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시/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위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시(詩) 해설, 문태준 시인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 1915년 결혼했으나 일찍 상
처(喪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쓸쓸한 뫼 앞에 후젖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앙금줄갚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부비면/ 넋이는 향 맑은 구슬 손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슬쓸한 뫼 앞에)라
고 노래했다. 고향인 강진에서 만세 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
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일본 유학 대에는 무정
부주의자 박열과 가깝게 지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
까지 거부했다. 1950년 9, 25수복 때 유탄에 맞아 애석하게
도 운명했다.
김영랑은 ‘내 마음’을 많이 노래했다. 초기 시에서는 ‘내
마음’을 빛나고 황홀한 자연에 빗대어. 주로3 . 4음보 4행시
에 담아 은은하고 섬세하게 노래했다.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때끗한 자연에 순결한 마음을 실어 노래했다. 이것은 불순하
고 추악한 식민지 현실을 대립적으로 드러내려는 속내가 있
었다.
이 시를 김영랑은 나이 서른 살을 갓 넘긴 무렵에 썼다. 모
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나의 꿈과 그 시간의 보람, 모란이 지
고 난 후의 설움과 불모성을 함께 노래했다. 이 시는 찬란한
광채의 ‘절정에 달한’ 시간은 포착하듯 짧게 처리하면서 음
울과 부재의 시간을 길고도 지속적으로 할애하는 데 시적 묘
미가 있어 보인다. 시인은 낙화 후의 사건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떨어져 누운 꽃잎” 의 시듦뿐만 아니라, 시듦
이후의 건조와 아주 사라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렇게 한 데에는 모란이 피는 희귀한 일의 극명한 황홀을 강조
하기 위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시는 감미로운 언어의 울림을
살려 내는 난숙함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눈물 속 빛나
는 보람과 웃음 속 어두운 슬픔’을 특별하게 읽어 낼 줄 알았
던 영랑의 유다른 안목과 영리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가 사람이라면 그이는 무엇을 간곡하게 바라며 뛰는 가
슴인가. 많은 시들이 울분과 슬픔의 감정을 표표하게 표현하
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이 더 찬란한 쪽으로 몰아쳐 가기를
바라는 열망에 기초해 있다. 한 편 한 편의 시는 그런 마음의
예감과 기미를 보여 주는 것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을 노래해
도 이미 뜨겁고 거대하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살아라. 허리통이 부드럽게‘ 드러난 보
리의 오월을 보아라. 신록의 눈동자로 살아라. 당일(當日)에
도 명일(明日)에도 우리네 마음은 ’향 맑은 옥돌‘ 이요 은물
결이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