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하시는 형들만 보세염 !!
2. 변화된 서인 원래 동인과 서인은 사림(士林)이라는 한 뿌리였어염. 그러던 것이 심의겸과 김효원이라는 유망한 두 실력자가 사적인 감정싸움을 벌이면서 김효원을 지지하는 쪽이 동인 , 심의겸을 옹호하는 쪽이 서인이 되어 편가르기하게 된 것이었어염.
동인은 주로 나이가 젊은 청년 사림들이었고, 서인은 대개 선배 사림들이었어염. 선조 대에 이르러 청년 사림들이 대거 입조해 있던 상황이므로 동인들의 수는 서인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어염. 이념적으로 동인과 서인을 나누어 보자면 동인들은 진보적인 편에 속했고, 서인들은 비교적 보수적인 편에 속했어염.
이이가 서인임을 자처하게 되자 그와 성혼(成渾)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와염. 이씨 조선 → 서인 → 노론 → 친일파 여기에서 서인의 수장 버금가는 인물이였던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지폐로 사용하는거 반대해염.
조선 왕조 쓰래기 왕중 하나인 선조는 동인을 버리고 서인 손을 들어줬어염.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역모 사건이라는 국가위기상황이었다고는 해도 동인에 대한 선조의 탄압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어염. 그때 동인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게 서인이에염.
선조는 광해군을 견제하는데염. 이때 동인들이 임진왜란때 광해군을 도와서 왜적을 물리처염. 이때 나라를 버리고 도망칠려던 쓰래기들이 바로 서인이에염. 정권을 잡자 열받은 거에염.
근데 동인들도 원래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는데염.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화한 후 조선은 사대부 중심의 기득권만이 판치는 세상이었어염. 이런 조선을 바꿀 사람은 바로 광해군이었고염. 광해군은 임진왜란 분조를 이끌며 조선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백성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아는 군주였어염. 그래서 광해군은 이론주의가 판치던 조선 정치철학을 역행하는 실천주의적인 정치를 하다 사대주의로 가득찬 서인들에게 정권을 빼앗긴것이에염. 그리고 서인들의 세상 그리고 이어지는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치욕 !!
그들은 명분없는 정권에 명분을 만들기 위한 온갖 몸부림을 쳤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그들의 세상이고 현재도 그래염. 송시열 국사 교과서엔 효종과 북벌을 함께한 서인의 대표적인 신하로 묘사되고 있으나 그는 이율 배반적 이론으로 국익보다는 당익을 우선시한 사람이었어염.
하지만 윤휴는 서인에 탄핵을 받고 귀양을 떠나고 얼마지나 사약을 받고 죽어염.
왕보다 송시열은 더욱 강한 힘을 가진 신하였고, 서인의 요구조건을 듣지 않으면 왕을 능멸할 정도의 상소를 올리곤 했어염.
그리고 세자빈 강씨도 명분없는 죽음으로 몰고 가며 악녀로 표현했어염. 그리고 봉림대군 효종때 정권을 함께하며 겉으로는 효종의 북벌을 지지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백성의 민생안정을 내세우면 시간을 벌었어염.
그리고는 대동법 시행을 반대하는 서인들이였어염. 백성의 민생안정을 꿈꾸던 사람들이 대동법을 반대해염 ??? 여기엔 굉장한 모순이 있다.
그 당시 북벌이란 자체를 놓고 효종과의 대의가 틀렸던 송시열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에염. 이들이 서인이다.
숙종때에 들어서 환국정치로 인한 송시열의 죽음이 있지만 다시 서인에서 갈라진 노론이 정권을 이어가염.
역사가 너무 왜곡 당했어염. 그게 바로 장희빈 이야기에염. 국내 역사는 (서인.노론)이 승자에 의하여 날조하였으며 그걸 또 다시 그들의 후손인 친일파가 날조했어염.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면 장희빈은 희대의 악녀이며 ,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는 천사라고 역사,드라마에서 그려염.
