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4주간 목요일 강론>
(2026. 2. 5. 목)(마르 6,7-13)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선교활동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7-13).”
1) 선교활동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직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을
인도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나, 복음을 전해 듣는 사람이나
모두 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22ㄴ-23).”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5-27).”
여기서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는, “나도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다.”이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는, “나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고
탈락자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처럼 잘난 체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충실하게 ‘구원의 길’을 잘 걷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즉 내가 먼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루카 6,39)”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2) 선교활동은 ‘섬김’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인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루카 22,27), 그렇게 우리도 ‘섬김’을
실천함으로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고압적인 태도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상대방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해도 안 됩니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열두 사도가 바오로 사도를 무시하지 않았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더 오래 했다면,
그만큼 더 성덕을 쌓아서 남들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신앙생활에서 선후배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3)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빈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은, 돌아올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신 것과 같습니다.
선교활동은 장사도 아니고 영업도 아닙니다.
물질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교활동은 ‘구원의 은총’을(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또 ‘섬김’과 ‘형제애’를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대가를 받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마태 10,8).
바오로 사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라고 말합니다(1티모 6,8).
그런데 ‘빈손’으로 가라는 지시 때문에
먹는 문제를 걱정한 제자가 몇 명은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을 당연히 먹이시는
분이니 먹는 문제를 걱정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의 지시에 대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걱정되니까 신앙생활을 한다.”로......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많고, 그런 일들 때문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긴 한데......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4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가톨릭사랑방catholicsb
첫댓글 아 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