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https://www.fmkorea.com/9565654206
👇글부터 읽으려면 아래로👇
그림 : 나노바나나 프로
---
[...] 나는 불의 대가로 그들에게 재앙을 줄 것인즉,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재앙을 껴안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께서는 크게 웃으셨소.
헤시오도스, 일과 날 57-59
판도라가 항아리(흔히 상자로 오역되는)를 열어 인간 세상에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지만 재빨리 뚜껑을 닫아 희망만은 항아리에 남아 인간 곁에 있게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항아리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들려보낸 선물이며, 그에 앞서 판도라 자신 역시 인간에게 내려진 재앙의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항아리 안에 희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기묘하게도 판도라의 이야기를 전하는 헤시오도스는 희망이 항아리에 남아 있는 것이 제우스의 뜻이라고 분명히 언급한다(일과 날 99). 인간을 벌하기 위해 판도라를 만들고, 항아리에 재앙을 담아 보낸 제우스는 왜 그 안에 굳이 희망까지 넣어 두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신화 전체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판도라Pandora, John William Waterhouse, 1896>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한때 인간은 신들과 함께 어울려 근심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대지는 자발적으로 양식을 내어주어 일할 필요가 없었고, 죽음으로 이끄는 병도 없었기에 인간은 불멸이었다. 그러나 결국 서로 갈라서야 할 때가 다가왔고, 신과 인간은 메코네라는 곳에 모여 서로에게 돌아갈 합당한 몫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서 티탄 일족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편을 들여 제우스를 속이려 한다. 그는 커다란 황소 한마리를 잡은 후 이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먹음직스러운 살코기를 소의 위장으로 덮어 가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먹을 수 없는 뼈를 쌓아놓고 탐스러운 기름으로 둘러싼 것이다. 그러고는 제우스에게 마음에 드는 쪽을 스스로 고르라고 제안한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의도를 눈치채면서도 일부러 기름으로 포장된 뼈를 선택한다. 이 최초의 도살의례 이후 그리스의 희생제사에서는 신의 몫으로는 뼈를 태우고, 남은 살코기는 인간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제우스는 인간에게 내려줬던 천상의 불을 빼앗아간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회향풀 줄기에 숨겨와 인간들에게 불을 돌려준다. 화가 난 제우스는 인간들에게서 양식을 뺏는다. 프로메테우스가 위장으로 살코기를 가렸듯, 이제 대지가 양식을 가리고 있으므로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땅을 경작하며 고통스럽게 일해야 한다.
또한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해 '최초의 여성'인 아름다운 판도라를 만든다. 헤르메스에게 명해 그녀에게 개의 마음과 감언이설, 도둑질하는 기질을 불어넣은 제우스는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형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서 오는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으나,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그녀를 아내로 맞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는 재앙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녀에게서 여자들의 종족이 비롯되었는데 [...] 그들은 남자들과 함께 살 때는 인간에게 큰 고통이요, 저주스런 가난에는 적합한 동반자가 아니지만 부에는 그렇기 때문이다.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590-593
판도라는 재산을 축낼뿐더러, 항아리를 열어 온갖 재앙을 세상에 쏟아냈다. 이전에는 힘든 노고와 병 없이 살 수 있었던 세상(일과 날 90-92)이 재앙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무수히 많은 고통이 인간들 사이를 떠돌고 있소. 그리하여 육지도 재앙으로 가득 차고 바다도 재앙으로 가득 찼소. 병들은 낮에 인간들을 찾아가고 다른 병들은 밤에 찾아가오, 자청하여, 인간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며, 소리없이.
