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 제1호 |
1926년 05월 01일 |
放浪(방랑)의 一片(일편), 특이한 결심을 가지고 上海(상해)를 떠나 長崎(나가사키) 大阪(오사카)으로 노동생활을 체험하던 작자의 회상기 太虛 (태허)
강남을 이별하고
강남을 떠난 지 28시간만에 일본의 天孫(천손) 강림지인 九州(구주)의 長崎(장기)에 도착하기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6월 23일 오후 2시경이엇다.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남들과 가티 行李(행리)를 들고 갑판 우로 올라가 역시 남들의 하는 모양으로 우편 승강구 여페(옆에) 노핫다(놓았다).
火輪船(화륜선)이 부두에 닷고(닿고) 梯板(제판:널판지)이 노히자 수명의 경관이 올라오고 승객들은 차례로 나리기를(내리기를) 시작하엿다. 승객들의 면면에는 별로 기뻐하는 빗도 별로 반겨하는 빗도 업시 전차에서 나린 사람들처럼 다만 제 각기 제 갈 대를 향하여 혹은 도보로 혹은 인력거로 혹은 자동차로 다 흐터지고 아무 턱업시 그들만 딸아나가던 나만 홀로 쓸쓸해진 異域(이역)의 부두에 갈 곳이 업시 되엇다.
廉價(염가:싼값,저렴)의 여관
어릿어릿하다가는 조치 못한 일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업서 거트로는(겉으로는) 서슴지 안코 발 가는대로 걸으면서도 속으로는 퍽 방황하엿다. 인력거를 탈 생각도 하여 보앗스나 만일 불행히 고등한 여관에나 가지어다 노흐면(놓으면) 하로도(하루도) 묵지 못하여 두 손금만 남게 될 터이요 그냥 것자(걷자) 하니 짐이 점점 무겁어(무거워)지는 것이 걱정이엇다.
이럭저럭 부두의 構內(구내)를 버서 나서 큰 거리로 들어서는 좁은 도랑 하나를 건너 서려 할 때에 마츰 마진 편에 「めしや(飯屋음식점)」라고 쓴 크다란 간판이 눈에 띄엇다. 그 미테 작은 글시로 「御中食어중식」 운운의 설명이 쓰이어 잇고 硝子窓(유리창) 안에는 여러 가지 반찬 재료가 벌리어 잇는 것으로 보아 틀림업는 음식점임을 알앗다. 들어서면서 爲先(우선) 「가방」부터 한편 길치에 나려 노코(놓고) 식탁을 향하여 안잣다(앉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무사히 일본에 도착이 된 듯하엿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뜻을 말하엿다. 주인은 처음 보는 손님이요 서투른 행동에 적지 안은 의심을 가지는 모양이엇다.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으면서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집이 밥집이엇고 처음으로 일본 잇는 일본 사람을 만나서 처음으로 한 말이 밥에 관한 말이엇다. 「이제부터는 밥을 엇기 위하여 분투를 하여야겟다. 가난한 아편 중독자들의 『아편! 아편!』하다가 쓸어지어(쓰러져) 넘어가는 것이나 성성한 貧者(빈자:가난한 자)들의 『밥! 밥!』하다가 죽는 것이나 결국 마챤가지다」고 생각하엿다.
점심갑슬(값을) 세음하고 그 근처에서 제일 갑싼 여관이 어대냐고 물엇다. 주인은 길거리에 오고가는 행인들만 무심히 바라보면서 「자! 어댈가」할 뿐. 그 겨테서 나를 바라고 섯던 그의 마누라인듯한 여자가 「梅屋旅館매옥여관일걸. 梅屋」하고는 주방문 어구에 서서 또한 나를 치어다 보고 섯는 炊夫(취부:부엌에서일하는남자)인 듯한 사람을 바라보앗다. 炊夫(취부)인 듯한 사람 찬동의 뜻을 표하엿다. 20전어치 팔아주고 넘우(너무) 여러 가지를 요구하기는 미안하엿지만 初行(초행:처음가는길)이라 사정이 사정이엇스므로 인력거를 불러 길을 가리치어달래서 梅屋(우메야시키)으로 갓다.
