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조갑녀, 그리고 이장선
지난 6월 우리가 펼쳤던 ‘재인청 춤판’ 사진을 찾으러 재인청 춤의 전승자 정주미 춤꾼과 함께 정범태 선생을 찾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신 모양이다. 서대문 홍제동의 누마루에 비스듬히 앉은 선생의 성원아파트는 왼쪽에 절벽을 두르고 있어 위태로운 형세와는 달리 드나드는 입구 앞에 서면 아늑하다. 이 아늑함이 막 몸에 스미고 있는데, 선생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출입문을 나서는 선생은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정색을 한다.
“조갑녀 선생 공연에 올 거지?”
“네.”
"갈 거지?"가 아니고 "올 거지?"다. 우리 춤판을 주유한 세월이 족히 60년이다. 선생께선 이처럼 우리 춤에 대한 주인 의식이 투철하다. 역시 정주미 춤꾼은 알고 있었나 보다. 춤에 관한 한 제대로 미친 여인이니 모르고 있는 것이 이상할 터. 조갑녀, 어디선가 들은 적은 있다. 내 머릿속은 그를 찾아내기 위해 분주해진다.
“지난 7일, 남원에서 공연을 했는데 꽉 찼어. 대단했어. 내가 그치 춤 스승을 밝혀냈지. 어쩐지 그럴 거 같았어. 이장선, 어전에서 춤을 춘 이장선 말이야.”
조갑녀 명인(사진 : 크림댄스 대표 박상윤)
눈이 번쩍 띈다. 이장선이라니! 전설의 춤꾼 이장선. 구한말,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여령이 아닌 바지춤꾼으로 어전에서 춤을 춘 이는 이장선, 김인호 두 분밖에 없다. 역사는 많은 부분을 제 속에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다. 지고의 춤꾼으로 살았으나 격변의 역사 속에서 일반화 될 여지가 없었던 두 분의 삶이 그러하다. 오히려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던 한성준이 근대 우리 춤의 아버지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된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역사의 코드를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반응한 그의 감각이었다.
구한말에서 항일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무용사에 있어 새로운 역사의 코드란 새로운 무대의 형식, 곧 사랑방과 마당이라는 전통의 연희 공간이 극장식 무대라는 전혀 새로운 연희 공간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결국, 한성준은 이 새로운 연희공간을 읽어내고 거기에 걸맞은 우리 춤을 정립해낸 공을 세운 사람이다. 역사는 이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극장식 무대에 제일 먼저 적응하고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낸 이들은 궁중에서 쏟아져 나온 장악원의 여령들과 서울로 몰려든 전국의 기생집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한성준이 차지한 근대 한국무용사의 중심에 서지 못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제도적 억압과 일반의 부정적 인식이 주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장악원 여령이든, 경향 각처의 기생집단이든 그들이 비록 새로이 등장한 극장식 무대 위에서 흥행의 돌풍을 일으켰다 해도 그들의 춤 선생은 여전히 전통의 광대들이 도맡아 왔고 이는 전통의 광대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춤의 생산자라는 헤게모니를 굳건히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장선, 김인호, 한성준 세 광대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김인호(金仁浩, 생몰연대 미상)는 이천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용인의 원삼 내지는 백암 출신일 개연성이 높다. 특히 그는 천 년 광대의 역사를 이어내린 경기 재인청 출신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協律社를 위시하여 圓覺社, 光武臺에서 활동하였고 조선조 마지막 임금 순조와 한 대청에서 놀았던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무엇보다 처음부터 수부에서 활동한 지역적 이점이 있었다. 한성준(韓成俊, 1874-1942)의 경우, 충남 홍성 출신으로 지방 광대다. 여러 유랑패들과의 생활을 청산하고 1907년 송만갑협률사의 일원으로 서울에 정착한 때가 서른을 훌쩍 넘긴 때였다. 때늦은 수부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동안 명고수로 활동해야 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춤 선생의 길을 걷게 되는 시기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한 1930년부터다. 그런가 하면, 전남 곡성의 옥과면 출신인 이장선(李長善, 1866-1939)의 경우는 장악원에서 여령들에게 춤을 가르쳤다는 사실과 고종에게 종 9품의 참봉 벼슬을 하사 받았다는 점에서 명무 중의 명무였음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수부 생활을 청산하고 남원 권번을 찾은 것은 조갑녀의 아버지 조기환과의 친분 때문이었다.