헤시오도스, 일과 날 100-104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rings Fire to Mankind, Heinrich Füger, 1790>
헤시오도스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Vernant(1988, 1998)는 정밀한 구조주의적 독해로 이 신화를 읽어냈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이해하던 짐승–인간–신의 삼분 구조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화, 특히 인간 조건을 설명하는 신화라는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테마인 '희생제사'와 '불', '결혼'은 모두 짐승과 인간을 경계짓는다. '희생제사'는 오로지 인간만이 하는 종교 의식이며, 동시에 공동체가 제물을 바치고 요리된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도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인간이 다루는 기술을 상징하는 '불'은 희생제사와 요리에 사용함으로써 날고기를 먹고 불을 다루지 못하는 짐승들과 인간을 분리한다. '결혼' 역시 제도적 성관계로 적자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이 또한 짐승과 인간을 분리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신과 인간의 거리감을 부각시킨다. 한때 함께 어울리던 신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어, 이제 인간은 '희생제사'를 통해서만 신과 소통이 가능하다. 노동하지 않고 편히 살며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는 신들과 달리 인간은 고통스럽게 일하며 짐승처럼 고기를 먹어야 한다. 이제 영원히 타오르는 천상의 불(신들의 계보 564)은 프로메테우스의 불로 대체되는데, 이 불은 끊임없이 연료를 주지 않으면 사그라드는 탐욕스러운 불이다. 불멸의 신들은 종으로서의 존속을 위해 번식할 필요가 없다. 원래 신들처럼 불멸이었던 인간은, 이제 판도라가 연 항아리에서 뛰쳐나온 재앙들에 의해 병에 걸려 죽는다. 인간이 존속하기 위한 유일한 결론은 아내를 맞아 결혼제도 안에서 번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선물들이 오고가는 패턴이다. 제우스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먹을 수 없는 선물, 곧 기름으로 싸인 뼈를 받는다. 프로메테우스는 회향풀 가지 속에 숨긴 불을 준다. 제우스는 아름답지만 '개의 마음과 교활한 거짓말과 알랑대는 말, 교활한 기질'을 가진 판도라를 준다.
제우스의 마지막 선물인 '아름다운 악kalon kakon'(신들의 계보 585)이자 '불의 대가'인 판도라는 다른 두 선물들의 직접적인 대응물이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받은 기름으로 싼 뼈처럼 겉과 속이 다를 뿐더러, 프로메테우스의 열화된 불처럼 끊임없이 재산을 집어먹으며 타오르면서 남자들을 태운다(일과 날 708). 그리고 항아리를 열어 온갖 재앙을 세상에 퍼뜨린다.
이 선물들은 모두 겉과 속이 다르고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이 혼탁하게 섞여 있다.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 조건도 선과 악이 섞여있는 양가적인 상태로 변한다. 고통 없는 행복은 없고 악이 따르지 않는 선은 없다. 이제 좋은 것은 항상 나쁜 것을 통해 연결된다.
<희망Hope, George Frederic Watts, 1886>
같은 패턴에 의해 판도라의 항아리 역시 내부에 재앙을 품고 있는 제우스의 기만적인 선물이다. 항아리 속의 희망 역시 겉으로는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드물게 이뤄준다는 점에서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 오고 간 다른 기만적인 선물과 동일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희망은 인간 조건을 형성하는 장치이다.
희망이 인간 조건을 형성하는 장치라 함은 어떤 의미인가? 그 힌트를 아이스퀼로스에서 얻을 수 있다.
코로스장 : "그대는 우리에게 말한 것보다 한술 더 뜨시진 않았나요?"
프로메테우스 : "그래요. 나는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하게 했지요."
코로스장 : "그 병에 대해 그대는 어떤 약을 발견하셨지요?"
프로메테우스 : "그들의 마음속에 맹목적인 희망을 심어놓았지요."
코로스장 : "그대는 인간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네요."
프로메테우스 : "게다가 나는 그들에게 불도 주었지요."
코로스장 : "하루살이 인간들이 벌써 환한 얼굴의 불을 갖고 있단 말인가요?"
아이스퀼로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247-253
비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하루살이'같은 필멸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맹목적인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말한다. 그 운명이란 인간은 예외없이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멸성을 깊이 인식하는 인간은 삶을 지속할 수 없다(내일 당장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인간을 마비시키는 필멸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병'에 대한 '약'으로서 그것을 잊게 하는 '맹목적인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신들은 희망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들은 완벽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애초에 죽지 않기 때문이다. 필멸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짐승들에게도 희망은 필요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제우스가 판도라를 통해 풀어낸 재앙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사는 인간만이 희망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제우스가 목소리를 뺏은(일과 날 104) 재앙이 언제 소리없이 닥칠지는 모른다. 희망은 그 틈 사이에서 인간에게 적어도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 속삭인다. 물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오니 결국 희망은 인간을 속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희망은 인간을 제우스가 부과한 인간 조건 아래서 살아가게 한다.
