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아쉬웠던 답사지 Best 10
어렵게 찾았기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던 Best 10을 정리하고 나니 시도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던 문화재들이 떠올라 연이어 정리해 본다. 나의 경우 답사는 대개 특정 기초지자체를 정하여 ‘그곳에서 가능한 모든 종류의 문화재를 본다’는 원칙 아래 자료를 수집하고 동선을 세워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비지정문화재도 꽤 포함되는데 상당수의 비지정문화재는 존재 유무가 불확실하거나,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최근에 개인이 사진을 올려놓은 게 없으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올렸던 임실 신기리 당간지주, 홍성 빈절골사지 마애보살, 포천 성동리 석불좌상 등도 인터넷에서 사진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은 틀림없다. 올해 찾으려고 하다 찾지 못한 문화재들을 정리해본다. 이 가운데는 내가 찾지 못한 것이 많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없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며, 있지만 문이 닫혀 있어서 보지 못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선적사지
선적사지(善積寺址 이동면 도평리 17-5)는 백운동에서 광덕으로 올라가는 도로변 왼쪽 산기슭의 ‘영민네산장’ 뒤편 경작지에 위치한다. 남동향으로 밤나무가 식재된 평탄지와 주변 경작지, 건물이 있는 부지와 도로변까지를 사지로 추정하고 있다.
사지에는 석축(높이 80cm, 길이 8m)과 팔각형연화대좌 부재, 대좌 관련 치석재 1매, 옥개석, 승탑재, 석탑 기단갑석 등이 있다고 한다. 내가 돌아본 곳이 설명문에서 본 절터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석조부재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이 이동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까막눈이었음인지 알지 못하겠다. 완전하지 못한 돌 부재들을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전북 남원시 수지면 유암리석불입상
유암리석불입상은 지난 2011년 발견된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문화재급의 약사여래입상 또는 미륵불이다. 당시 관련 기사가 나왔었고, 언젠가 한번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답사 전에 조사를 해보았는데 위치정보라고는 유암리 포암마을 뒤쪽 둑적골 야산에 있다는 정도뿐이었다. 그래서 포털지도를 보니 마을 뒤로 저수지가 있고 그 뒤가 둑적골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당연히 마을 뒷산으로 조금만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을로 진입했다. 수지면 유암리 166-1를 입력해두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공간이 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옆에 있던 분께 여쭈니 바로 근처의 집을 가리키며 그곳이 이장님 집이니 거기 가서 물어보란다. 하지만 편도로 2시간 정도가 걸리며, 그것도 누가 길을 안내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찾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장님은 그동안 여러 차례 길안내를 했다고 한다. 이날 해지는 시간을 고려해볼 때 남은 시간으로는 가능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마을 어르신을 길눈이 삼아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언제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
충남 아산시 둔포면 봉재리 봉학사석조여래입상
봉학사석조여래입상의 소재지를 [한국사지총람]에서는 ‘봉재리 37’로 표기하고 있지만, 포털지도에서 이 주소는 없는 것으로 나온다. ‘산’37번지를 검색하면 인접지번이 나오는데 위 책의 설명문과 다른 곳이다. 사전에 이리 저리 검색을 해봐도 걸리지 않는다. 어쩌면 석불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일단 탐문을 해보기로 한다. 오리골 마을 중앙에 해당하는 봉재2리 마을회관 및 기산정밀 옆 지번인 ‘봉재리 377-10’을 입력하여 마을에 들어섰다. 몇 번의 탐문 끝에 불상을 알고 계시는 분이 설명해 주신다. 앞산을 가리키며 큰 길로 나가 저 앞산 옆으로 지나가면 보이는 곳에 원래 봉학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없어졌단다. 그리고 그곳에 석불이 있었는지,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시겠다고 한다. 이 분의 설명은 위 사지총람 자료의 위치 설명문과 일치한다.
