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1988년 일본에서 극장 개봉된 이치가와 준의 [회사이야기]를 2007년의 한국적 현실에 맞게 각색해서 리메이크 한 박영훈 감독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둔 조민혁 과장(백윤식 분)이 퇴임하는 날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서 고뇌하는 중견 간부의 모습도 보이고 직장 내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음모와 암투도 들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서글픈 샐러리맨의 애환을 담아내면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데뷔작인 [중독]이나 [댄서의 순정]에서도 그랬지만 박영훈 감독은 영화에 대한 왜곡된 판타지를 갖고 있다 .그는 영화가 자신의 꿈이라는 것을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강조한다. 그의 영화는 일상적 현실의 소중한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비현실적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일상의 작은 모습들 ,조직 내의 갈등이나 인간관계의 세밀함이 살아 있어야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겉돈다. 자신의 후배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직장 상사인 전무와의 갈등은 너무 상투적이다. 기본적인 관계설정은 있지만 그것들의 세밀한 묘사가 부족하면 관객들은 설득당하지 않는다. 감동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그의 성실함을 인정하지만 처세술이 좋지 않아서 만년 부장에 머무르다가 정년퇴직을 30일 앞둔 조민혁 부장. 그는 서서히 퇴임 준비를 하고 총무부 직원들은 애정을 모아 그의 멋진 퇴임식 준비를 한다 .한때 미 8군 무대에서 드럼을 쳤던 경력을 갖고 있는 조부장은, 자신의 직속 부하인 박승재 과장(박준규 분)이 대학시절 그룹사운드를 했고 지금도 몰래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가하면 자신처럼 정년을 얼마 앞둔 동료 김부장(임병기 분)이 회사 옥상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회사의 경비원 최씨(임하룡 분)는 베이스 기타를 쳤었다. 이들은 뒤늦게 의기투합해서 밴드를 결성하고 조부장 퇴임 때 기념공연을 하기로 한다.
경비에서부터 과장, 부장 등 같은 회사 내의 수직적 라인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룹 사운드를 만들어 수평적 교류를 하는 것은, 조직문화에 대한 일탈이며 신선한 도전이다. 관객들의 묵시적 동의를 얻어 스크린 안과 밖이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은, 그것이 무슨 소재인가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허구와 현실의 연결통로를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발바닥이 가려운데 구두 밑창을 긁는 형상이다. 관객들의 세포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겉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내러티브는 허점투성이다. 조부장이 자신의 부하 직원인 박과장의 콘서트 현장에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도 설명이 없고, 회장은 조부장의 성실성과 인간 됨됨이를 알면서도 왜 그를 승진시키지 않았는지, 전무가 꾸민 음모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진다. 유부남인 부장과 존경심 어린 플라토닉 데이트라고 하지만 같은 부서의 부하 여직원 유리(이소연 분)과의 관계도 명쾌하지 않다. 내러티브 전개의 불분명성도 문제고 상투적 전개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최소한의 흐름도 끊어놓는 편집이다.
엉망투성이인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그래도 연기자들이 열심히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출의 섬세함은 괜찮은 배우들의 평균 수준의 연기도 끌어내지 못한다. 임하룡은 음악을 하고 싶은 구체적 절실함의 표현 없이 행동이 과장되어 있고, 아내와 아이들을 유학보낸 기러기 아빠 박준규의 모습도 너무 상투적이다. 관객들이 허구적 구조인 극중 이야기나 캐릭터로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은 도식적이고 상투적인 설정이나 캐릭터로서는 만날 수 없다.
실제 직장인들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직장인 밴드 갑근세 밴드를 모티프로 이치가와 준의 원작 [호사 이야기]를 리메이크 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의 온갖 애환도, 꿈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열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화면 가득 열정은 있지만 그것을 조율하고 다듬을줄 아는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 비극적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