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30분경부터 광화문 네거리서 촛불시위 시작
경찰, 불법집회 간주...시위대 200여명 에워싸
종묘 비국시국대회 4000명 광화문 이동중
▲ 촛불시위 현장의 시민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촛불시위는 원래 6시로 예정됐지만 5시 30분경 교보문고 종로방향 출구에서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집결을 알리고 있다. 이에 촛불을 든 사람이 하나 둘씩 모여기 시작해 오후 5시 50분 현재 200여 명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경찰은 이들의 집회를 불법으로 간주, 중무장한 채 이들의 주변을 둘러싸 바깥쪽에서 이들이 보이지 않도록 차단했다. 촛불을 든 200여명 정도의 학생,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앞서 한총련 소속 학생 20명은 삭발을 한 채 플래카드 들고 광화문쪽으로 행진하다 교보문고 앞에서 전경들에게 막혔다. 전경에게 둘러싸인 200여 명 외에도, 바깥쪽에는 150명 정도가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종묘공원에서 제2차 범시국대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 4000여명은 공원 앞 도로 중앙선의 한쪽을 완전히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시국대회를 마친 뒤 촛불시위가 예정된 광화문쪽으로 행진하려고 하고 있지만, 경찰이 이를 막고 있어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위대들은 "니네 동생이 죽었어도 이럴 것이냐" "폭력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으며, 경찰 방송 차량에서는 "여러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집회를 해야 합니다"라면서 시위대의 해산을 촉구하고 있다.
<제6신:30일 오후 6시 45분>
시민 5천여명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 주변 집결
인터넷에 번진 한 네티즌의 호소가 현실로 실현돼
▲ 일민 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 마이너
시민 1천여명이 광화문 앞 교보생명 앞에 모여 있다. 종묘쪽에서 진출해온 시위대 4천여명이 종로쪽 방향으로 2개 차선을 점거했다. 이들은 종묘쪽에서 시위를 마친 인원과 민주노동당 유세를 위해 모여든 인원으로 광화문 교보생명 앞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던 인원과 합세했다.
한 네티즌의 절절한 호소에 감동받은 시민들이 드디어 오프라인에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날 광화문 앞 네거리에는 오후 5시 30분께부터 시민들이 하나둘 초와 종이컵을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 11월 30일 저녁 6시경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모인 수천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시위대는 현재 교보생명 건물 앞과 그 주변에서 촛불을 들고 평화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한 시민이 "애국가를 부릅시다"라고 제안하자 모두 촛불을 높이 쳐들고 애국가를 합창했다. 이어서 시민들은 '아리랑'과 '님을 위한 행진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침이슬' 등을 부르기도 했다. 현재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종묘 민중대회를 마치고 합류한 시위대는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살인미군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그치지 않았고 "국민 여러분, 함께 광화문으로 갑시다"라며 선전을 이어갔다. 종로 일대 포장마차나 노점상의 손님들 역시 "수고한다"라면서 인사를 건넸다.
<7신:30일 밤 7시>1만명으로 불어난 '촛불 시위대'
부산 서면 일대서도 8시부터 촛불시위 열려
▲ 30일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눈물을 닦아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현재 광화문에는 종이컵에 양초를 끼운 촛불 시위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종로로 향하는 왕복 8차선 도로 한블럭을 완전히 점거한 채 애국가를 부르거나, '효순아' '미선아'를 외치며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거나,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많이 참석했으며, 연인과 가족단위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교보문고 앞에서 즉석 '만민공동회'를 열기도 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인근 가게에는 양초가 다 떨어져, 맨손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 시위대는 종이컵의 밑부분을 뚫어 양초를 끼운 다음 불이어붙이기를 하기도 했다.
현재 촛불시위대는 두 패로 나뉘어 있다. 한 패는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 교보생명빌딩 서쪽편에 수 백명이, 그리고 나머지 한 패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쪽, 즉 교보문고의 남측 출입구쪽에 모여 있다.
한편 경찰 병력도 불어나 시위대들의 행진을 막고 있지만, 몸싸움 등의 마찰은 아직은 없다. 시위인파가 늘어남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쪽 노변에 배치됐던 경찰들이 긴급히 종로쪽으로 이동했다.
한편 이날 오후 명동에서 선거유세를 벌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부인과 함께 6시 30분경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시위대에 합류했다.
저녁 7시 현재 권 후보의 유세차량은 종로1가 교보문고 옆 도로에 정차돼 있으며, 이 차량에 동승한 권 후보는 즉석 거리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8신:30일 밤 7시30분>
'촛불시위' 제안한 네티즌은 <오마이뉴스> 게릴라
광화문 네거리는 이제 '촛불 바다'다.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쏘아올린 글이 급속도로 전파돼 광화문 일대를 촛불로 물들이게 했다. 촛불 시위대의 한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바로 그 네티즌은 '앙마'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30세의 평범한 회사원. 지난 27일 오전 인터넷 한겨레 게시판에 '촛불시위'를 제안한 주인공이다. 그는 <오마이뉴스>의 뉴스게릴라이기도 하다.
