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호의 행복편지]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
쉼없이 달려온 인생길을 어느 날 문득 멈춰,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는가? 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만 행복한 삶을 사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될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래전 ‘박시호의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에서 95세 어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 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내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작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의 꿈을 끝까지 실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중간중간 고비가 생기고 그 고비를 넘기며 생각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면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꿈은 자꾸 도망가기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게 되지요.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목 황순원 선생님이 열일곱 소년 시절에 쓴 <나의 꿈>이라는 시를 보면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꿈 꿈! 어젯밤 나의 꿈. 이상한 꿈을 꾸었노라.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 심으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 언제든 잊지 못할 이 꿈은 깨어 흩어진 이 내 머리에도 굳게 박혔노라. 다른 모든 것은 세파에 스치어도 나의 동경의 꿈만이 존재하나니 이와 같이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도전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꿈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도전하는 삶보다는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는 삶보다는 도전하는 삶이 더 행복하기에 은퇴 후에도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행복편지는 제2의 인생 ‘실버 라이프’를 열심히 살고 있는 그런 분 중의 한 분인 김무일씨의 이야기입니다. 김무일씨는 1943년 중국 심양에서 독립유공자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해병대 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1966년 해병 장교로 임관한 후 애기봉과 임진강이 연하는 최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다가 월남(지금의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에 뛰어들기 위해 파월선에 올라 월남 다낭항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월남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는 월남전에서 청룡부대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살아 돌아온 후 그룹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서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노사분규를 해결하며 노사안정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는 회생불능 업체를 살려내는 등 늘 직원들과 함께하는 리더로서 활약했습니다. 그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였고 땀으로 얼룩진 과정을 겪은 청장년 시절을 보냈으며, 기업에서 은퇴한 후에도 쉬지 않고 제2모작의 인생을, 서양화가로 그리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지난해 말, 월간 《문학저널》 문인회에서 수필부문과 시부문에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68세의 늦은 나이에 문단에 등단하여 작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근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라는 서화집을 출판하는 등 제2의 인생 ‘실버 라이프’를 아름답게 즐기고 있습니다. ‘박시호의 행복편지’는 김무일 작가의 서화집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에 실린 월남전 이야기를 기록한 <빛바랜 소대장 비망록>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마블 마운틴(Mable Mountain)의 추억’
