 강안교차로 교각 아래를 지나게 된다. 보도는 따로 없는 바이크로드가 이어진다. 이곳 을숙도대교 교차로는 남쪽의 다대로와 북쪽의 낙동강 강변도로 그리고 을숙도대로 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입체교차로이다. 이 교차로는 낙동강 하구의 강안에 설치되어 있다. 교차로의 완강한 콘크리트 교각을 지난다.
강서구 명지동에서 을숙도를 지나온 을숙도대교는 을숙도대로로 이어지는데, 을숙도대로는 이곳 장림동을 지나 감천항을 거쳐, 바다 위의 부산남항대교를 건너 영도에 이르고 다시 해상의 부산항대교를 지나서 부산시 남구 감만동으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이 도로는 남구 대연동에서 광안대교를 건너가면 해운대까지 연결된다. 말하자면 부산의 최남단 남해안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간선도로이다.
사하구 신평동 강안의 보도
12시 57분, 을숙도대교 교차로의 교각을 지나면서, 보도는, 도로와 나란히 가는 바이크로드와는 별도로 강안에 조성된 길이다. 을숙도대교를 지나면, 행정구역상 사하구 신평동이고 신평동에는 사하구청이 있으며,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신평역과 차량기지가 있다. 그리고 신평일반산업단지가 있다. 다대포에서 을숙도대교까지는 ‘다대로’로 명명하지만, 을숙도대교에서 구포삼거리까지는 ‘강변대로’라고 한다. 어제 나는, 사상구에서 강변대로의 제방 길을 따라 낙동강하구둑까지 내려왔었다.
강안의 나무테크 전망대에 이르렀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다. 만추의 따사로운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느낄 듯 말 듯한 낙동강 강바람이 은은히 볼에 스친다. 시퍼런 바다의 강안을 따라 이어지는 직선의 보도가 눈앞에 열려 있고, 저만큼 낙동강하구둑의 도열한 주탑의 구조물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보인다!’ 아직 하체 근력에 이상이 없으므로 마음을 세워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돌아보니 을숙도대교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그리고 강을 건너다보니 을숙도의 하얀 아파트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 뒤로 김해의 낙남정맥의 산너울이 보이기도 했다.
노을나루전망대
오후 1시 11분, 강안에 시설된 나무테크 전망대에 이르렀다. ‘노을나루’ 전망대이다. 낙동강하구둑은 아직 멀리 보이지만 이곳은 낙동강 하구, 낙조(落照)의 장관을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리고 이곳을 포함한 노을나루 길은 최근에 개발된 ‘남파랑길 부산 제5코스’의 길목이다.
노을나루 — 부산 남파랑길
최근에 개설된 ‘남파랑길’은 부산시 남구 용호동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마을’까지 1,470km 90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다도해국립공원을 비롯해 해안 길과 숲길, 마을길, 도심길 등이 다채로운 자연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부산의 남해안을 따라가는 둘레길이다. 특히 바다와 벼랑 등 신선한 자연 속에서 걷기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코스다.
남파랑길 부산 제1구간은 ‘동해 해파랑길’의 시작점인 부산시 용호동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하여 ‘UN기념공원’—‘중앙공원’을 경유하여 부산역까지 19.2km이고, 제2구간은 부산역에서 중리바닷가를 경유하여 영도대교에 이르는 14.5km이며, 제3구간은 영도대교 입구에서 송도해수욕장을 경유하여 감천삼거리에 이르는 14.9km이고, 제4구간은 감천삼거리에서 다대포해수욕장—아미산전망대—장림포구를 경유하여 신평동교차로에 이르는 21.7km이며, 제5구간은 사하구 신평동교차로에서 노을나루—낙동강하구둑을 지나 강서구 신호대교—신호공원을 경유하여 송정공원에 이르는 21.9km를 말한다.
특히 부산시 사하구는 남파랑길 4~5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감천문화마을,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몰운대, 충철의 윤공단, 아미산전망대, 노을나루, 을숙도철새도래지, 을숙도생태공원, 승학산 억새군락지를 명승지로 지정한다.