그는 7시경 교보빌딩 앞 화단에 올라가 즉석 자유발언을 하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 지난 27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통해 '촛불시위'를 최초로 제안한 '앙마'. 그는 "내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광화문 네거리가 촛불로 완전히 뒤덮일 때까지 나오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제가 처음에 글을 올렸을 때는 이렇게 많이 나와주실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촛불 가지고 나오셨나요?
"예"
-다음에도 또 나오실건가요?
"예∼"
-다음 번에는 혼자 안나오실거죠?
"예∼"
-다른 분과 함께 나오실거죠.
"예∼∼ 그럼요!"
집회 참가자들은 '앙마'의 질문에 연신 호응을 하면서 그때마다 초를 치켜들었다. 그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화단에서 막 내려온 '앙마'(아이디)를 만났다.
-촛불시위가 현실화될 것을 예상했는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게시물이 퍼지는 것을 보고 짐작은 했다. 이 시위 방식이 범대위쪽에서 운동하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정이 어떤가. 꿈이 현실로 이뤄졌지 않은가.
"아직 아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반딧불로 다 덮어야 한다. 미 대사관까지 촛불로 뒤덮일때까지 해야한다."
▲ 촛불시위에 참가한 아버지와 아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화단 위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는 데 눈물의 의미는.
"기쁨의 눈물이다. 네티즌들과의 약속장소로 나오면서 촛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계속 울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이나.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나올 것으로 믿는다. 이것은 그 누구의 주도에 의한 시위가 아니다. 한사람 한사람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다. 경찰들도 처벌하지 못할 것이다."
-꿈이 무엇인가.
"내 진정한 꿈은 직접 사과를 받아내고, 미군을 처벌받게 하고, 소파를 개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진정한 꿈이다. 그리고 이뤄지리라고 믿는다."
-효순이, 미선이가 하늘나라에서 보고 어떤기분일 것 같은가.
"한 때문에 억울해서 하늘나라로 아직 못갔을 것이다. 진정한 꿈이 이뤄져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 함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시위가 시작된 지 3시간이 넘었지만 경찰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고 집회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차량 위에서 "이제 우리의 뜻이 전달됐다고 믿고 돌아가도 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이 해산을 거부하고 나섰다. 참가자들은 "아니오" "계속해" "진격해"를 연신 외치며, 광화문 네거리를 함성으로 메우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촛불은 2시간 여 동안 타 들어가 꺼지기도 했지만, '촛불 시위' 열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 촛불을 핸드폰 액정의 불빛으로 대체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한편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 경미한 부상이지만 실신해 실려간 참가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위대는 질서정연하게 스크럼을 짜 부상자를 운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또한 경찰이 심하게 밀 때마다 "비폭력"을 연호했다. 흔히 다른 시위에서 나타나는 경찰과의 몸싸움이나 시비도 거의 없는, 보기 드문 평화시위였다. 대치가 오랜시간 이어지자 시위대 측에서 "전경도 힘들텐데 좀 사람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10신 대체:30일 밤 10시 30분>
화단위에 남겨진 촛불과 국화꽃...9시 20분경 자진해산
밤 9시20분경. 광화문 일대를 수놓은 '촛불 시위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신이 들고 있던 타다만 촛불을 화단 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 국화꽃을 놓고 자진해산했다.
밤 9시가 되자 종로 경찰서장이 "이제 여러분의 뜻을 온 국민이 알았을 것이다. 더 지체하면 불필요한 마찰이 생겨 피해자가 생길 수 있으니 해산해 달라"며 안내 방송을 했다.
시위대는 "너희가 가야 우리도 끝내지"라고 야유했지만, 서서히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시위대는 그냥 물러나지는 않았다. 분노와 염원을 담은 촛불을 광화문 현장에 남겨두었다. 촛불은 광화문 사거리 '고종 즉위 사십년 칭경 기념비전' 앞 화단을 따라 죽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엄숙하게 자신의 촛불을 화단에 올려두었다. 준비해둔 하얀 국화도 함께 올려졌다.
3시간여에 걸쳐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쳐진 오늘의 '촛불시위'는 특별히 주최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 네티즌의 제안에 동의한 시민들이 자진해서 모여든 시위 아닌 시위였다.
▲ 화단에 경건하게 촛불을 올려놓는 참가자들.
이날 경찰도 비교적 자제를 보여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촛불시위'에 동참한 사람들은 '시위'라기 보다는 '추모모임'에 더 큰 의미를 뒀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난 6월 13일 효순.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꽃다운 목숨을 잃은 이후 5개월반 동안 추모, 항의집회는 이 땅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네티즌들은 내일 저녁 6시에도 다시 모이자며 인터넷 사이트에서 부산히 의견들을 주고받고 있다.
밤 10시 30분 현재 광화문 네거리는 다시 평소처럼 토요일 저녁의 한산한 분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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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