粥食(죽식)
/ (南宋) 陆游(육유)
朴今玉 讲解
* 들어가기
인생의 하루하루가 이념, 포부, 애국, 전쟁 등 큼직하고 묵직한 주제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속세의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무병장수 하겠는지를 연구하고 애쓰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일 겁니다. 남송의 육유는 건강을 어떻게 챙겼는지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설명
1) 宛丘: 완구, 옛 지명. 고대에 또 진주(陈州)라고도 했으며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저우커우시(周口市)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가 수도로 정하고 영면한 곳이기도 하며 역대로 천하제일의 황조성지(天下第一皇朝祖圣地)로 불린다. 중화문명의 시작점이다. 장뢰가 완구에 살았고 장뢰는 소문사학사중의 한 사람이다.
2) 平易法: 평이법, 장뢰는 죽을 먹으면 위의 기운을 후련하게 하고(畅胃气), 진액(生津液)이 생성되게 하며 ‘매일 일어나 죽 한 그릇 먹으면 음식의 묘결이라 할 수 있다’(每日起,食粥一大碗,最为饮食之妙诀也)라고 했는데 평이법이란 죽을 먹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란 의미이다.
3) 죽식: 제목에서는 명사로 사용하고저 죽식이라 쓰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죽 먹는 방도를 신선에게 드린다는 의미로 동사로 사용해 순서가 바뀌었다. 제목을 지음에도 깊이 생각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 번역문
<죽식>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장수하기를 배우는데
결국은 장수가 눈앞에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완구에서 엄청 쉬운 비법을 하나 얻었는데
죽 먹기를 신선에게 드리려 하노라.
* 간략한 소개
중국 송나라 유명한 문학가, 시인은 육유가 창작한 칠언절구이다. 이 시는 죽을 마심으로 장수한다는 장점을 서술했고 시인의 죽을 먹는 것에 대한 기호(嗜好)와 추앙(推崇)을 표현했다.
* 성어/전고 배우기
1) 延年益寿 [yán nián yì shòu]
연년익수하다. 장수하다. (=益寿延年, 延年驻颜)
2) 粥炉燎须 [zhōu lú liáo xū]
죽로료수. 《新唐书·李勣传》에 의하면 이적(李勣)은 높은 관원(영국공(英国公)에 봉해졌다)임에도 불구하고 극성으로 병에 걸린 누나를 보살폈다. 직접 죽을 끓였는데 부주의로 화로불에 수염이 탔으며 누나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니 이적은 누나가 병이 많고 나도 늙었으니 자주 누나에게 죽을 끓여주고 싶으나 이제 몇번 못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후에 이 전고로 형제자매 사이에 우애가 깊고 친절히 보살핌을 표현했다.
* 작품감상(作品鉴赏)
시의 앞에 작은 서문(小序)이 있다. ‘장문잠(张文潜)이 식줄설(食粥说)이 있는데 죽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 기호를 훔쳤다’. 북송 시인 장뢰(张耒)는 자가 문잠(文潜)이다. 이 시의 서문에서 알수 있는 것은 육유의 <식죽>은 북송시인 장뢰의 식줄설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시 전편은 명백하기를 일상대화와 같은 언어로 죽을 먹는 것은 장수하는 길이며 어느정도 주장이 있다. 현대과학이 연구를 거쳐 증명한 것은 쌀은 전분, 지방, 단백지 및 여러가지 미네랄을 함유하고 영양이 풍부하다. 단지 시대의 한계로 육유는 죽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영양가치를 다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죽을 먹는 것이 장수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담론과 과학적 일리가 일치하다는 것은 높히 살만 하다(称道).
육유는 그의 시 《闲适二首》(之二)에서 ‘술을 마시되 미친 정도까지 안 마시고 손님을 대하되 피곤하기 까지 하지 않으며 글을 읽되 스스로 즐기며 모르는 것을 억지로 터득하려 하지 않는다’(饮酒不至狂,对客不至疲.读书以自娱,不强所不知)를 주장했는데 이 역시 술을 마셔도 절도가 있고 삶이나 공부도 적당하게 하며 피로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장수의 경험도 과학적 일리에 맞다.
