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 BMX(Bicycle Motocross)도전과 모험의 세계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4. 30. 0:43
BMX(Bicycle Motocross)
도전과 모험의 세계
호주에서 열린 2006년 국제사이클연맹 팬 퍼시픽 대회 장면
맨 앞에서 달리는 소년은 여덟 살이다.
새로운 자전거의 탄생
1960년대 말 미국에서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모터사이클 경기가 인기가 높았는데 모터사이클을 살 수 없는 어린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모터사이클 경기를 흉내 내곤 했다. 어린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모터사이클 선수들처럼 거친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새로운 자전거의 시작이 됐다.
새로운 스포츠가 시작된 곳은 로스앤젤레스 근교 산타모니카에 있는 팜스 파크(Palms Park)라는 공원이었다. 이 공원에는 론 매클러(Ron Mackler)라는 10대 모터크로스 선수가 일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원 안을 달리는 것을 알고 아이들을 불러서 공원 안에서 모터사이클 선수들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그는 공원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공원 안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랙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공원에서는 허락했다. 마침내 1969년 팜스 파크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트랙이 생겨났다. 매클러는 팜스 파크에서 경기도 열었는데 첫 번째 경기가 1969년 7월 10일 열렸다. 나중에 이런 경기를 BMX라고 불렀는데 BMX는 자전거 모터크로스(Bicycle Motocross)의 약자로 자전거를 타고 모터크로스 경기처럼 달린다는 뜻이었다.
이 새로운 경기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청소년들이 팜스 파크를 찾아왔다. 어떤 부모들은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아이들을 태우고 두 시간씩이나 걸리는 먼 길을 달려왔다. 초기 BMX의 유명한 선수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BMX를 배웠다. 매클러는 15년 동안 팜스 파크에서 트랙을 운영했는데 팜스 파크야 말로 BMX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론 매클러가 팜스 파크에 트랙을 만들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탈 무렵 캘리포니아의 롱비치에서 13살의 모터크로스 선수인 스캇 브레이트하우프트(Scott Breithaupt)는 자전거로 모터크로스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코스를 찾고 있었다. 그는 반쯤 버려진 땅에 코스를 만들었다. 당시에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던 어린이들은 이곳을 'BUMS(Bicycle United Motocross Society) 파크'라고 불렀다.
1970년 그는 BUMS 파크에서 자전거 대회를 열고 이 대회를 '페달 크로스'라고 불렀다. 첫 번째 대회에서는 아이들에게 25센트씩 내고 출전하도록 했는데 모두 35명이 참가했다. 그는 모터크로스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를 출전한 아이들에게 줬다. 두 번째 경기에는 150명이 참가했다.
어린이들의 스포츠
팜스 파크와 BUMS는 새로 생겨난 BMX를 이끌었다. 매클러는 아이들이 팜스 파크에서 즐겁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입장료도 줄이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시합도 열었다. 한편 브레이트하우프트는 새로운 스포츠의 체계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그는 모터크로스 경기단체의 규정을 기초로 BMX 규정을 만들었으며 그가 만든 규정은 나중에 BMX 경기 단체의 기초가 됐다. 그의 노력으로 비로소 새로운 스포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브레이트하우프트는 'BMX의 창시자'로 불린다.
BMX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캇 브레이트하우프트
놀랍게도 브레이트하우프트는 불과 열세 살 때 이런 일을 시작했다. 그의 별명은 OM이었는데 그것은 Old Man을 줄인 말이었다. 그 당시 열세 살이던 브레이트하우프트는 함께 자전거를 타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1970년 후반까지 BMX가 열 살이 채 안 되거나 갓 열 살이 넘은 아이들의 스포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레이트하우프트는 10대 청소년 시절에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그는 야마하의 모터사이클 선수와 BMX 선수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대회를 주최하고 트랙을 설계했다. 브레이트하우프트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트랙을 소유할 수는 없었고 대신 그것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그의 도움으로 1974년까지 여덟 개의 트랙이 생겼다. 그는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에 대한 자문까지 했다. 그는 BMX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해냈다. 새로운 스포츠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트하우프트처럼 많은 일을 해낸 사람도 드물 것이다.
BMX의 발전
처음에 어린이들이 흙길에서 타던 자전거는 슈윈(Schwinn)의 스팅레이(Sting-Ray)와 모조 자전거였다. 스팅레이는 1963년 미국의 자전거 회사 슈윈이 어린이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이 자전거를 개발한 사람은 슈윈의 젊은 기술자 알 프리츠(Al Fritz)였다. 당시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의 어린이들은 1960년대에 인기를 끌던 모터사이클 경기를 흉내 내며 자신의 자전거에 오토바이에 사용하는 높은 핸들과 바나나처럼 생긴 긴 안장을 부착했다.
프리츠는 이 얘기를 듣고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해 이곳에서 본 어린이들의 자전거에서 착안해 새로운 자전거를 설계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직접 개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스팅레이다. 스팅레이는 1960년대에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1년에 나온 〈어느 일요일(On Any Sunday)〉이라는 모터크로스 기록 영화는 BMX를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영화에는 어린이들이 모터크로스 경기에 참가해 스팅레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BMX를 타는 장면은 아주 짧지만 이 새로운 자전거는 청소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미국 서부 일대에 자전거 대회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어 1973년에는 레드라인(Readline)이라는 회사가 크로몰리(Chrome-moly, 크롬-몰리브덴 합금의 줄임말)를 소재로 한 BMX 전용자전거를 내놓았다.
영화 〈어느 일요일〉에 나오는 장면으로 어린이들이 스팅레이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하고 있다.
