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서쪽 하늘은 항상 모충다리 건너 쌍샘을 불태우며 허기진 배로 다가온다 배달 갔다 일찍 돌아온 소달구지는 약전골목 한켠에서 찐돌이 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저녁 해처럼 하루를 쉬고 있다 공동묘지 길섶에 핀 쑥부쟁이 개망초는 가을 바람에 흔들리며 사연을 전하고 4홉들이 소주병 가득 메뚜기를 잡은 고아원 아이들이 가락에 맞춰 구구단을 외우며 돌아온다 조치원 나가 경부선 타고 서울로 도망갔다가 순경에게 붙잡혀 사흘만에 돌아온 병태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2단과 5단만 정확한데도 기죽지 않고 질러대는 병태의 구구단은 학교에서도 유명하다 운동장 끝에선 고향 앞바다 잔잔한 물결처럼 은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잎으로 이를 닦고 질겅질겅 씹는다 아빠따라 떠돌다 청주까지 왔는데 병태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조문객 중에 병태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 어딘가 사신다는 어머니는 끝내 오지 않으셨다 다도해가 펼쳐진 해남으로 가야 한다고 돈만 벌면 갈거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병태 아버지는 이제 바다없는 청주땅에 묻혔다 살아 이루지 못한 소원은 죽어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병태는 나중에 크면 아버지를 고향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하지만 구구단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의 한 때문에 석교초등학교는 모든 일이 어렵다
첫댓글 어린시절의 병태님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궁금하네요.
아버지의 묘를 해남으로 옮기셨는지. 구구단 어려운 8,9단을 잊어버리지나 않으셨는지.
어머님과의 연은 닿았는지......
당당한 병태님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찐돌리는 공동묘지에서 달 밤에해야 더 재미 있는디
그런 병태를 꽤 많이 봤지요~~
그렇게 그렇게 살아지는 게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