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방송 현실에서는 작가가 PD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아이템 선정과 취재는 거의 작가가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며 촬영 후 편집을 위한 프리뷰와 편집 콘티를 짜는일도 대부분 작가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작가의 노동력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다.” 구성작가 7년 차인 ㄴ씨가 말하는 구성작가의 현실이다. 만 3년 정도 구성작가를 했다는 ㄱ씨는“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 비정규직의 서글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송을 접으려 한다. 새로운방송을 준비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는데 과감하게 접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만들었다,이건 내 거야, 하는 작은 자부심 하나로는 방송 일을 버티기가 참 힘들다”며 일반 회사의기획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구성작가를 꿈꾸는 많은 여성들은 프리랜서로 알려진 이 직업이 ‘비정규직’의 그늘 아래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왜? 학습지 교사·보험 판매원 등 대표적인 비정규직에 가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 때문에 더 그렇다.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는 제 풀에 지쳐 그만두고 마는 초년생 구성작가들이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D와 작가 ‘갑과 을’ 관계
문제는 구성작가가 ‘정식’으로 대접받는 게 아니라 PD의 업무를 도와주는 정도로 취급되는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구성작가를 7년간 하다가 몸이 버티질 못해 잠시 쉬고 있다는 ㅅ씨는 “흔히 PD와 작가는 부부관계 같다는 표현을 한다. 서로 일하기 편하다는 좋은 점도있지만 그 만큼 일의 구분이 어렵다”며 “야근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고료가 많지도않아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도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작가의 일이 다 그런 거지∼’하고 넘어갈 수도 있으나 처음부터 강도 높은 노동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김옥영 부이사장은 “80년 초반부터 구성작가가 등장했는데 갈수록 작가들 일이 많아졌다.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제작이 정교해지면서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드는 노력이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PD들이 했던 일도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넘어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노동력과 상관없이 작가들의 영역이 늘어난 부분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업무를 알게 되니까 나중에 독립프로덕션을 차리거나 PD 업무에 뛰어드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그 예다.
PD와 작가의 업무 분담이 잘 안 되는 현실에는 구성작가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부이사장은 “구성작가의 대부분이 여성들이고 특히 아침 프로에는 나이 어린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PD들이 부담 없이 일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관행이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업무량이 많아 힘들어하는 작가들이 생긴다”며 “PD들 사이에도 PD의 고유 영역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에 따르면 현재 방송 3사 내에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자가 12.3%에 불과하며 구성 분야에서 일하는 작가들의 약 61%가 경력 5년 이하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구성다큐연구회 문예원 회장은 “PD와 작가가 갑과 을의관계로 자리잡으면서 이런 심리적인 불평등 관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초반에 많이그만두게 된다”며 “작가를 독립적인 자기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언급했다. 능력 있는 사람보다 온순한 사람이 작가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PD들이 많다는 한구성작가의 귀띔도 이를 대변해주는 말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이 협회의 회원 1429명 가운데 여자는 60%지만 각사의 서울 지역 구성작가협의회 회원은 95% 이상이 여성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회원 자격에 달하지못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현실을 봤을 때 실제로 일하는 구성작가들은 90% 이상이 여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PD와 작가의 관계죠. 분명히 동등한 관계임에도마치 명령을 하달 받는 주종관계처럼 인식된 부분이 있다. 이는 PD가 남자인 경우가 많고,나이가 더 많은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 있다.” ㅇ작가의 말은 많은 구성작가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노조’는 어떨까
PD와 작가의 업무 분담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 부이사장은 “방송 제작에 대해 방송사 차원에서 대책이 나와야 하며 업무가 늘어난 만큼, 그리고 역량 있는 작가에게는 그에맞는 대우를 해줘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문 회장은 “90년 들어서 방송의 역할과 구조가 엄청나게 변한 게 핵심이다. 실제로 90년이후 방송량과 외주 제작이 늘었으나 그 내용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력 있는 인력이 적어방송사 안에 일의 분업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분업화는 곧 기능화로 연결되기 때문에제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공이 온전하게 드러나기 어렵다. PD나 작가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게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것과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총체적인 고민을 하지않는 기능인으로 전락해 오히려 방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고자 지난 2001년 8월 마산MBC를 주축으로 한 ‘전국여성노조 방송사지부’가 출범했다. 출범하기 네 달 전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마산MBC 분회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들의 신청을 인정했다. 그 후 올초 고등법원에 이 사안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지만 승소하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방송사 지부 측은 “방송사 지부가 결성되는 과정에서 각 지역 방송사는 단체교섭에 응하지않았으며 작가실을 없애는 등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압력은 방송사 지부 건이 행정소송에 놓여 있는 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그래서 지부를 만들기 전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불합리한 사안에 대해 마음속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 공론화 시켰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 방송작가라는 특성상 ‘노조’는 과도기일 수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 노조’라는 새로운 개념도 생각해볼 만하다. 프랑스에는 주부노조도 있다고 한다.” 방송사 지부 한 측근의 설명은 구성작가를 일반 제조업의 틀에 따라 짜여진 ‘노동자’ 개념에서 좀 더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선망 아닌 이해 필요한 직업
방송 구성작가의 업무가 ‘특수 고용관계’로 분류되기에 노동시간이나 보수에 일반 업종의잣대를 들이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프리랜서’라는 말 그대로 작가의 능력에 따라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히 ‘직업’을 선택해 그에 따른 노동을 하고 있는만큼 그들에게 맞는 노동권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지난해 한국방송작가협회가 내 논 <2002 방송작가를 위한 가이드라인> 내용을 각 방송사가 충실하게 따르는 방법이가장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작가의 책임과 권리, 계약, 업무 영역, 원고료 지급, 작업환경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작가들은 이 가이드라인이 ‘나와 상관없는 현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은 원고료와 불만족스런 대우, 프로그램에 대한 공은작가 몫이 아닐 때가 많다. 막내 작가의 경우엔 거의 시다 대접을 받을 때도 있다. 개편 때만 되면 좁은 구석에서 갈 만한 프로그램은 뻔하기 때문에 눈치보는 게 수많은 작가들의 현실이다”라는 푸념이 더 이상 계속되서는 안될 것이다.
더불어 작가들이 방송사와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조금 더 열려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경우 각사에 구성작가협의회가 마련돼 있으나 지방의 경우에는 방송사 지부를제외하고는 딱히 목소리를 낼 만할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전 지역의 ㅂ작가는 “작가의입장을 이야기할 통로가 없다. 편집국장이라도 바뀔라치면 모든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구성작가가 많이 알려져서 근무환경 잘 모르는 후배들이 너도나도 이일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을 알고선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둘 때가 많다. 우리끼리는 방송 일을 마약보다 더 심한 중독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방송에 대한 동경이라면 정말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그만큼 스트레스와 노동량이 어마어마하니까.” 7년 넘게 구성작가를 하다가 현재 독립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는 ㄴ작가의 진심 어린 말은 방송사와 구성작가 지망생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ㅠ.ㅠ
익히 들었지만, 가슴아품..ㅜ.ㅜ
PD하시던 분이 그러더군요. 작가 잘만나면 PD가 할 일이 없다구. 딱 그 꼴이네요. 작가한테 다 맡기구 PD는 나중에 이름만 올리는 식... 정말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비정규직의 비애...
정말 가슴아픈 현실이네요..ㅠ_ㅠ 괜시리 앞이 막막하기두 하구..정말 이길을 가는게 과연 옳은것인지..회의가 들기두 하구..ㅠ_ㅠ 그래두 우리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