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1-36)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8월의 첫 주일이다. 8월에는 경술국치라 해서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의해 대한 제국을 일본에 강제로 병합하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날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나라를 잃었다.
우리나라는 1904년 협정서에 의해 일본의 고문정치가 시작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됨으로써 통감 정치가 실시되었었다. 이로써 실질적 국권을 빼앗은 일본은 허울만 남아 있던 대한 제국을 병합조약을 통해 완전히 소멸시킨 것이다. 이날을 국가가 치욕을 당한 날이라 해서 경술국치라 한다.
8월은 또 8.15 해방을 맞은 광복절이 있다. 36년의 일본 식민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날이 8월에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자유를 잃고 많은 고난을 당했다. 우리들은 다시 종이 되지 않도록 나라를 사랑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처럼 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통해 나라를 잃은 슬픔을 오페라로 만든 이태리의 베르디가 만든 오페라 나부코 제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제목은 ‘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이다.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유프라데스 강가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잠시 쉬는 동안 저 멀리 두고온 그리운 고향땅을 떠올리며 이렇게 부른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듣기~~)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를 타고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 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아, 빼앗긴 위대한 나의 조국, 아, 내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가 연주하는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일을 말해주세요.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시리라.
19세기 중반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 곡을 ‘민족의 노래’로 애국가처럼 불렸다.
우리는 두 개의 나라에 속해 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을 때, 일본의 종이 되어 살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사탄의 종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진리를 알면 자유를 누리고 살 것이라 하셨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을 함께 나누어 보자.
첫째,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진리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철학의 기초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체포되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가 한 질문이기도 하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그대가 유대인의 왕인가?’ 예수님이 ‘그렇다. 내가 왕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시면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말을 듣는다.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다’고 하셨다. 그 때, 빌라도가 한 질문이 ‘진리가 무엇이냐?’ 했다.
진리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17:17) 하셨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화신, 진리가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주님은 당신이 진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진리라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다.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았던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아무나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서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셨고,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성령이 그 마음에 계신 사람만이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다.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배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까?’ ‘여러분이 회개 하고 죄 사람을 받으라 그리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유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자유를 위하여 주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올해 단기, 단군이 나라세운지 몇 년일까? ....4356년이다.
자 여기서 질문하나 들어갑니다. 우리나라는 언제 건국했을까요?
1, 1948년8월 15일
2,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
3, 단군이 세운 4356년 전 10월 3일
3번이 맞는 것 같다.
예수님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오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그 생명을 바쳤다.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웠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우셨다. 죄와 죽음의 종에서 해방하고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그 생명을 바치셨다. 예수는 우리 범죄로 인하여 그 몸을 내어 주셨고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기 위하여 부활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은 죄 뿐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토마스 그룸이라는 기독교 교육학자가 있다. 그 분이 쓴 책 기독교 종교교육 이라는 책에 인간의 세가지 자유에 대하여 쓰고 있다. 그 첫번째가 합리적 사유의 자유이다. 생각의 자유이다.
생각의 자유는 아무 생각이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 억울했던 것, 원한이 맺힌 것을 계속 생각 할 수가 있다. 생각에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우리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잠언 23:7에 무릇 사람이 어떠한 것은 그 생각이 그런 것이라 했다.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예레미야 6:19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더니 재앙이 왔던 것이다.
미국 백악관에 있던 대통령의 마음의 생각에 인턴 사원에게 부도덕한 생각을 가졌다. 죄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이 일이 인턴 사원의 고백으로 온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에 대통령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뗐지만 드러나는 하나하나의 증거에 드디어 죄를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는 동안 아마 역사상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만큼 망신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탄핵 심판이 시작된 1년 반 만에 2000년 8월 10일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목사님 4500명이 모인 앞에서 TV 생중계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저는 용서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온 세계 앞에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원이 나를 탄핵했을 때,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탄핵으로 나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를 탄핵한 그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철저하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100%진지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을 때,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를 숨기고는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클린턴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 회개했을 때, 자유로워졌던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종처럼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갈5:1)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빌립보서 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했다.
셋째,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본문 8:36절에 아들이 자유케 하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떠나서는 자유도 없고 평화도 없고 행복도 없고 생명도 없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영혼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봅 바틀렛이라는 사람은 탐험가이다. 아주 희귀한 새를 몇 마리 얻었다. 새장에 넣어 망망대해를 며칠째 가고 있었는데 새 중에 한 마리가 발악을 했다. 발톱으로 할퀴고 머리로 새장에 헤딩하고 가관이었다.
그래서 결국 새장 문을 열어주었더니 좋아라 하고 모두 날아갔다. 그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푸른 하늘로 놀이 날아올랐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그 새들이 모두 다시 배로 돌아왔다. 배에 돌아온 새들은 기운이 다 빠져 죽은 듯 했다. 바다로 바다로 날아갔지만 결국 앉을 곳도 먹을 것도 없었던 것이다. 새장은 이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고 생명의 길이었던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를 누리고 살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집나간 아들이 있다. 아버지의 간섭을 벗어나는 곳에 참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으로 갔고 거기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종국에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 아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아버지의 집이다. 오늘 아버지의 집은 교회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진리의 몸인 교회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했다.(요한복음31:36) 이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셨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 물질의 종이 되지 말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쾌락의 종이 되지 말고 진리이신 주님 안에서 자유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