行裝(행장)의 來歷(내력)
여러 번 짐소리를 하여서 하로나 이틀 후에 무엇하러 일본간 것을 알게 되면 짐가지고 떠난 것을 돌이혀(도리켜) 이상하게 녀길지 몰라 짐이 생긴 까닭을 말할가 한다. 떠나기 전 나의 준비라고는 여비로 말하면 大阪(대판:오사카)까지 가는 연락표를 산 외엔 여유가 업섯고 몸으로 말하면 그때가 여름이엇지만 더러음 아니 탈 검은 옷 한 벌 걸쳣을 뿐이요 아무 것도 아니 가지고 그냥 배에 오를 생각이엇섯다. 그러나 떠나기 2, 3시간 전해서 의외에 내가 떠나가려는 것과 나의 행장이 그러한 것을 알게 된 金(김)군은 行李(행리:여행짐)가 업스면 여관에서 재우지 안는다는 이유와 또 그밧게(그밖에) 다른 이유로 「가방」휴대의 필요를 역설하여 맡지 아니하엿슬 뿐 아니라 몸소 行具(행구) 준비에 착수하엿다. 자기 숙소로 가서 寢衣(침의:잠옷)를 가지어 온다. 李(리)군은 海蔘威(해삼위:블라디보스톡)에서 가지어 오던 보료(담요)를 제공한다. 벼개를 넛는다. 工夫(공부)가는 모양하노라고 몃 권의 책을 넛는다 해서 그리해서 생긴 것이 마치 「노동자 세리오프」의 行李(행리) 그것가튼 그 가볍지 안은 짐이엇다. 짐과는 상관업슨 말이지만 그때에 柳(류)군은 자기의 「가방」을 잡히어 오고 金군은 지갑을 털어서 나의 「폭케트(주머니)」에 너허(넣어) 주면서 「만일 不如意(불여의:일이뜻하지않게잘되지않게)하거든 본국으로 들어가든지 다시 돌아오라」고 하던 것이며 나의 속적삼을 출발 시간 전으로 만드리느라고 車(차씨) 밋(밑) 黃(황씨) 두 여사의 수고하던 것이 생각난다.
旅館主(여관주인)의 첫 인사
여관은 예상하던 것보다 정결하엿다. 2층의 거리로 향한 한편 모통이 방에 자리를 정하고 목욕을 갓다. 탕내에 모혀든 그들의 신체! 비록 신장은 왜소할지라도 그 건전한(건장한) 대는 아니 놀래일 수 업섯다. 그러고 老衰國(노쇠국) 중국인의 신체와 新進國(신진국) 일본인의 신체와는 好對照(호대조:좋은비교대상)라고 생각하엿다. 뿐 아니라 근자에도 누구의 『米國(미국)의 「빼터(버터)」 냄새를 마트면 바보가 된다』는 말을 듯고 나 혼자 속으로 『중국의 마늘 냄새를 마트면 늘어진다』고 생각한 일이 잇섯거니와 누구나 중국 가서 중국인의 어떠케 느린 것을 볼려면 먼저 무슨 池(지) 무슨 池 하는 목욕집에를 차자 가는 것이 첩경일 것이요 그와 반대로 일본 가서 일본인의 얼마나 잰 것을 구경할려면 其 亦(기 역:그역시) 먼저 무슨 湯(탕) 무슨 湯 하는 목욕집에를 차자 가는 것이 첩경이리라고 하엿다.
목욕을 하고 돌아오니까 들어서기가 바쁘게 기다리고 잇섯던 듯이 주인 마느라 하는 말이 『건넌 집 기생들이 와서 당신이 어떤 량반이냐고 뭇더라(묻더라)』고. 건넌 집은 조선 요리라고 쓴 갑판을 부틴 우리나라 사람의 경영하는 요리점이엇다. 저녁밥을 가지고 올라온 주인 마누라 이상스런 어조로 『그 기생들 중에 하나는 꽤 이뿐데 남들은 매음을 한다고 하지만 그럴 리는 업스리라고 생각하노라』는 둥 『그 요리집 주인이 매우 무던하다』는 둥 자기도 『전에 福建(복건) 新嘉坡(신가파:싱가포르) 등지에 작부로 갓섯노라』는 둥 별별 이야기를 하여주나 그런 말이 나의 성욕을 선동해서 동정에 반역을 일으키게 하기에는 아무 힘이 업섯다.