‘Mable Moutain’은 베트남 중부도시인 ‘Da Nang’과 ‘Hoi An’시 중간쯤에 위치한 해발 180여m의 돌산으로,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명승지이다. 평야지대와 열대림 가운데 우뚝 솟아 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곳엔 신비스러운 종유굴과 그 속에 오행사라는 고찰이 함께 있어 이곳 원주민들에겐 오래전부터 이어온 신앙과 영험의 성지이기도 하다. 금년은 자유 월남이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월남 패망 제4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과 전쟁의 비극을 몸소 겪었던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월남전은 온 천지를 진동하던 전폭기의 금속성과 ‘코브라’헬기의 둔탁한 회전음, 밤공기를 뒤흔들던 폭발음과 사방에 불 밝히던 조명탄, 어디선가 벌어지던 간헐적인 소총소리, 푸르다 못해 검은 빛마저 감도는 베트남 정글, 끝없이 펼쳐진 열대림을 헤쳐 가며 생과 사의 찰나, 그리고 매일같이 가슴을 짓누르는 전쟁터의 긴장과 초조…. 열대 전선의 밤은 온갖 소리의 불협화음 속에 하루를 잉태하고 또 하루를 초조하게 흩날리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거리를 방황하던 헐벗은 피란민들과 오랜 전쟁에 지친 불구자들의 군상, 그리고 우리를 볼 적마다 ‘따이한’을 연호하며 손 벌리던 영양실조의 어린아이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간 채 폭격으로 흩어진 처참한 촌락들의 잔해들…. 과연 전쟁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전쟁이야기를 통해서 절실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요즈음은 쾌적한 항공편으로 불과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이 베트남이지만, 그 당시에는 부산항을 떠나 꼬박 6박7일의 파도치는 바다를 뚫고 항해해 도착하던 곳이다. 그때를 기록한 옛 <소대장의 비망록>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1967년 9월 30일(토) 맑음. 부산 제3부두에 운집한 수많은 환송인파, 제병지휘부의 절도 있는 출국신고, 파월 수송함 ‘Goden Bear’호의 구석구석에 매달린 채 손에 손에 든 전투모로 박자를 맞추며, 신들린 듯 외쳐대는 군가 합창은 마치 ‘살아서 돌아와야만 한다!’는 파월장병 모두의 애절한 절규였으리라! 이들을 마주보며 손 흔드는 어느 두메산골에서 온 듯한 순박한 촌부의 오열하는 얼굴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낭군을 떠나보내는 아낙네의 흐느낌을 삼키면서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용두산 멧부리에 메아리친다. 드디어 출항이다. 점점 멀어져 가는 한반도의 남부 해안이 아득해 가는 이 절박감보다는 또다시 밟아 볼 수 있을지조차도 모를 조국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것이다. 1967년 12월 23일(토) 맑음. 12월 22일 미명을 기해, Chu Lai 지역을 미 육군 Americal사단에 인계하고, 새로운 작전지역인 호이안 전술지역으로 이동하던 비룡작전의 첫날 ‘시누크 헬기’에서 바라본 ‘마불 마운틴’의 자태는 마치 한 폭의 안개 속 동양화이지만, 곧 벌어질 전투의 긴장 속에 소총을 품에 끼고,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혼자서 중얼거리던 한마디는 “이 평화스런 금전옥토에 전쟁이라니…. 전쟁은 없어야 한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였다. 1968년 1월 21일(일) 흐림. ‘비룡작전’이 절정을 이루던 1월 20일, 뜨거운 열대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황량하기 그지없던 지역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그저께는 제1대대에 배속, 어제는 제3대대에 배속되어 매일 매일을 주간탐색과 야간매복으로 지새우던 차에, 그날은 마침 아무런 작전명령이 없는 듯하여 샌드백(모래낭)으로 중대 관측소 보강작업을 독려하던 중, 소대장의 철모를 튕겨나간 스나이핑(저격)이 김한성 하사의 흉부를 관통하여, 김 하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이곳이 바로 삼각주의 베트콩 아지트로, 전쟁의 현장에서 젊은 한 생명이 꽃도 피우지 못 한 채 하늘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의문에 잠긴다. 왜 전쟁은 아무 죄 없는 젊은 생명을 빼앗아 가는가, 왜 삶이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신은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가, 신은 전쟁을 막을 수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전쟁은 현실이다. 나는 바로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고 내 앞에는 적들이 나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나의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대한민국 나의 고향으로…. 빛바랜 <소대장의 비망록>을 들추며…. 1968년 1월 24일(수) 흐림. 소대장에 부임한 지 어언 5개월째로 접어든다. 거의 매일 작전에 임하는 초조한 하루하루가 점점 지겨워진다. 한바탕 비라도 쏟아질 듯 며칠째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제3대대 배속으로부터 나흘 만에 해제되어 지친 몸으로 귀대하였다. 