원래 숙종 초에는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고 있었졈. 하지만 주도권은 서인에게 있었어염. 그래서 남인이 숙종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계획적으로 입궐시킨 여인이 희빈 장씨에염. 계획대로 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받아 원자를 생산한 후 중전에 책봉되며 남인이 주도권을 갖게 되지만 인현왕후가 다시 복위되면서 다시 서인이 주도권을 찾게되염. 그 후 서인들은 남인들에게 강경한 노론과 남인들에게 온건한 소론으로 나뉘어저염.
강경파인 노론은 남인 세력의 지지를 받는 희빈과 세자 (훗날의 경종)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해염. 그런 노론과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아 동맹을 맺게된 사람이 숙빈 최씨 드라마 동이에서 한효주역) 이에염. 숙빈은 자기 아들 연잉군(延?君)을 보위에 올려 줄 수 있는 뒷배경이 필요했고, 노론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세자를 견제하기 위해 세자를 대체할 다른 왕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졈.
드라마 동이에서는 숙빈은 정치적 야심따위는 하나도 없다고 표현하는데 숙빈은 희빈 못지 않은 야심가였어염. 어쨌든, 이 동맹의 결과 왕위에 오르는 사람이 노론과 손잡은 숙빈 아들 영조에염. 즉 영조는 노론의 지지로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에염.
영조 즉위 후 나름대로 소론,노론,남인 잔당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자 탕평책을 실시하지만 자신을 보위에 올려준 노론을 무시할 수는 없었어염. 그래서 알게모르게 노론에 치우친 탕평책을 피게 되고염.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사도세자에염.
사도세자는 노론들이 부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을 남용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노론보다는 소론 및 남인 잔당을 더 가까이 하였어염. 그후 역사적 해석으로 달라지지만 결말은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죽은 거에염.
그리고 영조 후 손자인 정조는 임기중에도 끊임없는 암살위협에 처하게 되고염. 결국 노론(서인)은 정조도 죽여염.
1910년 한일합방시에 일본에 적극 협조해서 그 공로로 일본에게서 귀족으로 인정받고 금은보화를 챙긴 사람들 명부 아래의 76명 중에, 그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인물은 모두 64명인데염. 그중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이고,
후작 이재완(사망, 본관 전주, 왕족, 승계 이달용) 후작 이재각(왕족) 후작 이해창(왕족) 백작 민영린( 민비(명성황후) 오빠) 백작 고희경( 중인) 자작 권중현(본관 안동, 한미한 가문 출신) 자작 이하영 (한미한 가문 출신) 자작 이병무(한미한 가문 출신) 남작 박제빈(소론, 승계 박서양) 남작 김춘희(본관 경주, 소론, 승계 김교산) 남작 박기양(소론) 남작 장석주(평민, 승계 장인원) 남작 최석민(중인, 승계 최정원) 남작 이봉의(소론, 승계 이기원) 남작 민종묵(본관 여흥,북인, 승게 민규현) 남작 박용대(북인) 남작 정한조(본관 동래, 소론, 승계 정천모) 남작 이주영(본관 경주, 소론, 승게 이규환)
1. 극단적 친명 사대주의와 성리학(주자학) 유일사상 주의였고염. 2. 대외적으로 모든 개방을 거부하였고염. 3. 사회적 신분제의 완화 내지 폐지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애 신분제를 강고히 했고염. 4. 적서차별(본부인과 세컨드 부인사이에서 난 자식들 차이)과 남녀차별을 극대화했고염. 5. 주자학과 다르면 같은 유학이라도 사문난적으로 공격했고염. 6. 모든 사회 변화를 거부했고염.
한마디로 시대 흐름을 역행한 반시대적 정당이었어염. 이런 사상으로 노론은 왕권을 무력화시키고 국왕이 노론과 반대되는 행보를 걸을 때는 독살 (문종 독살, 예종 독살,경종 독살, 정조 독살 등, 조선왕의 1/3은 독살 당했어염)도 서슴지 않았어염.