저녁 후에 시가 구경 겸 일감 발견 겸 행길로 나갓다. 街路(가로:길,도로) 일면에 깔린 주먹가튼 조약돌의 어지럽음 그 우로 나막신을 끄을며 뻘건 두 다리를 들어내어노코 것는 사람들의 七顚八倒(칠전팔도: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음)불에 태운 널쪽으로 된 집집들의 시컴언(시커먼)벽 구멍이 군데군데 뚤허진 창호... 눈에 보이는 어느것 하나 殺風景(살풍경)으로 보이지 안는 것이 업섯다.
직업소개소로
해안으로 나서서 한 곳에 니르니까 크다란 글시로 「男女口入所남녀구입소」라고 쓰고 그 아래에 작은 글시로(글씨로) 소개하는 직업의 종목을 열기한 간판 부틴(붙인) 집이 잇섯다. 간판과 마챤가지로 남녀를 물론하고 노동자로서 할 일은 무엇이나 소개하는 집이엇다. 출입구에 걸친 때무든(때묻은) 포장을 들치고 한 발을 들이어 노핫다(놓았다). 그때에 나타난 내부의 광경은 참말로 놀랄 만 하엿다. 깨어지고 찌글어지고 더럽어진(더러워진) 가구며 누추한 의류가 사방에 흐트러지어 엇는(있는) 것이 살인 강도나 들엇던 집 갓고 그러치 안으면 살인 강도의 소굴도 가타서 한 말을 마저 들이어 노흘 용기가 나지 안핫다. 돌아서 나오려고 하다가 그러타 만일 나의 수상한 행동이 나에게 불행을 주는 구실을 짓게나 안될가 두렵어(두려워) 돌아서던 그대로 서어서 「곰방와(저녘인사)」를 불럿다. 두 서너번 불러서야 안으로서 발소리가 들리고 여자 하나가 나타낫다. 그의 엉성한 머리 뼈만 남은 창백색의 얼골 남루한 옷! 안즈면서(앉으면서) 방바닥에 되는 대로 노혓던 담배ㅅ대를 잡아 단기어 담배를 부티면서 나의 말에 대답이 『불경기가 되어서 일자리라고 도모지(도무지) 업고 배ㅅ간 일이 잇대야 할레 1원 10전이나 바다(받아) 가지고는 그날 밥갑도 못되는 터인즉 여긔서 얼마 멀지 안은 高島(고도:다카시마)라는 섬에 가서 석탄 광부 노릇을 하는 것이 조흘(좋을) 터인데 그리할 터이라면 渡船費(도선비:배삯)며 그곳 가서 한 달 동안 먹을 것은 내 집에서 대여할 터이니 어떠냐』고 그러고 또 하는 말이 『누구던지 한 번 약속을 하고 그곳으로 간 후에는 적어도 석달 안으로는 그만 둘 수가 업다』고 나는 『다시 더 생각하여 보겟노라』 하고 얼픗(얼핏) 밧그로(밖으로) 나왓다.
그들도 그러한 마녀의 毒牙(독아:독이든이빨)에 한 번식 걸렷섯스리라고 생각하고 몸을 솟으라치엇다(소스라치게 놀랐었다). 그 다음 그 다음 다음 집도 男女口入所(남녀구인소:직업소개소)이엇고 또 그 담 담 집도 역시 가튼(같은) 집이엇다. 그 집들은 모도 첫 집 모양으로 마굴 갓고 그리로서 마녀들이 나를 잡으려 뛰치어 나오는 듯 하여 걸음을 재우치어 梅屋으로 돌아갓다.
「... 마시오 마시오 넘우도 그리 마시오...」 공연히 맘이 산란하엿다. 건넌 요리점에 손님도 업는 듯 한데 내가 그리로 향한 창을 닷치고 전등을 끄자 그런 노래 소리가 들리어 오는 것은 무슨 의미나 잇는 듯 하엿다. 이틀 동안이나 船中(성중:배 안)애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여서 몸과 정신은 피곤할 대로 피곤한데 벼록조차 깨물어서 잠을 일울(이룰) 수가 업섯다.