제우스가 항아리에 희망을 넣은 것은 벌이자 동시에 인간 조건의 완성이었다. 희생제사가, 불이, 결혼이 인간을 짐승과 신 사이에 위치시켰듯, 희망은 인간을 그 자리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하는 마지막 못이다. 겉과 속이 다르고 선에는 악이 따라붙는 제우스가 만든 질서에서 자신의 재앙을 껴안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나날마다 제우스의 지배는 더 공고해진다. 높은 올림포스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제우스는 웃음이 절로 나지 않았을까?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피할 길이 없는 법이다(일과 날 105).
참고자료
Clay, J. S. (2003). Hesiod’s cosmos. Cambridge University Press.
Detienne, M., & Vernant, J.-P. (1998). The cuisine of sacrifice among the Greeks (P. Wissing, Tra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Vernant, J.-P. (1988). Myth and society in ancient Greece (J. Lloyd, Trans.). Zone Books.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끊임없이 도전을 받음. 이 사건도 티타노마키아와 기간토마키아, 튀폰과의 투쟁에서 제우스가 승리한 후 우주의 지배자로 안정적인 권력을 확립한 상태에서 벌어진 프로메테우스의 도전. 즉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이용해 제우스에게 반역하려 한 것인데 여기에 괜히 인간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말려들어가 낙원에서 추방되어 버린 것😂😂
그리스 신들은 전지전능하지 않았고 그들의 지위는 힘과 능력의 문제였음.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에게,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 권좌를 찬탈하듯 힘과 능력이 있는 다른 누군가가 제우스의 지위를 찬탈할 수 있다고 상상한 것(가령 제우스의 아들이 제우스의 권좌를 찬탈할 것이라는 신화 등).
즉 현재 주신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것이 고대에 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나 무신론적 사고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음.
댓펌)
제가 아는 서사랑 좀 다르네요
판도라 파트는 티타노마키아 직후의 이야기이고 티탄신족을 배신하고 살아남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 남성을 창조한 신으로 알고 있음
애초에 티탄 신족을 배신한 이유도 완벽한 예지능력으로 제우스가 이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인간들로 반역을 한다는 내용은 생소함 ㄷㄷ 만약 시도했다면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을텐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 것은 결과적으로 프로메테우스 본인이라는 말임 ㄷㄷ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화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헤시오도스의 신화가 아닌 후대의 전승입니다.
"[...]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키클롭스들과 백수인족의 에피소드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은 우연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많은 학자들이 억누르거나 무시해 왔지만, 분명히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다. 곧 프로메테우스의 동기라는 문제다. 그는 왜 인류의 편을 들었는가? 이러한 박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후대 전승들은 이 티탄의 인간애를 그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사실로 설명한다. 그렇게 보면 그의 박애는 창조자가 자신의 피조물에게 보이는 편애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신통기』에서 신들이 창조한 유일한 존재는 여자다.
전 토마스 불핀치 책으로 그리스 신화 배웠는데 이것도 원전이 있었나 보네요?;;
찾아보니까 한국에서는 [신들의 계보]라는 책이 헤시오도스 신화라는데 이게 원전이라고 보면 될까요?