BMX가 확산되면서 전국적인 단체가 생겨났다. 1973년에 전국자전거협회(NBA)가 설립된 데 이어 1974년에는 전국자전거연맹NBL이 생겨났다. 이 단체들은 BMX 대회를 개최하고 BMX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NBL은 1993년 국제사이클연맹에 가입했고 이것은 BMX가 올림픽으로 가는 도약대가 됐다.
BMX 경기 종목 중에서 가장 먼저 완성이 된 것은 흙으로 된 트랙을 달리는 BMX 레이싱(Racing)이었다. 이 레이싱 종목은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240~360m 정도 되는 트랙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트랙을 한 번 도는 데는 30~40초 정도가 걸린다. 출발할 때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온 뒤 코너와 울퉁울퉁한 코스를 지나서 마지막에는 전속력으로 결승선에 들어온다.
프리스타일과 밥 하로
1970년대 후반 BMX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흙길을 달리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이 등장한 것이다. 선수들은 경기 중에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 기술을 구사하고 이것을 친구들에게 과시하곤 했는데 이런 기술들이 점차 새로운 종목으로 발전했다. 이 새로운 형식을 프리스타일(Freestyle) BMX이라고 불렀다.
프리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선수는 오늘날 '프리스타일의 선구자'로 불리는 밥 하로(Bob Haro)다. 샌디에이고에 살던 밥 하로는 R. L. 오스본(Osborn)의 가족과 함께 일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토런스로 이사를 왔다. 오스본의 가족은 1975년부터 BMX 라이더들에게 필독서가 된 〈BMX 액션(BMX Action)〉을 발행했다. 오스본과 밥 모랄레스, 밥 하로는 함께 트랙에서 경기를 하거나 거리에서 자전거를 탔다. 그때 하로가 친구들에게 몇 가지 기술을 보여줬다. 하로는 샌디에이고에 자전거 스턴트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런 스턴트 기술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밥 모랄레스는 밥 하로가 그들에게 처음 보여준 기술은 오스본의 집 앞에서 자전거 프레임 위에 서서 거리를 내려간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밥 하로는 스케이트보드의 기술도 받아들여 자전거 기술에 접목시켰다. 멋진 기술을 구사하는 프리스타일은 아주 좋은 사진거리였고 오스본의 누이 윈디는 초기 라이더들의 프리스타일 사진을 많이 찍어서 그 사진들은 〈BMX 액션〉에 실렸다. 〈BMX 액션〉 같은 잡지는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알리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독자들은 잡지에 등장하는 유명 선수들을 흉내 내며 기술을 익혔다.
BMX 프리스타일의 선구자 밥 하로
프리스타일은 곧 레이싱보다 더 인기 있는 종목이 됐다. 레이싱은 트랙이 필요했지만 가까운 곳에 트랙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스타일은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BMX 액션〉에 등장하는 밥 하로나 밥 모랄레스 같은 스타들을 흉내 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프리스타일은 평지에서 기술을 구사하는 것에서 시작돼 점차 램프와 하프 파이프, 쿼터 파이프 같은 점프대를 이용해서 공중에서 묘기를 펼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공중으로 점프하는 것은 위험하고 대단한 용기와 기술이 필요했지만 모험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스포츠가 됐다.
익스트림 스포츠
1980년 후반에 BMX에 새로운 종목이 추가됐다. BMX 라이더들이 거리의 시설물을 이용해 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이 하나의 종목이 됐다. 바로 스트리트(Street) 종목이다. BMX는 거리에서 시작돼 거리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전거만 있으면 거리에서 즐겁게 놀 수 있었고 집과 학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BMX에 쉽게 빠져 들었다. BMX를 타면서 청소년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7년 몬스터 BMX 게임에서 팀 우드 선수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스트리트 종목에 이어 파크 라이딩(Park Riding)이라는 종목도 생겨났다. 이것은 1970년대 초에 BMX 라이더들이 스케이트 보더들과 함께 빈 수영장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 스케이트 파크가 생겨났는데 스케이트 파크는 차나 보행자가 없어 연습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미국 전역에 스케이트 파크가 늘어나면서 파크 종목도 BMX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점차 BMX, 스케이트보드, 스노보드 같은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났고 이런 종목에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극한 스포츠, 위험 스포츠라는 뜻이었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방송인 ESPN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1995년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열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8일 동안 20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대회는 대성공을 거뒀고 익스트림 스포츠는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ESPN은 익스트림 대회를 'X-게임(X-Games)'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1999년에는 미국의 NBC도 ESPN의 경기를 조금 변형시켜 '그래비티 게임(Gravity Games)'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X-게임과 그래비티 게임은 BMX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대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에서 최고의 챔피언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익스트림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던 데이브 미라(Dave Mirra)라고 할 수 있다.
모험과 도전의 세계
그동안 올림픽 종목이 너무 진부하다는 비판에 직면에 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에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종목을 찾고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이 바로 익스트림 스포츠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회부터 스노보드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이어 2008년 북경 올림픽대회에서는 BMX가 정식 종목이 됐다.
올림픽에서 BMX 경기가 처음 열렸을 때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BMX가 올림픽에까지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올림픽 BMX 경기는 어떤 종목보다도 흥미진진했다. 경기는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BMX 경기를 본 세계 언론은 BMX가 TV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BMX는 올림픽 데뷔전에서 대 성공을 거뒀다.
처음 BMX가 등장했을 때 어른들은 이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청소년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BMX의 매력을 이해하게 됐다. BMX는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청소년들은 BMX의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성취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BMX는 청소년들의 성격형성과 사회성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BMX는 가족 스포츠이기도 하다. BMX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선수들은 오랜 시간 실패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기술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BMX를 타는 자녀나 형제를 돕는다. 선수가 경기에 참가하면 가족들은 코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중이나 자원봉사자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BMX는 어린이들이 만들어낸 자전거지만 오늘날에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모험과 도전을 상징하는 자전거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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