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행하는 '유공전우회'의 야유회 놀이건만(작년엔 51,000원에 1박 2일 코스로 전주, 익산행)올해는 또다른 경험을 한다.
충북 "석산온천" 은 세련된 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찌든 우리의 심신을 잠시 달래주기엔 "참 잘 왔다" 란 소릴들을만타.
넉넉한 인심답게 푸짐하게 주는 고기맛도 일품이었다. 우린 모처럼의 고기를 멀리하고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강강술레늘봄
식사관" 으로 향했다. 풍류와 낭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국내최대 한식테마파크' 라는 처음가 본 이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듣기로는 모 (전)대통령의 가족이 운영한다고 하는데 뒷야산이 온통 주차장으로 꾸며져있고 마치 일본인들의 성(城)같다.
이번에 참석안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S전우에게 그레도 우리가 같은 사선에서 살아온 전우답게 "갈비찜"으로 선물했다.
워낙 건물이 크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므로 "라이브공연" 도 하는 모양으로~ 홍하사도 무대에 오르고싶은 충동이~ ㅎㅎ
.
(다시 14년 전에 쓴 (52년전)이야기로 돌아간다.)
♧ No, 4569 ♧ 이름: 홍진흠 (coala48@naver.com) ♧ 2008/2/6(수) ♧ 조회: 4559 |
흔히들 남자에겐 다섯가지의 쌍기역(ㄲ)이 있다한다.
"꿈"(포부)."깡"(배짱),"끼"(적성),"꼴"(용모),그리고 "끈"(인맥) 이다.
난 훑어보니 남들이 평을 한바 거의 다 해당되지만 마지막 "끈"은 좀 아닌것같다.
그 "끈" 이 없는 대신에 난 "꿈"의 영역에선 다른 사람들의 몇배나 꾸어왔다고 자부한다.
단기 4288년-(서기 1955)
내가 초등학교 1년때에 맨처음 그 "꿈"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만화"(# 3030 "라이파이 이야기"-'05/12/16)책을 보면서 꿈을 키워갔고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를 접하면서
더욱 결심을 굳혀나갔고(주: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장편소설로 1958년에 노벨상이 주어졌으나 전쟁의
휘말림으로---
1965년 미국의 MGM 영화사에서 Omar Sharif, Julie Christie, 제랄딘 차플린, 알렉 기네스 등이 주연한
197분의 장장 긴 영화로 "Somewhere My Love" (내사랑 어디에)-라라의 테마 곡에다 David Lean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으로
전쟁, 멜로, 애정, 로맨스, 삶과 인생, 사랑과 그리고 죽음등을 그린 장엄하고 웅대한 스케일과 스펙타클의 대 서사시)
그룹 "ABBA"(인생은~#1375 "내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03/12/1)의 음악을 들으며 그용기를 점점 북돋워나갔다.
종종 난 내가 쓴 글을 되풀이 읽어본다.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자기자랑만 늘어놨느냐고
생각도 되지만 이젠 전우님들이 20년 이상 내 글을 읽어보고 실제로 홍하사를 겪어봤으니 오해는 풀렸으리라.
"Anh"네 가족과 헤어진후 타고 온 귀국선에선 우린 심한 멀미와 싸워야했다.
온통 일주일동안 거의 한끼만 제대로 먹고 나머진 구토로 날밤을 지새웠다. 좀은 여유있게 파월생활을 한 전우들은 공연히
쥐죽은듯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괜히 지은 죄도 없으면서 식사 줄 설때도 양보만 하고 눈치를 본다.
왜 같이 월남생활을 한대도 기 죽을 필요가 있는가?
직책에 따라 편할수도 있고, 힘들수도 있는건 당연하다.
