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324] 1992년 홍차와의 만남 (4) 정산소종 금준미➀
일월담 홍차에 이어 2016년 6월 12일 밤중에 시음을 하게 된 홍차는 ‘정산소종(正山小種) 금준미(金駿眉)’ 두 종류로, 2016년 5월 19일에 법제를 마친 ‘준미량(駿眉梁) 금준미’와 2013년 5월 13일 법제를 마친 ‘정산당(正山堂) 금준미’였다.
정산소종(正山小種)은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홍차의 이름이다. 1987년에 간행된 북경농학원 오각농(吳覺農) 교수의 『다경술평(茶經述評)』에 ‘홍차는 1610년 복건성의 무이산(武夷山)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복건성의 무이산은 중국에서도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하거니와 최고의 암차(岩茶)들이 생산되는 곳이다. 이 무이산의 최고봉인 황강산(黃崗山, 2158m) 아래에 동목촌(洞木村)이 있는데, 여기가 400년째 ‘정산소종’을 만드는 곳이다. 현재 이곳은 생물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검문소에서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출입을 시킨다고 하는 곳이다.
이곳이 홍차의 시원지(始原地)라고는 하지만 기실 홍차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김경우(金鏡祐)의 『중국차의 이해』(월간 茶道)에서는 4백 년째 집안 대대로 동목촌에서 차를 만들고 있는 무이산 원훈다창의 사장 강원훈(江元勳)의 얘기를 이렇게 옮기고 있다.
“청나라 군인들이 숭안현의 성촌을 지나면서 이곳의 차 생산 공장을 점령했다, 그러다보니 채집한 차를 제때에 제다할 수가 없었다. 군인들이 물러간 후 방치했던 차를 확인해보니, 이미 발효가 되어버린 찻잎에서 특이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냄새도 없애고 건조할 요량으로 바닥에 찻잎을 깔고 소나무로 불을 지폈는데, 건조과정에서 소나무 타는 냄새가 스며들어 완성된 차에서 솔향기가 났다. 이 차를 외국 상사에 위탁해서 팔았는데 뜻밖에도 외국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다음에도 그 방식으로 차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정산소종 홍차의 제다법이 만들어진 내력이며, 홍차가 인기를 얻자 중국내의 여러 곳으로 제다법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정산소종 금준미’에서 ‘정산(正山)’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며, 금준미(金駿眉)는 정산소종의 최고등급으로 그 아래에 은준미 동준미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시음한 ‘준미량(駿眉梁) 금준미’의 차통(茶筒)에 “미(眉)는 차가 눈썹 털(眉毛)을 닮아서 썼고, 정산소종을 법제하는데 가장 뛰어났던 양준덕사부(梁駿德師傅)의 이름에서 준(駿)자를 가져온 것”이라고 명기해 놓았다. 따라서 ‘정산소종 금준미’라는 말은 홍차의 시원지인 동목촌(洞木村)에서 만든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포장된 표면에 ‘특급’ 이라는 등급과 ‘동목촌’의 주소 및 기타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는 진짜 여부를 잘 살펴야 한다. (2016년 봄에 대대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정산소종은 동목촌의 차가 아니다.)
6월 13일 약사재일 불공 및 시식, 일요법회(3~6시), 그리고 상담까지 모두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밤이 깊어진 후에 나는 두 가지 차를 찻상으로 가져왔다.
먼저 준미량(駿眉梁)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는 2016년 금준미 차통(茶筒)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준덕(駿德)이라는 글자와 찻잎이 인쇄된 알루미늄으로 밀봉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제거하자 안에는 ‘준덕 금준미’라고 인쇄된 진공포장 봉지가 둥글게 넣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차는 4.3g이었다. 아주 작은 찻잎으로 만들어진 차에서는 금빛 싹인 금아(金芽)가 많이 보였다. 향을 맡아보니 큰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아주 바람결에 스치듯 멀리서 온 은근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다음으로 ‘정산당 금준미’의 차통을 열었다. 안은 ‘정산당’이 인쇄된 알루미늄으로 밀봉되어 있었으며, 그것을 제거하자 하얀 종이가 있었다. 종이를 들어내자 금아(金芽)가 빛나는 2013년의 ‘특제금준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찻잎은 2016년 것보다 약간 컸다. 향을 맡으니 고추를 말리는 멍석 곁에 있는 듯 약간 맵싸하면서 수줍은 듯 달콤함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흔히 다르질링(Darjeeling) 홍차에서 나오는 머스캣(Muscat-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청포도) 향이라고 한다. 2006년 스페인 정부초청으로 회장, 총장, 전문가 등 10명이 함께 스페인의 와이너리(Winery)를 방문할 때마다 갖가지 포도를 시식할 수 있었는데, 수차례 따먹었던 머스캣의 향이 비슷한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식용으로는 팔리지 않는 머스캣의 향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잘 안단 말인가. 아무래도 나에겐 어린 시절 자주 맡았던 고추 말리던 맵싸하고 달콤한 그 향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차를 마신 느낌은 다음 325에서 이어집니다.
▣사진 - (01) 2016년 5월 19일에 법제를 마친 ‘준미량(駿眉梁) 금준미’의 통. (02) 2013년 5월 13일 법제를 마친 ‘정산당(正山堂) 금준미’의 통. (03) 2016년에 법제한 ‘준미량 금준미’의 차통 뚜껑. 붉은 글씨로 준미량(駿眉梁)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04) 준미량 뚜껑을 열면 준덕(駿德)이라는 글자와 찻잎이 인쇄된 알루미늄으로 밀봉되어 있다. (05) 알루미늄을 제거하면 1회 용량으로 밀봉한 봉지가 둥글게 정돈되어 있다. (06) 금준미를 1회 용량으로 진공 포장한 봉지. 차는 4.3g 들어 있다. (07) 막 올라온 싹과 그 아래의 어린잎까지만 잘라 만든 최고급 금준미의 모습. 금빛의 싹이 보인다. (08) 한자와 알파벳으로 정산당(正山堂)을 인쇄한 2013년의 금준미 차통 뚜껑. (09) 뚜껑을 여니 남색 알루미늄에 정산당을 인쇄하여 밀봉했다. (10) 알루미늄을 제거하면 흰 종이가 덮여 있다. (11) 종이를 들어내니 금빛 싹이 보이는 금준미가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12) 2016년의 금준미보다 잎이 조금 큰 편이고 고른 듯했다. 맵싸하고 달콤한 향이 섞여 올라왔다.