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신문 한쪽에는 낱말 맞추기 면이 있었다.
바둑판처럼 생긴 빈칸에 힌트나 설명을 읽고 낱말을 채우는 것이다. 가로 1번, 세로 3번 하나씩 맞춰 가면서 빈칸을 메웠다.
모르는 것 있으면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사전을 찾거나 주변에 물어서라도 끝까지 빈칸을 완성했던 적이 많다. 그때 배운 사자성어가 순망치한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순망치한이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이 사자성어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산다. 내 식으로 풀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예전 직장에서 나를 밀어낸 사람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것이다. 부당 해고는 불법이지만 해고처럼 보이지 않게 쫓아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이것을 보통 편법이라고 한다. 내가 스스로 그만 둘 이유도 백 가지, 쫓아낼 명분 또한 찾으면 백 가지다. 편법도 적절하게 쓰면 처세술에 능한 사람으로 칭송 받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를 껄끄럽게 여긴 여성 후배가 사장과 작당해서 내가 잘린 것은 확실하다. 남의 돈 먹더라도 비굴하게는 일하지 말자는 평소 생각이기에 미련없이 직장을 떠났다.
두 달쯤 지났나? 그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당시 나는 새 직장에 출근하고 있었다. 자기도 회사를 그만 뒀다고 한다. 그러면서 넌지시 일할 곳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통화 후에 전 직장에 있는 젊은 후배에게 사정을 알아 봤다. 내 나오고 한 달 후에 그녀도 바로 잘렸다고 했다. 그녀 역시 불법이 아닌 나처럼 편법으로 잘렸다.
내가 그녀와 근무할 때 사장은 늘 그녀를 퇴사 시키려고 했다. 그때마다 내가 나서 바람막이가 되어 그녀의 편법 해고를 막았다. 사장은 내가 없자 바로 그녀를 자른 것이다.
내가 그녀의 바람막이가 되어 준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지금도 오직 사장만 알고 있다. 그녀는 내가 없으면 걸림돌이 사라져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사자성어가 바로 순망치한이다. 카페든 사회든 그런 사람이 있다. 라이벌이나 눈엣가시가 없어지면 자기가 빛날 줄 알고 있는 경우다.
주연은 조연과 엑스트라가 있어서 빛난다. 주연이 지 잘난 맛에 안하무인이면 점점 빛을 잃는다. 순망치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인생도 세상살이도 그렇다.
순대촌이나 떡볶이촌에 같은 업소가 몰려 있는 것도 다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다. 옆집이 잘 되어 손님이 몰리면 자기 집도 손님이 는다.
혼자 잘 살겠다고 헛짓하면 함께 망한다.
이것이 바로 순망치한이다. 脣亡齒寒, 한자가 조금 어렵다. 나는 한문 실력이 없어 겨우 읽기만 하지 쓸 줄 모르는 한자가 대부분이다.
그녀는 나와 함께 근무할 때 내게 가끔 그랬다. "선배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늘 사장한테도 그렇게 말해요."
앞에선 그래 놓고 뒤에서는 사장과 쫓아낼 작당을 꾸민 것이다.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는 口蜜腹劍(구밀복검)이다. 이것도 예전에 낱말 채우면서 배웠다. 구밀복검은 앞에서는 입에 꿀 바른 것처럼 친절하지만 돌아 서면 험담을 하는 것이다.
내 식으로 푼 것이지만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단어도 써 보라 하면 순망치한보다는 덜 어렵지만 口자만 쓰고 쩔쩔 맬 게 뻔하다. 이렇듯 나는 아는 것이 뻥이다.
# PS
고급진 읽을거리로 떠들썩했던 풍류방이 요즘 너무 조용해 분위기 띄우는 차원에서 우스개 사자성어 몇 개 올린다. 虎士道 정신 투철한 현덕이 함 나서본다.
이것이 풍류방에 온기를 더하는 마중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점잖은 분은 다소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런 분은 읽지 마시고 바로 건너 뛰어도 좋을 것이다.
읽기에는 다소 민망한 사자성어지만 한문을 한 자씩 새기면 나름 의미가 있는 글이다. 어쨌든 아래 글은 웃자고 올린 것이니 죽자고 달려들지 마시고 그냥 웃으시라.
나는 왜 여태 몰랐지? 고민하지도 마시라. 사자성어는 배워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리니. 현덕의 생각이다. 역시나 아는 것이 뻥이다.
1.屈根姿枝(굴근자지) : 가지를 뻗기 위해 뿌리는 땅속에서 웅크리고 있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희생을 의미.
2.眺膝雜苦(조슬잡고): 무릎을 마주하고 괴로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남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인자한 성품을 의미.
3.足加示悟(족가시오): 만족을 더하면 깨달음이 보인다는 뜻으로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미덕을 의미.
4.轄他助要(할타조요): 타인을 잘 다룰 줄 알아야만 중요한 일에서 늘 도움이 된다는 뜻.
5.据緊安代(거긴안대): 편안함 대신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을 택한다는 뜻.