물론 죽은 V.C 시체도 구경못한 전우가 무공훈장타고 냉장고 장만하고 카메라 어깨에 들러메고
귀국박스 가득 채우고 "PANASONIC" 휴대용 전축이나 "sony" 라디오 꽝꽝 울려대니
빡빡 쟝글기며 1년동안 오로지 살아서만 돌아가자던 소총소대 전우들은 눈이 뒤집힐만도 하다.
난 처음부터 욕심이 없었기에 아무런 동요도 없었지만
어떤 전우들은 박스하나 제대로 못 챙긴 자신들이 억울하단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정녕 가져올게 없다면
선인장이라도(길거리에 온통 주인없는 선인장이 무한정으로 널려있음)
빈박스에 채워올 결심였지만 다행히 C-ration으로 가득채워 친척들에게 "진흠"이가 1년동안 이걸먹고 전투하며 국위를
선양했다며 자랑할 수 있음에 감사히 생각하였다.
사실 그 흔한 탄피를 가득채워도 상당한 목돈이 되었지만 어차피 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처럼 돈벌러 간건 아니니까.
살아 돌아온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무얼 더 바랄까? 부산땅에 떨어지니 어찌 그리도 우리여자들이 뚱뚱해 보일까?
아마도 두고 온 An과 Anh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않은 때문인가보다.
위대하신 영도자 박대통령께서 심혈을 기울여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안내양(당시만해도 고속버스 안내양은 지금의 스튜어디스보다도 더 훤칠(?)해 보였다.)의 멋진 설명을 들으니
홍하사도 이 경부고속도로를 닦는데 일조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면목동의 미미사장에서 ('71/3/10일) 손수건과 반지를 끼고 쟝글복이 아닌 우리의 동정복을 입고서
찍은사진과 간단한 선물 함께 정성을 다한 편지를 월남으로 보냈건만 아직까지도 행방이 수수께끼이다.
결국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의 "하얀 손수건" 가사처럼 그게 002*(영영이별)일줄이야.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워줬는데도 보람도없이 월남이 적화통일이 되었으니
"2년후에 오마" 고 약속한게 모든게 물거품이었다.
수십년간 서로 다른길로 가면서도 문득문득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름을 남겨둘수밖에---
38년만에 간 이번에 당시 귀국선물과 편지를 받았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으나 도무지 말이 통해야지!
발버둥쳐도 허사였었다. "호치민" 에서 세계적인 월남국수집에서 전화받은날은 공교롭게도
12월 24일ㅡ아이러니하게도 두 잊을수 없는 여자때문에 혼자서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이국의 낯선교회에서 예배도 보고 밤늦은 시간까지 호텔을 떠나 그 질기다는 고독을 혼자서 씹고 있었다.
누군 내게 그동안 살아온 삶을 회고록 형식으로 정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난 이미 45년전부터 실행하고 있는중이다.
사실 이제야 말할수 있음은 말만 앞세우면 안되기에 침묵했을 뿐이었다.
그걸 J 전우님은 벌써 눈칠챘는지 (# 4964 에서 후일 이러한 글을 쓸것을 예상이라도 한듯---)
바로 알아맞췄다. 난 내 인생의 전부를 거대한 씨나리오로 엮어가고 있는중이다.
다시말해 거대한꿈을 이뤄나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씨나리오 작가가 보는것도 알고있다.
"꽁가이 이야기"-딱 이거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상담한 적이있다. 솔직히 난 국민학교때부터 수학박사, 만능인, 천재, 꼬마 써커스단원
(기계체조,텀블링 등에 소질이 좀 있었다) 유니버살 맨 ,작은거인, 작은 예수회 형제, 문무를 겸비한 홍장군,
팔방미인, 천하의 홍하사, 걸어다니는 노래방, 거인, 세기의 가교적 인물, 움직이는 앙리 듀냥,
부처님 가운데 토막, 달변가, 철인 등등의 온갖 듣기좋은 칭찬의 수식어를 들었다.
