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천사범이 밝히는 KITF 창립 과정과 태권도 비화>>
-태권라인에서는 한국 ITF창립에 관해서 정순천사범이 캐나다 현지에서 ITF최중화총재와 교류하고있는 내막을 태권라인 대화방을 통해 장시간 즉석 인터뷰를 했다.-
(정리-채수용기자)
태권라인 : KITF창립 배경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정순천 : 한국에 ITF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한국의 ITF창립은 최홍희창시자 생전에 계획되었던일!-
최홍희창시자님 생전에 제가 한국에 ITF가 들어갈수 있도록 요청을 한 것이고 창시자님 역시 모든 지원을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 진것이 이번에 본격화 된것입니다.
이번에 한국 ITF창립에는 오창진 현 사무국장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누구도 관심갖지 않았고 있던 한국의 당시 상황에서 캐나다를 방문하고 ITF측과 여러번 접촉이 있었습니다.
한국내 ITF창립에 관련해서 오사무국장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전에 프로태권도에서 최중화총재를 통해서 직접 ITF 한국으로의 유입을 시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것이 ITF본부와 한국ITF와 연결로서 모든것이 이루어 졌습니다.
지난 아르헨티나 대회에 참가하신 한국의 태권도원로 되시는 현직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ITF창립에 직접 나서고 있진 않으시지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개인적으로 제가 형님처럼 모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태권라인 : 한국내 ITF관련해서 오창진 사무국장외에 다른 분이 있습니까?
항간에는 남북태권도연구소 오노균교수가 지난 황수일 사범 세미나부터 현재 ITF관련 되어 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정순천 : 터무니 없는 낭설입니다.
-오노균 교수는 한국ITF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
앞서 말한대로 한국의 ITF관련된 사람은 오창진 사무국장 한사람 뿐입니다.
지난 황수일사범 세미나는 생전에 창시자님이 직접 JITF(일본 ITF)에 전화를 해서 챙겨주신 것입니다.
북한태권도와 관련된 연구소를 만나 보니 오노균교수의 이름이 거론 되는 모양인데 KITF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태권라인 : 현재 양분된 ITF상황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생전의 최홍희 창시자를 모시다가, 이젠 아들인 최중화신임 총재를 보좌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닙니까?
정순천 : 먼저 ITF의 현재 분위기(북한주도 VS 최중화총재)를 말하기 전에 알려지지 않은 내막들이 있습니다.
-최홍희 창시자가 잘못 알고 떠난 사실들!-
생전에 최홍희창시자와 아들 최중화총재의 갈등은 철저한 주위 사람들의 모략이였습니다.
물론 최중화총재의 개혁이 창시자님과 어긋난 부분이 있었지만 제가 아는 창시자님은 아들 최중화총재를 끝까지 버리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중화총재역시 아버지인 창시자의 뜻을 받들고 있는 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위(창시자의 친지와 주위관장들)사람들이 부자지간의 갈등을 부추겨 온것입니다.
항간에는 한국의 국정원과 최중화총재가 연대해서 창시자를 매도 한다고 말들이 떠돌았었고, 창시자 역시 그렇게 알고 북으로 갔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믿었지만 모든것은 나중에 허구로 들어났습니다.
제가 지금 후회하는 것은 창시자님 생전에 최중화총재와 한국의 국정원과 관계가 없는것을 밝혀주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모략들이 결국은 창시자님의 무덤이 평양에 있게 되는 간접적인 요인이 된것입니다.
-최홍희창시자는 끝내 박정희를 반대했다!-
창시자님 돌아가시기전에 미국의 정우진회장이 남북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전적으로 창시자님을 받아 주었지만 한국내 관련기관에서는 현실법도 있고 해서 거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창시자님은 정우진회장이 보낸 질의서에 있는, 한국내 국립묘지에 가는것은 절대 반대 했습니다.