*사자성어 해석 능력 등급.
1급- 한문 해석을 위해 한자 사전을 펼쳐 놓고 오직 한문 뜻만 열심히 새기는 사람.
2급- 한문과 한글 뜻풀이를 비교하며 열심히 외우는 사람.
3급- 한문은 안 읽고 오직 한글 넉 자만 읽으며 실실 웃는 사람.
첫댓글 ㅎㅎ
모르는 사자성어가 꽤 많아서 배우게되었네요.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는 ~~
의문입니다만,
다시 한번 잘 새기겠습니다.꾸벅^^
처음 글은 진지하게 나중 것은 유쾌하게 읽으시면 됩니다.
이미 가희님을 웃겼으니 이 사자성어는 요긴하게 쓰인 겁니다.^^
할말은 없어도
기냥 가긴 머해서..족ㄱㄱㅏ시오! ㅋㅋ
얼~쑤~
자고로 유머 주고 받는 것은 모렌도 님처럼,,^^
캬ㅡ하하하
잡을 것도 읎는데
왜 이렇게
웃껴요
윤슬님 웃으니까 좋네요.
하여 저는 목적 달성했어요.ㅎ
말미의 다섯가지 사자성어는 금시초문이지만 뜻이 매우 심오합니다.
날마다 읽고 쓰고 잘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미의 글은 1번부터 5번까지 순서대로 넉 자를 끌어다
연결해서 읽어야 더욱 심오한 뜻이 됩니다.
인생에서 때론 心烏함이 살아가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네요.ㅎ
유현덕님 넘넘 반갑습니다
요즘 감기가 코로나 보다도 심하다고들 하는데
하필이면 제가 딱 지금 그 그물망에 걸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장에 껌정 화요 한잔하고
유 현덕님 글에 흠뻑 빠집니다
언제나
글~~
멋지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비 오는 어느 봄날..
봄이 다 가기전 막걸리 한잔 합시다
곡우가 지났으니
봄도 다 갔다 하겠지만
내 마음에 봄은 아직 보내지 못 했걸랑요^^
앗싸~~!!
술 마시자는 말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모쪼록 고얀 감기 빨리 떨쳐내시구요.
모임 자리 마련하시면 우산 내던지고 달려 가겠습니다.
봄은 제가 최소 한 달은 못가게 붙잡을 테니
넘 걱정 마시구요.ㅎ
내가 유현덕님에게 꿀리는것은 해박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얼마나 노력을했는가?
잠자는 시간은 2시간?
영어 불어 한문 일어?
얼마나 노력파인가,
해외는 몇나라에서
살았나하늠 점입니다,
오늘 접한 순자나
한자도 참어려운
한자입니다
지난번 문장과 이력에 쇼크를먹어
접어두었던 콘사이스를 다시 펴보고. 자숙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아울러 빠삐용 영화도 생각나서
내가 스트브 맥킨이라고 자상했습니다
자주들어오세요
우메한 노인네를 깨우쳐주세요
호반청솔 님 너무 부담주지 마세요.^^
가방끈이 짧아서 살아 남으려고 부지런히 산 것은 맞지만
해박함과는 거리가 있답니다.
잠도 7시간은 자구요.
해외 생활은 먹고 살기 위해 두 나라에서 살았구요.
구경 댕긴 나라는 몇 나라 더 되구요.
글구 풍류방을 현덕의 해방구로 찜했으니
님이 자주 오시면 저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항상 건강하세요.ㅎ
하이구 웬지~~
새벽댓바람부터 들어와보고 싶더라니요..
역쉬..팬하길 잘했어요..
읽는내내 끄덕끄덕..
아주 오래전부터 터득하기 시작했던
내가 있던자리 나없어도 더 잘돌아간다는것~!
내가 아닌 다른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새삥~!
나보다 잘나보이는사람..팍팍 밀어주면
내게도 알게모르게 팍팍 올라간다는것~!
더불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것...
제일 중요한 것은 이제는
이쁜사람은 진짜 이뻐보이고..
미운사람은 그리 밉지 않고..
세상을 보는눈이 행동이 너그러워진건가?
아니다....놓아버린느낌입니다.
앗~~무주여행 갑니다...급하게 후다다닥~
이더님 다녀 가셨군요.
댓글만 봐도 이더님이 얼마나 야무지게 사는 분인지 알 수 있겠네요.
나 없어도 그 자리 잘 돌아간다는 말이 인생 정답입니다.
미운 사람 하나도 없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쁜 사람을 더 많이 가슴에 담고 살면
좀더 가뿐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아침 일찍부터 무지 부산한 하루였기에 답글이 늦었네요.
이더님도 가슴 설렌 무주여행이었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토욜 저녁 되세요.ㅎ
사자성어 해석능력을 보니 저는 2.5급 정도 되네요..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3급입니다..)
제동님이 다녀간 흔적까지 남기시고 뜻밖이네요.^^
해석능력이 저는 얄짤없는 3급이라서
제동님도 그냥 저와 같은 급으로 취급하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