베트콩들이 성청을 습격할 것이라는 ‘Quang Nam’ 성장의 첩보에 따라 출동하였다가, 경계임무를 그곳 민병대에 인계하고 복귀한 오늘은 비룡작전 개시 33일째 새벽녘…. 잠깐 눈을 붙이려 하는데 중대장이 소대장들을 집합시킨다. 지시사항은 다가오는 구정을 전후해 적의 기습공세가 예상된다는 첩보를 상급부대로부터 하달받던 중, 또 한 번의 긴급 출동명령이 떨어진다. 지역을 정찰하던 공병중대가 베트콩의 피습을 받아 아군 피해가 속출하니 출동하란다. 우리 소대는 해안도로를 따라 피습현장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 “불도져! 불도져! 여기는 뱃트맨! 즉시 나오라 오버!” 피습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돌변해 있었고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즉시 예상도주로를 차단하고 공격에 임하는 우리에게 전상자 수습에 여념이 없던 공병참모가 다급하게 경고한다. 일대가 무수히 많은 부비트랩과 대전차 지뢰밭이니 조심하라고. 전선의 첨병인 소총 소대장들은 언제나 부비트랩과 대인지뢰라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민감하다. 수도 없이 많은 군인이 이것들에 의해 희생되었으니까. 즉시 소대를 전술횡대로 산개시켜 적의 예상도주로와 후측방을 포병지원으로 차단하고 정밀탐색하여 땅굴 속에 숨어 발악하는 십여 명의 무장 베트콩들을 치열한 교전 끝에 전원 사살하였다. 이미 노출된 매복진지를 이리저리 옮겨 가며 거의 뜬눈으로 3일째 밤을 새운 다음 날 새벽녘, 철수를 위해 소대장이 밤새 위치했던 개인호를 정리하던 전령 유재호 상병이 갑자기 겁먹은 얼굴로 손발을 떤다. 뒤이어 선임하사관 천철수 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과 외마디 소리로 소대장을 부른다. 즉시 뛰어가 보니 개인호 한 구석에 대형 대전차지뢰의 뇌관이 보일 듯 말듯 삐죽이 얼굴을 내민다. 일촉즉발!! ‘하마터면 소대원 전원이 몰살당할 뻔했구나!’ 우리 소총소대 전투원들은 바로 코앞에 닥친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지 못한 채, 아침 해가 뜨면 그 하루를 무사히 살고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작전에 임할 때나 지뢰밭을 통과할 때면 각자 자신들의 수호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의존하며 체념했다. 그리고 위급상황에 처할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재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그 급박한 와중에도 우리 소대장들은 어떻게 해서든 단 한 명의 소대원이라도 잃지 않고, 그들을 학수고대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안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려고 얼마나 많은 애를 태웠던가? 아마도 내일 이 세상을 하직하는 마음이 바로 이런 심정이리라! 베트남 戰史에 한 획을 그은 ‘68년도 舊正공세’
다시 <소대장의 비망록>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1968년 1월 29일 연합군은 월남의 가장 큰 명절인 구정을 맞아 1월 29일 18시부터 익일 06시까지 36시간의 휴전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적의 공세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월남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서기 1968년도 구정공세’의 막이 열렸다. 이 전투에서 돌격명령과 함께 빗발처럼 쏟아지던 탄막을 뚫고 용감히 돌진하다 장렬히 산화한 김국조 하사, 김정남 병장, 황종만 일병 등 17명의 전우를 잃고 말았다. ‘먼저 가신 전우들이여, 야자수 그늘 꿈꾸며 편히 쉬게나!’ 눈물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이 간헐적인 총성과 먼 하늘을 밝히는 조명탄으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지만 오늘 밤만은 어쩐지 평소와 다르게 온 천지가 마치 태풍전야의 긴박감에 싸인 듯 사방이 괴괴하기만 하다. 잠시 후 온 천지를 뒤엎을 듯한 포성과 함께 포병 관측 하사와 선임하사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소대상황실로 다급히 뛰어든다. 소대 상황실이라고 해 봐야 급조된 땅굴 지붕위에 야자나무를 통째로 잘라 얼기설기 얹었으며, 적의 포격에 대비하여 ‘샌드백’(모래낭)을 겹겹이 쌓아 올린 비좁은 공간으로 그야말로 원시상태의 급편 방어진지로서 비만 오면 물구덩이로 변하곤 하였다. “소대장님예, 관측소로 속히 나와 보시지예!” 야광 시침은 새벽 두시 반을 가리킨다. 온 천지가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듯 휘황찬란하다. 조명탄이 온통 새벽 하늘을 밝히고,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여단지역 전체가 불타오른다. ‘아! 붙어도 오지게 한판 붙는 모양이구나!’ “한라산, 한라산, 여기는 임진강, 한라산장을 급히 바꿔 주기 바람!” 즉시 중대 전술망을 통해 중대장에게 관측상황을 보고한다. 같은 시각, 중대 상황실도 마찬가지로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소란함이 통신기를 통해 전해 온다. 아니나 다를까 중대 총출동 명령이다. 목표는 호이안시 중심으로 제3대대 10중대와 11중대가 위기에 처해 있단다. 2개 중대와 연계하여 호이안시를 점령한 적을 신속히 포착, 섬멸하고 탈환하라는 긴급명령이다. ‘아니, 2개 중대가 동시에 고전중이라고라? 그렇다면 상대가 더욱 쎈놈들이란 말인가?’ 