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 공기가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돔 내부는 수만 명의 심장이 내뿜는 열기로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2017년 1월 11일, 전설적인 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의 내한공연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객석 한가운데, 낡은 가죽 재킷을 입은 중년의 남자, 현우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빛바랜 메탈리카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20년 전, 처음 그들의 음악을 들었던 그날 입었던 옷이었다.
‘Hardwired… to Self-Destruct’ 앨범 투어.
삶에 치여 잊고 지냈던 야수성이 그의 핏줄 속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아빠, 저 사람들 진짜 멋있다!”
옆에 선 딸, 소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힙합과 아이돌 음악에 익숙한 딸에게 아빠가 사랑하는 이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 그것이 현우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였다.
그때, 조명이 꺼지고 거대한 스크린에 영상이 떠올랐다.
장엄한 인트로와 함께 제임스 헷필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돔을 뒤흔들었다.
“Are you alive, Seoul?!” 관중의 함성이 폭발했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바로 그 순간, 현우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무대 위 라스 울리히의 심벌이 터져 나가는 순간, 공기 중에 미세한 금빛 입자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듯한 착각.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흥분한 탓이겠지.
하지만 그 금빛 입자들은 현우의 눈에만 보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공간을 떠도는 크로노스의 편린이었다.
그는 메탈리카의 강력한 리프가 만들어낸 에너지의 파동을 타고 다른 시간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같은 시각, 독일. 스레쉬 메탈의 제왕 크리에이터(Kreator)의 멤버들은 막 발매된 라이브 앨범 ‘Live Antichrist’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격렬한 음악이 만들어낸 음파 역시 시공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서울의 고척돔에서 울려 퍼지는 주파수와 공명하고 있었다.
Chapter 2: 강철 신들의 귀환 (2019년 1월 11일, 버밍엄 & 베를린)
크로노스의 의식은 2년 후의 미래로 도약했다.
헤비메탈의 발상지, 영국 버밍엄의 한 녹음실. 헤비메탈의 신,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롭 핼포드가 갓 재발매된 ‘Redeemer of Souls’ 앨범의 LP판을 조심스럽게 턴테이블에 올렸다.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그의 강철 같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고 나왔다.
“Priest is back!!”
옆에 있던 기타리스트 리치 포크너가 외쳤다.
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수십 년간 메탈의 왕좌를 지켜온 자의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신념이었고, 강철의 복음이었다.
크로노스는 그들의 신념이 만들어낸 순수한 에너지에 이끌렸다.
그는 롭 핼포드의 어깨 너머로 스튜디오 창밖을 보았다.
창밖 풍경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더니, 늑대 인간의 형상을 한 사내들이 라틴어로 된 성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환영이 겹쳐 보였다.
독일, 베를린. 파워 메탈 밴드 파워울프(Powerwolf)의 멤버들이 자신들의 커버 앨범 ‘Metallum Nostrum’의 발매를 자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배 밴드들의 명곡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재해석하며, 메탈의 역사를 향한 존경을 표했다.
그들의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연주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강철 사운드와 공명하며 시공간을 가로질러 하나의 거대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미국 시애틀. 프로그레시브 파워 메탈 밴드 퀸스라이크(Queensrÿche)의 기타리스트 마이클 윌튼은 새로 공개한 싱글 ‘Dark Reverie’의 악보를 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복잡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그것은 마치 뒤엉킨 시간의 흐름을 그려내는 듯했다.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소일워크(Soilwork)는 ‘Verkligheten(현실)’이라는 이름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들의 그루브 넘치는 리프와 절규하는 보컬은 ‘현실’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오히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2019년 1월 11일.
수많은 메탈 밴드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크로노스는 그 에너지의 흐름 중심에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각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교향곡을 느끼고 있었다.
Chapter 3: 과거의 주문 (1999년 & 2005년)
크로노스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1999년 1월 11일, 뉴욕의 한 작은 클럽. 앤스랙스(Anthrax)의 보컬 조이 벨라도나(Joey Belladonna)가 자신의 밴드 벨라도나(Belladonna)와 함께 2집 앨범 ‘Spells of Fear’의 발매 기념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의 폭발적인 목소리는 공포의 주문처럼 클럽을 가득 채웠다.
“이 주문은 시간을 넘어 울려 퍼질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조이가 외쳤다.
그것은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음악이 가진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을 느끼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시선은 다시 2005년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의 한 고성(古城)을 개조한 스튜디오.
멜로딕 블랙 데스 고딕 메탈 밴드 그레이브웜(Graveworm)이 5집 ‘(N)Utopia’의 마스터링 작업을 막 끝냈다.