鄕愁(향수)! 鄕愁(고향생각)!
다시 일어나서 불을 켜고 닷쳣든 창을 열어 젯치엇다. 물론 아직도 初(초:처음,이른)애진이엇다. 흐리-ㅅ한 하늘에서는 금시 비나 나릴 뜻 하엿다. 압서(앞서) 口入所(구입소)에서 겁을 집어먹고 뛰쳐 나오던 생각을 하고 웃엇섯다. 泰山(태산)을 끼고 北海(북해)를 뒬 것(뛸것) 가튼 구든(굳은) 결심은 2층 양옥 속에서 부드럽은 침대에 망사 蚊帳(문장:모기장)을 치고 그 안에 누엇을 적에나 생길 것이엇지 실제에 들어서는 一分(일푼)의 가치도 업는 듯 하엿다. 자리를 거더(걷어) 한편에 밀어 노코 사환(사원:일하는) 아이를 시키어 조선 요리집 주인을 불럿다. 얼마 후에 한 50세 가량 되어보이는 日服(일복:일본옷) 입은 늙은이 한 분이 들어오면서 공손히 예를 하고 3, 4차 권해서야 방석을 밀어 노코 맨 「다다미」 우에(위에) 꿀어(꿇어) 안자서는 『미처 차자(찾아)뵙지 못하여서 대단히 안되엇다』고. 그의 말을 물으면 그는 『황해도 사는 黃元甫(황원보)로 아들 놈이 돈을 가지고 와서 영업이라고 시작을 한 것인데 어떠케나 되어 가는지 궁금도 하고 해서 딸아(따라) 건너 왓슬(왔을) 뿐이오 몃 달 되지 못할 뿐더러 일본 말을 도모지 못하므로 이곳 형편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엇다. 그러고 長崎(장기:나가사키) 바닥에 동업(같은 업종일)이 7, 8처나 잇서도(있어도) 서로 시비질이나 할 뿐이라는 것 외에 알고저 하던 바는 허사로 둘아가고 말앗다.
長崎의 밤은 기펏다. 하늘과 땅 새는 깍 찝으려졋다. 고요해졋다. 맘도 찝으러지고 아무 희망도 아니 낫다. 이따금 멀리서 들리다. 살아지곤(사라지곤) 하는 나막신 끄는 소리는 까닭 업시(없이) 맘을 더 한층 괴롭게 하엿다.
『강남으로! 강남으로!』 어떠면 밝은 날은 다시 오던 길을 밟게 될는지 모르리라 모르리라 하면서 꿈 속으로 들어갓다.
아프로(앞으로)! 아프로!
이튼날은 전날 밤엔 상상치도 못하엿던 好日氣(호일기:좋은날씨)엿다. 구름 한 점 업는 푸른 하늘이며 쟁글쟁글하는 해ㅅ벼테(햇볕에) 「아프로! 아프로!」나는 새 희망에 다시 살아낫다.