노을나루 ― 낙동강 하구 모래섬 이야기
강원도 태백에서 발워난 낙동강이 525km, 장장 1300리를 흘러오면서 바다와 맞닿은 동낙동강과 서낙동강 사이에 토사가 퇴적하여 넓고 비옥한 삼각주 대평원(을숙도)을 만들었다. 사하구 다대동과 강서구 가독도 사이에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연안 사주지형(barrier isiand, 모래톱, 모래섬)이 펼쳐져, 갈대를 비롯한 다양한 염생식물들과 조개류, 게 등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바닷가 얕은 물 밑에 모래와 흙이 퇴적되면서 해수면 위로 연안사주지형(沿岸沙洲地形)이 드러나 파도나 잔물결이 부딪히는 모래섬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여기 어민들은 ‘~등’이라고 부른다. ‘등’이란 소의 잔등처럼 넓고 평평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기 대표적인 것이 ‘백합등’이다. ‘백합등’은 약 0.42㎢의 면적을 가진 모래섬으로 육지로부터 약 600m 떨어져 있는데,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때에 어민들이 강을 건너가 백합조개를 잡으면서 이름 붙여졌으며, 그 면적이 지금도 넓어지고 있다. ‘백합등’ 주변으로 ‘무지개등’(무지개 마을 앞바다에 있는 모래톱), ‘맹금머리등’(솔개 같은 맹금류가 살고 있는 섬), ‘도요등’(도요새가 많이 살고 있는 섬) 등이 있는데 다대포와 가덕도 사이의 바다에는 수많은 연안사주들이 생겨나고 있다.
멀리 뒤로 보이는 낙동강하구둑과 을숙도를 배경으로 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침 전망대에서, 산책을 나온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낙동강 종주이야기를 했다. 어제, 노을이 짙게 내리는 저녁에 하구둑에 도착하여 1300리 대장정을 완료했다는 것과 오늘 몰운대 바다에서 하구둑까지 걸으면서 모든 낙동강 장정을 마무리하는 길이라고 했더니, 이야기를 들은 중년의 여인이 놀라운
눈빛으로 찬탄하면서 축하와 격려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양한 포즈를 주문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후 1시 25분, 다시 일직선의 길 위에 섰다. 길 가에, 앵두 같은 붉은 색 열매가 알알이 박혀 있는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낙동강하구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가지 않아 나무테크 전망대에 이르렀다. 낙동강하구둑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을 조성해 놓은 것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노을나루길이다. 노을나루길 이야기가 이어진다. — 노을나루길이란 여기 강나루의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내세운 말이다. 사하구 하단의 아름다움 중 낙조(落照)는 가히 환상적이다. 낙동강 1300리를 흘러온 강물이 몸을 푸는 곳, 여기 하단은 장엄한 일몰이 펼쳐지는 곳이다. 불덩이 같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바다를 향해 열린 하구와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와 석양에 물든 갈대숲은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다. 낙동강 하구(河口)의 낙조는 일찍이 ‘다대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동강하구둑이 들어서기 전에는 고기잡이를 나갔던 돛단배들이 금빛 물결을 저으며 나루로 돌아오고 갈대숲 사이로 난 수로의 풍경이 아주 예술적이다.
낙동강하구둑
오후 1시 45분, 낙동강하구둑 입구에 도착했다. 하구둑의 상단은 10개 주탑이 도열해 있는데, 가운데 7개의 주탑에 각각 ‘한·국·수·자·원·공·사’를 적어놓았다. 하구둑의 상판(上板)의 교량은 왕복 4차로의 도로이다. 낙동강하구둑 상판교 입구에 용맹스런 사자상(獅子像)이 하구둑을 지키고 있었다.
‘낙동강하구둑-을숙도’를 지나는 이 도로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동서를 잇는 2번국도이다. 이 2번 국도는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에서 시작하여 부산시 서구의 중심지역을 지나 사하구 하단동에서 낙동강하구둑-을숙도를 경유하여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으로 통한다. 그리고 2번 도로는 창원시의 진해—마산, 진주—하동을 지나, 전라남도 광양—순천—보성—장흥—강진을 경유하여 목포에 이른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동서를 잇는 국도이다.
이상배 대장에게 낙동강하구둑에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이곳에서 일행과 만나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카니발 동지 일행은 지금 을숙도의 하단부에 있는 철새도래지를 탐방하기 위해서 가고 있다고 했다. 사실 어젯밤에 을숙도문화회관 공원에 들렀을 때, 문화회관 갤러리에서 「서양미술사전(西洋美術史展)」의 포스터를 보았는데, 오늘 낙동강 대장정 완주를 기념하여 일행이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일행을 바로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함께 만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혼자서 전시회를 관람하기로 했다.
「서양미술사전(西洋美術史展)」은 그야말로 서양 미술 전반의 역사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이다. 혼자서 낙동강하구둑 상판교를 건너, 어제 밤에 들렀던 을숙도문화회관을 찾았다. 긴 낙동강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서양미술사의 흐름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 <계 속>
첫댓글 어찌 이리 세세하게 여정의 기록을 남기셨나.
덕분에,
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같이 동행하는 것만 같고..
감사 감사,
날 잡아 한 잔 합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