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7년 전의 일입니다. 군생활에서 한겨울에 혹한기 훈련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완전군장하고 240키로 행군을 하고 강원도 철원의 진지에 도착한 후 며칠 지나서 일어난 일입니다. 거의 매일같이 하루 1~2시간 정도만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혹독한 날씨로 신체의 일부는 동상의 증세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잠을 못자서 피곤했던지 사람이 혼령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장시간의 행군으로 전투화의 마찰로 인하여 발 뒤꿈치가 까져서 피고름이 나오는 상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어느날 야간 철원 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진지의 정상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배고프고 졸리고 뼈속까지 추운 상태에서 바라다 보이는 철원 시가지의 야경은 저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였습니다. 그순간 만큼은 너무 힘들어서 그러한 상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일당을 받고 노동을 하더라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면 행복할 것이고 무일푼의 노숙자라도 자유를 누리고 사는 모습이 행복이라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시원이라도 좋으니 맥주를 마시면서 TV로 프로야구를 마음껏 시청하는 사회의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철원 시가지의 야경을 내려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철원의 야경을 보면서 갓난 아기의 재롱을 보고 웃고 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행복은 그러한 것이리라 상상하였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불을 쐬면서 쌀밥과 김치와 고기 한조각을 먹으면서 귀여운 아가의 재롱을 보고 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소박한 행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훈련이 너무 고되어서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또한 일제시대 말기에 어느 조선의 학도병이 가미가제 특공대로 선발되어서 미군 군함에 자살 공격하기 전날에 이 젊은 학도병이 숙소의 벽에 학도병 스스로 쓴 글이 기억에 납니다. '세상이여...영원하라'는 문귀가 말입니다. 젊은 학도병은 죽기에 앞서서 삶 자체에 애착을 느꼈던 것입니다. 삶 자체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고귀하다는 것 말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노숙자의 삶을 살든지 막노동의 삶을 살든지 젊은이의 눈에는 모두 행복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귀여운 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고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면 저는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굶지 않고 따뜻하고 시원하게 여름과 겨울을 날 수 있고 간혹 아들과 아내와 함께 외식하는 저의 모습이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노숙자도 아니고 일용직도 아닌 직장도 근무를 계속하는 만큼 저는 그누구도 부럽지 않은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평불만을 일삼고 남의 떡이 커보여서 욕심을 부릴뻔 했던 저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성경구절에 이런 구절이 떠오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이루니라"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라" 는 말씀입니다.
첫댓글 위를 보고 욕심부리고, 스트레스 받는것 보다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해야겠네요.
그럼요. 위만 보면 죽을 때까지 불평불만이고 행복은 없고 영원한 불행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70년전 철원에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죠.
네. 감사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릴 때나 불평불만이 생길 때는 군생활에서 깨달은점을 상기하곤 합니다.
꽃동네님 글을 기다렸는데 행복한 소식 저도 기쁩니다
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 카톡 프로필 상태메세지가 "범사에 감사하라"예요.
요새 부쩍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고 있어 힘든 가운데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그러셨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