차 시각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좀 남앗섯다. 그래서 시가와 항구의 전경을 굽어 보려고 뒤ㅅ 산으로 올라갓다. 일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長崎는 풍광의 미와 기후의 溫(온:따뜻한)과 물가의 廉(렴:맑음)으로 外人(외인:외국인)에게 『세계의 낙토라』는 稱(칭송)을 밧는 터이다. 하로 밤 사이에 기후가 溫(온)한지 물가가 廉(렴)한지는 알 수 업는 일이였지만 푸르고 잔잔한 바다를 안고 丘山(구산:언덕과 산)의 삼면을 두르고 잇는 것이라던지 灣口(만구:만의입구)에 올속볼속 소사(솟아) 잇는 島嶼(도서:크고작은섬)라던지를 보면 소위 瓊浦(경포:長崎나가사키를칭함)의 풍광만은 稱嘆(칭탄)하지 안을 수 업섯다. 하여간 長崎로 말하면 300여 년 전에 소위 南蠻船(남만선)이 처음으로 投錨(투묘:닻을내림)한 항구로 德川(덕천가강) 鎖國(쇄국) 이후에도 이곳만은 예외엿섯던 까닭에 외국 교통의 유일한 문호로 서양의 문물 소식은 모도 이 곳을 경유하여 일본에 들어온 셈이라고 한다. 근일에 와서는 소위 不逞分子(불령분자:불순분자)에게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 비슷한 사실이 흔히 잇는 모양이다고 생각하엿다. ▼浦개 포〔개(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물가;바닷가)〕▼南蠻(남만: 중국 남방의 제 민족을 일컫던 말)
돌아나리어 오다가 산 中腹(중복(산중턱)에 공사 중에 잇는 저수지에서 흙을 파서 운반하고 잇는 여성 노동자들을 보고 놀래엿다. 중국에도 여자 노동자가 만타(많다). 농부와 직공은 말하지 말고라도 船婦(선부:뱃일하는녀인)라던지 변기 掃除婦(소제부:청소부)라던지. 그러나 내가 長崎에서 본 그네들 가티 그러케 당가래를 들고 흙을 파 내며 擔架(담가:들것)로 그것을 운반하는 그러한 노동을 하는 여자가 잇는 것은 보지 못하엿다.
도처의 白衣群(백의군)
長崎를 뒤에 두고 차중의 객이 되엇다. 3등 차체에는 적색선을 그엇다. 나는 처음으로 보는 것이엇다. 그리고 그 끄테(끝에) 3등이라고 丁寧히(정녕:조금도틀림없이) 써 잇다. 1등이나 2등을 타려는 승객들은 모름직이 이 적색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차창으로 바라뵈는 일본의 산에는 수림이 무성하엿다. 손 때가 반질반질 도는 것 가탓다(같았다). 어떤 산은 거의 山頂(산정상)까지 계단상으로 돌담을 싸고 논을 만들엇다. 땅이 좁은 줄 알앗다.
이런 공상 저런 공상을 하고 잇는 동안에 차는 門司〔모지:후쿠오카현(福岡県) 키타큐슈시(北九州市)의 지명〕에 다핫다. 30여 년 전까지는 蜑戶五三 (단호오삼:5~3가구)미미하게 연기를 퓌우고 잇던 적막한 한 개 어촌이엇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업는 꽤 큰 도시다. 下關(하관:시모노세키)으로 건너갈 사람들은 대합실로 모이어 들엇다. 어느 차실에 탓섯던지는 알 수 업스나 보지 못한 조선인 남녀 5, 6명이 보퉁이를 안고 한편 구석에 몰리어 서 잇섯다. 일행은 아닌 듯 한데 아마 외양만 보고 한데로 몰린 모양이엇다. 보퉁이들은 퍽 큰데 놋치도(놓치도) 안코 뷘(빈) 자리가 만흔데(많은데) 안지도(앉지도) 안코(않고) 그냥 들은 채 서서 단 두 세 사람만이 동시에 음즉이어도(움직여도) 개찰 시간이나 안되엇나 하는 듯 나가려다가는 다른 만흔 사람들의 前(전)대로 잇는 것을 보고는 또한 不斷(부단:끊임없이)의 주의와 불안한 상태로 섯던 자리에 서 잇섯다. 그 중에는 육순이나 되어 보이는 노인 한 사람도 잇섯다. 맨 상투머리에 밀집 갓을 썻고 큰 주머니 달린 허리띄가 불두덩(생식기부근)까지 나려가서 복부가 대부분 들어 낫고 벗은 발에는 「고무」신을 신엇슬(신었을) 망정 풍대한 몸집과 휘날리는 백발의 당당한 風神(풍신:풍채)은 뭇 사람의 주의를 끌엇다. 수염이 3척이라도 먹어야 량반이란 말도 잇지만 어대(어디) 가서 무엇을 하다가 어대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업섯다.
門司(모지)에서 大阪(대판:오사카)으로
門司를 떠난 연락선은 한참만에 下關(하관)에 다핫다. 下關은 일명 馬關(마관). 馬關이라면 누구나 距今(거금:지금으로부터) 31년 전 4월 17일 淸國(청국)의 李鴻章(리홍장) 일본의 伊藤陸奧(이토오리쿠오쿠)가 이곳에 모이어서 체결한 講和條約(강화조약) 즉 『1. 조선의 독립을 認(인증)할 事(일) 2. ...』 운운의 「馬關條約마관조약」을 연상하리라 한다.