공히 춤 선생 노릇을 한 이장선, 김인호, 한성준 세 광대 중에 이장선의 경우는 새로운 역사의 코드, 극장식 무대의 출현과 조우할 기회를 갖지 못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김인호의 경우는 재인청 출신이라는 점이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천 년 넘은 광대의 역사를 이어온 재인청은 전통적으로 바지춤, 곧 남무만을 고집해온 집단이었다. 극장식 무대를 장악한 기생집단의 성과를 똑똑히 쳐다보면서도 그가 전래의 춤을 다듬고 새로이 창안한 40여종의 춤들은 여전히 바지춤을 위한 것이었고 이미 여무의 매력에 이끌린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한성준의 안무는 이미 극장식 무대를 통해 새로운 살 길을 찾아낸 기생들에게 열려 있는 문호였고 수많은 소비층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재인청 최고의 춤꾼 김인호나 춤꾼이었다기보다는 뛰어난 안무가였던 한성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춤을 추었을 이장선은 막역한 친구 조기환의 부탁으로 10세에 춤꾼 소리를 듣기 시작한 그의 여식 조갑녀의 춤 뿌리가 되어버림으로써 하나의 전설이 되는 길로 들어선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만든 온갖 왜곡과 크고 작은 제도의 잘못을 걷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오늘의 우리들은 역사의 저 편까지 들추어내고 있다. 잊히고 버려진 우리 춤의 거대한 궤적을 찾아 헤매는 눈길 앞에서 재인청 춤은 부활하고 있다. 이 땅의 광대들이 꿈꾸었던 춤의 세계, 그들이 그려낸 지향을 넘어보려 한다. 이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춤이라 해도 예외가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조갑녀를 만나야 한다. 전설이었던 그가 조갑녀를 통해 이 땅으로 온다. 여든 일곱의 춤꾼 조갑녀. 왜 그의 춤 스승이 이장선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19세의 나이로 혼인을 하면서 춤을 접었던 그가 어렵사리 춤판에 선 것이 내가 우리 춤에 눈을 뜬 시기였는데. 불과 이태 전에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춤을 추었고, 작년엔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도 추었고, 겨우 이십 일전에는 남원에서 춤을 추었다는데 다급했다. 이러저러한 약속도 뒤로 미루고 불가피한 만남도 대충 마무리하고 잡아탄 택시 속에서 먼저 가 있을 정주미 춤꾼에게 전화를 걸었다.
“티켓은 구해놓았지?”
“매진이야. 알아서 들어와 봐.”
망연자실. 이게 무슨 말인가? 리허설부터 보겠다고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은 그녀가 티켓을 못 구하다니! 아차 싶었다. 진옥섭이 기획한 공연이었다. 허공에 새긴 세월을 대패로 깎아내는 춤판을 만드는 그다. 언제고 공연장만 가면 살 수 있는 춤판이 아니었다. 인기 뮤지컬 예매처럼 공을 들여야 하는 그의 기획 공연.
매표소에서 들을 수 있는 안내는 입석까지 매진이라는 말이었다. 좌우 출입구를 노려보았다. 들어갈 여지가 없다. 2층으로 갔다.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3층.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섰다. 무대 뒤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순간, 머리가 벗어진 사내 하나가 극장을 빠져나와 계단으로 내려서더니 핸드폰을 꺼내 든다.
“국악원 정문 앞에 차를 대!”
“제가 당신의 티켓을 사겠습니다.”
다짜고짜 그를 붙잡았다. 한사코 거절하는 사례를 호주머니에 찔러주고 출입구를 지켜 서 있는 아가씨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김춘추와 결혼한 문희를 떠올렸다. 서라벌이 온통 자신의 오줌에 잠기는 보희의 꿈. 꿈은 대머리 당신이 꾸었지만 그 꿈을 산 나, 문희는 이장선의 전설이 현실이 되는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춤추고 싶어서 바람이 잔뜩 든 머릿속을 누르려고 뇌신(두통약)으로 살았다.’는 조갑녀의 민살풀이춤.
진옥섭은 홍보 카피를 이렇게 썼다. ‘와 보라! 흉곽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그 5분’. ‘와 보라!’ 성경 구절이다. 이 친구가 언제 신앙부흥회 현수막도 눈여겨보았던가! ‘흉곽’ 어려운 한자를 일상어처럼 써대는 그다운 선택이다. ‘가슴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춤’ 정도면 충분히 쉽고 가슴팍에 새겨질 터인데. 그나저나 춤판을 여는 승무의 강성민은 지나치다. 이매방의 승무를 원형 그대로 추고 있다. 승무 하나만으로도 족히 30분을 메울 태세다. 결국 예상을 한 치도 비껴가지 않았다. 왜 이매방 제자들의 춤에는 이매방만 보이는지. 그렇지 않아도 예악당 3층에서 내려다보는 무대는 천 길 낭떠러지인데 나는 30분이 넘도록 저 아래로 참혹하게 떨어져 내렸다.
박경랑의 교방춤이다. 본 적이 없는 교방춤이었다. 분명 박경랑의 안무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승무에 지친 나를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연전에 보았던 박경랑의 춤보다 한결 농익었다. 이제 눈가를 넘어 뺨까지 자글자글 잔주름이 퍼지고는 있으나 그녀의 우아한 춤태 앞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역시 최상의 춤태를 지닌 그녀다. 더구나 그의 춤사위에 더해진 도도함은 그녀의 춤에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다.
대구의 춤꾼 권명화의 살풀이춤이다. 그의 제자들이 추는 살풀이춤은 여럿 보았으나 정작 보유자의 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여느 살풀이춤에 비해 경상의 개성은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이 춤은 춤의 구성과 몇몇 사위에서 너무 투박한가 하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작위적인 모습이 튀어나온다. 즉흥성의 이면에 감추어진 정교한 멋을 전면적으로 버리고 질박한 멋을 추구하였다면 차라리 경상의 춤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을. 못내 아쉬웠다.
