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가죽구두
김경후
너덜대는 붉은 가슴지느러미
수억 년동안 끝나지 않는
오늘이란 비늘
떨어뜨리는
노을
아래
기우뚱
여자는 한쪽 발을 벗은 채
깨진 보도블록 틈에 박힌 구두굽을 잡고 쪼그려 있다
잉어를 위한 헌사
오탁번
새벽 안개 자욱한 물결 위로 물총새 날아갈 때
잉어 한 마리 낚으려고 깻묵 뭉쳐 던졌다
첫 달거리하는 계집애인 듯 비릿한 몸냄새
흰 턱수염 까맣게 잊고 잉어 한 마리 좇아
낚시바늘 날카롭게 세워서 유혹의 손짓을 했다
잉어는 늦잠을 자고 난데없는 피라미들이
사정없이 달려들면서 새벽 난봉꾼을 놀렸다
어떤 놈은 불그스레한 혼인색을 띠고
피라미 같은 놈아 나하고 그 짓이나 하자는 듯
힘있게 세운 낚시 찌 마구 흔들어댔다
새벽 안개 걷히자 왜가리 한 마리가
피라미 잡아먹고 물똥 내갈기며 날아갔다
러브호텔의 살냄새도 물침대도 아닌
초평지 흐린 물 위에 뜬 낡은 좌대 위에서
피라미 같은 놈이 잉어와 수작하는 꼴 우습다고
발가락질하면서 왜왜왜 왜가리가 날아갔다
잉어의 시간
조영란
죽은 잉어를 품은 연못은 투명한 무덤 같다
갈대가 서둘러 썩은 몸을 수습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궈 수의를 해 입힌다
물결을 뒤집어쓴 잉어의 비늘은
좀처럼 젖지 않는다
죽은 잉어의 몸에 들어앉은 연못
지금은 슬픔을 양생(養生) 중이니 아무나 들어오지 마시오
고요히 차오르는 슬픔의 무늬가
물 밖
내 머릿속을 물들인다
얼마나 살을 발라야 다시 떠오를 수 있나
있는 힘껏 가라앉아
고통의 밑바닥에 몸을 맡기는 잉어
경외(敬畏)란 그런 것이다,
마지막 남은 살점까지 다 털어주고
홀로 입관(入棺)하는 것
그리하여 홀로 깊어지는 것
잉어의 시간은 지금부터다
잉어요리剩語料理
김성규
또 한 놈을 조져 놓아볼까요 검사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등짝에 잉어 문신을 새긴 사내는
눈알을 굴리고 손톱을 물어뜯는다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며 입술을 떨기 시작한다
검사는 의자를 끌어당겨 사내의
짧게 깍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등짝을 헤엄치는 잉어가 연잎 밑을 파고든다
지느러미를 흔들 때마다 혈관이 파닥인다
갑자기 사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말 한마디로 사내의 뇌 속 불안에 칼집을 내고
고추장물을 뿌려 혈관이 파닥이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번만 살려주세요
무릎을 꿇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눈물 콧물을 빼게 만드는 자네는 정말 대단해
폭탄주를 마시며 매운탕 한 그릇을 훌훌 마시며
글쎄, 태몽이 잉어가 구름 속을 헤엄치는 거라잖아요
오늘 일은 끝냈습니다 십년동안 살 속으로
어떻게 불안의 매운 물은 퍼져나갔을까
금빛 비늘을 진흙창에 처박으며 발버둥치도록
말 한마디는 사내의 달팽이관을 지나 뇌 속으로,
신경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에서
마약보다 더 빨리 그를 흥분시키는
범죄자의 귓속에서 혈관을 요동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누가 그에게 그런 언어를 선사했을까
혀 꼬부라져 물렁물렁해진 말들이 새어나오는 혓바닥에서
어떻게 그렇게 힘찬 말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펄펄 뛰는 잉어가 온몸을 떨며
시멘트 맨바닥에서 요리를 기다리며 보고 있다
칼 잡은 자의 선한 눈을 마주보지 못해
온몸을 떨며 천장의 백열등을 멍하니
잉어사육
김성규
이것을, 어머니 왜 보내셨어요?
아이스박스에 살아있는 잉어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옆집에서 몇만원이나 주고 사오셨다
죽이지 말고 잘 키워라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어머니
제 인생이 달라지지도 않아요
칼을 들이대자 그놈은 사람처럼 눈물을 흘렸다
콧구멍으로 콧물도 흘렸다 도로 수족관에 풀어넣자
잉어는 나를 비웃으며 천천히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잉어는 사람의 다리처럼 생겼다
배가 고플 때마다 수족관을 발로 차듯 쿵쿵 들이받았다
너는 지난번의 가물치처럼 나를 죽이러 왔구나
어머니 잉어를 키울 수 없어요
너는 어릴 적 잉어 보기를 좋아했잖니……
잉어가 밤마다 울기 시작했다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잉어를 집에서 키우면 복이 들어온다더라
사료를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해진 잉어,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요, 안된다 복이 달아나
이건 잉어가 아닌 것 같아요 잉어는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나요
절대 죽이면 안 된다 네 형의 영혼인지도 몰라
툭 하면 우는 게 죽은 그애랑 똑같구나
그렇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네 인생도 좋아질 거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번갈아 전화를 했다
나는 수족관에 소주를 들이붓기 시작했다
잉어는 늙은 어머니의 화난 얼굴로 변해가고
잉어야, 너도 나와 같이 죽자꾸나
잉어의 배에 칼을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잉어를 좋아하는 저를 웃으며 바라보셨지요
내 얼굴에서 콧물이 흘러내리고 이불이
잠을 빨아들이듯 방바닥의 핏물을 삼키며 뚱뚱해졌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누구의
조금만 더 숨죽이고 기다려보자꾸나,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