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발해고성(渤海古城)」이다. 정몽주가 어떤 성을 발해의 옛 성이라고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3~6구에서는, 당나라와는 성공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요나라에 병탄되었고, 나라가 망한 뒤에는 발해의 유민들이 고려에 귀순한 사실을 말했다.
8구에서 말한 ‘유민’은 발해 고성(古城) 근방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모두 발해의 유민으로 발해의 옛 터에서 살고 있지만 먼 옛날의 역사는 물론 자신들의 내력을 알지 못한다. 정몽주는 이런 사실에 문득 비감을 이기지 못해 가던 수레를 멈춰 세우고 탄식하였다. 정몽주는 발해와 고려의 역사적 연속성을 환기하는 한편, 유적과 유민들 사이에서 그 스스로 발해와의 동일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특별히 주목할 단어는 ‘유민(遺民)’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 요동반도를 포함한 요동 지역은 먼 옛날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민(流民) 또는 유민(遺民)의 공간이었다.
1389년 권근은 요양에서부터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대부분이 고려의 유민이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1488년 최부(崔溥)는 요양 이남의 백성들이 조선 사람들이며 언어, 의복, 풍속이 조선과 같고 이들은 고려사(高麗祠)를 세워 고국을 그리워한다고 했다.
교보문고 인터넷판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