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딴傳
58년생 개띠 선배가 있다. 사회에서 알게 된 사이지만 취미와 세상 관심사에 공통점이 많아서 자주 어울렸다.
그는 다니는 직장을 일찍 그만 두고 사업을 벌여 돈을 많이 벌었다. 워낙 성실한 것도 있지만 운도 따라줬다.
나는 그의 성공이 기뻤지만 공밥이나 공술을 얻어 먹은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자리를 가능한 피했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에게 어느 날 불운이 찾아왔다. 화장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뒤늦게 가족이 알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바람에 반신불수 장애인이 되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아무것도 혼자서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의 장애를 고칠 수는 없었던가 보다.
다른 합병증까지 겹쳐 그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병실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지금은 혼자 사는데 상주하는 도우미 아줌마의 돌봄을 받는다. 돈이 있으니 이것도 가능한 일이다.
따로 사는 아내가 처음엔 자주 찾았으나 지금은 전화만 가끔 할 뿐 오는 일이 거의 없단다.
올해 초에 이 선배집을 방문했다. 그는 나를 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발음이 어눌한데다 말을 할 때면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통에 나는 무슨 말인지를 알아 듣지 못했다.
도우미 여사님이 통역을 했다.
그는 울음을 그친 후에도 말을 계속 했다. 도우미 여사의 통역에 의하면 아내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딸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도우미가 말하길 가끔 아빠를 보러 오던 딸들도 요즘은 발걸음이 뜸하다도 했다. 선배는 자기가 건강했을 때 딸들한테 편지라도 써둘 걸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이제는 말도 어눌하고 손을 못 움직이니 글도 못 쓰고 밥도 먹여줘야 하고 화장실에서도 바지를 내려줘야 한다.
종일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내다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다행히 귀는 들린다고 하니 내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다.
잘 생기고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그 남자가 하루 아침에 이런 장애인이 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의술이 발달했다고는 해도 이런 병을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 선배를 만나고 와서 내 주변 사람한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하나뿐인 내 딸에게 잘하고 싶었다.
## 이제, 딸傳
내가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네 명의 여자가 있다. 내 엄니, 다섯 살 위의 누이, 12년 전에 죽은 아내, 그리고 내 딸이다.
엄니와 누이에 관한 글은 자주 썼었고 어쩔 수 없이 죽은 아내를 언급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었지만 딸 이야기는 처음인 것 같다.
내 딸은 영국 런던에 산다. 초등학교부터 영국에서 공부를 했고 대학을 나와 거기에 직장이 있고 실제 국적도 영국인이다.
엊그제 화상 통화를 하던 중에 딸이 그랬다.
"요즘 나 틈틈히 아빠와의 추억을 쓰고 있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때는 아빠한테 물어 볼지도 몰라."
앞으로 자기가 너무 행복해지면 아빠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것 같기 때문이란다. 딸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야 내가 잊혀진들 뭐 대수겠는가.
이것을 계기로 나도 딸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딸에 관한 글을 거의 쓴 것 같지가 않다. 내 일기장에도 엄니와 누이, 아내에 관한 글은 여럿인데 딸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내 딸이 성장하는 동안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은데도 말이다.
나는 딸 아이 엄마와 연애 기간이 길었다. 처갓집에서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해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아이를 두 번이나 지웠다. 임신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두 번째 아이를 지울 때 산부인과 의사가 그랬다.
"다음에는 임신이 힘들지도 몰라요."
이것도 분명 죄업을 쌓는 일일 테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8년 만에 결혼에 성공했고 기적처럼 딸 아이가 태어났다.
1996년 생이다. 내가 내 부모를 선택하지 않고 세상에 나온 것처럼 내 딸도 그랬다.
내가 워낙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기에 나는 결혼전부터 결심을 했다. 자식한테 만큼은 절대로 가난을 겪게 하지 않겠다.
나는 작은 집이지만 결혼 후에 바로 전세로 살던 집을 자가로 바꿀 수 있었다.
은행 대출을 받긴 했어도 내 집이 생겼으니 딸 아이 돌잔치 겸 집들이를 할 때는 축하 인사가 넘쳐났다.
얼마 후에 IMF가 터졌고 내가 벌였던 사업도 폭삭 주저 앉았다. 문제는 천정부지로 뛰는 대출 이자였다. 안 믿기겠지만 당시 20%가 넘었다.