겨우 60년도 채 못되는 이전에 소위 攘夷(양이)의 조칙을 밧들어 이곳을 통행하는 외국 군함을 포격하고 英(영국), 佛(프랑스) 米(미국), 蘭(네델란드) 4국의 연합 함대의 내공을 당하던 일본의 발전도 놀래일 만하다 하겟다.
역에서 東(동쪽), 龍山八幟宮(류잔하치노미야)엔 豊太閤(풍태합:풍신수길)이 소위 조선 정벌시에 가지어 온 조선 蘇鐵(소철)이 잇다 한다. 남방 豊前(풍전:푸젠)과의 사이엔 豊太閤(수길)이 征韓(정한)의 際(제:즈음)에 船頭明夕(선두명석:뱃머리에서뱃길에밝은) 與治兵衛(요지베에)가 그 승선을 언저 위해를 가하려다가 파살되므로 하여 이름이 생긴 與治兵衛岩(요지베에바위)이 잇다. 東(동)의 蘇鐵(소철) 南(남)의 與治兵衛岩(요지베에암).
◆蘇鐵(소철): 철수(鐵樹)·피화초(避火蕉)·풍미초(風尾蕉)라고도 한다. 중국 동남부와 일본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제주에서는 뜰에서 자라지만 기타 지역에서는 온실이나 집안에서 가꾸는 관상수이다. 높이는 1∼4m로 원줄기는 잎자루로 덮이고 가지가 없으며 끝에서 많은 잎이 사방으로 젖혀진다.종자는 길이 4cm 정도이고 편평하며 식용한다. 원줄기에서 녹말을 채취하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물에 우려내야 한다. 철분을 좋아하며 쇠약할 때 철분을 주면 회복된다는 전설이 있어 소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철 [Sago palm, 蘇鐵]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東京(동경)행 열차는 곳 떠낫든 줄 안다. 나의 타고 잇는 車間(열차칸) 안에 재봉기계로 만든 하얀 옥양목 袴衣(고의:남자의바지 저고리) 적삼을 입은 20내외의 청년 세 사람이 한편 끄테 모여 안고 잇섯다. 가지(런하게) 깍근 머리에는 갑싼 「캡」을 썻고 발에는 양말에 집석이(짚신의방언)를 신엇다. 아는 사람이 잇서(있어) 오라고 해서 가노라고. 차표를 뵈면서 거긔 쓰인 곳으로 가는데 「어대서 바꾸어 타느냐」고 나에게 물으나 나 또한 초행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물엇다. 바꾸어 탈 곳을 지내엇다. 그러나 姬路(희로:히메지)역에서 바꾸어 타도 가려고 하는 鳥取(돗토리)로 갈 수 잇다고 해서 안심하엿다.
그들은 姬路(히메지)역에서 나렷다. 다른 승객들도 만히 나리엇고나 다들 나아가고 그들만이 「플래트폼」에 남아 잇서 어쩔 줄을 몰라하엿다. 개찰구 바로서 흑색 「유니폼」 입은 역원 한 사람이 그들을 향하고 왓다. 우리의 차는 떠낫다.