희망을 가지고 산 옆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석불도 절터도 보이지 않는다. 음식점까지 걸어온 나의 길은 대략 이 산의 북사면과 동사면에 해당하므로 남사면에 해당하는 음식점 뒤로 올라가봤다. 무덤만 보일뿐 보이지 않는다. 좀 더 산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만 잡목이 자꾸 진행을 방해하니 더 이상 들어가기도 무리다. 뒤에 더 검색을 해보니 아마도 이 음식점(아래 사진) 근처 어디였을 것 같은데 뒤에 이장님과 통화를 해봤지만 당신도 본 지 오래됐고 지금도 있는지,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사지 석불편
[전라북도의 불교유적]에,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한 [한국사지총람]에 나오는 대신리사지. 사지총람은 ‘상신마을 계룡산 남서쪽에 위치한다. 4기의 석불 파편들이 남아 있는데 현재 땅에 묻혀 있다. 석불들의 파편으로 보면 본존불을 비롯하여 협시불을 갖춘 삼존불로 추정된다. 광배는 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으며, 불상 고정을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고 되어 있다. [불교유적]에서는 ‘상신마을에서 계룡산으로 오르는 농로를 따라 약 200m쯤 가면 축사가 나오는데, 축사 뒤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200m 정도 올라간 계룡산 남쪽 사면 중턱에 삼존석불 파편이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 두 자료 외에 아무 데서도 이 석불편의 사진이나 자료를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지만, 상신마을 입구 주소인 ‘대신리 651’을 입력하고 마을로 진입하여 남자 어르신 한 분을 만났는데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다른 분에게도 여쭤봤는데 ‘본인도 절터에 한번 가보았는데 석축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뒤에 더 조사해보니 이 불상편들은 현재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남 곡성군 석곡면 죽산리석불입상
곡성 죽산리 석불입상(谷城竹山里石佛立像)을 보기 위해 석곡면 죽산리 236번지로 향한다. 죽산마을에 이른 뒤 좁은 마을길을 거쳐 내비의 안내를 따라가니 미륵암이라는 작은 민가형 절집이 있다. 그런데 아뿔싸! 스님은 출타중이고 문은 잠겨 있다. 여기저기 두드려 봐도 응답은 없고 해는 빠르게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언젠가 다시 가 보게 될까?
세종시 소정면 고등리석조여래입상
아직 충남 연기군이었을 때 주로 남쪽 지역만 다녀온 일이 있던 세종시를 따뜻한 봄날에 찾았었다. 이날의 마지막 답사처인 고등리석조여래입상으로 향한다. 오로지 [한국사지총람]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석불이었는데, 주소지는 ‘소정면 고등리 499’로 되어 있다. 위치는 ‘고등리 안골마을 동쪽에 위치한 낮은 구릉 남동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라고 되어 있다. 일단 주소지 인근 버스정류장 옆에 차를 세우고 사지에 해당하는 곳을 바라본다. 그야말로 낮은 언덕이다. 언덕으로 가는 길가에 석불입상이 한 기 서 있기는 한데 혼란에 빠진다. 이 석상이 사지총람에서 말한 그 불상일까? 다른 부분은 대체로 일치하는데 표면의 박리가 심하다기보다 상호 부분을 새로 깎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석상 하단부에는 무슨 글자인가를 새겼는데 아직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썼는지 읽기가 어려웠다.
사지총람에서 말하는 그 불상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언덕으로 향했다. 하지만 넓지 않은 이 언덕 주변에서 10여분을 서성거렸지만 불상은커녕 바위나 큰 돌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사지총람에서도 이 불상의 조성시기를 밝히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본 석상이 바로 고등리석조여래입상인 것일까?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세종시 금남면 금천리 청절사지 석탑재
무척 덥고 비까지 오락가락했던 7월의 어느 날 찾는데 실패했었던 충남지역의 불교문화재들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세종시에서 시작하여 공주-청양-홍성-예산-아산-당진 등 7개 시군을 넘나들었는데 첫 목적지는 세종시 금남면 금천리 53번지에 있는 ‘금천리 청절사지’였다. [한국사지총람] 자료에 따르면 이 절터는 金川里 학봉마을 동쪽에 위치한 야산의 북향사면에 맞닿은 청절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사지는 400여 평의 면적으로 현재 축사가 들어서 있고 배나무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축사를 지으면서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사지의 전방 50m 지점에 심하게 파손된 2단의 탑재석이 발견되었는데, 화강석을 가공하여 만든 옥개석과 탑신석편으로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고 한다. 불과 세달 전 이곳을 찾았었지만 미진한 점이 있었고, 뒤에야 확인한 문화유적총람에 탑재 사진이 올라 있어 다시 찾은 것이다.
석탑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았다. 근처에서 일을 하던 젊은 주인이 절터의 흔적을 보여주며 석탑재는 오래 전에 도난당했다며, 석탑이 발굴된 곳은 길가 본인의 할머니 묘소이며, 석탑재를 그 반대편에 쌓아두었었다고 증언해 준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묘소와 석탑이 있던 자리다.
충남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석불
앞 청절사지에 이어진 길이었다. 한국사지총람에는 ‘상성리석불(상성리 미륵)’이 나온다. ‘상성리 마을의 논 가운데 위치한다. 이 논을 미륵벌이라 부르고 있다. 어깨 윗부분은 절단되어 유실되어 있고 하단부만 남은 상태이다. 논둑에 깊게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며, 드러난 부분은 약 60cm이다. 손은 시무외여원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다. 문화유적총람에는 ‘예산 상성리 미륵’이란 이름으로 보인다. 설명은 사지총람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이곳에는 미륵의 사진도 올라와 있다.
