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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강을준 감독이 신선우 감독에 이어 창원 LG의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사진 정태도) |
프로농구 창원 LG는 올 시즌 내심 우승을 노렸다.
신선우(52) 감독은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여서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LG는 특급선수는 없지만
현주엽(33,195cm),
조상현(32,189cm) 등 수준급 국내선수에 외국인선수 오다티 블랭슨(25,194cm)과 캘빈 워너(28,196cm)를 영입해 시즌을 준비했다.
다른 팀들에 견줘 평균 키가 작고 슈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신감독 특유의 조직 농구를 고려하면 무시 못할 전력이었다.
LG는 올 시즌 중반까지 순항했다. 안양 KT&G,서울 삼성,전주 KCC와 함께 2위 다툼을 했는데 정규시즌 후반이 좋지 못했다.
마지막 4경기를 내리 지는 바람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 자격을 얻을 수 있는 2위 경쟁에서 멀어졌고 결국 29승25패로 6위가 됐다.
상대전적에서 인천 전자랜드(29승25패)에 밀렸다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
그러나 노련한 신감독이 6강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만나기 위해 전략적으로 6위를 노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2위 경쟁을 하느라 쓸데없이 힘을 빼는 것을 피하고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삼성과 벌인 6강 플레이오프는 신감독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1차전에서 91-94로 진 데 이어 2차전도 90-96으로 내줘 탈락했다.
신감독은 2005년 5월 KCC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LG 지휘봉을 잡았다. 팀을 맡은 첫 시즌 26승28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32승22패로 2위를 차지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올 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2연패하면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감독의 후임으로 대학 코트에서 잔뼈가 굵은 명지대
강을준(43) 감독이 결정됐다. 강감독 스스로 “(프로팀 감독 자리가 내게)올 줄 몰랐다”고 말한 것처럼 LG의 새 감독 선임은 전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강 신임감독은 4월 17일 현재 서울 방이동에 있는 LG 농구단 숙소가 아닌 경북 김천시에 있었다.
2008년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 출전한 명지대 선수들을 이끌기 위해서다. 프로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번 대회를 마무리하겠다는 강감독의 뜻을 LG구단이 받아들였다.
강감독은 4월 11일 LG와 계약기간 3년에 연봉 2억5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대학농구가 열리고 있는 김천체육관에서 강감독을 만났다.
프로팀을 처음 맡게 됐다. 소감은. 아직 얼떨떨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급하게 결정된 일이고 학교(명지대)일도 있고 해서 정신이 없다.
LG 감독을 맡게 될 줄 정말 몰랐다. 아직 LG 선수들과 상견례도 못 했다. 이번 대회를 마친 뒤 할 예정이다. 주위 분들이 프로로 가게 돼 잘 됐다고 하시는데 명지대 선수들과 박상관(39) 코치에게 미안하다.
감독 결정이 빨랐다. LG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내게 감독직을 제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서 그런 말도 없었기 때문에 눈치를 챌 수 없었다.
삼일상고에서 뛰고 있는 유병훈(19,190cm)을 보기 위해 2008년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농구대회가 열린 군산에 가 있을 때 LG 관계자가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다. 국회의원 선거일을 하루 앞둔 4월 8일이었다.
그 관계자는
송창무(25,205cm)때문에 잠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산에 와 있다고 하자 그쪽에서 내일(4월 9일)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통화에서 감독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나. 아니다. 처음 통화한 날 전화를 끊고 (송)창무 때문에 걱정이 됐다. 창무는 명지대에서 지도했던 선수라 특별히 생각하고 있었다.
“왜 창무 문제 때문에 나를 보자고 했을까”,“이 녀석이 무슨 문제라도 일으켰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 LG구단 관계자와 만났다. 제자를 프로에 보낸 대학 감독들은 팀 관계자가 왠지 신경이 쓰인다(웃음).
창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자리에 LG 구단 단장도 와 계셨다. 그때 단순히 창무 때문에 나를 부른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계속 대화를 했는데 “팀을 맡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지대 선수들과 신선우 감독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신감독은 농구 선배로 평소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인데 내가 신감독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계약하기로 결정을 했나. LG구단에서는 선수단 일정을 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른 시간 안에 답을 달라고 했다. 집에 가서 아내와 상의를 했다.
그전부터 프로팀에서 코칭스태프에 참여해 달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때마다 명지대 선수들을 생각해 프로행을 망설였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밤새도록 고민했다.
신감독께 이 일을 알리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때는 통화가 안 됐다. 아내는 프로팀을 맡는 것에 대해 찬성을 했다. 명지대를 맡은 지 올해가 9년째라 애정이 많이 쌓였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LG구단 관계자는 다음날 오전 10시에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했다. 감독을 맡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한 뒤 다음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마침 오전에 체육학과 학장님이 주최하는 회의가 있었다. 회의 중에 전화가 왔는데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30분 뒤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LG구단에서 계속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걸어 감독을 맡겠다고 했다. 명지대가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합류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이해했다.