이어서 제2대대 6중대가 돌파당했다는 위급상황이 통신망을 통해 전달된다. 이날 새벽 ‘Duy Xuyen’군청을 점령한 적은 6중대의 자매부락인 ‘Chiem Son Dong’마을에 잠입, 수십 발의 60mm 박격포탄을 진내에 퍼부으며 기습을 감행한다. 이에 기지 점령 3일 만에 적을 맞은 중대는 VT탄(공중폭발포탄)의 진내사격까지 요청하면서 결사항전중이라는 급보다. ‘심상치가 않구나!’ 평소 ‘마이너스’ 중대 작전과 달리 전 중대의 전술행군은 장관이었다. 제1목표를 향해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는 동안, 칠흑 같은 밤하늘을 뒤덮는 조명탄은 우리의 철야행군을 전혀 불편 없이 밝혀 준다. 촌각을 다투라는 여단본부의 빗발치는 재촉에 따라 중대는 거의 속보 속도로 전진한다. 배속 미해병 LVT소대가 전속력으로 선두를 유도한다. 출동 후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제2목표를 지날 무렵, 남지나해의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우측으로 ‘호이안’시로 통하는 538도로가 나타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 Cap소대가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새벽녘의 급습에 소대가 전멸됐단다. ‘예삿일이 아니로구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면 상대는 과연 어떤 놈들이란 말인가?’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진다. 다시 우측 우거진 숲에 도달할 무렵, 통신기를 통해 제10중대에서 보고하는 다급한 목소리에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보고내용은, 속출하는 전사자 회수에 역부족일 만큼 스나이핑(저격)이 치열하단다. 하늘을 가릴 만큼 헝클어진 숲을 칼로 쳐내 길을 만들며 힘겹게 도착한 늪지대는 가슴팍까지 차올랐고 손가락만큼 큰 거머리 떼가 때를 만난 듯 달려들어 목덜미를 타고 젖은 작업복 속으로 스며들어 피를 빨아대니 온몸이 스멀거린다. 작렬하는 포성과 교전상황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듯 긴장감이 엄습한다. 중대본부가 개활지 중간의 독립가옥을 지나칠 무렵, 서 중위가 중대장에게 수 차례 반복된 적정을 보고한다. “얼핏 보이는 적군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하니, 중대장 답신은 ‘아군병력이니 안심하고 진입’하란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서 중위에게 직접 자세한 상황을 묻자, 카키색 군복에 널찍한 철모를 착용했단다. ‘카키색에 철모까지?’ 이제까지 보아 왔던 베트콩의 검정색 복장하곤 판이한 모습이다. 더욱이 연합군 모두가 녹색계통의 정글복이 아닌가? 즉시 중대장에게 우선멈춤을 건의한다. “중대장님! 뭔가 미심쩍으니 잠시 선두를 멈추게 하시지요!” “거, 괜찮대도 자꾸 그러네!” 그냥 묵과할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다시 한 번 건의한다. “불길하니 재고하시지요!” “어이~. 당신이 중대장을…” 바로 그때였다. “따당 따당! 따다당! 따쿵, 꽈과광!!” 중대장의 힐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 적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며 귀밑을 스쳐 간다. 급히 자세를 낮추고 소대를 산개시켜 급편방어에 들어간다. 100여m 전방의 공동묘지에서 집중사격이 날아든다. 엄청난 화력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석과 석조엄폐물 사이로 민첩하게 이동하는 카키색과 널찍한 철모가 보인다. ‘처음 보는 복장이다! 아! 소문으로만 듣던 월맹 정규군이 바로 저놈들이로구나!’ 목표를 확인하려고 잠깐 고개를 들자 스나이핑이 소대장의 철모를 꿰뚫고 팽그르르 돌아 내피에 꽂힌다. 통신병이 얼른 땅에 떨어진 철모를 주워 씌워 준다. 좌우측에서 협공이 시작된 것이다. ‘아뿔사! 포위망에 갇혔구나!’ ‘살기를 원한다면 죽기를 각오하라!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길만이 이 진퇴양난의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미 해병 제1사단장 Smith 소장이 ‘장진호 철수작전’에서 남긴 명언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이제부터 후방으로 전진한다! 살기를 원한다면 나를 따르라!”라고 하였다던가? 열대의 뜨거운 태양이 중천에 이글거린다. 정오경 시작된 치열한 교전상황이 벌써 두어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겪었던 베트콩들과의 전투와는 확연히 달라, 월맹 정규군과의 교전 속에 포위망에 갇힌 우리는 몹시도 괴로웠다. 훈련된 정규군의 정확한 조준에 아군 피해는 늘어만 가고 이곳저곳에서 소대장과 위생병을 찾는 비명소리가 늘어만 간다. 작렬하는 포탄과 철모에 불꽃을 튀기는 적탄이 귀밑을 스치며 지옥의 묵시록을 방불케 한다. 저들의 아군 소대장에 대한 저격 시도는 필수과목인 듯했다. 수신호를 하려 손만 살짝 들어도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스나이핑이 빗발친다. 아무리 소대장 티를 안 내려 애를 써 봐도 어찌 그리 잘도 알아보는지? 통신기 작동모습과 작전지도를 펼쳐 든 초급 지휘관은 저들에겐 충분한 먹잇감이기에 옴짝달싹 못할 정도다. 