육유는 죽에 관한 시 세 수를 썼다. <야한>에서는 쌀이 비싸 단지 죽으로만 끓여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나라에 보답하고저 하나 길이 없는 답답함을 썼고 다른 한 수는 작은 아들 자율(子聿)에게 쓴 죽을 먹으면 몸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다.
米贵仅供糜粥用,自伤无力济元元。—《夜寒》
老去饥羸惟恃粥,病来举动每须人。— 《野兴》
十风五雨岁则熟,左餐右粥身其康。—《子聿至湖上待其归》
* 죽
죽(粥)의 본자(本字)는 ‘鬻’이다. “粥”은 “鬻”의 이체자(异体字)이다. 후에 두 한자는 형태와 의미에서 분화되어 ‘鬻’의 본래 의미는 소실되고 “粥”가 본래의 의미를 대체한다. “鬻”는 가차(假借)하여 이제 ‘매’(卖)가 되었다.
鬲:밥을 끓이는 취사 도구. 두개의 ‘궁’(弓)은 열기가모락모락 피어 오름을 의미한다. 이 한자는 쌀이 취사 도구안에서 열기를 띠고 끓고 있다는 의미이다. 고대에는 발음이 [zhōu]이나 현대에 와서는 발음이 [yù]로 바뀌었다.
죽을 의미하는 다른 한자 하나가 있다. 그것은 糜[mí]인데 죽이라는 의미이며 분쇄하다, 소모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죽은 일반적으로 오래 끓여 쌀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부서졌다는 의미도 가진다. 《周书》에서 황제가 곡식을 쪄서 밥을 짓고 곡식을 끓여서 죽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가난한 가정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죽이었다. 요리하기 쉽고 식자재가 단일하고 편리함과 저렴함을 동시에 만족했다. 제왕이나 왕공귀족들은 죽을 먹음으로 음식 조절을 했고 장수를 기원했다. 당목종(唐穆宗)시 백거이는 재능이 출중해 황제에게 ‘방풍죽’(防风粥)을 하사받았는데 먹고 나서 7일이 지나도 여전히 입안에 향기가 감돌았다 한다.
2500년전에 죽은 이미 약용으로 사용이 되었다. 《史记·扁鹊仓公列传》에서는 서한 명의 순우의(淳于意)가 ‘화제죽’(火齐粥)을 사용해 제나라 왕의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열을 내리고 땀이 나게 했고 세번 먹고 나니 병이 나아졌다 한다.
<본초강목>에는 50여가지의 죽 끓이는 방법과 약효가 있다. 병에 걸렸을 때 식욕부진에 시달리면 죽 한그릇 끓여서 새콤한 반찬 몇가지를 곁들여 먹으면 식욕도 촉진하고 허약한 사람에게 부족한 체력도 보강해 준다. 위 기능이 약하거나 나이 들어 치아가 헐렁한 사람에게는 죽을 먹으면 작은 병을 방지할 수 있고 보건할 수도 있다. 추운 날에 따뜻한 죽 한그릇 먹으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 진다. 물론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중국인에게 죽중의 명물이라면 납팔죽일 것이다. 절기를 기념하는 음식이니 말이다.
<홍루몽>에서 설보채는 본인의 몸에 이롭고 미모 관리를 하는 비법인 제비둥지죽 레시피(燕窝一两,冰糖五钱,银吊子)를 설명한 적이 있다. 여인에게 죽은 마시는 피부미용 화장품인 셈이다.