신감독과는 4월 12일 통화를 했다. 내게 잘된 일이라면서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여전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프로팀에서 코치나 감독 경험이 없는데. 아마추어팀에 있다가 곧바로 프로팀 감독을 맡은 경우는 김태환(58) 전 SK 감독, 진효준(53) 전 고려대 감독 등이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 가운데에는 KCC 허재 감독이 있다.
허감독은 TG(현 동부) 시절 플레잉코치로 뛴 경력이 있으니까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팀 감독을 맡은 경우는 내가 세 번째로 알고 있다. 많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LG 감독 선임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축하전화가 많이 오는데 축하인사는 이제 그만 받겠다(웃음). 축하는 짧게 받을수록 좋다.
이제부터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프로경험이 부족해 걱정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구단에서 감독을 맡은 지 2년 안에 우승을 해달라는 등 구체적인 조건을 걸었다면 오히려 부담이 덜 했을 것 같다.
LG는 일단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기대에 맞게 팀을 바꾸는 게 내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평소 어떤 내용을 강조하는지.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내용은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선수로서 자세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2000년 명지고를 떠나 명지대에 왔을 때 명지대는 1부 대학에서 최하위권 이었다.
선수들은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고 B급으로 평가받는 고교 졸업반 선수들도 우리팀에 오지 않으려고 했다. 선수들은 “뛰면 무엇하나. 매번 지는데”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질 때 지더라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뛰게 했다. 20,30점 차로 뒤져도 마지막 1초가 남아 있을 때까지 설렁설렁 뛰지 말라고 지시했다.
연습을 많이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선수들에게 “코트에서 포기하면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모든 것을 쉽게 접게 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프로는 학생 선수들과 다르다. 그것을 잘 알아야 한다. 프로 선수들은 이미 기량이 검증됐다. 프로선수들에게 “실력이 모자라다”,“더 배워야한다”는 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프로선수로서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대학팀을 맡고 있을 때 선수들과 회식을 종종 했다. 선수 개개인을 파악하기 위한 자리였다. 선수들은 지도자를 믿어야 하고 지도자는 선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팀이 굴러간다.
선수로 뛸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조금 일찍 은퇴했다. 양쪽 무릎을 모두 다쳐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 1995년 은퇴를 결정했는데 당시 소속팀인 삼성전자에서는 2년 정도 더 선수 생활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은퇴)결정을 내릴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선수 때는 많은 관중 앞에서 뛰는 게 즐거웠다.
그 무렵 농구대전치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기아자동차나 라이벌 현대전자(현 KCC)와 경기에서 이기면 하늘을 찌를 듯이 기뻤다(웃음).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게 없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 농구공이 굴러 다녀서 친구들과 공을 갖고 장난을 쳤는데 그걸 보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농구를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농구를 하게 됐다. 싱거운 이야기인가(웃음). 현역 시절 키가 작은 센터로 알려졌는데 파워포워드로 많이 뛰었다. 키가 작아 기아자동차 센터 한기범(44,207cm) 형을 수비할 때 무척 괴로웠다.
(한)기범이 형이 자세를 낮추면 팔꿈치가 계속 내 얼굴에 부딪혔다. 그래서 서로 목소리를 높인 적도 있는데 경기가 끝나면 다 푼다.
기범이 형은 이해해 달라고 했고 나는 “형, 제발 팔꿈치를 좀 더 위로 들고 수비해요. 자꾸 그러면 진짜 화냅니다”라고 말했다. 농구를 함께 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되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 감정은 없다.
지도자로 활동할 때는 어땠나.은퇴한 뒤 처음 맡은 명지고 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때는 지도자 경험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명지대 때는 팀을 맡은 뒤 처음 2연승했을 때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모교인 고려대전에서 이겼을 때 장면이 생생하다. 2연승한 것과 고려대를 이긴 게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이른 질문이겠지만 LG의 새 감독으로 다음 시즌 목표는. 아직 선수들과도 만나지 못해 뭐라고 말을 할 상황이 아니다. 팀에서 나를 필요로 한 건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선수들과 재계약 문제, 트레이드로 선수를 데려오는 문제 그리고 외국인선수 선발 등 결정해야 할 게 꽤 있고 코칭스태프를 새롭게 구성하는 문제도 있다.
일단 명지대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다친 선수들이 많아 동계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걱정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예선에서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데 선수들에게 그래도 6강에는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코치에게 많은 짐을 떠넘긴 것 같다.
강을준 감독
생년월일 l 1965년 9월 23일
출생지│경남 마산
신체조건 l 190cm/83kg
학력 l 마산 산호초-마산동중-마산고-고려대
경력 l 1989~1995년 삼성전자 농구단(현 서울 삼성 썬더스) 선수
1996~1999년 수원 삼일상고 농구부 감독, 서울 명지고 감독
2000~2008년 명지대 농구부 감독
1998년 청소년대표팀 코치
2001년 국가대표팀 코치 SPORTS2.0 제 100호(발행일 4월 21일) 기사
김천=류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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