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유난히 군대복이 없었다. 제대한 뒤에 친구들과 얘기해 보니, 독가스 훈련만 해도 나처럼 호되게 치른 친구들이 없었다. 독가스훈련의 절정은 방독면 착용 훈련이었다. 독가스는 특성상 예고없이 불시에 우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주지한다는 취지였다.
여러 번 연습을 거친 뒤 우리는 밀폐된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들어갔다. 우리가 다 들어오자 철문을 걸어잠근 조교가 말했다. 지금부터 언제라도 실제 가스가 살포된다. 조교가 "깨쓰"라고 소리치면 즉시 방독면을 써야 한다. 늑장부리는 놈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고는 우리를 어깨동무를 하게 하고 구호에 맞춰 쪼그려뛰기를 시켰다. 조교들의 전에없던 독려에 한참 정신없이 뛰고 있을 때, 육감적으로 이때쯤 개스가 살포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조교의 "깨쓰"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더니 쒸익,하는 소리와 함께 최루탄이 터졌다. 나는 재빨리 방독면을 풀어 얼굴에 썼다. 숨을 들이쉬어 보니 안전하였다. 방독면을 못 쓴 동료들은 아비규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사라 했던가. 뒤엉켜 몸부림치던 훈련병 중에 어떤 놈이 유독 내 앞으로 딩굴며 괴로워하더니 갑자기 내 얼굴을 쥐어뜯었다. 놈을 제지할 겨를도 없이, 코와 목구멍과 폐에 이르는 기도가 순간적으로 불에 타는 듯했다. 방독면 당겨진 사이로 가스가 새고 말았던 것이다. 평생 그렇게 괴로운 것은 처음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 30여 년이 지난 최근에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한 번 겪었다. 얼마전 문학 동아리 모임에서 뒤풀이로 노래방엘 가게 되었다. 일부 바쁜 회원들이 빠지는 바람에, 여자 회원 십여 명에 남자 회원은 나까지 두 명만 참석하게 되었다.
그쯤 되니 오척단구인 나에게도 여기저기서 블르스춤을 추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보통 때 같으면 의당 입이 귀까지 찢어질 일이다. 그런데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다른 대접에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주가를 올려 보자고 거듭 정중히 사양하며 은근히 점잖을 뺐다.
바로 이때 느닷없이 홍 여사란 분이 내 넥타이를 거머쥐더니 확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목을 켁켁거리며 꼼짝없이 끌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우스운 꼴이 되고만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을 격한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최루탄을 직통으로 마시고 고통에 허우적대는 녀석이 굳이 나를 겨냥하여 괴롭히려는 고의성이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혹시 내 방독면 끈을 탈출구 문고리로 착각하고 잡아당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홍 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홍 여사는 나를 춤추게 하고 결국엔 자리의 흥을 돋구고자 했으리라. 약간의 과시욕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결코 나 개인을 괴롭히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리라. 혹시 홍 여사도 내 넥타이를 마소의 고삐처럼 사람 잡아당기기에 편리한 끈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대인관계가 그렇다. 누구나 나름대로 살아오며 터득한 계산 방식에 의해 살려고 몸부림들을 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치게도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사람은, 남들이 왜 나 같지 않을까 하는 문제로 인생에 반 이상을 허비한다고 한다. 내가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 남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가.
첫댓글 상대방에게 나를 알린다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건지 ....사람속 깊이는 모른다 하지않는가? 홍여사 땜시 ㅎㅎ목은 괜찮으신가? 담부터는 노타이로 참석하시게.....좋은글감사
칭구야, 그러케도 모르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여자의 심리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노골적으로 돌진하여 애정공세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괜히 싫어하는 척, 관심이 없는 척, 또는 돌발행동 등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홍여사의 경우는 後者로 칭구를 좋아하고 있는 갑네... 추카할 일이여... 사랑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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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나와 다르다는것을 알아야~ 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내 삶이 편해지는것 같더군~ 동감이여!!!
좋은 말이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남에게 폐기치지않으려는 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나와 남은 다르다는거![~](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맞아! 상대방을~ 인정 해주고 나면... 서운한 감정도 사그라 지는데... 쉽지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