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클래식 014번 이명 시집, {텃골에 와서} 출간
이명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2010년 《문학과 창작》 신인상,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 「분천동 본가입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 학당』 『벌레문법』 『벽암과 놀다』가 있으며 『텃골에 와서』는 다섯 번째 시집이다. 2013년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처마 밑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있는 집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불을 품고/ 바람벽에 기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나무들은 또 얼마나 선한가// 버려져 있는 나무보다 선택되었다는 마음에 안도하듯/ 틈새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장작은 서까래까지 닿아 있고/ 영혼은 자유로운데/ 언제부터 나무들은 제 몸을 태울 생각을 했을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몸속에 남아 있는 한 톨의 습기마저 돌려드리며/
세월을 둥글게 말아가고 있다// 나는 늘 쓰임새 있기를 기대했으나/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가고/ 선택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날들도 다 보내고/ 한계령 너머 계절의 끝자락에 와 있다// 사람들은 왜 거기까지 갔느냐고 말을 하지만/ 뜨거운 것이 사랑이라면/ 부풀어 오르는 것은 그리움이라 해야 하나// 처마 아래 장작 곁에서/ 고요히 부풀고 있는 한 독의 술/ 이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발화를 기다린다
----이명 [텃골에 와서] 전문
그 옛날 임산연료 채취시절에는 땔감이 매우 귀했고, 처마 밑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집은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장작은 부유함의상징이며, 행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식량이 육체적인 에너지라면 장작은 인간의 외적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할 수가 있다. “처마 밑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있는 집은/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는 것은 그 어떤 엄동설한도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이 되고, 이 따뜻함 속에는 부유함과 행복이 아주 고소하고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 시인의 [텃골에 와서]의 시적 화자는 “처마 밑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있는 집”을 보면서, 성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데, 왜냐하면 나무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장작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버려진 나무는 그냥 썩어가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장작의 길을 선택한 나무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불 태우며, 그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해줄 수가 있는 것이다. 장작의 길은 성자의 길이고, 성자의 길은 금욕의 길이다. 금욕의 길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몸속에 남아 있는 한 톨의 습기마저 돌려드리며/ 세월을 둥글게 말아가고 있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최고- 최선의 길이며, 이 최고- 최선의 길은 그 모든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시인의 길이다. 성자의 길은 시인의 길이고, 시인의 길은 ‘나’를 불태움으로서 그 모든 것을 다 살리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과 성자의 길은 최고-최선의 길이며, 이 시인과 성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족공동체’,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 ‘지구공동체’가 자유와 사랑과 평화의 버팀목으로서 그 체제를 유지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명 시인의 [텃골에 와서]의 시적 화자는 “나는 늘 쓰임새 있기를 기대했으나/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가고/ 선택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날들도 다 보내고/ 한계령 너머 계절의 끝자락에 와”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깨닫는다. 모든 사람들이 왜, 하필이면 그 궁벽한 오지까지 갔느냐고 묻지만, 그러나 그는 그 버림받음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죽음’으로서의 시인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장작은 뜨겁고, 장작은 불 타오른다. 성자도 뜨겁고, 성자도 불 타오른다. 시인도 뜨겁고, 시인도 불 타오른다.
이명 시인은 어둠을 밝혀주는 불과, 지혜로서의 불과, 생명이 생명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불이 되기 위하여 그 모든 욕망을 다 버리고, 그토록 간절하고 뜨거운 그리움으로 “한 독의 술”이 되어간다. 술도 뜨겁고 뜨거운 불이고, 사랑도 뜨겁고 뜨거운 불이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장작이 되고 성자가 되는 ‘시인의 길’이 이처럼 아름답고 멋진 [텃골에 와서]로 완성된 것이다.
시인의 삶은 최고- 최선의 삶이며,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의 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울지 마라, 새야/ 그물에 걸린 새를 보며 울지 마라, 새야/ 저 봉긋한 것들이 모두 무덤이란다// 바다에 비가 내리면 그때 울어라, 새야/ 바다에는 창문이 없단다/ 그래서 하염없이 부푸는 거란다// 비가 내리고/ 내리는 비는 물이 되고/ 물속에 잠겨서 더욱 깊은 물이 되나니// 육중한 것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넘어야할 것이 한계령뿐이겠느냐// 울어라, 새야,/ 소리 내어 크게 울어라, 새야/ 내 속에 바다 하나 생길 때까지 실컷,/ 울어나 다오
----[절정] 전문
----이명 시집 {텃골에 와서}, 도서출판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