찾아볼 것인가? 말 것인가? 답사를 준비하면서부터 현지에서까지 여러 차례 망설이다 마을 중앙의 지번인 ‘예산군 삽교읍 상성리 146-5번지’를 입력하고 마을로 들어섰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물어봤지만 아무도 불상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작고 논둑에 박혀 있으니 추수 후라면 모를까 내가 찾은 계절에는 더 이상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아하! ‘미륵벌’이 어딘지 물어보지 않았구나! 발견하지는 못했으되 不在를 證明한 것도 아니므로 언젠가 다시 찾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사지 석불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전국문화유적총람』은 많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편찬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 사이 변화를 겪은 문화재들은 현재 모습과 다르다. 없어진 것도 많고, 변형이 온 것도 많다. 즉 이 자료를 이용할 때는 부정확한 정보를 감수해야 한다. 폐사지 자료인『한국사지총람』은 비교적 근래에 편찬된 것이지만 현장 답사 후 제작한 것이 아니어서 역시 부정확한 정보가 적지 않다. 반면 현재 출간되고 있는 『한국의 사지』는 직접 답사 후 제작한 것이어서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이 책에 삼합리사지(점동면 삼합리 산 71)가 나오고, 남아 있는 석불조각 사진도 실려 있다.
바닥에 뉘어져 방치되어 있는 석조여래입상의 잔존 높이는 91cm, 최대 폭은 54.8cm, 최대 두께는 23cm라고 한다. 입상으로 추정되며, 편단우견의 법의를 착용하고 있다. 바로 이 석불을 찾아보기 위해 이 절터에 간 것이었다. 책에는 약도도 나와 있었고, 포털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와 비교해 보니 경작지도 확인되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圖上과 現場은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도 절감한다.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길도 제대로 없었고, 풀은 웃자라 있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을 30분 정도 헤매고 다녔지만 성과는 없었다. 뒤에 알아보니 내가 멈춘 지점보다 더 위로 올라가야 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다시 가리라 마음먹고 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사지 석불좌상
두 번째의 예천 답사였던 9월 말 마지막 답사처를 너무 어려운 곳으로 선택했다. 순전히 동선을 수립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이미 오후 여섯 시가 넘어 망설임이 컸지만 이날 답사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우망리사지에 가보기로 했다. 우망리사지는 자료에 풍양면 우망리 산 13-1번지로 나온다. 이 절터에는 『한국사지총람』에 목이 없는 불상이 한 구 있다고 되어 있어 젠즉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후 출판된 『한국의 사지-대구 경북 下』권에 사진까지 실려 있어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우망리 마을에서 와룡산 정상 방향으로 깊게 들어간 골짜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는 현재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골짜기 끝부분과 산자락의 경계에서 10~20m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면 민묘가 있으며 이 민묘의 뒤쪽에 목이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산 13-1번지가 매우 넓어서 이 뒷산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경지가 있는 골짜기와 산이 맞닿은 곳도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가 차량으로 도착한 지점은 ‘우망리 518-5번지’ 옆이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하루 종일 내리다 말다 되풀이되던 비까지 다시 오기 시작한다. 농경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가본다. 뒤에 묘소는 보이지 않고, 산 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옆쪽에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아 수풀을 헤치고 가보았지만 아니었다. 바로 뒤쪽은 아래 우측으로 몇 기의 묘소가 보여 일일이 가보지만 역시 뒤에 불상은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다시 간다고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다. 내가 찾아본 곳보다 남쪽, 네이버지도에 ‘우망리’라고 표기되어 있는 마을[우망리 562-3 인근] 쪽으로 접근해 그 뒤 산 아래쪽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첫댓글 저는 유명한 곳도 가면 꼭 문이 닫혀있거나 보수 중이거나 그런데. 숱하게 가본 불국사도 갈때마다 한 번은 다보탑, 한 번은 석가탑, 서로 번갈아 가면서 보수 중이에요. ㅠㅠ
답사 다니다보면 흔히 겪는 일이지요. 나주석당간 실상사약사전 남원향교 대성전 무위사 등등 숱하게 많았어요. 문제는 현장에 있는 알림판의 공기상으로 보면 이미 공사가 끝났어야 하는 곳도 많았다는 것이지요.
역시 시나브로님,몇 곳은 저도 들렸지만 뵙지 못한 님이군요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선과님이 이 카페를 만드셔서 잘 운영하고 계시기에 가능했던 도전들이었고, 실패했어도 후회하지 않는 도전들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단하신 분투기,,, 어찌 저리 열정 넘치시는지...많은 답사객들이 시니브로님 뒤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다음 답사 때 꼭 참고해서 도전해 보겠습니다.저는 다행히 곡성 죽산리 석불입상과 남원 유암리 둑적골 석불입상(사진)은 인연을 맺었네요.^^
달넘새님께서도 유암리에 다녀오셨군요. 앞서 언급하신 분이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하시지만 글쎄요...
달넘새님, 선과님 따라 다니면 많이 배울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진정한 꾼들이 여기 다 모였네...
감사합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요^^
아....하나도 모르겠으니.....
제 아집일 뿐입니다, 선생님...
우와.....이런것도 한번 돌아볼만한 일이네요....음~!!
난 뭐했을려나~
아름다운 글과 사진으로 많은 분들을 즐겁게 해주셨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