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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427년, 장수왕의 평양 천도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사람들은 장수왕 때의 수도를 이렇게 인식한다.
이 전각들로 유명한 '평양성' 이 장수왕 때부터 수도였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수왕 대에 천도한 평양은...
대성산 바로 아래 위치한 평야지대에 안학궁을 건설하며 도읍을 정한 곳
천도 이후 자연스럽게 안학궁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이 되었다.
일상적으로는 평양의 주민들이 시가지가 있는 평지에서 생활하다가
전쟁이나 유사 상황시엔 주변의 산성이나 토성에서 농성하는 구조
대성산성은 수용면적도 넓고,
안학궁과 가까우며 지형상 가장 방어에도 용이한 전란시 최적의 피난처였다.
근데 자료가 없어서 저 남문은 북한이 상상으로 복원한 것이긴 한데... 뭔가...
전각의 단청은 한국식인데, 석축방법은 중국식??!!?
아무튼 장수왕이 처음에 지었다는 이 안학궁은
우리가 아는 그 '평양성' 에 지은 게 아니라는 거다.
대동문, 보통문, 칠성문, 을밀대로 유명한
우리가 아는 그 평양성은....
552년, 장수왕도 아닌 양원왕이 대동강 서남쪽 평야에 건설하기 시작
586년, 평원왕의 천도 이후 마침내 593년이 돼서야 최종형태가 완공
40년을 뛰어넘는 대공사 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완공 이후 이 성은 장안성(長安城) 이라 불리었으며,
평원왕의 천도 이후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까지 수도로 기능했다.
장기간 축조 기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장안성은 외곽 둘레만 17.4㎞, 전체 성벽 길이는 23㎞에 이르며
(참고로 14C에 공사한 한양 성곽은 외곽 둘레가 18km 이다.)
평지와 산의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잘 연결해 쌓아올린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들을 잘 결합해낸 평산성(平山城)으로
이후 고수-고당전쟁의 수성전에서 큰 효력을 발휘
그리고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성곽의 틀은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의 그림에서도 고구려 때 설계한
외성-중성-내성-북성의 4중 구조를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축성술의 견고함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
아무튼 다시 반복하자면,
장수왕이 천도했을 당시의 평양은 그 '평양성' 이 아니다.
그 '평양성' 은 평원왕 즉위 후반부터 고구려의 수도가 맞다.
또한 고구려 때 쌓은 그 '평양성' 틀은 조선까지 이어졌다.
첫댓글 언젠가 북한 오갈수 있는 날이 온다면 꼭 보고싶네요
오호
노래랑 같이 보니까 확실히 더 재밌음ㅋㅋ
오늘도 이렇게 하나배워갑니다
예전에 고구려 3성의 한성이 그 한성인 줄 알았음
바람의나라 평양성 생각나네요ㅋㅋ
나중에 통일되면 잘 복원했으면...
아 평양이랑 개성은 진짜 꼭 내 눈으로 보고싶네
아... 수정할 거 있었는데 그새 스크랩했네...
.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ㅋㅋㅋ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