홍하사 본연의 꿈을 가끔은 삶이 힘들어 곧장 잊어먹었다. 듣지도, 보지도 그리고 말도 못하는 그런
역경을 헤쳐나간 아름답고 감동적인 빛의 천사 "헬렌 켈러" 책을 읽고서,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편 영국이 낳은 영원불멸의 간호사인 "나이팅 게일" 의 봉사정신을 알고서,
제1회 노벨 평화상수상자인 "장 앙리 뒤낭" 의 전기를 읽고서
그래! 난 일생동안 남을위해 봉사하기로 맹세하였다.
야학다니며“청소년적십자부장”(Korean Junior Red Cross)하면서 싹뜨기시작했고
최근의 "새마을 봉사활동 16년(이젠 30년)을 하면서 차츰 영역을 넓혀나갔다.
남에게 눈에 띄이지않게 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어떤 전우는 어떻게 알고있었는지? ~ 제대로 본것이다.
그래서 아예 이참에 공공연히 선언을 해 버린거다.
이미 간접으로 표현한적은 있다.
"인생은~"(#3641 "Re--두 아들~~!! 화이팅팅")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XX XXXX XX이라고 했다.
우선 "사랑" 얘기만 해도 난 좀 특별한 전력이 있다.
1. "첫사랑"- 45년째(지금은 58년)~당시에(1964/12/24) 난 이걸 소재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리라.
멋있는 작품이 되기위해선 내가 사랑을 포기해야만 한다.
결국 손만 잡으면될것을 스스로 그녀를 뿌리쳤었다. 오로지 작품에만 초점을 맞췄다.
때문에 부끄러운 잘못은 추호도 못한다. 그대로 양심에 거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2."Anh과의 관계도 좀 살을 붙여 그럴듯하게 꾸며 볼수도 있겠으나 난 100 % 진실만을 썼을뿐이다.
한편의 영화소재로도 충분하지만 난 절대 억지부리지 않았다.
또 있다. Anh의 어머니가 공중폭파됐다면 또 다른 한명의
3.장모될뻔한 사람(8편에서 K.S.C이름을 기억해 두시라고 한)은 토막살해 당했다는 점이다.
기구한 운명인진 모르나 정신적인 첫사랑이 O.S.H 이름을 갖인 소녀였다면 또 다른
4. 첫사랑의 소녀 이름은 Y.K.H이다. 여기또한 노트를 한권쓰고도 남음이 있고
아직 밝힐수없는 얘기+ #3059 "새마을 봉사 이야기"('05/12/29)도 사연을 기술하라면
아마도 A-4용지 몇수십장은 될것이다. 남을 위해 평생, 봉사하기로 맘 먹으며
하물며 "무료"로 봉사하고 모든 수익금은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시키겠다는데 누가 이유를 달 것인가?
오래전 본 영화 ㅡ"My way"(후랑크 시나트라 주연)-가 있었다.
"내가 난 그걸 내 방식대로 해 왔다는거야 "-Frank Sinatra-의 고집이라면 홍하사의 마이 웨이는
뜻하는바가있어 "더 이상의 학교를 나오지않은 상태에서 성공하리라" 는 아집이 있었다.
홍하사의 가방끈은 생각보담 짧다. 주위에 뒤늦게 학업을 마치니 세상이 더 넓게 보인다며
만학의 그들이 내게 권고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졸업장을 따겠다" 던가 독학의 신념으로 “방송통신대” 등에 신경를 썼을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씨나리오 작가가(생략) ~ 그러나 영화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단다. 나도 짐작한다.
그러나 일회성으로 끝날일이 아니기에-적어도 내 꿈은 세계적인 단 한편 멋진작품을 완성하고픔이다.
수십억,수백억쯤은 안중에도 없다. 최하로 수천억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런 꿈을 오래전부터 꾸고있었고 그꿈은 출발시부터 점진적으로 실현 돼가고 있다.
시시한 이름없는 영화사가 나를 소재로 영화찍자고 제시를 해 와도 난 거절하는 꿈을 꾼다.
