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자동차 (55) - 러시아에 딱 필요한 저렴한 SUV, 라다 4×4
[안민희의 드라이브 스토리] 매우 추운 겨울이다. 이런 때면 SUV를 갖고 싶다. 눈길도 험로도 문제없을 강인한 이미지가 좋아서다. 그런데 지금 타는 차를 팔고 새 차를 사기에는 돈이 아깝다. 그러다보니 구할 수 없어 더욱 욕심나는 차가 떠오른다. 한국에선 팔지 않지만 신차 가격이 1,000만 원 이하인 러시아제 SUV, 라다 4×4를 소개한다.
라다(Lada)는 러시아의 자동차 제조사 ‘아브토바즈’의 브랜드다. 1966년 설립됐다. 소련(현 러시아) 정부가 이탈리아에 요청해 피아트의 기술을 가져다 세웠다. 당시 소련은 늘어나는 자동차 수요에 맞춰 서구권 자동차 회사와 판매 수익의 일부를 넘기는 방식으로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이후 어깨너머로 기술을 확보한 공장들이 자체 모델을 내놓았다.
아브토바즈는 피아트 124를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러시아식’으로 개조했다. 추운 날씨와 험로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영향을 줬을까? 아브토바즈는 1971년 직접 ‘저렴한’ SUV의 개발에 나서 1977년 라다 ‘니바(NIVA)’를 내놓았다. 피아트 124의 부품을 상당수 사용했지만, 차체, 네바퀴굴림 구동계, 앞바퀴 서스펜션은 직접 개발했다고 한다.
니바는 들판을 뜻하는 러시아어다. ‘4×4’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험로 주행에 필요한 네바퀴굴림 구동계 달았다는 이유에서다. 라다 니바는 최고출력 72마력의 직렬 4기통 1.6L 카뷰레터 엔진에 수동 4단 변속기 달아 네바퀴를 굴렸다. 러시아에 딱 필요한 저렴한 SUV 라다는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용기를 얻은 아브토바즈는 1978년 파리모터쇼에 라다 니바를 선보였다. 서구권 진출이었다고나 할까? 라다 니바는 견고한 차체와 저렴한 값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물물 교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소련이 영국에 라다를 수출할 때 대금을 코카콜라로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과 등지고 지냈던 러시아도 콜라 맛은 잊을 수 없었나보다.
라다 니바는 지금까지 약 40년 넘게 생산하고 있는 장수 모델이다. 매번 비슷한 디자인으로 계속 생산하기에 ‘옛 것’의 정취가 넘친다. 다만 시대에 맞춰 엔진은 조금씩 바꿨다. 1994년에 GM의 싱글 포인트 인젝션 적용한 직렬 4기통 1.7L 신형 엔진을 적용했고, 2004년에는 보쉬의 멀티 포인트 인젝션 적용한 개선 엔진을 내놓았다.
라다 니바에 주목한 회사가 있다. 바로 GM이다. GM은 아브토바즈와 합작 회사를 세워 니바의 디자인을 슬쩍 바꿔서 ‘쉐보레 니바’로 내놨다. 저렴한 가격에 험로 성능이 뛰어나 꾸준히 팔린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라다가 쉐보레에게 ‘니바’라는 이름의 사용권까지 팔아서, 이제 라다 니바는 라다 4×4로 이름을 바꿨다.
라다 4×4의 길이×너비×높이는 3,740×1,680×1,640㎜. 휣베이스는 2,200㎜다. 작다고 만만하게 볼 차는 아니다. 러시아의 도로 사정은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하다. 니바는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저속, 고속 기어 및 디퍼렌셜 잠금 기능도 적용했다. 최고시속은 130㎞. 시속 90㎞로 순항할 때 연비는 12.1㎞/L다. 견인력은 860㎏. 최저지상고는 235㎜다. 주행 시험 결과 경사각 58°의 슬로프를 오르고, 깊이 60㎝의 물길 통과도 가능했다.
한편 아브토바즈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식구이기도 하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2008년부터 지분 인수 작업을 시작해, 2012년 12월에는 아브토바즈의 지분 74.5%를 차지하며 합작회사를 차렸다. 저가 브랜드 ‘다치아(Dacia)’의 생산 확대를 위해서다. 두 브랜드가 플랫폼 공유, 구동계 공유를 통해 생산 물량을 늘린다면 쉽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
현재 아브토바즈는 새로 개발한 플랫폼을 이용해 물갈이 중이다. 2018년에 신형 라다 4×4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돈다. 그러나 지금은 구형 라다 4×4 한 대를 갖고 싶다. 정말 싸서다. 3도어와 5도어의 두 가지 모델이 있다. 3도어 모델은 기본형이 44만5,900루블(약 824만 원), 고급형 모델인 ‘어반’이 50만2,800루블(약 929만 원)이다. 5도어 모델은 기본형이 49만700루블(약 906만 원), 어반이 54만1,600루블(약 1,000만 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안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