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백범
삶은 감자
유현미 _ 방송작가
처음 허영만 화백의 만화 ‘각시탈’을 드라마로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당황스러웠다. 20여년 방송작가로 활동해 오면서 주로 미스터리 심리극을 써온 사람에게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액션물에다 시대극이라니... 참 뜻밖의 제안이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제안을 내게 한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이 되던 해에 KBS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드라마를 기획했다가 좌절된 적이 있었다. 모두가 실패한 역사라고 치부하는 일제강점기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애국선열들의 이야기를... 또 그분들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했던 어머니와 아내들의 이야기를 당시 나는 정말 드라마로 그리고 싶었었다. 그때의 내 열망을 KBS 관계자분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쓰고 싶었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다룰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두려움이 앞섰다. 평소 액션물이나 히어로 영화는 즐겨보지 않았는데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무협지 한 권 읽지 않았는데 해 낼 수 있을까? 일단 한다고 결정을 내리면 정말 ‘잘 해내야’만 할 텐데....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필패한다는 속설이 증명이라도 된 듯하여 또다시 그 시대를 다루기 힘들어 질 텐데...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 암울한 시대를 온 몸으로 살다가 무덤조차 없이 죽어간 청춘들을 되살리고 싶다는 열망이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다행히 연출을 맡은 윤성식 감독이 액션에 조예가 깊었다. 무려 5년이나 만화 ‘각시탈’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 했다는 의욕이 인상적인데다 무엇보다 슈퍼맨과 배트맨만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각시탈’이라는 한국적인 영웅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모자라는 부분은 서로가 채워주면서 만들어나가기로 의기투합하고 각시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작심하고 나니 주변의 지인들이 모두 다 만류하기 시작했다. 작가가 다음 작품을 쓸 때는 15%만 변신을 해야 성공하는 법인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대극에 액션 히어로 물을 쓴다는 건 200% 변신을 하는 셈이라며 염려를 했다. 그런 우려의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부활’이었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평생 복음을 전파하다 돌아가신 예수가 끝내 부활하지 못하였다면... 그렇게 선한 자가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게 세상이라면 우리가 정의롭게, 착하게 살아야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처럼 정의로운 분은 반드시 부활해야한다는 것은 내게는 ‘신념’이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애국선열들도 부활시키고 싶었다. 전국 13도에 혹은 만주벌에 피를 뿌리고 돌아가신 이름 없는 영웅들을 후손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 화두를 가슴에 품고 나니 어떻게 하면 허구의 세계인 드라마에 실존했던 역사를 ‘재미있게’ 담아낼까 고민이 깊어졌다. 메시지가 너무 선명한 3·1절 특집극이나 광복절 특집극 같아서는 시청자들이 외면할 테고, 액션 히어로 물로만 그렸다가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자체가 상실될 터였다. 고민 끝에 내린 나름의 해답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실존했던 인물들을 롤 모델로 삼아 드라마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삼는다면 등장인물들의 히스토리가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무장독립군 대장으로 등장했던 목담사리는 구한말 활약했던 남도 최고의 노비출신 의병장 안담사리와 일제강점기에 일경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재유를 참고로 해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강토와 우정을 나누다가 서로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적수가 되는 기무라 슌지는 조선의 민예품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사카와 다쿠미와 그의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의 삶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됐다. 그 외에도 조선을 배신한 배정자와 동양의 마타하리라 불리는 가와시마 요시코로 부터 채홍주가, 선유봉 호랑이굴을 근거지 삼아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조신성과 약산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의 삶을 섞어 적과 동지가 만들어졌다.
강토가 무찔러야했던 키쇼카이란 조직과 우에노 히데끼 회장은 을사늑약과 1910년 일제의 한국강점 조약에 막후 실력을 발휘한 흑룡회란 조직, 그 수장인 우치다 료헤이에다 경성천도를 주장했던 도요카와 젠요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졌다. 심지어 종로 경찰서 순사부장인 고이소와 아베 순사까지도 실존했던 인물들에 상상력을 보태어 만들었다.
두 번째는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사건을 역사적 사실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각시탈을 쓰고 왜놈들을 무찌른다는 판타지 같은 스토리가 그저 허구가 아니라 193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선열들의 투쟁사임을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만든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님을 모델로 한 양백 선생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백범의 독립운동을 각시탈이 돕는다는 설정이면 허구의 세계에 리얼리티를 부여함과 동시에 이름 없이 죽어간 영웅들이 우리 독립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작 여건상 백범이 활동했던 상해나 중경으로 각시탈이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백범이 조선 땅에 극비리에 왔다갔다는 가상의 설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백범이 1930년대에 조선 땅에 왔다갔다는 설정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판타지 같은 스토리에 리얼리티를 부여한다는 것이 오히려 줄거리를 더더욱 만화처럼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의도와는 달리 역사를 너무 비틀어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염려와 우려를 품고 백범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런 설정도 ‘드라마니까’ 가능해 보인다고 전문가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일경으로부터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백범이 죽음을 무릅쓰고 극비리에 조선에 들어온다는 설정을 하고 나니, 조선을 찾아오는 이유가 있어야만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힘입어 만들어진 설정이 바로 조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해왔던 몽양 여운형 선생님을 백범이 만나 제2의 3·1운동인, 무장만세운동을 펼친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1930년대에 조선 땅을 한 번도 밟지 않은 백범이 조선에 왔다갔다는 설정보다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꼭 김구 선생님을 등장시키고 싶었다. 일제강점기에 선생이 펼친 독립운동과 선생의 쟁족(爭足)정신을 드라마를 통해 그려내고 싶었다. 더불어 백범을 민족지도자로 우뚝 세우신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키워내셨던 안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처럼, 강토와 강산에게 삶의 지표가 되어주셨던 어머니 한씨처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 뒤에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그들을 한없이 지지해준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었다.
배운 것 없는 아낙이었지만 아들 김구가 안명근 사건으로 15년형을 받았을 때, ‘나는 네가 경기감사 한 것보다 더 기쁘게 생각한다’고 힘차게 말해줬던 곽낙원 여사.... 낯선 중국 땅에서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을 ‘기꺼이’ 뒷바라지 했던 그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드라마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래서 등장한 소품이 삶은 감자였다. 양백 선생이 목숨을 걸고 조선 땅에 들어오면서도 품에서 내려놓지 않은 것이 선생의 어머니가 손수 가꾸신 감자였다. 강토를 처음 만난 양백이 삶은 감자의 껍질을 까주며 팔순 어머니가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심정으로 보내신 감자라는 말씀을 하게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한 알이면 백 마디 말보다 더 진한 정을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감자를 말없이 우걱우걱 받아먹는 강토의 모습을 대본에 쓰면서 눈물을 쏟았는데 강토 역을 맡은 배우 역시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지금도 아쉬운 건, 그토록 어렵게 국내에 들어오신 양백 선생을 너무도 쉽게 보내드린 것이다. 중국으로의 탈출을 극적으로 그리고 싶었지만 제작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나 양백 선생이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와 강토에게 먹이신 삶은 감자가 있기에... 각시탈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사랑의 힘으로 또 다른 수많은 각시탈들과 함께 왜놈들의 총칼 앞에 분연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