서둘러 헐값에 집을 처분하고 대출 원금을 갚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재기할 길이 막막하던 차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너, 소련 갈래?"
소련이 붕괴된 지 한참 지났어도 당시까지 소련이란 말이 더 익숙했다. 소련이란 나라가 약간 무섭게 느껴졌지만 무조건 간다고 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어떻게 이런 자리가 나한테까지 왔을까. 2주 전쯤인가? 한 선배한테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외국엔들 못 가겠느냐는 말을 했었다.
소련 일자리는 원래 가기로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막판에 못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나한테 기회가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도 운명이다.
러시아 갈 사람 찾는다는 말에 그 선배는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문제는 가족과의 헤어짐이었지만 1년 안에 휴가를 보장한다는 계약서를 믿었다.
막상 떠나려니 세 살된 딸 아이가 눈에 밟혔다. 쑥쑥 자라면서 고집과 재롱을 번갈아 떨며 나를 웃게 만드는 아이였다.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떼놓고 나는 러시아로 떠났다. 1998년 12월의 추운 날이었다.
첫댓글 힘 내세요 유현덕님
와우~ 인애님, 첫 댓글 주셨군요.
그날 운동회 때 인사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더 반가울 겁니다.ㅎ
유현덕님 그런 연유로 해서 외국으로 나가셨던 것이었었군요.
유현덕님이 따님을 얼마나 바르게 잘 키우셨는지 글에서 살짝 엿볼수가 있네요. ^^*
그러게요 구비구비 밝게 웃으시는 유현덕님 체육대회날 뵈었지요
수피님, 이때부터 저의 첫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고 살아 남기 위해서 밥줄을 타다 보니 그리 되었답니다.
제 글의 찐독자이신 수피님께서 어김없이 보여주시는 관심에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제 딸을 좋게 봐 주시니 고맙구요.ㅎ
58년 개띠 선배님이 당하신 불운이 참 마음 아픕니다.
저도 그렇게 될 뻔했었으니까요.
모쪼록 그 선배님 재활 잘하셔서 조금씩 호전되시길 바랍니다.
현덕님 부부는 긴 연애 끝에 처가의 반대를 이기고 결혼하셨으니,
아내도 남편도 의지의 한국인이요 순애보의 주인공입니다.
유능한 가장이신 현덕님의 사업을 IMF가 엎어버렸군요.
많이 힘드셨겠지만 잘 이겨내셨네요.
3살 딸 떼어놓고 러시아 가신 이야기, 다음 편 기대합니다. ^^
저도 개띠 선배님을 생각하면 정말 믿기지가 않는답니다. 수족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것은 그렇다쳐도 말을 잘 못하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의사 말로는 혀에 있는 근육에 손상이 와서 그런다 했다네요. 달항아리님이 겪은 일이여서 이런 일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큰 걸로 보입니다.
달님 심성이 고운 것도 있을 테구요. 저도 선배님이 호전되길 간절히 바란답니다. 저라도 가끔 들여다 보면서 응원할 생각이네요.
저는 결혼이 어렵게 통과된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임신이 힘들거라는 의사말과는 달리 딸아이가 생긴 것이 가장 기뻤답니다.
딸 아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ㅎ
글도 어쩜 이리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간결한 내용 전달력있게 쓰실까 현덕님 글 속에서 한 가장의 부성애를 엿볼 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 고대 합니다.
운선님, 잘 지내시지요?
이리 글이라도 쓰니 운선님과 이런 댓글 소통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저한테는 일석이조입니다.
즉석에서 생각 나는 대로 일기처럼 쓰다 보니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운선님의 칭찬에 힘이 납니다.
카페에 운선님 같은 글벗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요.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본 글이 유현덕님의 딸 이야기군요.
잘 자란 따님이네요.
심성도 효성스럽고 사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지내셨던건 알았지만 먼저 러시아를 가셨군요.
참으로 인생길이 굽이굽이 힘든 여정이었겠지만, 이렇게 담담히 옛이야기를 할 만큼 이젠 편안해지셨겠죠.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으나 운동회에서 목에 건 이름표로 유현덕님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뵈면 아는 척해야겠어요.^^
후편이 있겠네요.
