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앞서서----
최근에 시작된 김수현 작품 “천일의 약속”을 두고 사람들은 속사포 같은 빠른 말투와 문어체적인 표현 들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고 타 작품의 인물들과 겹쳐 보인다는 평가의 글들이 공 홈에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속에 있는 얘기든 겉으로 드러나는 생각이든 모두가 적나라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요즘의 어법과 표현들에 염증이 나있어서 일까 난 김수현 만의 아름다운 표현법과 사색적인 대화들이 무척이나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아주 속 깊은 감정도 내적으로 잘 소화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래원군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도 한 몫하고 있지만...
솔직히 난 드라마하고는 좀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워낙에 드라마에 집중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있다 해도 어쩌다 필이 꽂히는 드라마 만나면 몇 번 보다가 그것도 최종회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는 불성실을 많이 보여서 특정 배우라든가 특정 드라마에 제대로 된 팬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이러던 내가 어느 여름날 우연히 한국드라마를 영어로 표현되는 싸이트가 없을까 수없이 인터넷 바다를 해매다 만나게 된 곳이 my soju... 이곳에서 나는 우연히 눈사람을 만났다. 지금의 모습보다 더 앳된 공효진이 출연한 오래된 드라마였다. 자연스러움과 귀여움이 함께 묻어나던 효진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음..
괜찮겠다 싶어 눈사람을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 아이스하키 선수 차성준을 보면서도 난 그가 김래원인 것을 몰랐다. 10년 이상의 팬 내공을 쌓은 분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김래원을 모를 수 있냐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지도 모르겠다. 래원 군이 데뷔하던 시절이던 1998년부터 한창 꽃피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던 수많은 작품들이 죽 히트 치던 2009년, 정확히 그가 군복무로 입대 할 때까지 난 정말 단 한 번도 그의 드라마를 마주대해 본적이 없다.
어쩌면 그의 드라마가 히트 치던 그 당시에 지독히도 피해가며 다른 드라마들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한 내 직업적 환경 탓에 오래도록 TV를 즐겨 보지 못했던 이유도 한 몫 했다.
어쨌든 난 눈사람의 차성준을 보며 실제의 슬픔으로 다가오는 깊은 내면 연기에 매료 되고 말았다. 급기야 래원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가 연기했던 현우, 병수, 승희, 현성, 재민, 경민, 자효, 영재, 상민, 이강준을 차례차례 만나게 되었다. 매 작품마다 그의 모습은 각기 다른 역할로 새롭게 놀라울 정도로 탈바꿈 되어있었다. 정말 현우가 되어있고 병수가 완전히 되어있는 래원 군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난 배우 김래원이란 이름 석자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득 왜 지금은 그가 브라운관에선 안 보이는 걸까 궁금해서 정보검색을 해보니 군복무 중이고 곧 제대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차기작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는 김수현 작품의 정통멜로 “천일의 약속”라는 것 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기억하며 손꼽아 기다리게 이르렀다.
기다림 끝에 만난 2011년의 래원군은 박지형으로 다시 나타났다. 많은 팬들과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듯 래원군의 외모가 기존의 훤칠하고 서글 서글 환한 미소에서 뭔가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훨씬 야윈 모습으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 제각각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배우에게 필수는 준수한 외모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천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배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외모의 풍기는 이미지가 바뀌어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래원군이 물론 아직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청춘의 한복판에 있긴 하나 그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줘야 할 것 같다.
기존의 모습으로 박지형 역할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지금의 모습이 훨씬 박지형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래원군의 말처럼 배우는 역할마다 그에 맞는 제 옷을 갈아입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가 이런 배우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제대로 같은 동시대를 살면서 과거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그의 작품“천일의 약속”은 그래서 내게 더 각별하다. 특히 청순미와 묘한 매력 또한 연기력으로도 늘 좋은 호감으로 다가오던 수애와 연인으로 나온다니 무엇을 더 말하랴.
천일의 약속 1회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여인과 그 여인을 지고지순하게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좋은 학벌에 유학까지 다녀온 완벽한 조건을 갖춘 건축가 박지형, 이 남자에게는 이미 10년 전부터 집안끼리 결혼이 약속되어 있는 여인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 남자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 그것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나가 버린 어머니로 인해 6살 때부터 남동생과 함께 고모 밑에서 자란 불우한 환경의 여인이란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여인이 불치의 병을 앓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만 보아도 일찍이 많이 보아온 극단적 만남을 기본 축으로 하는 내용이다.
이걸 사람들은 흔히 뻔한 스토리라고 말한다. 나또한 이런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김수현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 갈까 상당히 의아했고 또 직접 배우를 고르고 작가 특유의 칼라를 강조하는 김수현 드라마를 래원 군이 어떻게 멋들어지게 소화해낼까 참 궁금했다.
