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기 우리 카페에 글을 올렷는데 이글이 딱 1500번째의 글 입니다 ㅎㅎ
5월9일이면 역탐방과 여행방이 합동으로 춘천 제이드가든 수목원,청평사
여행 을 떠난다고 했는데 순번이 늦어서 못갈즐 알았는데 증차를 하는덕에
가까스레 함께 하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울수다방에서도 거산선배님을 비롯 몇몇분들과 함께 하게되어 더 기쁩니다.
내가 왜 수업을 빼먹으면서 갈려고 했던것은 소양강과 청평사에 얽힌 사연이
있어서 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미군부대에서 정년 퇴임후 마땅이 할것이 없어서 낚시대를 메고
소양강 건너편에 자리를 잡아서 허름한 움막 비슷한것을 손수 지어서 시간을
떼우고 계셧는데 그당시에 연세가 60 조금 넘으셧으니까 지금의 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으셧을때 이지요.
미군부대에선 사무직에만 늘 근무를 하셧으니까 별다른 기술도 없었기도 하지만
특별히 크게 모아둔 재산도 없이 상계동에서 새로 얻은 작은 어머니와 둘이 월세방
생활을 하셧는데도 힘든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았던지 술 좋아 하시고 낚시에만 심취
되어 지내는것이 안타까웠답니다.
나에게는 몹쓸 아버지 엿지만 그래도 나를 낳아준 분이라 환갑때도 그당시로는
큰돈인 백만원을 드려서 환갑잔치도 열어 드렷고 수시로 약간의 용돈도 가져다
주었는데 그래서 인지 계모 마져도 저를 무척이나 좋아 하셧습니다.
아버님이 낚시 하는곳을 가려면 소양강에서 배를 타고 건너기나 아님 차로 무척
힘든 꼬부랑길을 몇시간씩이나 돌고 돌아서 가야하기에 어려운점도 많았지요.
그리고 들어가실땐 홀로 가시니까 작은 어머니가 김치라던가 밑반찬을 만들어
놓으면 그걸로 반찬은 한다지만 밥은 홀로 해드시며 사셧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미군부대에서만 평생 근무를 해서 퇴직금도 상당 할텐데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해서 그나이 되실때까지 집한칸 없이 월세를 사셧다는게 이해가 안되더군요
곧 닥칠 노후를 왜 그렇케 허송세월 하셧는지 화도 치밀어 오릅디다....
처자식 나 몰라라 팽겨 처놓코..또 죽을 만큼 고생을 시켜 놓으시고 평생 본인만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셧는데 말로는 그야말로 참 비참하더군요
그래서 자주는 못찾아 뵈었지만 가끔씩 먹을거리와 약간의 용돈을 드리기 위해서
찾아가서 하룻밤 함께 낚시도 하고 나는 낚시 보다는 수영을 좋아해서 소양호에서
수영을 했는데 그래도 늦었지만 자식이 걱정이 되셧는지 멀리 가지 말라시더군요. ㅎㅎ
그렇치만 저는 경포 바다나 안목바다에서 제법 먼곳까지 수영을 하였기에 물 만큼은
사실 겁도 없었기도 제법 먼곳 까지 수영을 하고는 했답니다.
한번은 초등 중등 동창생이며 나랑 참 친하게 지낸 친구가 아버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겟다고 하여 내차로 갔었는데 요즘 처럼 네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만 보고
찾아 가기도 했는데 얼마나 먼곳 이엿던지 차라리 소양강에서 청평사로 가는 배를
타고 올걸 하고 후회도 했답니다..
환갑을 조금 넘어서 부터 낚시터에 사셧으니 거의 20년 넘게 그런 생활을 하신셈이죠.
그래서 내가 초창에 아버지는 영어에 능통 하시니 학생들 영어를 가르치면 어떻켓냐고
했더니 화를 내시며 내나이에 그런것은 못한다 라고 역정을 내시더군요.
여행방에서 청평쪽으로 간다니 문득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서 좀 장황 하지만 몇자를
올려 봅니다. 그런데 함께 가서 인사를 드렷던 죽마지우인 친구는 50세를 막 넘자마자
암이 걸려서 그후 1년도 채 안되어 저세상으로 가서 비통한 마음은 말할수가 없었답니다.
정말 착하고 아주 어린시절 부터 허물없는 좋은 친구 였는데 휴~~~또 한숨이 나옵니다.
그후 90세가 다 되어서 낚시를 접는다고 하시더군요. 그 낚시대도 모두 저를 주시구요.
인생이란 다 그런것 이란 노래도 있지요. 모두가 부질 없는 것이라고..
글치만 저는 죽을 때 까지 한자라도 더 배우고 또 열심히 일을 사랑하고 즐거운 여행도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기도 하고 가족들을 더욱 사랑하며 그리 살다 가렵니다..