저도 막 잠자리에 들기 전인데 반가운 리진님의 댓글을 보았습니다. 못난 아비임에도 아빠를 배신하지 않고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마운 딸이랍니다.
러시아에서 첫 해외생활이었으나 곧 영국으로 이어지네요. 실패가 없었다면 외국 나갈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운명처럼 이렇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누군가의 인연으로 동아줄이 내려와 저를 구해줬답니다.
운동회 때 저를 보셨나 봅니다. 제가 리진님을 봤다면 먼저 인사를 했을 텐데 보질 못해 아쉽네요.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인사 나눌 날이 오겠지요.
그땐 제가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리진님, 고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
명랑운동회 사진으로.
우연히 보았습니다.
저는 불참이었어요. ㅎ
인생은 '실패는 없다 과정일 뿐'
참 맞는 말이죠.
바로 유현덕님에게 맞는 말 같습니다.
굿밤 되세요.~~
아하~ 그러셨군요.
제 인생에서 높은 데까지 올라간 본 적이 없기에 실패나 성공이나 별 차이는 없었네요. 그럼에도 실패는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지 싶습니다.
리진님이 저와의 만남이 사진 속 명찰로였다니까 저도 리진님과는 구면이라 할 수 있답니다. 팝방에선가? 노래 부르시는 것을 들었거든요.
Make you feel my love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전부 조용한 편이라서 리진님이 부르는 곡에 저절로 끌림이 생겼답니다.ㅎ
즐거운 봄날 되시길요.
너무 행복해지면
아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것 같아
아빠와의 추억을 쓰고 있다니
부전자전~~마음도 글도 참 기특하고 이뿌네요
멀리 있어 자주 못보니
그게 조금 안타깝지만
딸이 어디서든 행복하다면야
그리움 보고픔쯤이야~
인생은 역시 다 살아봐야 안다더니
성공한 선배의 순간이
이토록 아픈 노후가 되고
가족에게도 외면이라니
얼마나 그 세월이 아프고 아플까요ㅠ.ㅠ
여고친구도 일찍뇌졸증
친구들이 문안가도 좋아하지 않아서 그후는 안갔어요ㅠ
건강한 친구들 보는것
그런모습 보이는것도 아픔이라ㅠ.ㅠ
딴전
딸전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현덕님
라이카를 기억하게 해주셔서 감사입니다 ㅎ
정아님 댓글이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기에 글쓴 사람에게 힘이 나게 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화상통화도 할 수 있기에 그리움이 조금 덜 하지요. 눈썹 밑에 난 뾰루지까지 보일 정도로 화질도 좋구요.^^
러시아에 있을 때는 이런 것도 없어서 편지 아니면 전화였거든요.
누구든 자기 병든 모습을 보이긴 싫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떤 여배우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평생 알고 지냈던 지인들 면회조차 일체 사절했다고 하데요.
개띠 선배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선배 말로는 나올 게 없으니 그럴 거라고,,ㅠㅠ
행여 제가 너무 생생하고 밝은 표정이면 그 선배가 넘 부러워할지 몰라서 다음에 찾을 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아님 댓글 맨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요.
글구, 여전히 비운의 우주개 라이카를 기억하시는 정아님은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세요.ㅎ
딸집에 와서 새벽에 눈떠
달그락 거리면 안되
조용히 글을 읽게 되네요..
개띠 선배분 얼마나
힘드실까 안타깝네요
따뜻한 현덕님의
방문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림이 그려지네요
한동안 딸과의
냉전중이었는데
자식이기는 부모없다지만
이번에는 꼭 이길려구했는데
또 지고 요넘들땜에
딸집에
와 있습니다ㅋㅋ
열심히 살아오신
현덕님
항상 응원합니다~^^
문선이님,
저도 그 선배를 방문했을 때 엉엉 우는 통에 당황했답니다. 말은 빨리 못 알아들었어도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그 선배의 감정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는 자식뿐 아니라 여자한테는 가능한 지면서 살려고 합니다.