첫날 뚜껑이 열리고 나서 인터넷에 올라 온 후기들을 읽으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참 다양한 논쟁으로 역시 김수현 작가 작품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 “비겁해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너무 초라해서 미안해..”
지형의 결혼날짜가 잡히면서 미리 약속한 듯 서로 담담하게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작별하는 장면부터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이재헌의 “너 없는 오늘”의 가사 중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은 준비 없는 짧은 순간이지만 추억은 왜 내게 오래도록 아픔인건지.... 누구나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 열정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의 종착역이 늘 해피 엔딩 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 영원할 것 같은 열정이 자의적인 타의적이든 식어버리며 막을 내리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은가. 지형이 본인 스스로가 나쁜 놈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이토록 서연이를 못내 걱정하며 놓아주기를 힘들어하는가에 대해 나는 충분히 공감된다.
사실 난 이 서연이란 여인의 홀로 서려고 하는 강인함과 절대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이 참 마음에 든다. 흔히 사랑을 끝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대부분의 연인들이 반드시 어느 한쪽은 상처를 받은 약자의 모습으로 그동안의 아름다웠던 추억들까지도 흠집을 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끝까지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그들의 대화가 슬프면서도 참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형은 집착 없는 사랑도 사랑이냐고, 소유욕 없는 사랑도 사랑이냐고 오히려 너무도 담담하고 침착한 서연의 모습에 못내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지만 오히려 이런 서연이기 때문에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기 힘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온전히 내 것이 되어야 하고 내 뜻 데로 움직여 줘야 그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연인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너를 이만큼이나 생각하고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이 희생했는데 넌 나를 위해 한 것이 뭐가 있냐고 서운한 마음을 가득안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지형은 끝내 마지막으로 돌아서면서도 서연이의 마음이 많이 다쳐 아프게 될까봐 내내 걱정하고 서연은 또 그런 지형에게 절대 괜찮을 거라며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담담함... 참으로 감정절제를 잘하는 성숙한 연인들이다. “비겁해서 미안해”“아니, 내가 너무 초라해서 미안해...” 어찌되었든 정혼한 사람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품어온 지형은 아주 나쁜 놈이고 오래 전에 약속된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만남을 이어온 서연도 본인 말대로 뻔뻔한 도둑이다.
지형이 결혼하게 되면 정말 이 사랑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와 함께 한 1년 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심장이 아프도록 몰두해 본적이 없노라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하는 서연을 보며 정말 사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이 여인이 참 마음에 든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되듯이 사랑도 얻을 때보다 잃을 때 보여 지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지녔던 사랑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자신과 헤어진 후 많이 아파할 서연이 걱정되어 친구이자 서연의 사촌 오빠인 재민에게 맞을 각오로 속내를 털어놓는 지형은 어쩌면 말로는 헤어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서연을 마음속에서 내 보내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정리한다고 해도 도저히 정리 안되는 게 사랑인 것을 몰랐단 말인가.
언젠가 헤어질 것을 전제로 한 만남이니까 정리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그 사랑을 이별하고 나서야 본인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이 사랑을 잃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임을 깨달은 이 남자 급기야 어머니께 다른 사람이 있다고 폭탄 고백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서도 양쪽 부모의 뜻과 신뢰 관계를 깰 수 없어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그렇게 현실로 받아들여 왔던 이 남자가 헤어지고 나서야 말 못하던 그 사랑을 어머니께 울먹이며 털어 놓는다. 이 결혼을 막아달라고------- 아 이를 어쩐단 말인가... 헤어지고 나서야 안타까운 그의 사랑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예상이 펼쳐지는 1회였다.
- 겉으로 큰 소리 내지 않아도 온 몸으로 슬픔이 느껴지는 이런 박지형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는 래원 군의 절제된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래원군이 군복무에서 돌아오자마자 쉬지 않고 바로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이 참 기쁘다. 물론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도 있겠지만 래원군에게는 타고난 연기력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배우 김래원을 알게 된 것이 참 행복하다.
첫댓글 긴 모니터 잘 보고있어요~~1회 서연의 의연하려는 모습이 오히려 폭풍처럼 지형을 붙잡네요...향기의 사랑도 부모들의 사랑도 다 골고루 무게를 갖게 그리는 작가라 더 실감이 나요~~
정말 반갑습니다~~ 올웨이즈2011님. 장문에 글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네요.작품 끝나는 날까지 좋은 글 기대할께요~~^^
짜임새 있고 탄탄한 해석글에 든든하게 공감합니다~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완전 공감적인 장문의 모니터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올웨이즈 11님~정말 모니터 감탄 하면서 읽었어요~~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되네요^^
너무 너무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