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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데이비드 애덤슨은 평소에도 모험심이 엄청나고 도전 욕구도 강해 모스데일 동굴의 미개척 구간을 개척해서 지도를 완성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초 발견자인 밥 리키에게 자료를 받는 등의 수많은 사전 조사를 했고 함께 동굴을 탐사할 팀원도 모집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집한 10인의 탐험대는 다음과 같다.
1967년 6월 24일, 데이비드는 9인의 팀원들을 이끌고 탐험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모랙과 콜렛은 동굴 경험이 없어서 입구까지만 따라가고 나가고, 나머지 8명의 탐험대로 탐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곧 폭우가 내릴 수도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존 셰퍼드와 짐은 탐험을 연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앞에도 말했듯이 이 동굴의 지리적 특성상 홍수가 난다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겨우 어렵게 준비한 탐험이었는데 폭우가 내릴 수도 있다는 이유로 탐험을 연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홍수가 날 걸 대비한 안전한 구간을 미리 찾아봤으니 걱정 말라는 말로 팀원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존과 짐은 여전히 불안해서 모랙과 콜렛과 함께 입구까지만 따라가고 빠지겠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이에 대해 탐탁지 않아했지만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존 셰퍼드, 짐 커닝험, 모랙 포브스, 콜렛 로드 4명은 입구까지만 따라가고 나가고, 데이비드 애덤슨, 제프 부아로, 콜린 비커스, 존 오든, 빌 프레이크스, 마이클 라이언 6명이서 탐험을 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들이닥친 홍수
동굴을 빠져나온 4인 중 존, 짐, 콜렛은 베이스캠프로 향했고 모랙은 근처에서 기다려 탐험가 6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비가 그렇게 세진 않았으나 불행히도 저녁이 되자 일기예보대로 거센 폭우가 쏟아졌다.
동굴 입구에 있는 계곡물이 크게 불어나 물이 동굴로 들어갔고, 얼마 되지 않아 동굴 속은 물로 가득차고 말았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랙은 동굴 입구가 물로 가득찬 걸 보고 놀라서 인근 마을로 뛰어가 도움을 요청했다.
(1967년에 휴대전화는 당연히 없었던 때이고 무전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전화나 무전으로 구조 요청을 할 수가 없었다.)
1차 구조 작업
구조 요청을 받은 뒤 처음에는 어퍼 워프데일 산악구조대가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동굴이 아닌 산 구조 전문인 데다 모스데일 동굴 자체가 극악의 난이도의 동굴이라 구조가 매우 힘들었다.
이후 수많은 구조대와 군인들이 도착했고 물길을 막을 임시 댐과 배수로를 건설했다.
이후 자원봉사자까지 도착했고 동굴 입구 근처에는 임시 본부도 세워졌다.
사건 다음 날인 6월 25일, 임시 댐과 배수로 덕분에 동굴의 물이 많이 빠져나갔고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 짐 에이어(Jim Ayer)가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여담으로 짐 에이어는 다른 동굴은 많이 탐험해 봤지만 모스데일 동굴만큼은 위험성 때문에 탐험하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그에게 같이 탐험하자고 했을 때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데이비드를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죄책감을 가져서 구조 작업에 동참한 것이다)
그리고 동굴을 미리 빠져나온 존과 짐까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돕기로 했다.
그렇게 짐 에이어를 리더로 한 1차 수색대가 꾸려졌고 본격적인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수색대는 6인의 청년들이 살아있기를 기도했으나, 야속하게도 수로 속 마라톤 크롤 끝부분에 도착했을 때 5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그때 모두 이 구간에서 수장되었던 것이다.
수색대는 5구의 시신을 수로 밖으로 꺼냈으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존 오든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물길이 거세지고 댐이 파괴될 위험이 생기자, 외부에서 무전기로 수색대에게 나오라는 명령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수색대는 5구의 시신을 고정한 뒤 동굴을 빠져나왔다.
2차 구조 작업
사람들은 6명 중 5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절망했지만 아직 존 오든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2차 구조 작업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동굴의 최초 발견자인 밥 리키까지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본인이 발견한 동굴에서 청년들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53세나 된 중년이어서 구조대는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직접 소규모 수색대를 꾸리고 6월 26일 새벽에 2차 구조 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밥이 아무리 마라톤 크롤 일대를 둘러봐도 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차 구조 작업
밥을 비롯한 구조대는 희망을 내려놓고 철수하려고 했지만 6월 27일 10시, 존 오든의 오랜 친구인 브라이언 보드먼(Brian Boardman)은 친구를 동굴에 남겨둘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구조대를 꾸리고 3차 구조 작업을 실시했다.
그리고 수색대는 마라톤 크롤의 바위틈에서 존의 부츠와 금반지를 발견했다.
브라이언은 근처에 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때 수색대는 이 점을 미루어 보아 당시 존의 상황을 유추했는데, 당시 익사할 위험에 놓인 존은 살기 위해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바위틈 위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은 바위틈 위까지 차올라 존은 결국 익사했고, 시신은 바위틈에서 빠져나온 뒤 접근이 불가능한 어느 지역까지 흘러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브라이언을 비롯한 수색대는 절망했고, 존이 살아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조차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 무전기로 댐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소식을 듣고 수색대는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3차 구조 작업조차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6인의 탐험대 전원 사망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은 이들의 시신을 어떻게 동굴에서 빼내야 할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시신이 발견된 마라톤 크롤은 왕복 5시간이나 되는 거리이고 사후 경직으로 딱딱해진 시신을 가져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가 다시 쏟아져 임시 댐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다.
결국에는 영국 정부는 구조대와 유족들을 설득해서 시신 수습을 포기하고 동굴을 콘크리트로 영구 봉인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6인의 시신은 현재까지도 모스데일 동굴 안에 잠들어 있고, 입구 앞에는 죽은 6인의 묘비석이 세워졌다.
그렇게 모스데일 동굴 참사는 영국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동굴 사고로 현재까지도 기록되고 있다.
첫댓글 어후... 끔찍하다ㅠㅠ
아니 홍수나면 동굴에 안전한 구간이 있을수가 있나??? 구라같은데 믿고 들어간 사람들은 뭔죄임;;;
날씨라도 좋았으면 시신이라도 수습할수 있었을까?
좆부심은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는구나 에휴 몸 좀 사리지 괜히 자존심 부려서
죽을 수도 있는데 뭔 자존심 때문에..
고집부린 인원때문에 휩쓸려서 같이 들어간 팀원들 뭔죄야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