그런 제시론 움직일수 없다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감독, 이를테면 윌리엄 와일러나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 정도면 모를까?
언젠간 내가 취프(Philip C.Yi)에게 찜질방에서 조언의 부탁을 한적이 있다.
나의 소재는 충분한데 전문성이 없으니(시간과 실력이 못미친다는 나름대로 결론)
그는 세계를 상대로 뛰니 - 예를 들면 "Team Building" 이니 "벤취 마케팅" 이니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을 남겨주고 불우이웃돕기 (김밥장사)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1886 "Open House~(2004/11/14) 와 #1939 "Re-홍 진흠이가 사는 법"
(2004/12/5)에서 새로운 많은 이벤트를 만들기에 어떻게하면 좋을까고 자문을 구하곤했는데
전문가에게 넘기라는것이다.
그러나 난 서투르드라도 홍하사 본인이 솔직담백하게 사실대로 그려내는게 더 효과적이란걸
은퇴후 내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일본 (오끼나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틈만나면 한국으로 발령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나완 계속 교분을 쌓고있다.
러시아 작가는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소설로 노벨상을 취했지만 난 내가 실지로 겪어온“자서전”인것이다.
6.25동란, 4.19 학생혁명, 5.16군사혁명, 그리고 월남전등 사실의 체험으로 그려낸 자화상이다.
설사 아무것도 이루지못하고 꿈만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홍하사의 오랜 꿈은 그게 아닌것이다. 성공이란 별게 있는가?
나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조그마한것이라도 이룬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 아니겠는가?
마치 식물인간이 그 의지하나로 한평생 자기힘으로 남의 도움없이 화장실 한번 가는 꿈을
스스로 이뤘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 아닌가? 난 자신있게 무엇하나 숨기지않고 공개했다.
그만큼 떳떳하다고도 할수있으니까. 제주의 어느전우가 내게 막 공개하고도 무사한것을 보니
사모님이 너무 너그러우신가 보다고 한다.
또 누군 왕비님 몰래 38년간을 간직할수 있는 비법이 무엇이냐고도 했다.
난 그런 와이프라면 처음부터 아예 얻질 않았을것이다.
때문에 혼전에 모든걸 사실대로 고백했고 (#4754 "와이프 이야기"---(5)'07/9/12)
Anh 에게도 확실히 말할수있다.
이심전심으로 통한것도 같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한 그녀라면 (난 아직그녀의 아무것도 모르지만)
함께간 유전우처럼 그녀의 남편이 작고했을지도 모르겠고, 설사 멀쩡히 살아있다고해도
이런 사랑을 이해못할 그런 남자를 선택했으리라곤 믿지않는다.
이불속에서 함께 나누는 사랑이었다면 이제까지 이처럼 긴세월을 못잊진 않았을것이다.
아름답고 순수함-설사 아무리 늙고 추한 모습이라도 우린 기꺼이 만날것이고
다른이들처럼 실망하거나 후회스런 만남은 결코 아닐것이다.
의외인것이 그때 두시간 정도 함께 있었으나 전혀 영어를 못한 셋째 뉘약이 마지막 차에 올랐을때
딱 한마디 "See you Later~ "
함께간 일곱명중 다섯명은 모두가 놀랬다.
(대절 운전기사와 안내해준 친구 Tan 은 월남인)-똑똑히 들을수 있는 단 한마디---
아직 영어를 기억하는구나.
월남 글자는 영어와 흡사하다. 그렇지만 6성조(?)로 이뤄져 참으로 읽기가 난해하다.
때문에 텔레파시이가 통한다면 그동안 편지 한통보내지 못했지만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줄 알고있다.
38년간 잊지않고 "I love You." 한마디만 알고있어도
우린 다른사람들의 사랑관 차원이 다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수있다.
난 약속을 꼭 지킬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문자인 "See You Again. 을 실천하기로 말이다.
