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잃은 도자기

짝 잃은 도자기 새벽 장이다. 뽀얀 새벽이면 선을 보였다가 해만 뜨면 이슬처럼 사라지는 장터가 있다. 새벽에만 한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하여 도깨비 시장이니 번개시장이니 하고 부른다. 그 번개시장을 나는 사랑한다. 즐겨 찾는 단골 손님이다. 춘천 봉의산 강변 쪽이니 봉황의 머리가 있는 소양로 제2교 입구이다. 근무지가 동해안이라 주말만 되면 특별한 일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번개 시장을 찾는다. 교동이라 거대한 중앙시장이나 가까이 동부시장과 현대식 마트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번개시장이냐고 아내는 질책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감언이설로 방향을 번개시장으로 향하곤 한다. 허름한 새벽시장을 찾아간다 동네 작은 공터이다. 강 건너 마을에서 손수 지은 농산물들이 대부분이다. 해산물 도소매업을 하는 곳도 몇 군데 있지만 영세하다. 정돈되거나 깔끔하지 않다. 햇살 한 줄기 없는 길옆과 공터에 앉아 첫배로 나온 시골 아낙네들이 한기를 떨치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맞는다. 주로 소상인들이다. 번듯한 건물하나 없고 판자집을 개조해 만든 상가들이다. 거기에 당도하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유난히 번개시장으로 통하는 골목길엔 점이나 신수를 보는 무속인들 집이 한집 건너 나타난다 선녀보살, 총각보살, 약수보살 등 팻말이 제법 의젓하게 서 있다 차를 멀찌감치 세우고 걸어가면 번개시장 입구부터 식료품, 양념, 생선가게 주인들이 분주하다. 금방 보자기를 젖히자 무럭무럭 김이 나는 살찐 두부가 팔백 원이라고 억양을 높여 손님을 모으는 아줌마며, 팥고물에 몸을 딩굴고 있는 인절미와 비닐로 알몸을 가린 검은 점박이 시루떡이 늘 눈길을 끈다. 장터를 막 돌아 첫 번째 해묵은 양계닭과 사낭을 가지고 나와 웅크리고 있는 양계장 할머니 무릎과 귀와 닿는다. 그 옆에 각종 반찬을 널브러지게 마련해 밤차로 서울서 달려온 서울 식료품 차가 반긴다. 반찬 파는 할머니 수완도 보통이 넘는다. 자주 봐 삼촌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비윗살이 그만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 찾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인절미나 콩탕 파는 아줌마도 아니고, 널브러지게 차려 논 반찬에 국자로 양념국물로 적시고 있는 서울 식품도 아니다. 새벽 해장국집을 지나 늘 더덕을 벗겨 향을 내는 아줌마 다음 줄에 앉은 젊은 새댁이다. 따라오는 아내가 처음에는 왜 하필이면 비좁은 그 집이냐고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요즘은 먼저 찾아간다. 젊은 새댁을 알게 된 것은 지난 봄이었다 김치 거리를 사려고 서성이다가 깜짝 놀랐다. 20 년전 춘천 샘밭 중학교에서 담임한 제자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최 윤정! -중3 담임 때 빨리 자기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고 토라져 한동안 입이 댓 발 나오던 녀석이다. 댐을 막아 북산면 일부가 물에 잠기자 춘천에 나와 골방에서 자취를 했다. 언제나 교실 정리정돈을 하던 제자로 솔선수범이 몸에 배인 계집애다. 시골에서 엄마가 짠 들기름이라고 교무실로 와서 말은 못하고 홍당무가 되어 놓고 달아난 학생이다. 토요일 시골집에 갔다 올 때면 철따라 핀 야생꽃을 늘 한아름 꺾어오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붓꽃, 산나리, 조팝나무 와 여우꼬리, 들국화 왜광꽃 그래서 학급은 겨울 한 철 빼고 언제나 야생화로 가득했다 졸업 때 마지막으로 울먹이며 나타나던 윤정이가 생각난다. 형부가 이천에서 도자기를 하는데 졸업 선물로 작은 도자기 두 개를 만들었다고 하나를 주고 갔다. 빗살무늬가 지나간 작은 도자기였다 " 선생님! 이 다음에 만나면 그 때 도자기를 꼭 가지고 계셔야 해요. 