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永樂敎會, Youngnak Presbyterian Church)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2가에 자리한 장로회 소속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대형교회 중 하나이다.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 2일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들이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다. 교회이름은 베다니전도교회라 하고 일본천리교 경성분소의 신전을 개조하여 예배장소로 사용하였다.
북한 서북지방의 피난민교인들이 몰려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는 서울 최대의 교회가 되었고 1950년 6월에 교인 3,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건축하는 한편, 교회당 주위의 빈터에 천막을 쳐 집이 없는 피난민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영락교회는 신탁통치반대운동, 반공운동에 앞장섰으며, 피난민구제와 전도사업, 개척교회 설립, 농아전도, 해외선교사파송, 교육사업 및 사회복지사업에도 힘써 왔다.
역대 담임목사로는 1대 한경직 목사(韓景職, 1945 ~ 1973), 동사목사 강신명(姜信明, 1947∼1955), 2대 박조준 목사(朴朝駿, 1973∼1984), 3대 김윤국 목사(金潤國, 1985∼1988), 4대 임영수 목사(林永樹, 1988∼1997), 5대 이철신 목사(李哲信, 1997∼2018), 6대 김운성 목사(金雲聖, 2018 ~ )다.
드라마 야인시대 123화에서 개신교에 귀의한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비서 정대발을 만나는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이성순(시라소니)은 실제로 말년에 개신교에 귀의해서 영락교회에 다녔다.
일제 때 폐교된 숭실전문학교(현 숭실대학교의 전신)가 1954년 숭실대학이란 이름으로 남한에서 다시 개교하였을 때, 영락교회 내의 가건물들을 학교로 이용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한경직 목사가 숭실대 1대 총장을 맡았다. 숭실대는 1957년 현 위치인 상도동으로 이전하였다.
2. 현황
2013년 현재 2만여명의 교인이 있다. 사회사업기관으로는 영락보린원, 영락경로원,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영락모자원, 어린이집, 영락애니아집 등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영락유치원, 영락중학교, 영락고등학교, 영락 유헬스고등학교, 대광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보성여자중학교, 보성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다.
이북 실향민 출신들이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이북 출신들의 커뮤니티 형성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다.
신도의 노령화가 심하고, 장로교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교회. 90년대에는 통기타 들고 들어가면 '사탄의 문물을 들고 들어오냐' 면서 화를 내던 장로들이 존재했을 정도였는데 이게 2010년 후반이 된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다. 물론 저 정도는 아니지만, 대체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전도에는 큰 관심이 없는 교회다.
일례로 노방전도, 흔히 기독교하면 떠올리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길거리를 도는 전도에 대해 청년층 신도들은 굉장히 거부감이 심했다. 거의 100 이면 100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장로들과 노년층 신도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청년 신도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토달지 말고 순종해라' 라면서 고함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청년 신도들은 '노방전도가 정말 전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힘들게 전도를 하는 나는 고귀한 신도고 주님이 인정해 주실거야' 라는 마인드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복음을 알리고 싶은 게 진심이라면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 아닌가. 고행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게 기독교의 주된 가르침인데, 이렇게 되면 노방전도는 그냥 고행을 하는 게 아닌가?' 라는 불만을 표했었다.
그 외에도 청장년 신도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는 이 교회의 꾸준한 전통. 반대로 노년층 신도들의 우대에는 매우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당장 헌금줄이다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 본예배 설교 역시 청장년 신도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거나 이들을 깔보고, 노년층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설교가 많다.
때문에 많은 청장년 신도들이 교회를 떠났으며 떠나고 있다. 아무래도 전통이 있는 교회고 이북 실향민 커뮤니티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보니 대대로 주욱 다니는 신도도 많지만, 20대~30대가 모여있는 대학부와 청년부의 예배 출석 인원은 둘 다 합쳐 천 명 남짓이다. 물론 해당 예배 안 가고 본 예배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20년, 혹은 30년 후 신도의 급감이 필연적인 운명인 교회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한경직 목사를 거의 사위일체 (...) 수준으로 떠받들어 모시는데, '그분께도 공과 과가 있지 않을까요' 라는 온건한 비판마저도 천인공노할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거의 한경직이라는 또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신격화시키고 모시는 수준. 천주교가 교황에게 가지는 신앙심보다 더한 수준이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한경직이라는 개인이 아무리 선인이어도 일개 인간을 이 정도 수준으로 신격화하여 모신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또 다른 문제는 한경직이라는 인물이 결코 완벽한 선인이 아닌 잘못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청년 신도들이 영락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한경직의 잘못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교인이나 장로들이 완벽한 성인으로 치장한 한경직이 국가 조찬 기도회와 서북청년단 관련해서 명백한 잘못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수준.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듯 '완벽한 인간은 없다' 는 변명도 가능한데 그런 변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 교회는 한경직을 신성화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한경직을 변호하려면 전두환 혹은 서북청년단에 대해서도 '잘못이 아니다' 라는 스탠스를 취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교회가 전체적으로 매우 보수적이고 극우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활발히 활동하는 청장년 신도 중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점점 지쳐가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