제 선배들 중에도 사는 낙이 귀여운 손자들 때문이라는 분이 여럿이네요. 공감과 함께 응원 보내주신 문선이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혀가 굳어져 더 말을 못학게 됩니더
말이 안되드라도. 악 소리라도 질러 재활 목적으로 매일 소리를 질러야 헙니더
그래야 목구멍도 좁혀지질 않씁니더
친구 남편 교통 사고로 6개월 식물 인간으로 있다가 깨어남
깨어난 후 말도 못하고 한 쪽 팔타리 완전마비
헌신적으로 아내 간병 밤낮으로 쟈활 지금은 완전한 발음로 만은 모쌔도 상대바미 다 알아 들을 수 이습니더
턱받침 있어야 식사 가는미였는데 10년 후 지금은 음식 흘리지만서도 그런대루 식사 헙니더
약도 갈아서 묵지만서도예
말 못한다고 그대로두몬 안 됩니더
말이 안되드라도 소리를 지르게해서 혀가 굳지 않게해야 하고 목구멍도 넓혀야 하니 꼭 부드러운 음식만 계속 먹여주몬 안됩니더
죽만 먹이면 장도 악해 집니더
재활이 젤 중요한 겁니더
재활은 가족은 못 헙니더
악처가 아니면 악마가 되어야하니까예
가족은 보는 모습 안타카워서 그렇게 지독하게 재활 못 시킵니더
시고나벼므로 마비가 되면은 젤 중요한게 재활임당
한달만 누워 있으면 모든 기능이 굳어지기 시작 헙니더
와우~ 하늘과호수님의 정성이 담긴 댓글 두 개에 건강과 재활에 대한 상식이 가득 담겼습니다. 하늘과호수님 말씀처럼 이 선배도 별의별 치료를 다 받았답니다.
양의학로 안 되니 전국 유명 한의원도 여러군데를 다녔구요. 침도 수없이 맍았다고 하데요. 약도 많이 먹었답니다.
한약뿐 아니라 개소주, 고양이소주, 자라소주 등등,,
누구보다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선배이기에 재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설 재활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구요.
요즘 지자체에서 장애인 복지 정책이 좋아져서 심리상담을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네요.
글이 길어질까 봐서 본문에서는 생략한 건데 선배가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음악감상도 하구 도무미와 함께 산책도 나가곤 합니다.
암튼 선배 걱정에 긴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4.0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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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58년 개띠일까요?
뜨끔 합니다.
한치 앞도 모를 생노병사..아둥 바둥 산 세월이 원망스럽네요.
효심 많은 따님.
유현덕님의 따님 사랑..
따님의 아비 사랑..부럽습니다.
역시 딸이었어야 했는데..
ㅎㅎ 제가 유독 개띠와 인연이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포인 선배님도 개띠시지요.
가끔 제 인연들을 돌아보면 유난히 개띠가 많아서 희한하단 생각을 할 때가 있답니다. 일부러 골라서 엮은 것은 아닌데 이런 인연도 운명으로 여기니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네요.
저도 장애인 선배 일을 떠올리면 사람 일 모르겟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알 수가 없기에 이렇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구요.
하나뿐인 자식이 딸이어서 저도 좋답니다.ㅎ
곧 김포인 선배님도 아들 효도 받을 겁니다.
생계를 위해 이데올로기의 중심. 쏘련에 가시고
어렵게 결혼한 부인과는 사별하시고
어렵게 낳은 딸과는 이역만리 떨어져 사시고
소설같은 삶이시네요.
끈끈한 딸과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합니다
앗~ 뱃등님 안녕하세요.
소련보다 쏘련이라 하니까 훨씬 실감이 나네요. 학교 다닐 때 공산주의는 나쁘다는 것을 배웠기에 저도 러시아 갈 당시에는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내도 그것을 불안하게 느꼈지요.
그래도 그런 시절을 잘 견뎠기에 지금의 제가 있지 싶네요. 딸에 관한 사연은 계속 이어집니다.
좋은 봄날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부모님 돌봄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의술은 발달해서 수명은 길어지는데 옆에서 돌봐줄 사람은 없어지고...
우리 모두도 그런 시기가 오겠지만
보통문제가 아닌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편을 아예 따로 집얻어 남에게 맡길수가...
그분이 얼마나 서러울까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는게 제일 행복일듯요
모카님, 선배님의 사생활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서 할 수는 없지만 그럴 만한 숨은 사연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아내(형수)만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사연이 있습니다.
딸들도 방문이 뜸할 뿐이지 아버지를 버린 것이 아니랍니다. 되레 그 선배가 딸들을 많이 그리워하지요. 선배가 저를 보고 운 것은 너무 반가워서 그랬구요.