육유는 죽을 먹음으로 건강을 도모하는 강력 추천자였다. 다른 이들도 죽에 관한 작품이 있다. 죽하면 광둥이 떠오르는 것은 특색이 있기 때문ㅇ니다. 급제죽(及第粥)이 아주 유명하다. 그들은 여러 해산물을 넣어 못하는 죽이 없다. 광둥에서도 특히 조주사과죽(潮州砂锅粥)이 제일 유명하다.
腊八粥 [là bā zhōu]
납팔죽(臘八粥). 납팔(음력 섣달 그믐)에 살구씨·밤·연자·대추·마름·땅콩·찹쌀·기장쌀 등 견과를 넣어 끓인 죽. 각 사찰에서는 이날이 되면 납팔죽을 끓여 부처님께 올리고 스님들끼리 나누어 먹었는데, 송대에 시작되어 민간에서도 이 풍속을 따르게 되었음.
在腊八这一天,用杏仁、栗子、莲子、枣、菱角、花生米、江米和黄米等干果煮成的粥。各寺院每逢这一天都煮腊八粥供佛并分赠众僧。始于宋朝,以后民间也相沿成俗。
## 한국의 동지죽과 시간상 비슷한 편이다. 납팔죽은 음력으로 12월 8일에 먹는 것이고 동지죽은 매년 동지가 12월 21~23일 사이이므로 의미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 또 한국의 정월 보름에 먹는 오곡밥과 비슷한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空腹一盏粥,饥食有馀味。—(唐)白居易《闲居》
淹留膳茶粥,共我饭蕨薇。—(唐)储光羲《吃茗粥作》
身心颠倒不自知,更知人间有真味。—(宋)苏东坡《豆粥》
请君打退閒烦恼,啜粥烹花细和诗。—(宋)宋伯仁《学馆閒题》
煮粥煎茶,接待往来,随家丰俭。—(宋)释道宁 《偈六十九首其一》
自惭疏拙百无能,下板长行粥饭僧。—(宋)释祖珍《偈三十五首其一》
起絮撒盐才有间,燎须作粥力安施。—(宋)刘克庄 《哭伯姊二首其一》
却笑到天亭上客,日将茗粥搅枯肠。—(宋)裘万顷 《安乐窝三首其一》
相逢欲相唤,脉脉不能语,总是粥饭气。—(宋)释如珙《偈颂三十六首其一》
粥香瓦钵山田米,雪汎瓷瓯水磨茶。—(元)清珙《赵会初心提举》
厨中有碗黄齑粥,三生自有清闲福。—(明)唐寅《爱菜词》
莫言淡薄少滋味,淡薄之中滋味长。—(清)佚名《煮粥诗》
几处荒烟炊豆粥,深宵趁月渡芦沟。—(清)陈遹声《滹沱》
* 육유(陆游)
(1125-1210, 85세). 자는 무관(务观) 호는 방옹(放翁). 지금의 저장성 소흥시(浙江绍兴)사람. 남송의 저명한 시인. 그가 태어난 시기는 북송의 끝자락. 그는 명문가, 강남의 장서세가(藏书世家)이기도 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왕안석을 스승으로 모셨고 경학에 정통했다. 그는 민족의 모순, 국가의 불행, 가정의 지속된 대이동(流离)을 겪었으며 어린 그의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어렸을 때 가정의 애국사상 영향을 받았으며 송고종 시 예부시험(礼部试)에 참가했으나 진회(秦桧)에게 배척을 당했고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다. 1153년 인안 즉 지금의 항저우시에서 진사시험에 참가했는데 주시험관이 시험지를 열람하고 육유를 1등으로 평가했는데 진회의 손자 진훈(秦埙)이 육유 아래에 있어 진회는 대노하며 주시험관에게 죄를 덮어 씌웠다. 1154년 육유가 예부시험에 참가했으나 진회는 주시험관이 육유를 채용(录取)하지 못하게 지시했다. 이때부터 육유는 진회의 미움을 샀으며 벼슬길이 순탄치 못했다.
효종시 진사출신을 하사받았다. 중년에 촉에 들어갔고 군인생활을 했다.
