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4~5년 전에도 이 학교 아이들을 보면 건강하다는 느낌을 팍 받았더랬다. 구청에서 하는 교육행사 부스에 들러서 이것저것 질문하는 모습들이 스탬프만 찍으려고 투어하는 아이들이나 쭈뼛쭈뼛 하는 아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 벌써 우리 아이도 저 아이들 처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내 바램과 큰 아이의 바램이 만나 올해 그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선린인고(선린인터넷고)는 특성화고등학교이다. 특성화고등학교는 이전에 공고, 상고가 시대를 따라 변하여 외식, 인터넷, 세무, 방송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특성화 고등학고로 변하였고 서울에만 70개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이 학교는 정보보호과, 소프트웨어과, IT경영과, 콘텐츠디자인과 네 개의 과가 있다. 우리 아이는 콘텐츠 디자인과인데 줄여서 콘디과라 부른단다. 사실, 입학하기가 수월한 학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까다롭다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학교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학교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일단 우리 아이는 즐겁게 다닌다. 자기가 선택하여 합격한 학교이기 때문에 그 만족도가 높다는 생각도 한다. 1학년은 그러려니 하는데 학부모 간담회에서 만난 2, 3학년 학부모들도 한결같이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단다. 심지어 졸업생 학부모 중에서 학교 만족도가 높아서 둘째, 셋째 자녀가 진학하게 된 경우도 여럿 있었다.
아이들이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며 각종 공모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 성취도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자신들이 선택한 영역에 꽤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학교의 특징은 이렇다.
1.
일단, 복장이 자유롭다. 교복이 있지만 교복을 맞추는 아이들은 반정도이며 이마저도 입학 후에는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그냥 없애도 될 듯 한데)
2.
두발이 자유롭다. 아이 입학 후 처음 학교에 들어가봤던 날 아이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더랬다. 단발 이상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하교하는 (테리우스 feel) 단정한 추리닝의 남학생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핑크머리 여학생도 있다.
3.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자랑한다.
학교 선생님은 (5년 째 근무하신다는 아이 담임 선생님) 이 학교에 있는 동안 이렇게 학폭 없는 학교는 없다며, 그나마도 있는 것은 웹 상에서 댓글을 다는 것의 문제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말 밝고 건강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학생들은 두발, 복장을 단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집 아이도 염색 머리에 울프컷, 화려한 프린트가 있는 반짝반짝 점퍼를 입고 커다란 헤드폰을 장착하고 즐겁게 등교한다. (신발도 자유롭다! ;;; ) 이들이 진정 대한민국 고등학생인가? 대학생들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4.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많다.
특성화고등학교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디자인과 같이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과목들이 많다. 이번에 아이를 입학시키면서 알게 된 것인데 특성화 고등학교 아이들은 국, 영, 수, 한국사 수능 공통과목 외 사회/과학 탐구영역을 공부하지 않는다. 대신 직업탐구라는 과목을 학교에서 배워서 그것으로 시험을 본다. 학과 과목에 집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5.
학교만의 좋은 커리큘럼이 있다.
2, 3학년 혹은 졸업생 학부모들을 통해 듣자면 학교에서 진행하는 커리큘럼만 잘 따라가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운다고 한다. 졸업 후 관련 대학으로 진학한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이미 다 배우고 온 것들이라며 자기가 다른 학우들을 가르친다고도 한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과목은 방과후에 심화과정으로 개설해준다. 우리아이도 이번 학기에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고 있는데 세상에, 가르치는 강사가 이 학교 졸업한 대학생이다.
아,, 학부모 학부모들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학부모들 또 처음본다. 여태까지 학부모회, 운영위원회 하면 정족수를 겨우 채우거나 조금 넘어서는 정도였는데 현장에서 학년 학부모 대표, 과 별 학부모 대표 등 선출을 할 때 서너명이 번쩍 번쩍 손을들고 출마하며 출마의 변을 하는데 이런 분위기 처음이었다.
하지만 물론, 다 좋은 것들만 있겠는가? 특성화고등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진로를 택하는 아이들 보다 진학을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 모든 과를 통털어 내신을 내기 때문에 일부 과는 내신에서 불리한 면이 있어 학부모들의 항의가 많다. 그리고 어떤 동네 언니는 이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학교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그런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거라며 일반고를 추천하기도 했었다. 일부 아이들은 진로를 바꿔 일반고로 전학하거나 자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 타 특성화고의 경우 아이들이 자신들의 불안한 진로/진학으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졸업해야 최저시급받는다는 차가운 소리를 듣기도 한단다.
그럼에도, 이 학교 덕분에 생각하지 못한 경험들을 계속 하게 된다. 음, 아직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계속 좋을지 어떨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전에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일년 후 이 글을 다시 읽어봤을 때 같은 생각을 여전히 하고있길 바라며.
첫댓글 저또한 정말정말 그러시길 바라며….. 그런 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 멀리서나마 희망이 샘솟네요!
선린은 예로부터 유명하죠. 근데, 내신 경쟁 때문에 입시에 불리해서 일반고로 전학하거나 자퇴하는 아이가 있다니.. 상대평가만 아니면 이런 현상도 훨씬 줄어들 텐데 ㅠㅠ 너무 안타까워요
저도 다녀보고 싶어요 ㅎㅎ 고등학교에서 많이 배워서 졸업하니 바로 직업 현장에서 쓸 수 있도록 길이 잘 설계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