불과 몇 분 전에 적정을 소상히 알려주면서 각별한 몸조심을 당부하던 제 10중대 박승진 소대장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그의 분대장인 이용구, 이건규, 이봉재 하사 등 9명의 소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관통상을 입은 옆구리를 감싸 안은 채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분사했다는 슬픈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 온다. 문득 소대장다운 최후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한 번뿐인 인생~. 삶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 삶의 과정은 아마도 살아서도, 혹은 죽어서도 가야 할 행선지가 따로 있단 말인가? 그 영원한 행선지를 향해 낯선 이국 전선의 정글에서 이토록 허무하게 떠나야만 하는가? 학창시절에 단짝이었던 박승진 중위는 방금 전 꽃다운 스물다섯의 나이에 한 마리 학이 되어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올라 이승을 떠났다. “승진아! 졸업 후에 무엇이 될래?”
꿈 많던 그 시절, 결강일 때면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한가로이 누워 무심히 흐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곧잘 나누던 대화의 화두는 언제나 미래의 포부였었다. “응~, 병역의무를 끝내는 대로 고시에 재도전해야겠지?” 그의 고시성적은 언제나 우리 과의 상위였다. “무일아! 너는?” “나~? 글쎄~?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문필가가 되고 싶긴 하지만….” 며칠 전에 밤을 새워 읽은 고미카와 준페이의 만주군에 지성을 다룬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나? 순간 정성껏 키워 주시고 무사히 귀국할 것을 학수고대하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과연 이 처절한 전쟁터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부질없는 상념도 잠시…. 갑자기 예상치도 못했던 세시방향에서 적의 60mm와 81mm 박격포탄이 동시에 날아든다. 작렬하는 충격에 철모가 날아가고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포성의 진동으로 고막이 터져 피가 흐르고 골이 빠개지는 듯 아프다. 뒤이어 후측방 폐허건물에서 우리를 향해 예광탄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다. ‘엄청 정확한 저격수의 스나이핑이다. 까딱하면 죽는다. 그러나 의연해야 한다. 소대원들이 보고 있다!’ 소대장 벙커 정면의 둔덕이 포탄 폭발로 인해 흙더미에 파묻혀 시야를 가린다. 관측이 용이한 위치로 재빨리 두어 바퀴 좌로 굴러 옮기자마자 바로 그 빈 벙커에 직격탄이 작렬한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만일 어정쩡하게 그 자리 그냥에 눌러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마터면 포살당할 뻔했구나!’ 등골이 오싹해지며 갑자기 누군가가 뒷머리끄덩이를 잡아끄는 느낌이다. 사방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비명소리가 귀청을 뚫는다. 아비규환 속에 코앞에서 용전하던 LMG사수 성기하 해병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응사방향을 그리로 집중시키려는 순간 이번에는 좌우측 숲속에서 협공이 시작된다. 사면초가다. 추측하건대 우리의 몇 배 화력이다. 이윽고 포위망이 좁혀 온다. ‘완전히 독안에 갇힌 쥐 꼴이 되었구나!’ 순간, 첨병소대를 이끌던 서정호 중위가 작렬하는 포연과 희뿌연 흙먼지를 헤치며 우박 같은 적탄을 뚫고 필사적으로 우리 정면으로 뛰어든다.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엔 오직 필생의 눈빛만이 불탈 뿐이다. 흙투성이의 방탄조끼와 철모 커버가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부상당한 소대원들의 모습을 한눈에 연상할 수가 있었다. “서 중위! 웬일이야!” 다급하게 묻자 실탄과 로켓탄이 떨어져 속수무책이란다. ‘큰일 났구나! 우리 소대도 거의 바닥일 텐데!’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즉시 작전하사를 불러 35mm 로켓탄과 79mm 유탄을 있는 대로 수거하라 이르니 평소에 조용히 복명만 하던 조용환 하사가 갑자기 돌변하여 눈에 불을 켜대고 당장이라도 뜯어먹을 듯 대든다. “소대장님예! 그라모 안되지예! 우리 소대는 고마 죽으란 말씀입니껴?” 고갈된 실탄보급의 항공지원도 끊긴 지 이미 오래되어 그의 항변도 당연했을 것이다. “소대장인들 조 하사 마음을 왜 모르겠나? 방금 지옥에서 헤쳐 나온 모습의 서 중위를 우리가 돕지 않으면 이 처절한 전쟁터에서 누가 그를 돕겠는가?” 차근차근 달래 생명 같은 실탄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들려 보낸다. “김 중위! 오늘의 이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을게!” “서 중위! 속히 돌아가서 최선을 다하여 소대원을 구하게나!” 포위망 속에 갇혀 아군 피해가 속출한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불리한 상황이다. 이윽고 실탄과 로켓탄이 바닥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오직 근접전에서나 사용할 수류탄뿐이다. “과감한 정면 돌파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1소대는 우일선, 2소대는 좌일선, 3소대는 후측 방어, 각 소대는 일제약진 앞으로!” 오해순 중사와 이영대 하사, 그리고 김태이 병장과 김일용 상병 등이 선봉에서 적진으로 뛰어든다. 