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m.hujiang.com/kr/p579072/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중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즉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바로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다.
2012년 상반기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에 붙잡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한글 창제와 관련된 숨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약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적어도 한글을 세종대왕 혼자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 단순히 집현전 학자들만의 힘으로 만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 창제에서 변음과 토착음을 완성한 정의공주는 어떤 인물이기에 남존여비의 유교사상으로 가득 찼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서 한글 창제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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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창제와 정의공주
한글학계와 역사학계의 연구결과 세종대왕은 문자를 만들었고, 정의공주는 문장을 완성했다고 최근에는 평가한다. 역사에는 단 몇 줄로만 그녀의 활약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 몇 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행여나 아버지인 세종의 업적에 누가 될까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말아 달라 간곡히 부탁했던 인물이 정의공주라고 한다.
우리말을 우리글로 쓰고 싶었던 세종대왕에게 한자를 이두로 표기하는 것의 불편함을 이야기해 한글 창제의 박차를 가하게 한 인물도 정의공주이다. ‘구구구’ 하는 비둘기 울음은 ‘관관저구(關關雎鳩)’라는 한자로, ‘나는’이라는 말은 ‘아은(我隱)’이라는 이두로, ‘산들산들’ 부는 바람은 표현할 수도 없는 불편한 것이 바로 당시 우리가 썼던 이두문자이다.
<우리 글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면 한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자를 예찬했던 사대부들이 다수였던 시대에서 한글 창제는 난관에 난관을 거듭했다. 그런 시대에 정의공주는 중국보다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겼다. 특히 『단군세기』같은 우리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아버지의 일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한글 창제에 관심을 갖고 한글 연구를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원음이 변형된 발음으로 나는 변음과 사투리인 토착음으로 고민을 할 때 그녀가 이것을 풀 수 있었다.
2011년에는 정의공주에 대한 소설이 등장했다. 국문학자이자 드라마작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소설화해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작가 한소진이 두 번째로 선보인 장편소설이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의 비화를 다룬 최초의 소설로 역사 앞에 드러나지 못했던 세종의 딸 정의공주의 대활약을 그리고 있다. 한글 창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을 떠올리지만 한글이라는 훌륭한 작품은 세종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도와 한글 창제에 힘썼던 세종의 딸 정의공주의 활약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일이다.
세계에는 수천 개의 언어가 있다. 하지만 문자를 가진 나라는 몇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문자를 창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했던 조선 시대의 유생들. 그 혼돈 속에서 한글이 실제로 퍼져나간 것은 여성들 사이에서였다. 여성들이 한글을 퍼뜨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이두문자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관련도서가 언급되있어서 추가
한글 창제의 '진짜' 이야기,
스스로 역사에 이름을 숨긴 한글 창제 일등 공신을 살려내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몇 가지 '설' 중에 내가 들은 것에는 이런 것이 있다. "한글의 모양은 세종대왕이 우연히 본 '격자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사실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것인데 세종대왕이 만든 것으로 포장되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은 따로 있음을 밝힌 <정의공주>는 내가 아는 모든 '설'들이 허무맹랑한 풍문을 넘어 검은 음모였음을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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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자랑스럽고 놀라운 '한글' 창제에 숨은 공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놀랍게도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가 아버지 세종의 꿈을 완성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한글 창제에 세종대왕의 둘째 딸이 깊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작가는 우리 역사의 숨은 '비화'를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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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 자신이 관련 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소중한 우리글이 천대받지는 않을까 하여 스스로 역사에서 몸을 숨긴 '정의공주', 이 책을 통해 공주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가림토 문자를 다시금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존이며 자주이니라"(46) 했던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피부로 느껴지고, 한글은 물론 함께 한글 창제에 몰두했던 "왕자들을 푸르고 거대하게 가꾸기 위해 기어코 퇴비로 남으려"(326) 했던 정의공주의 깊고 숭고한 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첫댓글 나랏말싸미 개봉 다가오면서 한남들이 자꾸 정의공주한테 발작하길래 끌올
한글 만든것도 여성... 남잔 진짜 가로채기 외에 할줄 아는게 뭐야?
근데 이런 글 볼 때마다 궁금한게 근거가 되는 사료가 확실하고 다양하게 있는건가...?
학계에서 얘기되고있는건데 왜 말해주지않는거지
여자만 또 역사에서 지워지지
정의공주는 참여도 지극히 낮았다고 전공여시들이 전에 반박자료 올리지않았었나??
자세히 파고들면 집현전 학자들도 세종대왕에 한참 못미칠정도로 세종대왕주도로 창제되었다고 하던데
반박자료도 끌올하고싶다..아무리 검색해도 이 글이 전부던데 ㅠ
응 사실 이거 글올라올때마다 쓰다지웠는데 그냥 세종대왕 혼자만든거 맞음.
그냥 존나 천재임....
집현전학자들은 대부분은 반대했었고, 한글이 그나마 유포되도록 도운게 여성이였던 정의공주와 일부 집현전학자였음.
실제로 한글은 조선시대 전반적으로 언문으로 낮춰져서 여성들한테 주로사용됨..
정확히말하면 창제가아니라 유포에 일등공신이라고하는게 맞는표현일듯
아니..한글은 집현전학자도아니고 세종거의 혼자만든거야 정의공주도 기여도거의없음.. 물론 집현전학자는 말이나오면서 정의공주이름은 덜알려지긴했지만 집현전학자는 오히려한글창제 반대한쪽이많고
이 글 볼 때마다 답답함
본문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죽산안씨대동보 언제 편찬됐는줄 알아? 1976년 & 1999년이야
한글 창제와 관련된 설들은 1940년대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되기 전까지나 나돌던 얘기지 한글 만든건 세종 명확해
집현전이 오히려 창제 반대했단거 흥미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