만년에 고향에 돌아갔으나 중원을 수복하려는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고 시가를 많이 창작했으며 지금 보존된 작품은 9000여수에 달한다. 내용은 아주 풍부하다. 정치적 포부를 토로하고 백성의 질고를 반영하며 스타일은 웅장하고 호매롭다. 일상생활을 묘사함에도 참신한 작품이 많다. 양신(杨慎)은 수려함에는 진관(秦观)과 비슷하며 웅장하고 감개무량한 것은 소식(苏轼)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구국구민 정신이 충만했으며 비록 오리지널 유학자는 아니지만 평생 유가의 “치국평천하”(治国平天下)의 뜻을 품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임종 시 절필을 남겨 군대가 중원을 평정한 때에 제사를 지내 알려달라(《示儿》:“死去元知万事空,但悲不见九州同。王师北定中原日,家祭无忘告乃翁。”)고 유언을 남길 만큼 나라 걱정을 했다. 시의 명편은 《游山西村》이며 사의 명편의 매화의 절창이라 불리는 《卜算子·咏梅》이다. 시와 사에서 모두 명편을 남기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육유는 해 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아내와 이별하고 다시 장가 들었다. 육유의 부모는 아들이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그의 공명을 취하는 앞날에 해가 될까 두려워 이혼하게 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육유는 사랑과 아내를 희생해야 했다. 후세에 그들의 이야기로 극본 《陆游与唐婉》 등이 창작되었다.
遗民忍死望恢复,几处今宵垂泪痕。—《关山月》
国仇未报壮士老,匣中宝剑夜有声。—《长歌行》
梦断香消四十年,沈园柳老不吹绵。—《沈园二首》
山重水复疑无路,柳暗花明又一村。—《游山西村》
小楼一夜听春雨,深巷明朝卖杏花。—《临安春雨初霁》
胡未灭,鬓先秋,泪空流。—《诉衷情·当年万里觅封侯》
山盟虽在,锦书难托。莫、莫、莫! —《钗头凤·红酥手》
无意苦争春,一任群芳妒。零落成泥碾作尘,只有香如故。—《卜算子·咏梅》
* 소감
애국정신에는 심심한 감동을 느끼지만 아내를 지키지 못하고 사랑을 희생하는 부분에서는 아들로서 부모에게 우충을 하고 남자로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내지 못하는 남편으로선 부적격인 모습을 보인다.
이별한 후에도 작품에서 그리움에 눈물 떨구는 모습을 보여 섬약한 남자의 모습을 보인다. 여인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대장부는 되지 못한다. 황제의 명을 받들어 역사에 길이 남는 대작도 편집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모든 면에서 다 걸출하지는 못한 것 같다. 부모의 뜻에 따른 것을 그는 어느 한순간 후회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난 사람이면 무엇 하나. 한 연약한 여인을 지켜 주지도 못하는데. 안타까움이 서리서리 마음속에 넘친다. 물론 오늘 작품에서 건강식으로 장수를 도모하는 것은 좋고 훌륭하다. 그런데 마음속에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계속 가지고 산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살아도 과연 약이 되고 살이 되겠는가 의구심이 든다.
죽 끓이는 여러 동영상을 보니 한번 맛있게 해 봐야 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생긴다.
* 나가기
역사, 애국, 전쟁 등 큼직한 내용이나 묵직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약이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생각합니다. 몸에 좋은 죽을 종종 끓여서 드시면서 건강 챙기시고 더더욱 마음속에 생채기로 남아있는 깊은 상처 같은 것이 있다면 우선 잘 치료하셔서 몸도 마음도 건강을 찾고 늘 활기찬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는 황정견의 쥐때문에 도저히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며 남의 집에서 고양이를 빌려오는 삶의 정취가 다분한 시 한수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매롭고 우아한 시도 있지만 인간 냄새가 폴폴 나는 작품도 결코 속되지 않음을 함께 깨우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