단적으로 말해 노론은 국가와 임금에 대한 충성이란 개념이 부족한 반면 개인과 집안, 당파의 이익에는 민감했어염. 그러니 왕조 국가에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개인과 집안의 이익을 선택했고염. 그 결과가 일제 수작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객관적 사실로 나타났어염.
재밌는건 서인 → 노론 → 친일파 → 그 친일파들이 만든 정당 이 라인이 아직도 유지가 되고 이 나라를 잡고 있다는거졈 !!
방응모 일제 식민지 시대때부터 역사왜곡 언론왜곡,가장 대표적 민족반역 친일신문.방상훈의 부인도 민족반역자(친일파) 윤치호 손녀.끼리끼리 결혼.조선일보는 원래는 민족지였으나 민족지 조선일보가 일제에의해 폐간된후 민족반역자 친일파 방응모가 일제의 움으로 조선일보를 만듬. 그래서 민족 반역 신문
동아일보도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신문이었으나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억압과 강압에 의해 폐간된후. 일제협력자 김성수가 다시 개간함. 민족반역신문
중앙일보 (홍석현사장) 해방후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 대한민국 역사상 42세로 최연소 장관을 지냄. 홍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력히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 , 진기 전 법무부장관은 4·19 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특사로 풀려났어염.
요즘 처럼 사법고시같은 자격검증도 없이..친일파 대부분이 그러함 해방후 더더욱 출세의 길이 열림. 이회창 특권층임. 이회창 아들이 연세대 교수 임용
김종필 박정희 집권시절,1956년 굴욕적 한일 회담을 주관함, 당시 일본측 조차 놀랄만큼 대일 청구권 독도 문제에서 양보를 하였다. 독도를 제3국에 맡기려고 일본측에 제의하자, 일본측 대표가 "한국 국민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 하며 주저하고 나섬. 이 당시 "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란 망발을 하면서 "김-오히라 비밀메모" 작성
박정희 대통령이 친일파라는건 더이상 논할 필요없음.
부친 "박희준" 일제시대 순사경남도경 부산경찰서 산하 사법계 순사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최준집 아들
부친이 일제시 면장과 금융조합장
친일관료 "정운갑" 후손
김무성의 어머니는 방상훈(조선일보사장) 고모, 조선일보가 외가
주임참의 현기봉.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라면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대표적 민족반역자(친일파)
반민족행위자 99인에 들어가는 인물
김동길 이화여대 우상인 친일파 김활란의 측근
이완용 직계후손 , "정신대,자발적참여"
신지호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 고 대학에서 강의
이완용 직계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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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삶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무
첫댓글 역사왜곡 세력의 한축이 바로 내부에 있었네요...
어느 정도의 신뢰성일까요? 참고로 펌합니다
오만원권의 모델이 왜 신사임당인지 이해가 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를 잘 한 글입니다. 글 속의 진실에 대해서는 왈가불가 하기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친일파"라는 이 집단의 생명줄은 참으로 질깁니다. 어떻케든 살아남아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가 그렇게 키워준 것이 아닐까요?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대의를 져버리고 문중과 가계의 번영과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 많을 수록 나라는 위험에 빠질 확률이 높지요. 언제 저런 말들을 듣지 않을 시대가 올까? 아마도 어렵겠지요. 글 잘 보았습니다.
저들이 이토록 끈질기게 출세가도를 달리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일제때 식민주의 역사관에 근거한다고 봅니다. 그 시절 장래가 촉망되던 어린새싹들이 모두다 식민주의 노예사관을 강제로 주입당했으니 그 후손들 또한 마찬가지일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더하여 강력한 친일노예사관으로 무장한 유력 보수언론들이 더욱더 친일노예사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좀 공평하게 씁시다. 참 어이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