驛前(역전)의 희비극
이튼날 오전 10시경에 차는 大阪 梅田(우메다)역에 다핫다. 또한 日氣(일기:날씨)가 淸朗(청명)하엿다. 경쾌한 기분으로 역전 광장에를 나섯다. 뒤밋쳐 우리나라 사람 4, 5인이 惶㥘(황급)히 뛰어 나온다. 혹은 옥양목 袴衣(고의) 적삼에 집석어 혹은 갈포 袴衣 적삼과 「토리마」周衣(주의:두루마기)에 「고무」신 머리에는 모도(모두) 「캡(모자)」 이런 차림차리의 청년들이엇다. 그들의 입은 적삼의 얼마나 짧고 작앗슬(작았을) 것과 袴衣(고의)의 얼마나 길고 컷슬 것과 두루막이의 그 긴 여행 중에 얼마나 국키고(구기고) 쪼그라젓섯슬(쭈그러들었을) 것은 상상에 맛기거니와 정거장 안과 밧글(밖을) 안고 뒤던(뛰던) 만흔(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이 불안과 공포에 눈을 휘두르며 헤매이는 「죠-센징」(조선인)우에로(위로) 모엿다. 이 모양을 본 인력거부들은 무슨 먹을 알이나 생겻다는 듯이 뎀비어(덤벼) 들어 그들의 팔을 붓들고(붙들고) 각기 제 차를 향하여 끌엇다. 의외의 변을 만난 청년들은 웬 영문을 몰라 서로 치어다보며 머무적거리기만 하엿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호ㅅ주머니 속에 손을 너허 무엇을 부스럭서리더니 돌돌 말린 봉투 한 장을 끄어 내어 걱구로(거꾸로) 펴어 들고 車夫(거부:인력거꾼)들에게 보이며 거긔 쓰이어 잇는 주소로 간다는 뜻을 조선 말로 형용햇다. 車夫들도 눈치만은 채인 모양이나 그 글시를 알아보는 사람은 업는 듯해서 서로 가락 빼앗아서 읽어 보려고도 애를 쓰고 어떤 車夫는 더퍼노코(덮어놓고) 타라고만 성화가티 재촉하엿다. 그럴 지음에(즈음에) 멀리서 이리로 향하고 빨리 오는 사람 하나가 잇섯다. 머리에는 「캡」 몸에는 「앗즈시」라나 하는 무릅에 달락 말락하는 일본 두루막을 걸쳣고 양말은 내의 우으로(위로) 무릅까지 치신엇고 그러고 「후까고무」 구두를 신엇다. 가까히 이르러 車夫들을 헤치고 들어서며 그 봉투를 빼앗아 한참이나 물끄럼이 보고 섯더니 대강 짐작하엿다는 듯이 點頭(점두:머리를끄덕임)를 하고 일면 전차 정류장을 가리치며 어느 방면으로 오는 전차를 타고 어대 가서 나려서 어떠케 어떠케 가면 된다는 것을 설명하여 가면서 일면 청년들의 손을 잇글엇다(이끌었다). 그는 조선 사람이엇다. 입대지 날뛰던 車夫들은 승낙을 아니할 형세 충돌이 생기엇다.
나는 더 보고 십지(싶지) 안아서(않아서) 광장을 이리 저리 배회하엿다. 얼마 후에 그들은 전차를 탓다. 「나는 어더케 하나?」
府立(부립)소개소
그러고 잇슬 때에 마츰 어깨에 「大阪오사카안내」라고 쓴 띄를 걸치고 손에 한뭉치 「大阪지도」를 들고 배회하는 일본 사람 하나를 만낫다. 얼결에 직업 소개소가 어대 잇는가고 물어 보앗다. 그것은 차중에서 신문을 읽을 때 어떤 기사 중에서 그런 문구를 보앗던 것이 우연히 머리 속에 남아 잇다가 나온 것이엇다. 그는 친절하게 광장 한편 구석에 잇는 「府立梅田부립히메지직업소개소」란 현판 걸린 집으로 인도하엿다. 그 안에는 벽으로 죽 돌아가면서 적색 「잉크」로 겨테다(겉에다) 點(점) 혹은 圈(권:동그라미)을 그린 각종의 노동자 모집 광고가 부터(붙어) 잇섯다. 맥주 공장의 200몃 명 제방 공사장의 100몃 명 모집이 최고요 其外(그외)에도 몃 십명식 모집한다는 것이 그 우에 쓰이어 잇섯다. 그 안에는 나 뿐 아니엇다. 나 모양으로 직업을 구하러 온 사람이 무려 40명은 되엇다. 거의 발을 옴기어(옮겨) 노흘(놓을) 틈이 업섯다. 더러는 원서에 무엇을 쓰고 잇고 더러는 손가락을 깨물어 가면서 모집 광고에서 모집 광고로 시선을 옴기고 잇고 또 더러는 용지를 손에 든 채 소침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서서 잇섯다. 