오늘도 저의 과거 이야기를 속풀이수다방에 올리고 봉사활동 하러 이화동 갈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어느듯 4월도 중반을 넘어 섰는데 우리님들 오늘도 늘 그렇듯이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활짝 여시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조금 있다가 제 아버지 구순때 찍은 사진과 내여동생이 죽을때 까지
뒷바라지하며 좋아 하시는 회를 사주었던 사진도 한번 찾아 보겟습니다
아 찾았습니다. 아버님 구순때 경상도 울진 경주 포항 감포 울산을 제 차로 어머님 모시고 여행을 시켜 주었던 사진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 여동생과 경주 불국사에 다녀오며
어버님 사진은 찾았지만 며칠후면 닥칠 결혼기념일인데 8년전 결혼기념일때 어머님과 집사람 대공원옆에서 오리탕을 먹으며
첫댓글 이른 아침부터 콧끝이 찡해오네요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부모님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고바우님 다녀가시고 고운 흔적
남겨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역시 부모님 사진을 보면 눈물이
흐른답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고 즐거운 불금이 되세요.
오늘 아침도 아우의 순진하고 진솔한 글로
시작 되였군..ㅎㅎ
그래, 이번 춘천 여행을 함께 하게되여 무지
반갑네....
그러지 않아도 자네와 언젠가 버스를 같이 타고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 뜻이 이루워 졌네...
그렇다고 너무 술을 권하지 말게...ㅎㅎ
지난 추억이 깃든 곳이니 감개가 무량하겠군...
나도 소양강 다녀 온지 꽤나 여러해가 지났구먼...
여튼 만날 때까지 건강 하시게나...^*^
고맙습니다 거산 선배님 안 그래도
선배님이 계신가 보았더니 저보다
빨리 다셧더군요. 글치만 술은 가져
갈건데 우짜면 좋치요?
사실 술은 가져가도저는 막걸리 한잔
이면 딱인데 ㅎㅎㅎ
권하진 않켓지만 옆에다 두겟습니다 ㅎㅎ
정말 저한테는 추억이 많은곳입니다.
소양강에서 꽤 멀리 수영도 했었고
낚시하고 계셧던 아버님의 처량한 모습
에 눈물도 많이 흘렷답니다..
수리산님은
살아온 옛날의
이야기 꺼리도 많고
추억도 많고
글을 잘쓰는 재주도
가지고 계십니다
앞으로 건강지키며
꽃길을 이어가기 바랍니다
아고 선배님 제가 산을 잠시 다녀왔다
오늘 이화동 노인종합복지관에 봉사를
가려고 준비중에 소중한 댓글을 남겨
놓아서 답을 해드리고 다녀올까 합니다
저는 새벽마다 산을 가니 보통 6000보는
걷고 하루종일 일을 하거나 봉사를 가면
평균 이만보 가까이는 걷는답니다.
선배님도 그러시지요? 직장을 다니시니
저 보다 더 많이 걸으실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그리운 것 뿐인데
같이 가는 이길에 종철선배님이 계셔서
무척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도 멋진 불금이 되시길 바랍니다.
수리산님
멋쟁이십니다
즐독했습니다
오 멋쟁이 등대선배님이
여기 까지 오셧네요 고맙고 감사
합니다.
내일 백련산&세계평화공원둘레길
에도 참석 하시겟지요
환절기에 건강 관리를 잘하시고
좋은하루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 하시길 바람니다.
젊은 시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정착한
수리산님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는 봉사로서 주변에
베풀고 이읏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함께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고 기우선배님 께서 최남단에서
여기 까지 오셔서 소중한 댓글을 남겨
주셔서 무척 방갑고 고맙습니다.
그간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지요?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고 무엇을 해도
즐거운 행복한 나날이 되셧으면 합니다.
아버지를 엄청 좋아했어요
얼굴도 아버지를 닮고 싶었는데
엄니를 빼다 박았으니 그게 불만이긴 했네요
ㅎㅎ
저도 아버지 사진 찾아봐야 겠네요 ㅎ
금빛윤슬님 고맙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닮기가 싫었은데 너무도 똑
같이 생겨서 무척 싫었지요
고모님이 그러시데요 너는
우찌 된기 니 아버지 하고는
똑 같이 닮았는데 행동은 전혀
안닮았다구요..ㅎㅎㅎ
그렇탑니다 성격만은 안 닮은게
저로선 큰 다행이 엿습니다.
행운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캄캄할때 나가시고 캄캄할때 들어오신 열심히 살아주신
부모님 덕분에 자녀들이 편하게 산답니다
풀은 원수 보듯해라 하셨던 부모님 부지런해야 산다
신용이 재산이다 정직하게 살아라 부지런하면
밥은먹고 산다 하신부모님 간절 합니다
효자들이 가정에도 잘합디다 건행 하세요
금은화 선배님은 복을 받으신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어릴적에
아픔이 컷답니다,
하지만 내 스스로 바르게 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가정을 위해서 살자
하며 열심히 실이 왔기에 조금은 여유
로운 생활을 한답니다.
오늘도 늦었지만 선배님의 고운 댓글에
답글 남깁니다.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