이유는 박정희가 있는 국립묘지에 본인이 묻히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최중화총재를 돕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창시자님의 사모님과의 관계도 서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사모님과 최중화총재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로 확인되진 않지만, 창시자님은 돌아가시기전 평양에서 최중화총재를 아들로서는 용서하지만 태권도로서는 용서 못한다고 하셨답니다. (북한에서 제시한 유언장 내용)
제 생각은 다릅니다.
창시자님은 태권도로서는 최중화총재를 용서했어야 했습니다.
태권도의 대의를 위해서 차라리 아들로서 용서는 안했어도 말입니다.
지금 북한은 창시자님 돌아가시자 마자 정치적으로 태권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하에서 창시자님 아시면 정말 탄복할일입니다.
태권도가 김운용총재와 만나고 협의하는것은 생전 창시자의 바램이였지만, ITF가 올림픽에 참가한다던지, WTF에 귀속되는 것은 절대 반대하셨습니다.
김운용총재는 지난 제주세계대회에서 창시자를 초청한다고 애드벌룬을 띄워놓고도 끝내 창시자를 만나지 않고 피해갔습니다.
이제 창시자가 세상에 없으니 정치적으로, 북한과 태권도를 연대하기가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역시 태권도를 이용해야 하구요..
북한에서 돌아온 창시자의 무덤사진을 받고서 전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비문에 국제태권도연맹총재선생으로 있을뿐 '태권도창시자'란 글 이 빠져 있는것입니다.
북한은 평소에 최홍희창시자를 말했지만 정작 중요한 비문에는 창시자란 칭호를 쓰지 않은 저의가 무엇 이겠습니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제가 지금 태권도역사편에 책으로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태권도역사에 관련해서 최중화총재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창시자님 생전에도 항상 "비토그룹"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창시자님과 갈등도 심했지만 말입니다.
태권라인 : 최홍희창시자에 관해서 할말이 많은것 같군요.
책으로 쓰고 있는 비화를 기대해보겠습니다.
화제를 다시 바꾸어 한국ITF에 관해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2004년 한국에 ITF세계대회가 개최되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것을 말해주십시요.
정순천 :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나요, 한국에서 최홍희창시자에 의해서 대한태권도협회가 발족되고 그후 1966년 ITF까지 발족되었습니다.
-2004년 ITF한국 세계대회 전세계 70개국 위성방송 결정!-
하지만 1967부터 1969까지 한국의 태권도계는 첨예한 갈등의 기간 이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북으로간 창시자의 자료를 카피하던중 당시 방대한 분량의 보도자료를 검토하던중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창시자는 본인에게 불리한 자료까지 당시 보도자료를 원문으로 스크랩 해두었더군요, 정말 철두철미한 분이였습니다.
그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이종우관장, 엄운규관장, 황기관장 등 대한태권도협회와 국제태권도연맹간 갈등은, 단증, 품새(형)지분 문제 등이 상세히 있더군요.
심지어 대한체육회에서 중재에 나설 정도로 언론에 하루가 멀다하고 분쟁이 기사화 되었습니다.
-태권도최초의 대회가 1969년 외국 홍콩에서 개최 그리고 한국 불참!-
당시에 최초의 태권도 대회(제 1회 아시아 선수권대회)가 1969년 홍콩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경기규정의 갈등과 분쟁으로 종죽국인 한국이 불참한 사실입니다.
물론 1971년 2회 아시아 선수권은 말레시아에서 개최되었는데 대한태권도협회측에서는 호구와 체급경기가 아니라고, 쉽게 말하자면 국제연맹(ITF)시합규정이라고 다시 불참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유력일간지에 보도된 자료들입니다.
이렇게 ITF는 한국에서 출범했지만 한국에서 대회를 한번도 개최하지 못한 기구한 단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ITF가 캐나다로 옮겨지고 캐나다에서 ITF세계대회가 열리게 된것입니다.
ITF본부에서는 내년 2003년 9월 미국 흥행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대규묘의 세계대회가 열리는 것을 오래전에 결정 했습니다.
물론 모든 준비는 지금 완료된 상태입니다.
이것은 전세계 위성방송파를 타고 70개국에 방영됩니다.
방송사와도 모든 절차와 계약은 끝난 상태입니다.