과감한 공격과 용맹스런 돌격으로 해가 중천에서 기울 무렵 마침내 철통 같았던 적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상황을 역전시켜 포위망을 벗어난 우리 중대는 드디어 제10중대와 연합하여 패퇴하는 적을 가로막고 소탕전에 들어간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싹 쓸어 버려라!” 여단본부의 지시에 따라 수색조를 편성하여 전과 확대와 결과 확인으로 한숨 돌리는 순간, 우측방 20여m 전방에서 진두지휘하던 지순하 중대장이 갑자기 고목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진다.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달려가 중대장을 품에 안는다. “중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흉부에서 솟는 피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다. 후송 헬기로 떠나가며 마지막 지시사항은, 꺼져 가는 쉰 목소리로 “중대를 잘 부탁한다!”였다. 필자의 빛바랜 <소대장의 비망록>에 남겨진 이날의 기록은 ‘서기 1968년 1월 30일(화요일) 맑음, 오후 2시30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44년 전. 당시 베트남 전역을 휩쓸었던 이날의 치열한 격전이 월남전 전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1968년도 구정공세’였음을 우리 전투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고국에서 보내온 신문을 보고서였다. 야자수 그늘 꿈꾸며 편히 쉬소서 -동작동 국군묘지 파월 전몰 장교 묘역에서- 우거진 정글, 뜨거운 사막, 멀리 안남산맥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푸르른 남지나해에서 발진되는 공중포격과 함포사격 지축을 뒤흔드는 작렬음과 고막을 찢어대는 곡사포 소리 어렴풋이 먼동이 틀 무렵 공격대기선에 낮은 자세로 포복하여 부릅뜬 눈초리로 전방을 쏘아본다 1분대는 좌일선, 2분대는 우일선, 3분대는 소대본부를 엄호하라 항공폭격이 끝날 무렵, 공격이 시작된다.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부하의 위험을 온몸으로 막아 분연히 산화한 그대 푸르렀던 청춘들 그대들이 보여준 참된 용기와 값진 희생에, 오늘의 옛 전우와 조국의 번영이 여기에 있다 ‘Geiger’호와 ‘Upshore’호에 젊음을 싣고 부산항을 떠나, 일곱 밤 여덟 낮 동안 항해 다낭항과 퀴논항에 상륙, 자유의 십자군 주월 한국군의 위용을 세계 만방에 떨친 지 어언 50년 ‘맹호’는 퀴논과 뚜이호아 전선에서 ‘청룡’은 츄라이와 호이안 전선과 짜빈동 전투에서 ‘백마’는 닌호아와 캄란 전선에서 그리고 십‘ 자성’과 ‘비둘기’, ‘백구’와 은‘ 마’는 후방을 지원하던 격동의 세월들 그 숱한 세월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히 흘러 그대들과의 못다 한 추억이 서린 이 언덕에서 어깨를 나란히 사선을 넘던 옛 전우들끼리 이곳에 둘러앉아 오늘도 그대들의 옛 모습을 그리며 명복을 빌어 올리오이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편히 잠드소서. - 광복 제60주년, 제50회 현충일, 파월 제40주년! 그리고 Viet-Nam 종전 제30주년에 즈음하여- 2005년 6월 6일 전쟁의 참혹함을 아시나요? 부모를 잃고 형제도 잃은 고아의 모습을 아시나요?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온전한 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의 고통을 아시나요? 전쟁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다 앗아 갑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는 행복을 이야기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오직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살기도 힘이 드니까요. 사랑하는 내 조국이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입니다. 행복은 지키려고 몸부림쳐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이지 막연한 생각과 행동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막는 일은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글 : 박시호 사진 : 박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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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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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김무일씨와의 인터뷰와 그의 서화집 《황혼에 핀 오색 무지개》를 바탕으로 행복편지 발행인이 정리하였습니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간간히 읽긴했습니다만 이렇게 만나니 새롭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꿈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진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