심포닉한 키보드와 처절한 스크리밍, 비장한 멜로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사운드는 마치 몰락한 유토피아를 노래하는 진혼곡 같았다.
같은 날, 미국 LA에서는 스레쉬 메탈의 거인 메가데스(Megadeth)가 자신들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 ‘Video Hits’를 공개했다.
데이브 머스테인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냉소적인 목소리는 화면을 뚫고 나와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이 모든 과거의 조각들을 꿰뚫어 보았다.
벨라도나의 주문, 그레이브웜의 진혼곡, 메가데스의 날카로운 경고. 이 모든 것이 1월 11일이라는 날짜 아래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엮이고 있었다.
Chapter 4: 태초의 강철과 비극의 서곡 (1991년 & 1993년, 그리고 2020년)
시간 여행은 더욱 깊은 과거로 향했다.
1991년 1월 11일, 일본 도쿄의 한 음반 매장.
한 소년이 막 발매된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라이브 비디오 ‘Live at the Rainbow’ 일본반을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폴 디아노의 포효와 스티브 해리스의 질주하는 베이스라인.
화면 속 1981년의 열기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소년의 심장을 뛰게 했다.
“Up the Irons!!”
소년은 나지막이 외쳤다.
이 외침은 미래의 수많은 메탈 키드들에게 이어질 계시와도 같았다.
2년 후, 1993년 1월 11일. 지옥의 왕, 레미 킬미스터가 이끄는 모터헤드(Motörhead)는 컴필레이션 앨범 ‘Ace of Spades’를 발매했다.
그들의 음악은 타협 없는 로큰롤 정신 그 자체였다.
레미의 목소리는 시대를 향해 “세상이 널 어떻게 보든, 너 자신으로 살아라”라고 외쳤다.
크로노스는 이 태초의 강철 소리들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언 메이든의 영웅적인 서사시, 모터헤드의 반항적인 자유의지.
이것이 바로 1월 11일의 주파수를 만들어낸 근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
크로노스의 의식은 잠시 미래의 한 지점으로 이끌렸다.
2020년 1월 1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전설적인 밴드 오메가(Omega)의 앨범에 참여했던 사진작가 Zaránd Gyula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죽음은 마치 이 거대한 메탈의 교향곡에 잠시 끼어든 불협화음, 혹은 모든 영광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소멸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한 시대의 예술가가 사라지는 순간, 그의 렌즈에 담겼던 모든 순간들이 짙은 심연 속으로 함께 가라앉는 듯했다.
이 비극적인 마침표 역시 1월 11일의 역사에 새겨진 하나의 음표였다.
에필로그: 너를 사랑해 (2000년 1월 11일, 서울)
모든 시간 여행의 끝에서, 크로노스의 의식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2000년 1월 11일.
한국 록의 자존심, 김경호가 그의 첫 컴필레이션 앨범 ‘...Love U - 너를 사랑해’를 공개한 날이었다.
서울의 한 작은 음반 가게. 교복을 입은 한 소년이 앨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메탈리카,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그에게 록과 메탈의 세계를 알려준 것은 모두 외국의 밴드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앨범은 달랐다.
한국인의 목소리로, 한국인의 감성으로 절규하는 록 발라드.
금지된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샤우팅은 소년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크로노스는 소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소년은 바로 17년 후, 고척돔에서 딸의 손을 잡고 메탈리카를 보게 될 현우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김경호의 음악은 서양의 강렬한 메탈 사운드와 한국 특유의 애절한 감성이 결합된 독특한 주파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와 저항의 외침인 동시에, 사랑과 슬픔을 노래하는 절규였다.
크로노스는 깨달았다.
1월 11일에 울려 퍼지는 이 모든 메탈의 주파수, 그 근원에는 결국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음악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
크로노스는 현우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는 이제 유령이나 메아리가 아니었다.
그는 시공간을 넘어 메탈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진 모든 이들의 열정과 사랑, 그 자체였다.
고척돔의 함성, 버밍엄의 강철 소리, 뉴욕의 주문, 그리고 서울의 애절한 샤우팅.
1월 11일의 주파수는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며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시간을 초월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하고 장엄한 메탈 교향곡처럼.
첫댓글 위에 언급된 밴드들의 음악은 여러분들이 직접 댓글로 달아주세요.
https://youtu.be/BbF9q3mbbu0?list=RDBbF9q3mbb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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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hwOv_J7QGo?list=OLAK5uy_mPkdnGCPxG1n1q7efnJDOE9lPfF0Q7_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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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주파수가 세대를 잇는다는 가설, 전율이 돋습니다~!!
Metal will never die!!!
https://youtu.be/9d4ui9q7eDM?list=RD9d4ui9q7e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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