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청와대에 관한 국민들의 평가나 인식은 세대와 사상 또는 처한 입장에 따라 많이 다를 터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갑자기 역사 속 현장이 된 청와대. 그런 뜻깊은 곳을 찾아가면서 과연 뉴스에서처럼 방문객이 유지되고 있기나 할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평일인데도 관람 인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코리아의 위상을 말해주듯 피부 색깔과 인종이 다른 지구촌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역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답게 중국인이 눈에 많이 띠었고 바다 건너 일본인들이 두 번째일 것 같았다. 깃발을 든 일본 여자 가이드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상냥하면서 말소리가 낮았다. 우린 초등생들까지 학교에서 단체로, 또 현역 군인 20여 명은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갖춰 이동하면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오늘 한국문협 소설분과에선 7명이 역사탐방에 나섰다. 단체 규모에 비해선 부끄러운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작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5.16혁명 63주년이 되는 날을 마음속에 새기기라도 하는지 저마다 문학작품 속에 청와대를 녹여내고 싶은 듯했다. 내걸린 자료를 하나하나 메모하거나 카메라에 담는 모습들이 진지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이제 신록은 여름날처럼 짙푸르게 변했다. 숲은 마치 광릉수목원 절반을 옮겨놓은 것처럼 울울창창 건강하게 눈부셨다. 본관 건물을 들어서자 60여년 세월 동안 신문방송을 자주 탔던 춘추관과 상춘재 여민관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 얼굴을 담은 액자가 한 줄로 벽면을 따라 붙어 있는 곳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동란과 군사혁명 등 파란만장한 세월을 견뎌낸 세대는 적었지만 관람객들은 대통령 얼굴에서 지난 추억을 새기는 것 같았다.
순례코스 마지막인 인수문을 향해 언덕바지를 오를 때 싱글벙글 미소를 띤 우리 일행 멤버가 가까이 다가왔다. 연배는 나와 비슷해 보였다. 그의 말씨를 의식해서 "고향이 충청도인 모양이죠?"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니, 회령인데요." 함경북도 국경 가까이 붙은 회령이라니 한참 잘못 짚은 거였다. 거기에다 연령도 나보단 세 살 위였다. 순간 난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멀었구나 싶었다. 그는 동란 때 월남하여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걸 자랑처럼 얘기했다. 그 말 한마디가 친근감을 갖게 했다. 젊은 날 그를 포함해 방송국에서 함께 활동했던 3총사가 모두 유명인사가 되었다는데 사실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나도 이름을 기억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얘기 도중 자주 "충성!"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붙여 친화력을 보였다. 중등학교장과 대학교수,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서 정기적으로 특강을 요청받는다는 그의 명함엔 '농축산 투데이 논설실장' 직함이 붙어 있었다.
지난 세월, 18년 동안 집권했던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청와대 초청을 받고 싶어 안달인 직장 선배가 있었다. 나보단 두 살 위로 현직 때 공기업 원전연료 대표까지 지낸 인사였다. 그때 우린 같은 직장 은퇴자단체에서 연중 10여 차례 만났다. 난 부산의 은퇴자 8맥명 넘는 단체를 맡고 있던 터라 거부하지 못하고 박근혜 선거캠프에 끌려 들어갔다. 군장성 출신과 현역 대학교수 등 30여 명은 청와대 인근 청운동 한식집에서 자주 모였고 여의도 선거사무실에도 주 1회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선거에서 이겨 청와대에 들어간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땀흘린 사람들을 초대할 줄 몰랐다. 30명을 대표했던 그 선배만 미안해서 함께 뛴 사람들을 만나면 변명하기에 바빴다. 그는 하나도 잘못이 없었으니 그런 고역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청와대를 떠났다.
빠트린 얘길 하나 덧붙이자면 그때 대통령 선거가 막판으로 접어들었을 때, 난 서울 금천구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S목사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곤 그가 펴낸 <나는 다시 진보이고 싶다>란 책자를 100권 구입해서 박근혜 후보의 홍보자료로 썼다. S목사를 노량진 CBS방송국에서 만났더니 지금 박 후보가 밀린다며 우리가 힘을 합쳐 적극 돕자고 했었다.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오늘 난 본관 내부를 둘러보며 그때 선거운동에 매달린 30명 멤버들이 청와대 오찬초대를 받았더라면 어느 방에서 식사를 했을까를 생각하며 그 장소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때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애쓴 사람들을 청와대에 초청할 마음이 없었던 걸 뒤늦게야 말았다. 최순실과 정유라 같은 인의 장막에 가려 정작 인간이면 마땅히 갚아야할 은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 관람을 끝내고 일행은 가까운 북촌마을로 옮겨 카페에서 얼굴을 맞대고 둘러 앉았다. 좌장격인 회령 출신 스타강사가 북한 실정을 화제에 올렸다. 그는 강의를 위해서도 늘 많은 자료를 찾고 있는 터라 귀를 쫑긋하고 들을 내용이 많았다. 지금 북한에서 핵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협박하는데 그 자금을 제공한 대통령 이름이 거명되었다. 그때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북한은 소멸되어 남한에 흡수통일 되었을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와대 탐방 내내 굳게 입을 닫았던 작가도 맞다면서 동의했다. 그는 여든 초반인데도 현재 약국을 경영하는 작가였다. 나머지 작가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강사는 한국이 도와준 돈을 인민에게 풀었으면 지금처럼 북한이 거지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 했고 그 반대 목소리를 내는 여류작가도 한 사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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