네? 안녕히 계---." 말끝을 맺지 못하고 교무실을 뛰쳐나가던 제자였다. 그 후,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서 단 한번도 만나질 못했다. 다만 몇 번 전화가 왔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류업계에 취직을 해 고향으로 돈을 조금씩 송금한다는 전화인데, 그 때도 끝인사가 늘 도자기 잘 가지고 계시냐는 거였다. 그 윤정이가 번개시장 두 번째 자리에 앉아 행상을 한 젊은 새댁하고 어쩜 그렇게 흡사할 수가 있을까! 웃을 때 입을 오므리며 웃는 모습이며 쌍꺼풀 아래 둥근 양쪽 볼까지 너무 닮았다. 오죽하면 처음 볼 때 제자인 줄 알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가가 묻기도 했으니-. 그 새댁은 농촌 총각과 결혼한 조선족이었다. 새댁을 윤정이로 착각한 지난 여름이었다. 우연히 운전면허 학원에서 만난 제자한테서 윤정이의 비보를 전해들을 줄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의류업체에서 일하다가 그만 자취방에서 연탄가스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제자의 사망 소식! 그 날 혼미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공자가 제자 만연이 죽었을 때 통곡할 때처럼 마구 소리쳐 울고 싶었다. 청천벽력이다. 집 서재에는 도자기 하나가 우두커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후로 번개시장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만주에서 온 젊은 새댁은 강낭콩, 파, 호박, 고추 등 계절에 따라 농산물들을 떼어와 판다. 특별히 구입을 한해도 번개시장을 찾는다. 제자와 상봉하는 기분이다. 물론 착각이다. 윤정이는 오늘도 손을 호호 불며 새벽 장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선생님 오셨어요? 젊은 새댁은 이제 제법 반색을 한다. 늘 오면 이것저것 사재기를 해 아내에게 핀찬을 사곤 했다. -선생님! 그만 사세요! 그냥 가져가세요. 하고 덤도 듬뿍 주고 어떤 것은 그냥 시장바구니에 찔러 주기도 한다. 입을 삐죽하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윤정이었다. 번개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서 늘 떠민다. 물건을 사다가 나도 모르게 윤정이라고 불러도 본다. 먼저 선생님, 선생님하며 제자처럼 가까이 한다. 야생화를 한 아름 안고 월요일이면 교실에서 다듬던 윤정이가 장터에서 농산물을 판다. 어느 날이었다. 봉의산 등산이 그쪽으로 하산해 장을 찾았다. 새벽 장이 벌써 문을 닫을 무렵이었다. 허겁지겁 찾아 왔는데 아뿔싸! 시장 터 둘째 줄이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시들은 대파가 자리를 지키고 젊은 새댁은 없었다. 아내도 의아해 찾았다. 그 때서야 옆에서 수군거리며 귀뜸을 해준다. 한국인과 결혼해 살아오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어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게 아닌가! 이런 변고가! 어디에 사는 누군지 조차 알 길이 없는 조선족이 이렇게 나를 당황케 하다니-.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감감했다. 몇 달간은 못 나올 거란 소문만 무성하다. 그 후 나는 다시 심한 가슴앓이에 시달려야했다. 윤정이를 두 번 잃는 셈이었다. 다시 툭툭 털고 시장 터에 모습을 보이는 그 날은 언제일까? 행여 다시 만주로 귀국하지나 않았을까? 반갑게 맞이하며 윤정이라고 농담까지 서슴지 않던 조선족의 행방이 궁금했다. 제자 생각으로 추운 동절이 더욱 춥다. 그 후로 나는 춥다는 핑계로 시장에 발걸음을 뚝 끊었다. 윤정이 미소가 사라진 장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을 맞는다. 푸성귀 없는 시장 역시 활력을 잃고 초췌하게 새벽을 맞을 뿐이다.(끝)17.8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