넵. 그게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 신화의 가장 오래된 버전입니다(기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사실 그리스 신화는 수많은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요 ㅋㅋ 여기서 쓴 글은 가장 오래된 기초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일과 날을 기준으로 썼습니다.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사이의, 체스 경기―혹은 어쩌면 포커 게임―를 닮은 대결에서 첫 수로서, 티탄은 인류에게 하나의 선물을 주려 한다. 그것은 그리스의 음식 예절 규범에 정통한 청중에게 특별한 울림을 지니는 선물이다. 무대는 신들과 인간이 함께 나누는 공동의 연회, 곧 다이스δαίς임이 분명한데, 이 말 자체가 분할 또는 배분의 행위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공정하고 균등한 분배를 가리키는 정형화된 표현, δαὶς ἐΐση가 사용된다. 사회적 제도로서의 δαὶς ἐΐση에는 두 가지 상이한 분배가 포함된다. 첫째는 엄격히 동일한 몫들moirai로의 분할로, 여기에 참여하도록 허용된 모든 이들에게 공동체적 유대와 상호적 의무로서의 필리아를 확증한다. 둘째는 특정한 탁월함이나 존경을 인정하여 부여되는 명예의 몫, 곧 게라스geras이다.
. 고기의 분할을 통해 프로메테우스는 황소의 먹을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인간들에게 주어 그들을 예우한다. 바로 이 행위로 그는 신들에게 정당하게 속하는 δαὶς ἐΐση의 몫을 박탈하고, 신들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위계를 전도한다. 겉보기에는 인류를 대신하여 프로메테우스가 초대를 발하고 주최자 노릇을 했다는 사실은 무례의 파열을 더욱 악화시킨다. 공정한 연회는 이제 불공정한 연회가 되었다. 더 나아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부여한 이 비범한 특권geras은 인간들 쪽의 상호적인 반대급부의 선물을 전제한다. 아마도 그것은 티탄과 제우스 사이의 대결에서 프로메테우스를 지지하는 일이었을 것이다."(Clay, 2003)
옛날 그리스인들은 희망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고 알고있음. 니체가 희망은 최고악이다 라고 한 것처럼. 기독교가 주류가 되고 나서 희망이 지금처럼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 걸로 암. 신이 있다고 믿으면 신의 선함을 소망하게 하니까.
엘피스(희망)는 부정적인 단어만은 아니었고 중립적이었습니다. 용례를 살펴보면 이게 좋은 뜻이 될지 나쁜 뜻이 될지는 상황에 달렸습니다. 플라톤적으로 엘피스는 참된 지식이 아니라 그냥 의견(doxa)이었으니까요.
Ex)
아테나이인 : 이 둘에 더하여 저마다 미래에 대한 판단(doxa)도 있는데, 이것은 엘피스(희망)이라고 통칭됩니다. 그중 특히 괴로움의 엘피스는 ‘두려움’이라 불리고, 즐거움의 앨피스는 ‘자신감’이라 불립니다. 이것들 모두 위에 ‘헤아림’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힘입어 즐거움과 괴로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쁜지 판단합니다. 그리고 이런 헤아림이 국가의 공적인 견해가 되면 ‘법률’이라고 불립니다.(플라톤, 법률 644c-d)
|
|
첫댓글 그리스 신화는 파면 팔수록 심오함... 고대사회라서 여성혐오 심한 거는 그 시대를 감안하면서 읽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개도 미물로 봐서 개의 마음을 줬단 게 흥미로움 ㅎㅎ
우리 식으로 읽으면 충직함을 줬단 건가? 싶은데
인도나 그리스에서는 개를 아주 천하게 봤다더라고 어디서 읽음..
더워서 축 늘어져있는 모습이 많아서..
여시 글 고마워!
그런데 희망은 항아리 안에 있는데 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진 거지.. 난 이해가 안 되네.. 하며 읽었는데 인간의 곁에 두었구나...!!!
인터레스팅
쩐당...
희망이 부정적인 의미였다니... 너무 흥미로워
굉장히 흥미롭군 한번 더 정독해야겠어
글 흥미롭고 재밌다
흥미롭다
제도적 성관계로 적자를 재생산하는게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점이라니.. 너무나 남성중심적인 시각이군 여자는 제도가 없어도 그냥 본인이 낳았으니 다 적자임 제도가 있으나없으나 적자생산에 아무런 차질이 없음 제도안에있는성관계에서생산한적자<이걸로 짐승인지 인간인지 가치판단을 결정씩이나 하는 권한이 지들한테 있다거 생각한게 너무나 남성중심 자의식과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