강선영류의 태평무다. 누가 이 춤을 추더라도 나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태평무는 보유자 강선영 선생만 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무도 여무도 아닌 춤. 이제 막 남자에서 여자로 변신한 트랜스젠더가 추는 듯한 춤. 내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통의 미학을 경험하기 보다는 퍼포먼스에 가깝고 어떤 때는 전위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도살풀이춤의 이정희다. 그야말로 경기제다. 시원시원한가 하면, 어르고 감치는 춤사위가 오감을 쥐락펴락한다. 멋과 흥이 살짝살짝 내비치는 눈물과 한을 걷어차고 있다. 이제 저 아래의 무대가 멀지 않다. 통영의 정영만 선생이 보탠 구음은 처음 경험하는 남창이었지만, 글쎄! 이렇게 말하겠다. 2% 부족한 느낌이었다.
‘춤! 조갑녀’의 이번 공연 글씨를 쓴 장사익이 해설자 진옥섭의 호명으로 무대로 올라왔다. ‘봄날은 간다.’, ‘동백꽃’ 두 곡을 불렀다. 항상 그러하듯 그의 노래는 첫 소절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언제나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은 행운이지만, 오늘만은 사족이다.
사풍정감이다. 이매방 선생은 어려서부터 권번 뜨락을 놀이터로 삼은 터라 한량의 기방 출입을 그리도 보았나보다. 앉아 치는 술이나 받아먹고 무릎을 치면서 기생의 고혹적인 춤자락을 따라 오늘밤은 네가 수청 들라 번득이는 눈매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치들이 기녀의 춤사위에 섞여 도는 모습을 그렇게 마음에 새겼던지. 그런데 목포 권번의 한량무는 나풀거리기만 하고, 동래 권번의 한량무는 그 쪽 말로 그늘을 치는 연유는 무엇일까? 전라 한량은 여인보다 더 여인스러웠던가! 그나저나 드림팀이라는 악사들은 두 박은 더 쳐주어야 할 굿거리장단을 잦은몰이 장단으로 넘겨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특히 장고를 잡은 김청만 선생은 춤 매디를 만들지 못하는 게 오늘도 거슬린다. 이 세기적인 악사가 춤만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김운태에게 채상소고춤은 그의 상표다. 하도 많이 봐서 채상소고는 이제 김운태만 추는 것으로 여길 정도다. 언제 한 번 제대로 쓸 기회가 올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만 하자. 조갑녀, 그가 오고 계시므로.
[동영상 출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7051948&q=%C1%B6%B0%A9%B3%E0
여든일곱, 열두 자녀를 낳아 키운 어머니. 어머니로부터 춤을 배우고 있다는 딸의 부축을 받아 화문석 위에 섰다. 한 번도 열어보지 못했던 봉분이 열렸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팽팽한 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안구의 신경줄이 시간을 잡아채고 임계응력을 최대치로 높이고 있는 것이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까마득한 저 편이 왼팔을 드는 순간, 수만 입방미터의 모든 공간이 순식간에 당겨지고 무대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조갑녀, 임이 바로 눈 앞에 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관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동생에게 꿈을 판 보희의 오줌으로 넘쳐흘러야 할 무대가 왜 눈물로 넘쳐흐르는가? 눈물이 앞을 가릴까 걱정인데 걱정 속에서도 눈물이 쏟아진다. 그래도 보아야 한다. 희디흰 치마저고리 속에서 임께서 조금씩 흔드는 불림이 내 몸에서 느껴진다. 짙은 회색 흙빛 사이로 무엇인가 반짝인다. 흙을 헤집어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금관이었다. 눈물이 솟구친다. 아, 꺼내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던가? 금관이 그만 모래로 변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안 돼! 임께선 갑자기 춤추기를 멈추고 두 손을 단전으로 모으고 인사를 한다.
허공에 새긴 세월은 춤이다. 그런데 그 세월을 깎아내는 대패 역시 춤사위다. 나는 보았다. 그 왕관을, 찬란한 전설을. 진옥섭이 추임새를 넣으며 임을 이끈다. 다시 춤을 추시지만 그도 잠시, 일어섰다. 세종문화회관 그 넓은 공간을 오늘처럼 외팔 사위 하나로 당겨버리던 이매방의 살풀이춤, 내 질긴 엉덩이를 일으킨 문장원의 동래입춤. 이번에는 박수도 치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로비에서 모든 출연자들이 한데 얼려 춤을 부른다.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왕관이 눈부신 춤을 추고 있다. 진옥섭, 이 친구. 지나치게 시간을 길게 끈 앞선 이들로 인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이 짧은 시간을 위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기다린 객석의 원망도 적잖이 있으리라. 하지만 염려는 마시라. 그들도 '흉곽이 드르륵 열리고 심장이 덥석 쥐어지는 경험'은 단 1초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는 날이 있으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