어느 집이든 들여다 보면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숨은 사연이 있더군요. 우리집도 숨기고 싶은 사연이 있구요.
모카님 말씀처럼 수명은 길어지는데 돌봄을 받을 사람이 없다면 병든 노후가 슬플겁니다. 모카님이나 저나 일단 오래 건강하고 볼 일입니다.
시간이 부족해 긴 글을 다 읽지 못해 유감입니다.
다음 잘 읽어보고 다시 댓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곡즉전님 다녀가셨군요. 제가 까페를 자주 들어오질 못해 지금에서야 보고 답글 답니다.
길기만 하고 영양가 없는 제 글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꿀 같은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이네요.
이 비 그치면 곧 떠날 채비를 할 짧은 봄 마음껏 즐기시고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유현덕님
파란만장한 삶이셨군요.
영국 사셨단말은
직접 들었지요.
소련이야기는
처음인데,
가셔서 일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신미주님 안녕하세요.
제가 영국에 정착하기 전에 러시아에서 처음 외국물이 들었고 해외생활에도 관심이 생겼답니다.
늘 신미주 선생님의 애정어린 관심 고맙게 생각합니다. 절반 남은 하루도 좋은 시간 되시길요.
하이고..
하도 오랫만에 글을 읽게 되니 낯섭니다..
지난 운동회때 아는척 해주셔서..얼마나 반갑던지요~
한참동안 모임에도 참석 안했더니 모르는분 투성이었거든요...
ㅋㅋ
저도 어디선가 '세상의 모든딸들중 내딸이야기'를 몇편
쓴적있었는데...ㅎㅎ
이제 유현덕님의 딸 이야기를 관심있게 봐야겠습니다.
딸로서 하나되는 공감대 형성 차원?...ㅋㅋ
저도 하나뿐인 딸이 있거든요 ...
물론 전 하나씩 있는것들이 참 많긴 하지만요 .ㅎ
다음편 기대해요~~~
와우~ 이더님 반가워요.
마음이 통하면 작은 사람도 크게 보이기에 금방 발견하게 된답니다. 그날 운동회때 모여 있는 돼지방님들 중에서 이더님을 금방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더님도 딸에 관한 글을 쓰셨기에 제 글에 더 공감이 갔던가 봅니다. 저는 내딸이란 단어 조합이 참 좋더군요. 갈수록 그 단어에 끌림과 정감이 간답니다.
저도 만나서 반가웠고 이더님도 딸이 하나뿐이라니 공통점도 있네요. 저도 하나씩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부자라 여기면서 기쁘게 산답니다.
이더님, 좋은 봄날 되시고 또 만나요.ㅎ
어린시절 저도 참 어렵게 커왔는데
현덕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그때는 꿈이 있기에 가난했어도 움추려들거나
비관하지 않았지요. 그러다 36세에 늦결혼하여
3번 띠동갑인 93년생 딸하나만 있는데 어찌보면
그애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ㅎ 그산님 댓글이 여기 숨어있는 것을 지금 봤네요.
산님이 어렵게 크셨다는 것에 제가 심쿵,,
움추려들거나 비관하지 않았다는 것에 심쿵쿵,,^^
저도 결혼이 늦은 편이었는데 그산님은 더 늦은 결혼이었습니다. 96년생 제 딸이 태어났을 때 늦었다고 했는데 그산님도 늦게 딸을 두셨습니다.
이래저래 공감대가 많군요.
딸 아이 때문에 사는 이유까지두요.ㅎ
앞으로 자기가 너무 행복해지면
아빠생각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 것같아
걱정을 하는
딸아이 !
만쉐다 만쉐
너무 훌륭한 딸이에요
언어는 감각이거든요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딸이
이 한마디로
어떤 딸인지 알겠어요
잘 살아 오셨습니다ㆍ
뒤늦게 윤슬님 댓글을 보고 제 얼굴이 활짝 밝아집니다. 글벗이 보내주는 이런 댓글 소통 만큼 힘이 나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부족한 글을 꽃처럼 읽어주시고 제 딸을 추켜세우니 꽃샘추위 찾아온 토욜 아침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저보다 잘 살아오신 윤슬님 또한 앞날이 봄날처럼 빛나기를 빕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윤슬님의 응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