나도 안내인의 가르쳐 주는 대로 원서 한 장을 어더 가지고 쓰려고 하는데 어떤 조선 사람 하나가 들어와서 잠간만 밧그로 나가자고 하엿다. 그 사람은 가지 수만 채운 양복을 입엇고 어깨에는 적색 바탕에 백색으로 「조선인협회 총본부 매전 안내게」라고 쓴 띄를 매엇다. 그 덜령거리는 짓이 아마 기차 도착시간에 늣게 나와서 아까 그 안내인에게 나의 말을 들엇던 모양. 하는 말이 『다른 일이 아니라 얼마 전에 朝鮮人協會(조선인협회)가 생기어 가지고 일본인 직업소개소의 불공평한 처사와 조선 사람 노동자의 불편한 점을 면케 하기 위하여 조선 사람의 직업을 소개하기로 하엿스나 교섭이 원만치 못하엿다』 그러고 또 무에라 무에라 어물어물하고는 『여하간 다시 들어가서 원서를 내이되 나는 보지 못하엿노라고 하라』는 것이엇다. 『무슨 낫가리우고 아웅하는 짓인고』 하면서 그러마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갓다. 원서의 장기, 연령, 신분, 학력, 원적, 소요직업 등 공란을 매워서 밧쳣다. 現住(현주소)에는 그냥 大阪이라 하고 所願(소원)에는 맥주 직공으로 하엿다. 그것을 바다 드는 係員(계원)은 비웃는 얼골로(얼굴로) 『그런 것도 못하는 꼴에...』하면서 가서 기다리고 잇스라고.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매우 不恭順(불공손:불친절)하엿다. 소위 朝鮮人協會라는 것과 조치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잇는 줄로는 추측할 수 잇섯지만 언어도 不通(불통)하고 일본 사람가티 허리를 굽실할 줄도 모로는 무식한 朝鮮사람 노동자들은 중간 기관이라도 잇기 전엔 多大(다대)한 불편과 不利(불리)를 感(감)할 것 가티 생각되엇다.
朝鮮人協會로
할 일 업시 다시 나아와 정거장으로 가서 「가방」을 차자가지고 梅田案內係(히메지안내계)의 가리치어 주는 대로 南區(남구) 板屋橋長堀「ビルチング」內 朝鮮人協會 총본부로 차자갓다. 본부는 그 「뷜징」의 우층 한 족으마한(조그마한) 방이엇다. 전화며 선풍기가 노혀 잇고 몃 종의 신문이 걸리어 잇고 마루 바닥 우에는 「사이다」와 空甁(공병) 빙수 담앗던 「컵」 「우동」그릇 가튼 것들이 흐트러져 잇고 의자 우에는 머리에 기름이 즐즐 흐르는 양복 입은 신사들이 경박한 웃음을 먹음고 여긔 저긔 벌리어 안잣다. 그 방 안에 내가 들어 섯다. 내 손에 든 「가방」 그것이 비록 낡기는 하지만 그래도 순 舶來品이요 풍태는 비록 방랑자의 그것이지만 그래도 양복에 안경을 낀 것을 나로 하여곰 다시 의식하게 하리만치 나를 본 그들은 별안간 시침이들을 떼이고 威儀(위의:무게있는거동)를 가초려는(갖추려는) 듯 하엿다. 그러고 저들의 가지고 잇는 최고의 권리를 행사함에 가치잇는 대상을 비로소 만나엿다는 듯이 반명령적으로 안기를 요구하며 지필과 의자를 들고 가까히 모이어 들엇다.
결국 나의 사건은 인사부장이 처리하여야 할 성질의 사건이라 하여 다 물러나고 北京 (북경)등지에도 다닌 일이 잇섯노라는 인사부장과 니야기를 하게 되엇다. 그러나 또 결국 나의 사건은 「상담역」과의 상담을 거치어서 소개부장에게로 가야할 성질의 사건인 것이 판명되엇다. 그런데 일이 공교히 될 때라 그 「상담역」도 출석을 아니 하엿고 그 소개부장도 결근을 하여서 안자 기다리지 안으면 아니되게 되엇다
인용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네이버,다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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