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3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생기자 승용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새 차 하나를 샀다. 차종은 엘란트라였다.
그런데 새 차를 구입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어느 날 밤에 누군가가 내 차를 날카로운 것으로 마구 긁어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때 주택가 골목에서 살았는데 어느 한 곳만 긁은 것이 아니라, 보닛 위와 4개의 문짝과 차의 지붕까지 날카로운 못 같은 것으로 흉하게 긁어놓았다.
그런데 내 차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골목에 주차해 놓았던 대부분의 차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침에 그 장면을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경찰이 왔다. 하지만 CCTV가 없어서 범인을 예측하기도 어려웠다.
성질 급한 사람은 그날 바로 공업사에 도색을 맡기고, 또 어떤 사람은 범인을 잡을 때까지 차를 도색 하지 않고 기다렸다. 범인이 다시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도색 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주 금요일 밤에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삼촌! 지금 범인이 차를 또 긁고 있어요.”
그때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나는 총알처럼 뛰어나갔다. 그러자 인기척에 놀란 범인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범인의 몸은 빨랐다. 하지만 달리기에는 늘 자신이 있었던 나는 2km 이상을 쫓아가 범인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잡고 보니 20대 중반의 젊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목덜미를 끌고 골목으로 돌아오니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경찰에게 인계하기 전에 그 친구를 일단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어?”
처음에는 침묵을 지키던 그 친구가 설득 끝에 입을 열었는데 이유는 이랬다.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싫어서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골목에 주차된 차 중에서 화물차나 티코 같은 소형차는 긁지 않고, 중대형 승용차만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날 피해를 입은 차량이 15대나 되었다. 피해액이 커서 일단 경찰에 그 친구를 인계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그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를 찾아왔다.
어머니의 까만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고, 손에는 굳은살이 잔뜩 박여있었다. 얼굴과 손에 당신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앞에서 눈물부터 쏟았다. 그러면서 합의 좀 해달라며 애원했다. 자식을 잘못 키운 어미 잘못이라고도 했다.
경찰로부터 피해자들에게 합의서를 받아와야 자식이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아들 좀 살려달라고 삭삭 빌었다.
그러면서 허름한 몸빼 바지 안에서 검정비닐 봉투 하나를 꺼내시는데 그 봉투 안에는 2백만 원이 꼬깃꼬깃 들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입은 피해액은 수천만 원이 넘는데 어머니가 내민 돈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화부터 냈다.
말이 안 되기는 했다. 그 자리에서 당장 합의될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내일 다시 오시라며 그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피해 차량의 주인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서로의 의견이 분분했다. 의견을 통일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내가 사회를 봤다.
합을 해 줄 거냐? 말 거냐? 합의를 안 해주고 혼을 내줄 것 같으면 길게 얘기할 것이 없고, 합의를 해 줄 것 같으면 어머니가 가져온 200만 원을 받을 거냐? 말 거냐?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야 했다. 어떤 사람은 200만 원이라도 받아서 골고루 나누자는 분도 계셨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받아서 동네 기금으로 적립하자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냥 합의해 주고 200만 원은 어머니께 돌려드리자는 분도 계셨다. 쉽게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회의는 종료하고 저녁에 우리 집에서 식사나 하면서 다시 얘기하자며 그분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렇게 헤어진 다음에 15명의 피해자 중에서 합의하지 말고 이번에 아예 콩밥을 먹이자며 가장 강하게 주장한 어르신을 따로 찾아뵈었다. 그분은 우리 중에서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다.
그 분에게 말씀드렸다. 혼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불쌍한 어머니를 봐서 우리가 한 번 봐주자고 했다.
처음에 그분은 말도 안 된다며 얼굴까지 붉혔다. 하지만 우리들도 우리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 때문에 지금껏 사람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냐며 그분을 간곡히 설득했다.
설득이 계속되자 그분도 조금씩 누그러지더니 결국 그렇게 하자고 승낙했다. 그리고 부탁 하나를 더했다. 저녁에 피해자들이 모두 모이면 어르신께서 결론을 그렇게 유도해 달라고 했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피해자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였다. 아내가 맛있는 장어탕을 준비해주었다. 상 위에는 소주와 맥주도 몇 병 올라갔고 술도 한두 잔씩 오고 갔다.
그러자 가장 연장자이신 그 어르신이 일어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서로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분께서 “우리가 액땜했다 생각하고 이번에 좋은 일 한 번 하자”며 대화의 물꼬를 터주셨다.
가장 강경했던 분이 그렇게 말하자 피해자들도 하나둘씩 “그렇게 하자.”며 선선히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에 우리 모두는 합의서에 지장을 찍어주고, 어머니에게서 받은 200만 원도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
참 이상한 것은 낮에는 그렇게 강경했던 분들이 밤이 되자 모두가 하나같이 천사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목 모임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매달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분들을 만나면 그때의 얘기를 한다. 그러면 하나같이 우리가 그때 결정을 참 잘했다고 말하곤 한다.
복잡한 일일수록, 그리고 의견이 분분할수록 세상일은 이렇게 법보다는 순리대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그때 사고를 쳤던 그 친구는 지금 좋은 어른이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정치도 그랬으면,,,,
좋은세상이 될텐대,
의견이 달라도,,
요즘에는 뉴스보기도 짜증 이나더라구요.
민수그렌마님 댓글에 격하게 공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