그후 최중화총재는 한국에서 창시한 ITF의 세계대회개최를 한국에서 구상하게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오창진사무국장의 노력이 컸습니다.
현재 ITF본부 에서도 32년만의 귀향이 되는 한국 ITF세계대회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규묘역시 세계 120개국 이상이 참가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ITF세계대회역시 위성방송과 계약한 대로 세계 70개국에 방영됩니다.
ITF에서 한국의 세계대회에 벌써부터 관심을 갖는것은 그동안 ITF맨들은 태권도의 본고장 한국의 방문을 기대했지만 수십년동안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던것입니다.
아마도 단일 종목으로 세계대회의 규묘가 최대가 되지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태권라인 : 현재 KITF진행상황은 한국측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ITF본부에서 진전된 상황이 있습니까?
정순천 : 어제 최중화총재님과 만나서 구체적인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한국 ITF오픈식에 부총재인 티볼로 방한!-
한국 ITF인증서를 비롯해서 모든것이 ITF본부에서 준비 발송했습니다.
최중화총재님은 한국의 ITF에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KITF오픈식에는 현 부총재겸 고문변호사인 미첼 티블로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축사와 함께 KITF공식화를 전세계에 공표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태권라인 : 현재 ITF 태권도역사 연구소 소장을 맡은것으로 아는데 계획은 무엇입니까?
정순천 : 처음에는 ITF 태권도역사 연구위원회로 명칭을 출발했지만 나중에 총재님 직접 연구소로 바꾸었습니다.
저 역시 찬성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전 ITF에 부족한 사람입니다.
ITF맨들 중에는 하버드대와 옥스포드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진 석학들이 많습니다.
현 부총재인 티볼로 역시 하버드 로열(법대) 출신입니다.
이런 분들 중에서 제가 할일이 무엇이겠습까?
전 창시자님이 주신 자료(원본은 북으로 전부가 갔습니다)와 그동안 공부, 수집한것을 토대로 태권도역사를 밝혀 내는 것입니다.
아직도 30년전인 태권도분쟁을 비롯한 밝혀지지 않은 태권도의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태권도정론을 위해서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이것은 태권도정체성을 찾는 첩경이기도 하구요.
미력하지만 노력할것입니다.
태권라인 : 정사범님께선 ITF를 누구한데 직접 배우고, 최중화총재의 수련하는것을 보신적이 있는지요?
정순천 : 물론 창시자님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때 그때 창시자님한데 직접 많이 배웠습니다.
-최중화총재의 옆차기는 신기에 가까운 실력!-
점심시간 식사하다가도 창시자님은 나를 일으나게 해서 자세를 점검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면 제가 항상 동석했는데 그때마다 제가 표적이 되어 가르침을 받곤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배운것은 1998년 6개월동안 현 최중화총재님의 도장에서 입니다.
물론 최중화총재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최중화총재가 외국에 나가시면 폴로린사범이 저를 개인지도 하기도 했습니다.
최중화총재는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직접 가르친 분입니다.
제가 배운 6개월동안 느낀것이 있다면 최중화총재의 옆차기는 정말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최중화총재의 스승은 한차교 관장님!-
나중에 알고 보니 고 한차교관장님이 최중화총재의 스승이라고 하시더군요.
잘 알다 싶이 한차교관장님의 옆차기는 황소를 차서 쓰려트린 일화도 있고, 태권도인중에서도 지금까지 공인하는 세계최고의 실력자가 아닙니까?
최홍희창시자님이 특별히 한차교관장님을 아들인 최중화총재의 스승으로 지목한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최중화총재님은 고인이 되신 한차교관장님을 정말 존경하고 있습니다.
태권라인 :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대화방에서 직접 인터뷰해주신데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기대를 하겠습니다.
정순천 : 감사합니다.
태권라인이 ITF 편향적이지 않고 태권도 정론의 사이트로 앞서 가시길 기대 합니다.
- 채수용 기자(20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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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소개하기^^
정순천사범이 밝히는 KITF 창립 과정과 태권도 비화
늪속의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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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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