그 옛날의 약속처럼 결혼해서 같이 오는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서울로 한번 데려오리란 약속은 계획하고있다.
물론 와이프와 주위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말이다.
이도저도 안돼면 내가 3파 해서라도 반드시 재회할것이다. 그 꿈을 안고 고이 실행에 옮긴다는것도 또다른 하나의 꿈이다.
비록 지금의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라 할지라도---
그리운 님이여!
반드시 꼭 찾아 가리라.
그리고 만나리라. 멀지않아---안녕~
---"꽁가이 이야기"--- “끝”
이 글을 함께 파월해서
월남전선에서 산화한 전우님들과
귀국후
먼저 타계하신 전우님들께 바칩니다.
"5차년도 30제대,
주월맹호
3309부대(천하1연대)
제2중대 1소대 3분대장
하사 홍 진흠"
(결혼 1달전인 1978년 8월 용인민속촌에서)
워커힐 경유(울淑친구 2명외 4명이서 동행) 속리산 신혼여행에서
고향인 경북 군위군 부계면을 다녀오면서(외사촌형님의 Jemini 차를 몰면서)
두아들의 편지(1979년생과 1981년생 )--- 각각 만13살과 11살)
(이젠 이넘들이 오히려 아빠를 보호하는 차원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월은 광음이로다)
홍하사가 자주가는 중국집(찐빵을 아주 좋아했다) '新來香" 이란 간판으로 지금도 있지만 찐빵은 하질않고 다른 사람인듯~
그댁의 아가씨가 맘에들어(그녀도 내게 관심이 있는듯)한번 사귈수 있느냐고 쥔장(사장)에게 말했드니 당신은 소국(한국),
우린 대국(중국)이니 감히 함부로 넘보지말라는 뜻이었다. 묘하게도 그걸 큰애가 대국사람(오리지널 중국인)과 결혼하였고
세계 여러나라를 비행기타고 돌아다니는게 꿈이었는데 둘째가 대신 꿈을 이뤄주었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되는가? 후훗!
美2사단 카츄샤 들에게 "정훈교육"(2012년 2월)을 하다.
(막내가 보내준 크루즈 여행(오끼나와)을 다녀오면서 이태리선장과)
(홍하사 판소리에 미쳐 다닐적에(울淑은 국악1급지도자 자격증 획득)~
(울淑이 여고시절때 다닌 교회의 원로 장로님(현86세)과, 2022/11/23일 식사후 커피하면서)
작성자 18.09.16 02:47
홍하사 02:37 new
4년전 글 올리셨던 신유균부회장님이 요사이 통 보이지 않으십니다.
코알라 14.11.29. 16:53
신유균 16:11 언젠가 이 VVK에 올렸던 기억이납니다.
"홍하사는 VVK의 보물"이라구.... 왜냐구요?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을위해 봉사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죠
둘째딸 결혼하객들이 부산에서 서울가는버스안이 너무나 즐거웠다구.언제 서울도착한지
몰랐다네요. 친척 한분은 이벤트 직원인줄알았데요. ㅎㅎㅎㅎ
VVK회원들을 위해 이만큼 봉사하는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구 해
충분히 보물급이지요
노년을 재미있게 보내는 홍하사님, 화이팅 ....
(오랫동안 불지않아 서투르지만 글(제비}에 맞춰 벼락치기로 꿰 맞추다 보니~ ㅎㅎ)
---끝---
첫댓글 맨아래 사진의 정호영장로님께서 우리부부를 위해 특별히 써주신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공교롭게도 홍하사가 군입대하기전(다른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가건만 홍하사만 입대) K목사님께서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특별예배' 를 마련해 주시던 시절 성경암송하던 구절이다. 마지막 13절은 "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아멘" (우쿨렐레옆 '오카리나'는 대구의 삼총사 한명이(이종한 친구)그냥 주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